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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을 거슬러
피안을 거슬러
Author: 레몬과 향수

제1화

Author: 레몬과 향수
7월의 장안 거리는 굉장히 시끌벅적했다.

마차 한 대가 성문 입구에서 멈추었다.

털썩!

유지영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담겨 바닥에 내던져졌다. 온몸으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특히 하반신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읍….”

지나가던 백성들이 소리를 듣고 마대를 풀어주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사내의 옷가지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얗고 가는 목덜미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이 사람은 정왕 세자비 아닌가?”

누군가가 유지영을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

“옷매무새가 이 모양인 것을 보아 불결한 일을 당한 것 같군. 참 어여쁜 처자였는데 안됐어.”

유지영은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 도움을 구하고 싶었지만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사흘 전, 그녀는 사찰로 불공을 드리러 가다가 중도에 납치를 당해 눈이 가려진 채 인적 없는 곳으로 끌려갔다.

그 뒤로 매일이 고통이었다.

죽도록 맞았고, 고통 속에 의식을 잃었다가 간신히 깨어나면 또다시 고통이 이어졌다.

그렇게 그녀에게 지옥을 선물한 자들은 사흘째 되던 날, 마차에 그녀를 싣고 번화가로 가 짐짝처럼 내던져 버렸다.

사람들은 그녀를 동정하기는커녕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유지영은 해명하고 싶었지만, 독을 당해 목소리를 잃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뻔뻔하게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정신이 제대로 된 처자라면 결백을 잃은 후에 기둥에 머리를 박고 자결했을 테야. 여인의 결백이 얼마나 중요한 세상인데.”

마침내 한 시진 후, 소식은 정왕부에 전해졌다.

정왕부에서는 마차를 한 대 보내왔다. 두 시종은 그대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마차 위로 끌어올렸다.

그중 한 명은 그녀의 얼굴에 침까지 뱉으며 비아냥거렸다.

“차라리 밖에서 죽지. 정왕부의 명성에까지 먹칠하면서 살아 돌아올 건 뭐야.”

유지영은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들것에 실어 왕부로 끌고 갔다.

태비는 지팡이를 짚은 채 음침한 얼굴로 내전으로 들어섰다.

마침 병풍 뒤에서 시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달려나온 시녀는 노태비의 싸늘한 눈빛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아뢰었다.

“태… 태비마마, 세자비께서 하혈이 심하신데, 어의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막돼먹은 것! 외간사내에게 순결이 더럽혀진 불결한 것이 무슨 자격으로 어의의 진찰을 받는단 말이냐! 여기서 집안 망신을 더 시키라고!”

태비의 분노한 호통에 내전 안에는 삭막한 정적이 감돌았다. 태비는 황급히 안으로 들어오는 배준형을 불러 세웠다.

“준형아, 세자비 유씨는 이미 순결이 더럽혀졌는데 너는 어찌 처리할 생각이냐?”

배준형이 놀란 얼굴로 태비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유씨가 정체 모를 자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거의 벌거벗겨진 채 성문 앞에 내던져졌다. 이 상황에서도 저 아이를 두둔할 생각이냐?”

말을 마친 태비는 지팡이로 힘껏 바닥을 쳤다.

“폐하께서 중병으로 앓아누우시고 슬하에 황위를 이을 황자가 없으신 상황이다. 최근 들어 태후께서 네 아버지를 빈번히 궁으로 부르시어 너를 태자로 책봉하실 뜻을 내비치셨다. 유씨의 상황이 안타깝긴 해도 제 팔자인 것을… 어찌하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태비의 눈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겁에 질린 시종들이 다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할머니, 지금 우선해야 할 일은 배후에 숨은 범인을 찾는 일이 아닙니까?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 마차는 경왕 세자의 마차였다고 합니다. 제가 경왕부를 찾아가 지영이의 억울한 한을 풀어줄 것입니다!”

짝!

듣고 있던 태비가 배준형의 뺨을 후려쳤다.

그의 고개가 돌아가고 하얀 얼굴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이 일을 어전까지 끌고 갈 생각이냐? 어차피 증거를 잡는다고 해도 태후께서는 곤장 몇 대 치고 끝내실 것이다. 이미 명성이 더럽혀진 아이다. 네가 일을 크게 만들수록 우리 정왕부의 체면만 깎이는 것을 왜 모르느냐! 어찌 이리 어리석으냐!”

태비는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유지영은 병풍 뒤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하반신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뜨거운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입술을 깨문 채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병풍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끝에는 역겨운 피 냄새가 진동했다.

태비의 각박한 말들이 예리한 칼이 되어 그녀의 지친 가슴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결백을 잃은 여인은 죽어 마땅하다!”

태비는 병풍을 노려보며 거침없이 악담을 이어갔다.

“준형아, 유선주 그 아이도 너와 어린 시절부터 정을 쌓아온 아이 아니더냐. 그 아이의 아버지와 오라비 모두 조정의 중임을 맡은 대신들이고 어여쁘기까지 하니, 그 아이와 혼인한다면 네 앞길에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유지영 저 아이는 그냥 잊어버리거라.”

