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By:  비밀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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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사람만 아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황제와 유모, 그리고 나. 나는 황가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황실에 몰래 들여온 뻐꾸기 황녀였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난 모든 것을 잃고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운명. 그래서 누구보다 조용히 살아남으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황제는 날 밀어내기는커녕 점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내가 숨기려는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보다 더 끔찍한 진실이 남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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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0. 뻐꾸기 황녀

한밤중, 8살 황녀의 침실.

“로웰~!”

잠이 오지 않던 엘로라가 이불을 뒤척다가 유모를 불렀다.

“네, 아가씨.”

“졸려, 근데 아직 자기는 싫어.”

엘로라가 이불 밖으로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그래서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해줘.”

“어제도 그러시더니.”

“에이, 그건 벌써 다 까먹었어.”

그 말에 로웰은 픽 웃으며 침대맡에 앉았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럼… 뻐꾸기 얘기 들어보셨어요?”

“뻐꾸기? 그, 뻐꾹뻐꾹 우는 새?”

“맞아요. 근데 그 새, 좀 이상한 구석이 있거든요. 자기 둥지를 안 만들어요.”

“으응? 그럼 둥지가 없으면 어디서 살아?”

엘로라의 질문에 로웰이 입을 열었다.

“그냥 여기저기 날아다니다가, 남의 둥지에 몰래 알만 낳고 가버려요.”

“그럼 그 알은? 버리고 가는 거야?”

엘로라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버리는 건 아니고… 다른 새한테 떠맡기는 거죠.”

“누구한테?”

“뱁새라고 조그만 새가 있는데, 그 둥지 주인이 자기 알인 줄 알고 열심히 품어요.”

“으음, 모르고 그러는 거야?”

로웰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네, 근데 더 웃긴 게 있어요….”

“그게 뭔데?”

로웰은 뜸을 들이다가 입을 뗐다.

“…뻐꾸기 새끼가 먼저 태어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빨리 말해줘, 뭔데.”

로웰이 뜸을 들이자, 엘로라가 재촉했다.

귀여운 모습에 그녀가 싱긋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럼 그 조그만 몸으로 등을 밀어서, 원래 있던 알들을 밖으로 밀어서 떨어뜨려요.”

“…뭐야, 그게.”

엘로라가 살짝 몸을 일으켰다.

“그럼 딴 새끼들은 다 죽는 거야?”

“그렇죠, 대부분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먹이를 나눠줄 형제가 없어야, 자기가 다 먹을 수 있으니까요.”

“…치, 나빴다.”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에요. 안 그러면 자기가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엘로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방 안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근데 뱁새 엄마는? 자기 새끼가 없어진 것도 몰라?”

“몰라요. 그냥 큰 새끼가 배고파하니까, 하루 종일 먹이만 물어다 주거든요.”

“허얼~ 뭐 그런 게 다 있어!”

“그러게요, 이미 자기보다 몇 배는 큰데도….”

“…불쌍해.”

엘로라가 넌지시 입을 떼더니 중얼거렸다.

“누가요, 뱁새 엄마가요?”

“으응, 근데….”

엘로라는 뭔가 더 말하려다 멈췄다.

“근데요?”

“…그 뻐꾸기 새끼도 좀 불쌍한 것 같아서.”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로웰이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걔는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원래 자기 자리가 어딘지도 모르잖아. 그냥 어쩌다가 남의 둥지에서 눈뜬 거고.”

“아가씨, 오늘따라 생각이 깊으시네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 로웰은 아냐?”

“맞아요. 그 새는 태어난 순간부터 낯선 곳에 있었던 거죠.”

엘로라가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걔도 언젠가 알겠지? 자기가 진짜 뱁새가 아니란 거.”

“당연히요. 크면서 몸집도 다르고 소리도 다르니까, 모를 수가 없죠.”

“그럼 그때부터는 어떻게 살아?”

“글쎄요? 그건 저도 아직 잘 몰라요.”

엘로라는 이불깃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목소리를 낮췄다.

“유모, 혹시 나도 그런 걸까…?”

그 물음에 로웰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몰라서 물어? 다들 뒤에서 그러잖아. 나더러 반푼이래, 완전한 황가의 핏줄이 아니라고.”

“…아가씨.”

