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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Author: 레몬과 향수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한씨는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지영이의 혼사는 담씨 가문의 큰 어르신께서 애초에 정왕과 상의해 정한 것이다. 너희가 지영이를 이리도 무시하는 건 우리 담씨 가문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어. 혼사는 이미 물렸다고 해도 혼수는 제대로 계산해야지!”

이는 유국공부와 완전히 등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송씨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자마자 한씨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협박하듯 말했다.

“그저 장난 좀 친 것뿐인데 왜 이러십니까? 이 일이 커지면 담씨 가문의 딸이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매달렸다는 소문이 날 텐데, 그쪽 집안에도 좋을 게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한씨는 화가 치밀어 어쩔 줄 몰랐지만, 기세는 이미 한풀 꺾인 뒤였다.

송씨가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지금은 그저 서로 한발씩 물러서서 명성을 지키는 것이 옳은 선택인 듯합니다.”

유선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이 소문나면 앞으로 담씨 가문의 아가씨들은 좋은 혼처를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 담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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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340화

    유정남은 유지영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유지영은 아버지의 뒤에서 그의 불끈 쥔 주먹과 이마에 툭 불거진 핏대를 똑똑히 보았다.그녀는 아버지의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기며 말했다."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셋째 삼촌 일로 저를 원망하시는 듯합니다. 저는 본래 할머니 뜻대로 셋째 삼촌을 살리려 했으나, 정웅이의 상태가 가장 위중했습니다. 정웅이는 아직 어린데 제가 어찌 차마 모른 체할 수 있었겠습니까?"말을 마친 유지영은 유정웅을 힐끗 바라보았다.유정웅은 즉각 호응하며 나섰다."큰아버지, 이 일로 지영 누님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누님은 어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 없이 사람을 보내 북명 대사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사께서 성을 떠나신 뒤였지요. 두 알뿐인 해독제 중 한 알을 어머니께서 제게 주신 것입니다. 반면 할머니께서는 저와 어머니의 생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셨습니다. 둘째 삼촌의 죄증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둘째 삼촌만 감싸고 계십니다."유정웅은 그 자리에서 유씨 노부인의 추악한 민낯을 낱낱이 까발렸다.유씨 노부인은 아연실색하며 절규했다."정웅아, 네가 단단히 미쳤구나. 내가 네 할미다!""할머니께서는 어제 저를 살리려 하시지 않았습니다.""나, 나는...."유씨 노부인은 말문이 막혔다.유정웅이 말을 이었다."할머니께서는 둘째 삼촌을 부추기고 편애하셨습니다. 그동안 지영 누님이 인주에서 얼마나 험한 나날을 보냈습니까. 할머니께서는 누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으시며, 그저 둘째 삼촌네만 감싸면서 그들이 우리 집안의 재산을 독식하도록 방관하셨습니다! 지영 누님은 꼼짝없이 당하기만 했습니다.""닥치지 못할까!"유씨 노부인은 길길이 날뛰었다. 유정웅이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을 손가락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저런 배은망덕하고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유정웅은 지지 않고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다."큰아버지네와 저희는 모두 둘째 삼촌네를 위한 디딤돌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숨을 거두실

