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후궁전은 황궁 서쪽 끝, 해가 가장 늦게 드는 자리에 있었다. 한때 선황의 총애를 받던 처소답게 정원은 넓었으나 손보는 이가 없어, 장미 덩굴이 담장을 제멋대로 타 넘고 있었다. 돌길 위에 떨어진 꽃잎들이 짓밟힌 채 거뭇하게 말라 갔다. 공기에서 단내와 썩은 내가 함께 났다. 초대장은 감옥에서 돌아온 그날 오후에 왔다. 흰 백합 한 송이가 함께였다. 어머니가 딸을 부르는 다과회. 겉으로는. "오랜만이구나, 엘로라." 폐후궁 에인젤은 창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흔이 된 지금도 머리칼은 눈처럼 희었고, 자줏빛 눈동자는 겨울 호수처럼 맑았다. 선황이 사랑한 누군가를 닮았다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엘로라를 보고 웃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를 뵙습니다." 엘로라는 무릎을 굽혔다. 어머니, 라는 말이 혀끝에서 까끌하게 걸렸다. 이십 년을 불러도 길들지 않는 말이었다. "폐후궁이 된 어미한테 꼬박꼬박 예를 차리는 건 너 하나구나."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라." 에인젤이 그 말을 혀 위에서 굴렸다. 입가의 주름이 잠깐 움직였다. 웃음이라 부르기엔 너무 짧았다. 선황이 숨을 거둔 날, 새 황제의 첫 칙령이 그녀를 후궁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 뒤로 이 처소의 문을 두드린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앉으렴." 시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김이 오르지 않았다. 잔을 감싼 손바닥에 미지근한 기운조차 닿지 않았다. '또 식은 차.' 목 안쪽이 따끔했다. 일곱 살에도, 열다섯에도, 이 방의 찻잔은 늘 이 온도였다. 엘로라는 잔을 내려놓지 않고 끝까지 쥐고 있었다. 에인젤은 그녀를 딸로 대한 적이 없었다. 대놓고 미워한 적도 없었다. 식은 차, 닫힌 문, 끝내 마주치지 않는 눈. 그게 전부였다. 어릴 땐 뭘 잘못했는지 몰라 이불 속에서 울었고, 자라서는 알았다. 잘못한 게 아니라, 곁에 있는 것만으로 이 여자를 아프게 한다는 걸. 오늘은 처음으로 그 아픔의 정체가 궁금했다. 로웰의
Terakhir Diperbarui : 2026-07-08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