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구름 뒤로 숨어든 칠흑 같은 밤이었다. 엘로라는 로웰이 일러준 대로 숨을 죽인 채 서쪽 별관 뒤편 창고로 향했다. 기사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 움직인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제발, 제발 이번에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창고의 낡은 뒷문을 열었다. 로웰이 말한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입구가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유를 향한 문턱을 넘으려는 찰나였다. "거기서 뭐 하나, 내 동생?" 익숙하면서도 소름 끼치도록 나긋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엘로라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끼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창고 그늘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칼리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적안만은 굶주린 짐승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페, 폐하... 어떻게 여기에..." "이번엔 창고인가. 제법 머리를 썼군, 엘로라." 칼리안은 한 걸음씩 다가오며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그가 내딛는 발소리는 엘로라의 심장을 짓누르는 족쇄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다시는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저는... 저는 그저..." "말해봐. 내가 준 목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니면 내 침실이 좁았나?" 칼리안은 엘로라의 턱을 거칠게 잡아 들어 올렸다. 공포로 잘게 떨리는 그녀의 은색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흩어졌다. "아니면, 네 유모의 목숨이 이제는 아깝지 않은 모양이지?" "아니에요! 유모는 상관없어요! 제가, 제가 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엘로라는 필사적으로 로웰을 변호했다. 하지만 칼리안의 눈동자에는 이미 싸늘한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실망이야, 엘로라. 너는 내 인내심을 너무 우습게 보는군." 그는 손짓 한 번으로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끌고 가라. 그리고 오늘부터 황녀의 방 앞뿐만 아니라, 욕실 앞까지 기사를 배치해."
Last Updated : 2026-07-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