  • 피안을 거슬러   제339화

    배현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냉소를 지었다."십중팔구 당윤일 테지. 작년에 녀석이 인주에 장사 차 다녀온 적이 있거든."그는 유지영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 당 부인은 배유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니 당윤의 며느리로 들이게 허락할 리 없으니까.""왜요?""당 부인은 평생 첩실들에게 짓눌려 살아온 사람이야. 당 가주가 서자를 낳고 집안을 뒤흔드는 꼴을 보며 살아왔으니, 첩실을 가장 혐오하지. 하물며 첩실이 본처의 자리를 꿰찬 경우라면 치를 떨 텐데, 어찌 배유리를 며느리로 들이겠느냐?" 배현준이 답했다.유지영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유지영은 피곤함이 역력한 그를 보고 어깨를 주물러주려 다가갔다.배현준은 그런 그녀를 품에 낚아채듯 안으며 말했다."지영아, 좀 쉬자."그의 품에 기대어 있자니 어느새 나른한 잠이 쏟아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유지영은 침상에 누운 채 자신의 허리를 묵직하게 감싸는 그의 온기를 느끼며,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에 다시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유지영이 깨어났을 때도 배현준은 곁에 있었다.그녀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따라 웬일이십니까?""요 며칠 한가하니, 곁에 있어 줘야지."배현준이 부드럽게 답했다.두 사람이 아침 식사를 마치자, 동금이 찾아와 소식을 전했다."국공부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세자비 마마와 세자께서 오늘 본가로 좀 와주셨으면 한다고 하십니다."두 사람은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국공부로 향했다.유정남은 지난밤 급히 돌아와 밤을 꼬박 지새운 듯,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두 사람을 보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네 할머니께서 병이 나셨다. 둘째네는 돌볼 이가 아무도 없고, 셋째네는 초상을 치르는 중이니, 너희는 어찌했으면 좋겠느냐?"유씨 노부인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내심 국공부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효라는 명분이 짓누르고 있으니, 유정남으로서도 앓아누운 노부인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 피안을 거슬러   제338화

    배유리의 질문에 부관은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아가씨. 당 부인께서 직접 보내오신 초대장입니다."그 말을 듣고 있던 민경주는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다.유지영은 생각해야 할 일이 워낙 많았기에 민경주와 입씨름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민경주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둘째 동서가 저리 호의를 베푸니 그 마음을 저버리지 마시게."그녀는 이 한마디만 남기고 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떴다.민경주는 뒤쫓아가려는 배유리의 앞을 가로막았다."매달릴수록 저 여자는 아가씨를 더 무시할 거예요."그 말에 배유리는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당 부인이 초대장을 보냈다 한들, 그저 태후 마마의 체면을 봐서 형식적으로 보내준 것에 불과하죠. 아가씨 마음은 내가 잘 알아요. 명색이 아가씨의 형수이고 제 부군이야말로 아가씨의 친오라버니인데, 당연히 아가씨 짝은 내가 알아봐 주어야죠."민경주가 타이르듯 말했다.배유리는 반색하며 민경주의 팔짱을 끼고는 둘째 형수가 최고라며 아양을 떨었다."가요, 할머니를 뵈러 가죠."두 사람은 함께 임 태비를 뵈러 갔다.한 시진 후.유정명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퍼졌다.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지란이 관아에 유정혁을 고발한 사실도 알려졌다. 유정혁이 엽 가주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셋째네 일가족에게 독을 풀어 일가족을 몰살시킨 뒤 재산을 가로채려 했다며 경조 판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것이다."유씨 가문의 셋째가 죽었다고?"소식을 들은 임 태비는 놀란 나머지 손에 든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옆에서 불경을 필사하던 경왕비 역시 순간 손을 떨었다. 굵은 먹물이 뚝 떨어지며 정성껏 썼던 불경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경왕비는 절로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그뿐만 아니라 두 알의 해독제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임 태비는 눈살을 찌푸렸다."해독제가 두 알뿐이었다면 어찌 그리 쉽게 내어주었단 말이냐...."말을 반쯤 내뱉던 임 태비는 경왕비를 힐끗 보고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다소 부자연

