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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도서실 데이트

Penulis: 비밀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7-14 17:00:00
“올해만큼은 백성들을 먼저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음, 그래.”

칼리안은 잠시 생각한 뒤 그녀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회의 후 대신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칼리안이었다면, 숫자와 원칙만 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늦은 밤, 두 사람은 집무실에 남아 마지막 서류를 정리했다.

동시에 같은 문서를 집으려던 손끝이 살짝 맞닿고, 둘 다 놀라 손을 멈췄다.

짧은 정적 끝에 칼리안은 손을 거두지 않은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로라 역시 이번만큼은 먼저 손을 피하지 못했다.

방 안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보다 두 사람의 심장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듯했다.

“…이 손,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거예요?”

“글쎄, 언제까지일까.”

“대답을 안 하시네요.”

“대답하면 재미없잖아.”

“그 말버릇, 진짜 여전하시네요.”

칼리안은 짧게 웃으며 결국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서류를 정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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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221. 이단심문관

    성좌의 마차는 아침 햇살을 등지고 성문을 넘었다.검은 말 넷이 끄는 검은 마차.문장도 깃발도 없이, 문짝에 은빛 성표 하나만 박혀 있었다.그것 하나로 수도 사람들은 길을 텄다.마차 바퀴가 광장의 얼음 꽃 사이를 지나며 자갈을 짓이기는 소리만 났다.이십 년 전, 같은 마차가 화형대 앞에 멈춰 섰던 걸 기억하는 노인들이 문간에서 성호를 그었다.대전의 높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의 붉은 융단을 가로질렀다.의원들과 귀족들이 양쪽 기둥 아래 늘어서 있었지만, 기침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심문관은 그 대전에서 칼리안을 만났다.엘로라도 옥좌 곁에 앉아 있었다.둥근 배를 숄로 가리지 않은 채.생각보다 젊었다.서른을 갓 넘겼을까.검은 사제복에 깊은 두건.그 그늘 아래로 회색 눈이 보였다.겨울 호수처럼 조용한 눈이었다."성좌의 이단심문관, 아우렐리오입니다."그는 고개만 숙였다.무릎은 꿇지 않았다.심문관은 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다고, 세드릭이 아침에 귀띔해 두었다."이단심문관이란 자들은 무릎이 없습니다. 태어날 때 성좌에 맡겨 두고 온다고들 합니다."그 말에 엘로라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었다.지금은 입꼬리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베네딕트 대사제의 서신을 받고 왔습니다. 폐하께서 교단의 수장을 지하에 가두셨다고요."낮고 평평한 목소리였다.감정 없이 조문을 읽는 목소리."그놈이 내 황후를 죽이려 했어.""그렇다면 교단이 심판하겠습니다. 그를 넘기십시오.""넘기면.""성좌로 데려가 재판합니다."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220. 죽이지 않는다