유지영은 숨이 턱 막힐 듯했다. 두 손으로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지만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배준형의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그와 혼인하고 3년, 한때는 서로를 공경하고 연모하며 남부러울 것 없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작게 들린 “알겠다”는 한마디가 청천벽력처럼 그녀의 귀를 강타했다.

그녀는 더 이상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놓아버렸다.

태비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명을 내렸다.

“여봐라! 가서 유씨 집안 사람들을 불러 세자비가 위독하니 속히 왕부로 오라고 전하여라!”

분부를 받든 시종은 허겁지겁 대문을 향해 달려가며 세자비가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반 시진 후.

유씨 집안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다름 아닌 유선주였다. 그녀는 병풍을 돌아 유지영 앞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멀찍이 서서 손수건으로 코를 막더니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

“언니,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 짓을 하였나요. 할머니께서 아시면 얼마나 상심하시겠어요.”

목소리는 울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침상에 가득 묻은 핏자국을 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깝게 되었네요. 의원 말을 들어 보니 사내아이였다고 하던데, 이 아이를 3년이나 바라왔던 언니는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요.”

유지영은 증오에 찬 눈으로 유선주를 노려보았지만 비명 한마디 지를 수 없었다. 납치를 당한 당일, 그녀는 혼란을 틈타 납치범들의 입에서 유선주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납치 사건의 배후에는 분명히 유선주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언니, 안심하고 가세요. 미래의 태자비, 아니 미래의 황후 자리는 내가 언니를 대신해 잘 지킬 테니까요.”

유선주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 참. 그래도 한때 가족이었는데 가기 전에 왜 이리 되었는지 연유는 알려줘야겠죠? 언니 곁의 시녀들은 모두 내가 매수했어요. 언니가 산에 불공을 드리러 가던 날 언니를 납치한 사람도 경왕 세자가 아닌 내 아버지 사람들이고요.”

“경왕 세자를 끌어들인 것은 준형 오라버니를 그 자리에 올리기 위함이었죠. 그 멍청한 놈은 언니가 청운산에서 길을 잃고 갇혔다는 말을 듣더니 정말 사흘 밤낮을 청운산을 떠나지 않고 수색했더라고요? 흔적을 잔뜩 남겨서 우리가 손을 쓸 필요도 없었죠. 언니가 떠나 있는 동안 세자 오라버니의 곁을 지킨 것도 나예요. 나와 세자 오라버니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었다고요.”

“하!”

유지영은 안간힘을 써서 손을 뻗어 유선주의 손을 꽉 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비녀 하나가 쥐어졌고, 유선주는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비틀어 제 어깨를 힘껏 찔렀다.

“언니!”

그러더니 유선주가 당황한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한 사람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는 주저 없이 주먹을 유지영의 어깨에 휘둘렀다. 충격이 너무 커서 그녀는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선주야, 괜찮느냐?”

배준형은 안쓰러운 얼굴로 유선주를 부축했다.

유선주는 다친 왼쪽 어깨를 손으로 잡더니 배준형의 품에 몸을 기댔다.

“제가 오라버니의 세자비가 된다는 얘기를 듣고 언니가 화가 많이 났나 봐요.”

배준형은 잔뜩 실망한 눈으로 유지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실망이다, 지영아! 내가 선주와 혼인하려 한 것도 모두 정왕부의 명예를 위함이었거늘. 어찌 죄 없는 선주를 원망할 수 있어? 어렸을 때부터 넌 선주를 괴롭히고 매사에 선주에게 시비를 걸었지. 오늘 네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하늘이 알고 천벌을 내린 것이야!”

천벌이라는 말에 유지영은 그저 웃고만 싶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둘을 보고 있자니 사람을 잘못 본 자신의 눈을 찌르고만 싶었다.

‘내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너희는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구하고 나를 혐오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구나.’

“더 이상 입씨름할 것도 없다.”

태비의 싸늘한 목소리가 병풍 뒤에서 전해졌다.

“처결하거라!”

손에 비수를 든 어멈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세자 오라버니, 저… 너무 무섭습니다.”

유선주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배준형은 그런 그녀의 눈을 손으로 가려주며 작은 소리로 위안했다.

“살아서 모두의 비난을 받으며 목숨만 붙어 있기보다는 차라리 열녀라는 명성을 남기고 세상을 뜨는 것이 지영이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우리도 지영이를 위해서 이러는 게야.”

어멈들은 양쪽에서 유지영의 어깨를 꽉 잡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유지영의 가슴에 비수를 찔러 넣었다.

예리한 칼끝이 피부를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숨이 점점 가빠지고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유지영은 오래전 혜공대사의 말을 떠올렸다.

“이 아이는 전반생에 일생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대사의 예언이 맞았던 것 같았다.

다음 생이 정말 존재한다면, 반드시 내게 해를 가한 모두에게 피의 복수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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