“그러니까 나도 어디 남의 둥지에 잘못 떨어진 알 같은 거 아닐까 해서.”

“…….”

로웰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가만히 쓸어 넘겼다.

“그런 소리 마세요.”

“근데 사실이잖아.”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게 아가씨 잘못은 아니에요.”

“그래도 언젠가 밀려나는 거 아니야? 진짜 알들처럼.”

“그런 일 없게 제가 옆에서 꼬옥~ 지켜드릴게요.”

엘로라는 그 말에 픽 웃고 말았다.

“흥, 유모가 무슨 힘이 있다고.”

“없어도 그렇게 할 거예요.”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다.

허나 이상하게 그 순간엔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게 들렸다.

뭐 하나 빠짐없이 화려한 새장 같은 황궁.

어린 엘로라는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12년 후, 황태자의 즉위식.

이곳에서 폭군을 피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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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
예일
곧 대기업이 낚아채갈 작가
2026-07-17 23:30:24
3
1
106 Chapters
1. 도망치던 밤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선황제의 장례식. 그 소식이 전해진 순간. 황궁은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에 잠겼다. “하하!” 장례식장에서 웃음소리가 퍼졌다. “드디어 돌아가셨구만.” 하지만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자네들은 모를 거야!” 장례가 채 끝나기도 전. 황태자였던 칼리안 그레이스는 금세 황좌에 올랐다. 그것도 권력 다툼을 단숨에 정리하고서. 제 손에 피를 묻혀 갔지만 상관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황위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쯤이야 뭐, 별것도 아니지.’ 그보다는 가장 얻고 싶었던 전리품이 따로 있었다. 칼리안이 하인에게 물었다. “엘로라는 어디 있지?” “아, 그것이… 찾아가 봤는데 방에도 안 보이십니다.” “뭐라고? 황위 즉위식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도대체 언제…” “아까 봤을 때까지만 해도 남아계셨습니다.” “이게 진짜…” 칼리안이 이를 까득였다. 그러자 그의 턱에 선이 짙게 생겼다. 곧이어서 그는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 지하 감옥의 비밀 통로.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엘로라는 떨리는 손으로 유모 로웰의 손을 꼭 맞잡았다. ‘이제 정말 끝이야.’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선황의 보호 덕분이었다. 그것도 황가의 피가 반만 섞인 사생아로서 말이다. ‘제 어머니를 향한 미련 때문이었을까.’ 선황은 제 핏줄도 아닌 엘로라를 적자인 칼리안보다 더 아꼈다. 하지만 이제 그녀를 지켜주던 유일한 동앗줄은 끊어졌다. 그때 유모가 말을 걸어 엘로라의 상념을 깼다. “아가씨, 서둘러야 해요. 조금만 더 가면…” “알았어, 로웰.” 유모의 다급한 속삭임에 엘로라가 발을 내디디려는 찰나였다. * 뚜벅, 뚜벅- 동굴처럼 음산한 발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쿵, 쿵, 쿵. 엘로라의 심장이 바닥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돌아보지 않아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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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황제에게 잡히다
칼리안의 서늘한 손길이 엘로라의 턱을 거쳐 가느다란 목덜미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엘로라의 맥박이 두려움으로 미치듯 뛰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칼리안은 만족스러운 듯 나지막하게 웃으며, 엘로라의 목덜미를 감싼 손에 점차 힘을 주어 조여 가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오는 고통 속에서 엘로라가 눈을 질끈 감은 그때, 칼리안의 눈빛이 돌변하며 품에서 또 다른 서늘한 단도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도망의 대가가 이 정도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지.” 단도가 번뜩이는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엘로라의 목전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은 별로 없었다. 그 대신 앞으로 이어질 삶이 더 짙은 어둠 속에 잠긴 것 같았다. “…” 엘로라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해.” “……” 그의 요구를 무시하자 부메랑처럼 말이 돌아왔다. “대답하라고.” “네, 네에…” 이것은 자비가 아니었다. 그녀를 평생 놓아주지 않겠다는, 가장 잔인한 협박이었다. 봄은 따뜻했다. 허나 이상하게도 엘로라의 봄은 전혀 따스하지 않았다. 그렇게 뻐꾸기 황녀의 서늘한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엘로라는 잠에서 깨자마자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방문 앞에는 낯선 기사 둘이 위압적인 자세로 지키고 서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정원에도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삼키며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벌써 처분이 내려진 걸까.'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젯밤 살려주겠다던 중저음의 목소리. 그게 밝은 햇살 아래서는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황녀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시녀의 목소리에 엘로라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였다. 옷을 갈아입는 손끝이 사정없이 떨렸다. 유모 로웰이 그녀의 손을 꼭 맞잡으며 아주 낮게 속삭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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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침대에 누워