    엘로라는 달렸다.서쪽 별채에서 지하 감옥까지 회랑 넷, 계단 셋.배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옆구리가 결렸다.칼리안이 그녀를 안아 들려 하자, 엘로라는 그 손을 붙잡고 오히려 끌었다."뛰지 말라니까.""그럼 업어 주시든가요!""그 배를 어떻게 업어.""그러니까 같이 뛰어요!"회랑 모퉁이를 돌 때마다 횃불이 그들의 그림자를 벽에 길게 늘였다가 접었다.경비병들이 황제를 알아보고 벽에 붙어 섰다.누구도 감히 묻지 못했다.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식었다.횃불 그을음이 천장에 이끼처럼 엉겨 있었다.가장 깊은 칸의 철창이 열려 있었다.간수가 문 옆에 엎어져 있었다.뒤통수에 혹이 하나 솟아 있었지만, 등은 오르내리고 있었다.칸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베네딕트는 벽에 등을 붙이고 주저앉아 있었다.세라피나가 그 앞에 서 있었다.손에 흑장미가 새겨진 단검.로젠하임 가문의 칼이었다.칼끝이 늙은 목에 닿아 있었다.가는 피 한 줄기가 주름 사이로 흘러 사제복 깃을 적셨다."세라!"세라피나는 돌아보지 않았다."오지 마세요, 언니.""칼 내려놔.""이 사람이 저를 만들었어요.""알아.""언니를 쏘게. 언니 애들을 쏘게. 저는 그것도 모르고 화살을 모았어요. 신의 뜻이라면서."단검을 쥔 손이 떨렸다.칼끝이 목 위에서 바르르 흔들렸다."그 화살이 에녹 경 등에 박혔어요. 그분이 안 막았으면 언니 배였어요. 제가 쐈어요. 제가."베네딕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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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피나는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로젠하임 저택에도, 서쪽 별채에도.세드릭이 성문을 모두 걸어 잠갔지만 빠져나간 흔적은 없었다."서문, 북문, 강 쪽 수문까지 확인했습니다."자정이 넘어 돌아온 세드릭의 망토 끝에서 빗물이 떨어졌다."나간 사람은 야채 수레 하나뿐입니다. 수레 밑까지 봤습니다. 양배추밖에 없었습니다.""그럼.""아직 수도 안입니다. 어딘가에."세드릭은 그 말을 하고도 물러가지 않았다.젖은 장갑을 벗어 쥔 채, 그는 한동안 문가에 서서 바닥만 내려다보았다.밤이 깊었다.창밖으로 수도의 지붕들이 달빛 아래 비늘처럼 겹겹이 이어졌다.그 많은 지붕 가운데 하나 밑에 동생이 있었다.찾은 지 이레 만에 다시 잃어버린.엘로라는 창가에 선 채 은 깃털을 쥐고 있었다.쥔 손바닥에 깃털 모양으로 자국이 패었다.로웰이 내려놓고 간 찻잔에서 김이 오르다 말았다.구석 의자에서는 마르타가 지팡이를 끌어안고 울었다.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이며."앉아."칼리안이 의자를 끌어다 그녀 뒤에 놓았다.엘로라는 앉지 않았다."내가 데려갔어요.""엘로라.""계단 위에 두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니, 아예 데려가지를 말았어야…….""네 잘못 아니야."잘라 말하는 목소리였다.그런데 그 끝이 아주 조금 늦게 닫혔다.그도 같은 계단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는 걸, 엘로라는 알았다."다 들었잖아요. 저를 쏘라고 키워졌다는 거.""그래."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218. 자매가 자매를

    지하 감옥 가장 깊은 칸은 늘 젖어 있었다.레이너드가 피로 글을 남겼던 벽은 하얗게 회칠이 되었지만, 곰팡이 핀 돌 냄새는 회칠 아래서도 배어 나왔다.천장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횃불은 습기를 먹어 자꾸 꺼질 듯 낮아졌다가, 기름 타는 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섰다.베네딕트는 구석 짚더미에 앉아 있었다.흰 사제복이 진흙에 절어 쥐색이 되어 있었다.곁에 놓인 빵 한 덩이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말라 갔다.독이 무서워서인지 자존심 때문인지, 그는 감옥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칼리안이 철창 앞에 섰다.엘로라가 그 옆에.세라피나는 계단 위에 남겨 두었다.엘로라가 그렇게 부탁했다.적어도 오늘은 이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았으면 해서."알고 있었지."베네딕트가 고개를 들었다.놀랍게도 그 얼굴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폐하."습한 지하에서도 목소리가 맑았다.제단 앞에서 기도문을 읽던 그 목소리 그대로.엘로라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고아원 문 앞의 애가 누군지.""아, 그것."노인이 짚을 털며 등을 폈다."물론이지요. 헬레네의 고해를 받은 게 저였으니까요. 흑발, 파란 눈, 세라. 다섯 해를 찾아다녔습니다.""계속해.""그런데 어느 겨울 아침, 그 애가 제 고아원 문 앞에 놓여 있더군요. 신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그래서 키웠고.""정성껏 키웠지요. 그리고 로젠하임에 양녀로 보냈습니다. 마녀를 누구보다 증오할 가문에, 마녀의 피를."칼리안의 주먹이 철창을 갈겼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217. 마르타의 맹세