  • 피안을 거슬러   제337화

    "당연하지!" 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자잘하게 다투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을 내 어찌 모른 체하겠니? 예전 인주에 있을 때 셋째 삼촌네도 둘째 삼촌네에게 억눌려 지냈으니, 너희를 원망하지는 않아."유지영은 그래도 유지란이 믿지 않을까, 홍주에게 명했다."내 영패를 가지고 관아로 가거라. 경조 판사에게 장녕 군주의 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러 갈 터이니, 반드시 철저히 조사하여 내 동생의 결백을 밝히고 진범을 엄벌하라 전해라!"홍주는 영패를 받아 들고 지체 없이 관아 쪽으로 달려갔다.그 모습을 본 유지란은 입술을 꽉 깨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에게는 이미 퇴로가 없었다. 요 근래 유지영이 경왕부에서 얼마나 위세를 누리고 있는지 그녀도 익히 알고 있었다.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으니, 심문과 판결 따위야 유지영의 말 한마디면 끝날 일이 아닌가?이윽고 유지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언니 말대로 할게요. 지금 당장 관아로 갈게요."마차는 유지란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주가 돌아와 유지영에게 영패를 건넸다."지란 아가씨가 북을 치며 둘째 나으리를 고발하는 것을 제가 똑똑히 보았습니다."유지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왕부로 돌아가자!"경왕부에 도착하여 대청을 지나려 하는데 누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비단 상자를 든 배유리가 다가왔다."형수, 제가 영성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부디 받아 주세요."평소와 다른 행동에는 반드시 꿍꿍이가 있는 법이다.유지영은 배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고맙군."배유리는 눈을 깜빡이더니 유지영의 팔짱을 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홍주는 비단 상자를 건네받으며 교묘하게 그 앞을 막아섰다."더 할 말이라도 있는가?"유지영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배유리를 바라보았다.배유리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큰오라버니께서 당씨 가문과 각별한 사이라 들었습니다. 며칠 뒤 당씨 가문에서 연회를 연다던데, 형수가 저도 좀 데려

  • 피안을 거슬러   제336화

    유지영의 말에 유정혁은 말문이 막혀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 불끈 쥔 두 주먹에서는 우두둑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만약 이 자리에 운청과 운민이 없었더라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려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방 안에서는 통곡 소리가 진동했다.유지영은 그곳을 힐끗 돌아보고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발길을 돌렸다."지영 누님!"유정웅이 헐레벌떡 뒤쫓아와 유지영을 향해 공손히 예를 행했다."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은혜를 갚겠습니다."유지영은 고개를 들어 유정웅을 바라보았다. 애절한 눈빛 너머로 은밀하게 야망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녀는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것도 모른 척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마차로 돌아오니 엽씨 집안에서는 이미 예물을 회수할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큼지막한 마차가 여러 대 당도했고 시종들이 분주히 짐을 싣고 있었다.육중한 상자들을 보니, 엽 가주가 유지란을 들이기 위해 당시 얼마나 단단히 준비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셋째 부인께서 홧김에 예물을 남김없이 돌려주셨지만, 이성을 되찾고 나면 분명 후회할 것입니다."홍주가 말했다.유지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엽 가주가 죽었어도 엽 부인은 이 혼담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데, 셋째 삼촌네가 예물을 꿀꺽 삼키도록 가만두겠느냐? 지금이야 부군의 죽음을 수습하느라 경황이 없어 이쪽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뿐이지."아니나 다를까, 엽씨 집안에 서신을 보내기 무섭게 엽 부인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 예물을 싹 거두어 갔다.예물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차에 실려 돌아갔다.하지만 회수한 물건은 목록에 적힌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유정혁의 수중에 있었다. 이미 이 일은 관아에까지 넘어간 데다 사람까지 하나 죽어 나갔으니, 유정혁이 오리발을 내밀려 해도 정왕부 체면상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엽 가주와 유정명, 두 사람의 목숨값은 고스란히 정왕부가