회의가 끝난 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칼리안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폐하, 더는 이렇게 따라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저를 모욕하시는 거예요." 칼리안이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로웰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지?" 엘로라의 숨이 턱 막혔다. "살려준 대가로 얌전히 곁에 있어.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 "싫다면 언제든 말해라. 네 유모를 대신 지옥으로 보내주면 그만이니까." 엘로라는 이를 악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말에는 단 한 줌의 자비도, 장난도 안 섞여있으니까.’ 유모의 목숨이 걸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만든 이 황금 새장 속에서 무력하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곁에 있겠습니다." 작게 대답하는 엘로라를 보며, 칼리안의 입가에 묘한 만족감이 감돌았다. * 그날 밤, 칼리안은 태연하게 그녀를 자신의 침실로 데려갔다. "오늘부터 여기서 자도록 해."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저는 제 방이 있어요!" "싫든 좋든 상관없어. 짐의 명령이다." 엘로라가 반항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이미 기사들이 그녀의 짐을 침실로 옮겨놓은 뒤였으니까. *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침대 위. 서로 등을 돌린 채 길고 어색한 첫 밤을 맞이했다. 정적 속에 엘로라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옆에 누운 칼리안의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안 오나 보군." "이러는데 어떻게 잠이 오겠어요..." "긴장 풀어라. 오늘 밤은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그 말이 오히려 더 무섭게 들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엘로라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자비가 아니야. 가장 잔인한 감금이지.' 그렇게 뻐꾸기 황녀의 위태로운 새장 속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 아침 햇살이 창가를 넘어와 엘로라의 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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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항과 협박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산더미 같은 서류를 든 서기관들이 들이닥쳤다. 그중 한 명인 서기관 로이가 엘로라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더니 칼리안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오늘은 귀족 평의회와의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황녀 전하께서는 잠시..." "아니, 엘로라도 함께 간다." 칼리안은 서류에 서명을 하며 단칼에 대화를 잘랐다. "하지만 폐하, 선황제 시절에도 이런 전례는 없었습니다. 대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칼리안이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붉은 눈에서 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로이는 곧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곧 법이고, 내 명령이 전례다. 불만이 있는 자가 있다면 그놈의 목을 쳐서 회의장 문 앞에 걸어두면 되겠군." “…” “……” 그의 잔인한 말에 집무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엘로라는 자신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칼리안의 시선이 닿았던 곳이 아직도 뜨거운 것 같았다. '미쳤어, 정말. 정말로 근친한다는 헛소문이 돌아도 상관없다는 거야?' 그때 칼리안이 엘로라의 손을 부여잡고는 입을 뗐다. “가자, 엘로라.” 회의장으로 향하는 내내 칼리안은 엘로라의 손을 놓지 않았다. 커다란 그의 손바닥이 그녀의 작은 손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마치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포식자처럼 꽉 쥐고 있었다. * 쿠웅- 그렇게 회의장의 무거운 문이 열렸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수십 명의 귀족이 일제히 일어나 똑같은 인사를 반복했다. 귀족들은 황제의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엘로라를 나중에 봤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하나같이 경악과 혐오가 스쳐 지나갔다. 그중 은회색 머리를 가진 레이너드 후작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폐하, 황녀 전하를 이토록 아끼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마치 정을 나누는 연인 같으시군요." 노골적인 조롱이었다. 회의장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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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빠라고 불러