    세라피나는 제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평생 한 번도 빛난 적 없던 깃털이 거기서 은빛을 내고 있었다.그녀가 두 손으로 그것을 감쌌다.손등의 힘줄이 파르르 섰다."……언니?"묻는 건지 부르는 건지 모를 소리였다.엘로라는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았다.옆구리 붕대를 피해, 팔을 조심스레 둘러서.세라피나는 나무토막처럼 서 있었다.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안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몸이었다.엘로라는 그 굳은 어깨에 뺨을 대고 기다렸다.한참 만에, 세라피나의 손이 엘로라의 등 위로 올라왔다.허공에서 한 번 멈칫했다.그러고는 드레스 천을 꽉, 구겨 쥐었다.*서쪽 별채의 창가로 아침 햇볕이 비스듬히 들었다.세라피나는 그 볕 속에 앉아 엄마의 고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마지막 줄의 두 글자 위에서 손가락이 오래 머물렀다."피나는 고아원 수녀님들이 붙였어요. 세라만으론 짧다고. 성녀 피나에서 따서요.""예쁜 이름이에요.""언니는요?""나?""엘로라는 누가 지었어요?""선황 폐하가요. 에인젤 마마의 죽은 딸 이름이래요."세라피나가 고개를 돌렸다."그럼 진짜 이름은요.""리아요. 아빠가 배 속의 나를 그렇게 불렀대요.""엄마는요?""……엄마는 한 번도 못 불러 봤겠죠."세라피나가 고해 마지막 줄을 다시 내려다보았다.둘째의 이름은, 세라였습니다."그럼 저는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이네요."'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216. 세라

    열린 문으로 밤바람이 밀려들었다.제단 앞 성수 대야에 잔물결이 일었고, 그 위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졌다.흑장미 사병들이 대사제를 끌고 나가는 쇠사슬 소리가 천장에서 몇 번이고 되울렸다.엘로라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물 밖에서 들리는 것처럼 뭉개져 있었다.세라피나는 문턱에서 멈췄다.세드릭의 팔에 기댄 채.붕대 위로 피가 손톱만큼 배어 나와 있었다."사제관에서 눈 뜨자마자 여기 오겠다고 했습니다."세드릭이 짧게 보고했다."말렸습니다. 안 들었습니다. 상처보다 고집이 깊습니다."세라피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그녀의 눈이 제단 계단에 앉은 엘로라에게 닿았다.그 손에 들린 양피지에, 그리고 젖은 얼굴에.엘로라는 울고 있었다.소리도 내지 않고.세라피나는 그 얼굴 앞에서 저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누군가 자신을 보며 우는 걸 처음 보았다.고아원 수녀들도, 양부도, 대사제도 그녀를 보며 울어 준 적은 없었다."……황후 폐하?"엘로라는 대답하지 못하고 일어섰다.무릎이 휘청했다.칼리안이 팔꿈치를 받쳤다.그녀는 그 손을 붙든 채 문 쪽으로 걸었다.제단에서 문까지 스무 걸음.몇 걸음 만에 발이 엉켰다.치맛자락을 밟았고, 대리석 틈에 굽이 걸렸다.칼리안은 그때마다 말없이 그녀를 끌어올려 세웠다.재촉하지도, 멈추게 하지도 않았다.그의 손바닥이 닿은 팔꿈치만 이상할 만큼 뜨거웠다.나머지 몸은 전부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세라피나 앞에 섰다.가까이서 보니 그녀가 엘로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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