  • 피안을 거슬러   제335화

    유지영이 정씨를 살린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유정혁이 셋째 삼촌네의 재산을 고스란히 차지하는 꼴을 막고 싶었을 뿐이다."천박한 것! 네가 감히 정명이를 내버려 두고 혼자 해독제를 집어삼켜?"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유씨 노부인이 정씨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하지만 정씨는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돌아온 사람이었으니, 더 이상 유씨 노부인에게 고분고분 져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유정웅을 등 뒤로 숨기며 유씨 노부인의 손길을 피하고는 싸늘하게 말했다."저도 평소 어머님께 효를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죽어가는 저를 모른 체한 것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정웅이도 어머님의 손자 아닙니까. 어찌 그리 매정하실 수 있습니까? 기어이 둘째 아주버님과 작당하여 우리 가족을 사지로 모시다니요!"옥신각신하는 사이, 유정명이 왈칵 피를 토했다.기겁한 유씨 노부인은 그에게 달려갔다."정명아, 괜찮으냐?"유정명은 살고자 하는 갈망이 가득한 얼굴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지영아?""지영아, 어서! 틀림없이 해독제가 더 있을 게 아니냐. 어서 해독제를 다오."유씨 노부인이 다급하게 재촉했다.유지영은 고개를 저었다."딱 두 알뿐이었습니다.""이, 독한 것!"유씨 노부인은 당장이라도 유지영을 찢어 죽일 듯 노기등등하게 노려보았다.유정명은 몸 안에 독기가 퍼져 끝없이 피를 토해냈고, 이제는 말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한성초는 독성이 매우 강해 세 시진 안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시간을 따져보니 유정명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반 시진뿐이었다.하지만 유지영은 애초에 유정명을 살릴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당장 큰형님을 모셔 오너라!"유정혁이 등 뒤의 시종에게 명했다.유지영은 유정혁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둘째 삼촌, 헛수고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오늘 경성에 안 계십니다."그 말에 유정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잇따른 우연의 일치에 유정혁은 이 모든 일이 유지영의 소행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셋째 숙

  • 피안을 거슬러   제2화

    종령각 이층 누각.유지영은 부스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유난히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랑 아래에서는 하인들이 정원을 단장하며 내일 있을 성년례가 떠들썩할 거라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아픔이 몰려왔고, 곧바로 이 모든 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그녀는 죽임을 당한 뒤 성년례 하루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때 밖에서 고씨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부인께서 대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경성에서 사람이 온 듯합니다.”전생의 배준형도 성년

  • 피안을 거슬러   제1화

    7월의 장안 거리는 굉장히 시끌벅적했다.마차 한 대가 성문 입구에서 멈추었다.털썩!유지영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담겨 바닥에 내던져졌다. 온몸으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특히 하반신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읍….”지나가던 백성들이 소리를 듣고 마대를 풀어주었다.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사내의 옷가지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하얗고 가는 목덜미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이 사람은 정왕 세자비 아닌가?”누군가가 유지영을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옷매무새가 이 모양인 것을 보아 불결

  • 피안을 거슬러   제256화

    “오셨습니까, 형수님.”배이수는 유지영을 보자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아바마마께서는 제가 경성에 처음 왔으니, 이참에 친지들 부저에 자주 들러 얼굴을 익혀 두라 하셨습니다."그는 입에 붙은 듯, 아주 자연스럽게 아바마마를 불러댔다.유지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예를 행했다."장차 양나라 전체가 전하의 것인데,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실 수 있지요. 누가 감히 막겠습니까?"얼굴에 면사포를 쓰고 참석한 방현숙은 유지영을 매섭게 흘겨보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렇지 않느냐, 조카며느리?""조정의 대사를 아녀

  • 피안을 거슬러   제253화

    단진을 대하는 건양제의 태도는 마치 남을 대하듯 무심하고 냉혹했다.그저 황실의 체면과 규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모자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단 귀인은 자신이 입궁 후에 이런 찬밥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아들 덕에 최소한 사비(四妃)의 반열에 오르거나 귀비로 책봉될 줄 알았다.명색이 황실의 유일한 황자가 아닌가!"태후께서 두통이 도지셨으니, 부름이 없이는 함부로 자녕궁에 발을 들여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거라!"건양제는 단 귀인에게 단단히 엄포를 놓으며 운락궁 편전을 거처로 내주었다.단진은 입술에서 피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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