"그래, 우리는 피를 나눈 사이였지.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던 내 '동생'." 칼리안은 엘로라의 턱을 가볍게 쥐고 제 쪽으로 당겼다. 파란 눈이 당혹감으로 일렁였다. 그 모습이 그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럼 그 '남매'답게 호칭부터 고쳐보는 게 어때." "...네?" "언제까지 딱딱하게 폐하라고만 부를 거지? 이제 오라버니라고 불러봐." 엘로라는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릴 때부터 내가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녀가 고개를 흔들면서 거절했다. "그건... 너무 낯간지러워요. 못 하겠어요." "못 하겠다고? 그럼 오빠는 어때, 그게 더 나은가?" "폐하! 제발 장난 좀 치지 마세요." 엘로라가 얼굴을 붉히며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칼리안의 손길은 단단한 족쇄처럼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장난처럼 보이나? 난 지금 진지한데." 그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사라지고, 대신 질척이는 소유욕이 그 자리를 메웠다. "싫다면 하는 수 없지. 대신 로웰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엘로라.” “치잇…” “네 유모의 목숨은 내 손짓 한 번에 결정된다는 걸 잊었나?" 비겁한 협박이었다. 하지만 엘로라에게는 가장 확실하게 먹히는 독약이기도 했다. 엘로라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떨궜다. "...오빠." 모기만한 소리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칼리안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잘 안 들리는데. 다시 한번 더." "오빠라고요! 됐나요?" 엘로라가 외치듯 내뱉었다. 그러자 칼리안은 낮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아주 듣기 좋군." 그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며 덧붙였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불러.” ”싫다면요?“ “그땐 유모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군." 다정한 손길과는 정반대되는 잔혹한 말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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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래된 펜던트
서랍 틈새로 무언가 은은하게 빛을 내뿜는 물건이 보였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듯한 은빛 펜던트였다. 엘로라는 홀린 듯 손을 뻗어 그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자 묘한 전율이 일었다. 펜던트 앞면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황실의 문장과는 전혀 다른, 날개를 펼친 새와 넝쿨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문장이었다. '이건... 황실의 물건이 아니야.' 엘로라가 그 문양을 자세히 살피려던 찰나였다. "아가씨!"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문이 거칠게 열렸다. 헐떡이며 방으로 들어온 로웰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엘로라가 들고 있는 펜던트를 보자마자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그, 그게 어디 있다고...! 어서 이리 주세요!" 로웰은 엘로라의 손에서 펜던트를 낚아채듯 가져가 품속 깊이 숨겼다. 엘로라는 유모의 이토록 당황한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모, 왜 그렇게 놀라요? 그냥 예뻐서 본 것뿐인데." "아, 아니에요... 그냥 제 아주 오래된 유품이라서 그래요. 손대면 부서질까 봐..." 로웰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다급히 서랍을 닫고 자물쇠까지 채웠다. 엘로라는 그 어색한 반응에서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유모답지 않게 너무 예민하네요. 혹시 제가 알면 안 되는 비밀이라도 있는 거예요?" "비밀이라니요! 그런 게 있을 리가... 폐하께서 기다리실 거예요. 어서 가보세요." 로웰은 등을 떠밀 듯 엘로라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하아…” 닫힌 문 너머로 유모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를 걷는 엘로라의 머릿속에는 방금 본 그 은빛 펜던트의 문양이 지워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그것은 단순히 예쁜 장신구가 아니었다. 무언가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듯한, 그리고 자신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기이한 확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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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시 붙잡힌 목줄
달이 구름 뒤로 숨어든 칠흑 같은 밤이었다. 엘로라는 로웰이 일러준 대로 숨을 죽인 채 서쪽 별관 뒤편 창고로 향했다. 기사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 움직인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제발, 제발 이번에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창고의 낡은 뒷문을 열었다. 로웰이 말한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입구가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유를 향한 문턱을 넘으려는 찰나였다. "거기서 뭐 하나, 내 동생?" 익숙하면서도 소름 끼치도록 나긋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엘로라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끼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창고 그늘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칼리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적안만은 굶주린 짐승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페, 폐하... 어떻게 여기에..." "이번엔 창고인가. 제법 머리를 썼군, 엘로라." 칼리안은 한 걸음씩 다가오며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그가 내딛는 발소리는 엘로라의 심장을 짓누르는 족쇄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다시는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저는... 저는 그저..." "말해봐. 내가 준 목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니면 내 침실이 좁았나?" 칼리안은 엘로라의 턱을 거칠게 잡아 들어 올렸다. 공포로 잘게 떨리는 그녀의 은색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흩어졌다. "아니면, 네 유모의 목숨이 이제는 아깝지 않은 모양이지?" "아니에요! 유모는 상관없어요! 제가, 제가 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엘로라는 필사적으로 로웰을 변호했다. 하지만 칼리안의 눈동자에는 이미 싸늘한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실망이야, 엘로라. 너는 내 인내심을 너무 우습게 보는군." 그는 손짓 한 번으로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끌고 가라. 그리고 오늘부터 황녀의 방 앞뿐만 아니라, 욕실 앞까지 기사를 배치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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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황제의 부름
깊은 밤, 잠에서 깬 엘로라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눈을 떴다. 어둠 속, 칼리안이 침대 곁에 서서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폐... 하?" 그는 대답 대신 오늘도 빛이 나는 그녀의 은은한 머리카락을 한 번 쓰다듬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엘로라는 차갑게 식은 등줄기를 문지르며 깨달았다. 자신이 갇힌 이 황금 새장은, 이제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폭군의 집착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 새로운 황제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도망치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엘로라는 칼리안의 살벌한 통제 아래 놓였다. 유모 로웰의 목숨을 볼모로 잡혔다. 그렇게 된 이상, 다른 선택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엘로라는 황립 도서관 고서고로 향했다. 그 이유인즉슨, 칼리안의 부름을 받았던 탓이었다. ‘날 또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발걸음마다 긴장이 조여왔다. * 그렇게 도착한 고서고 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먼지 냄새와 낡은 양피지 냄새만이 자욱했다. 높게 솟은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만이 유일한 온기였다. 그곳에서 칼리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창가에 기대어 책 한 권을 무심하게 넘기고 있었다. 흑발이 차가운 이마를 덮었다. 그 아래 보이는 붉은 눈동자는 오늘도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늦었군.” 칼리안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낮게 읊조렸다. 엘로라는 숨을 죽인 채 그의 등 뒤에 멈춰 섰다. “어제 일로 긴장이라도 한 건가, 엘로라.” 엘로라는 구태여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서 인사했다. “…명하신 대로 왔습니다, 폐하.” “그래.” 탁- 칼리안이 책을 소리가 나게 덮었다. 천천히 돌아서 그녀를 바라 보았다. 붉은 눈동자에 가감 없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엘로라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터억, 텁- 마른 카펫 위, 구둣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쿠웅, 쿵- 그것이 엘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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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갑자기 찾아온 쪽지
그는 언제든 그녀를 부서뜨릴 수 있는 황제였다.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력자.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뼛속 깊이 새긴 시간이었다. ‘으음, 그래도 목숨만은 건졌으니 다행인가.’ 엘로라는 자신의 땀에 젖은 손을 닦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갈피를 잃은 기분이었다. ‘마치 망망대해 앞에 통나무 몇 개를 대강 얹어 만든 배 위에 떠 있는 기분이랄까.’ * 방으로 돌아온 엘로라는 홀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까악까악- 창밖으로는 까마귀 소리만 들렸다. 게다가 차가운 달빛이 방 안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유모가 말했잖아. 힘든 건 당연한 거라고.” 곁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 비로소 그제야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꾹 참고 버텨야 해.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 자꾸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걸 꾹 참으며 엘로라가 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오늘 밤도 숨죽여 견디는 법을 홀로 터득했다. ”…내가 원하는 건 이제 단 하나뿐이야.“ 유모와 함께 이 지옥을 빠져나갈 그날을 위해. ”그러려면 일단 해야 할 게…“ 먼저 감시 속에서 살아남는다. 두 번째로 탈출할 방법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그의 눈을 피해 도망간다. * 며칠이 흐르는 동안, 엘로라는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무실로, 낮에는 회의장으로, 밤에는 다시 침실로. ‘힘들어 죽겠네, 진짜.‘ 그것도 황제 칼리안의 무릎 위에 앉아서 말이다. 그 반복 속에서 그녀는 조금씩 자기도 모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폐하, 오늘은 회의에 가지 않고 싶습니다.” “안 돼.” 엘로라가 애원했지만 칼리안은 전혀 받아들여주질 않았다. “그럼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내가 오라고 했으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칼 같은 거절에 엘로라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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