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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公開日: 2026-08-10 14:12:19

사라가 긴장된 얼굴로 답하고 서둘러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이제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홀로 남은 진우는 창밖의 야경을 등지고 섰다. 어둠이 그의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그 눈빛만은 굶주린 포식자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어, 강태민. 그리고 너희들 모두."

그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너희들이 나에게 선물했던 지옥, 이제는 내가 너희들에게 돌려줄 차례니까. 너희들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빼앗고,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 주겠어."

월스트리트를 집어삼킨 유령이, 기나긴 복수를 위해 마침내 고국으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복수는 단순한 파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돈과 권력, 명예를 이용해 가장 잔인하고 통쾌한 방식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완벽한 설계의 복수극이 될 터였다.

사냥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사냥터로 돌아온 포식자

뉴욕 상공, 4만 피트.

세상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성층권. 그곳을 유영하듯 날아가는 걸프스트림 G700의 내부는 지상의 펜트하우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부드러운 가죽 시트, 은은한 조명, 그리고 적막을 깨는 건 오직 얼음이 담긴 크리스털 잔이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김진우, 즉 다니엘 킴은 창밖으로 펼쳐진 짙푸른 어둠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상의 불빛 대신, 복잡하게 얽힌 데이터와 숫자의 흐름이 비치고 있었다.

"대표님, 요청하신 태산그룹의 1차 분석 자료입니다."

맞은편에 앉은 비서 사라가 태블릿 PC를 그에게 건넸다. 화면에는 거대한 문어처럼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태산그룹의 지배 구조가 복잡한 다이어그램으로 펼쳐져 있었다.

"태산그룹. 시가총액 기준 대한민국 재계 5위. 주력 사업은 건설과 중공업, 최근에는 바이오와 IT 신사업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엔 그야말로 철옹성입니다. 재무 구조는 안정적이고, 정관계 로비 능력은 국내 최고 수준. 오너 일가의 지분율도 절대적이라 경영권 분쟁의 소지도 거의 없습니다."

사라의 목소리는 유능한 분석가답게 냉정했지만, 그 안에는 '이 싸움은 무모하다'는 우려가 짙게 배어 있었다. 월스트리트의 기업 사냥꾼들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거대한 공룡. 그것이 바로 태산그룹이었다.

진우는 자료를 훑어보지도 않고 화면을 쓸어 넘겼다. 그의 손가락이 멈춘 곳은, 수많은 계열사 중에서도 유독 작고 초라해 보이는 이름 앞이었다.

'[주] 태산 바이오.'

"이곳을 파고들 겁니다."

"태산 바이오 말입니까? 그룹 전체 매출의 1%도 차지하지 않는 작은 자회사입니다. 최근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로 주가가 오르긴 했지만, 그룹의 근간을 흔들기엔 너무나 미미한 부분인데요."

사라의 합리적인 반문에, 진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라. 내 눈에는 다르게 보여. 저 거대한 태산이라는 성채에서, 유일하게 탐욕의 붉은빛이 이성을 집어삼킨 곳이 바로 저기야. 불안정한 탐욕, 속이 텅 빈 허세. 저곳이 바로 성벽의 가장 약한 균열점이지."

그의 '마켓의 눈'에는 태산 바이오를 둘러싼 기운이 비정상적으로 붉게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감, 실체 없는 희망,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의 그림자까지.

"태산의 심장을 찌르기 전에, 팔다리부터 하나씩 잘라낼 거야. 저 작은 상처가 그룹 전체를 좀먹는 괴저가 되도록 만들어야지. 한국에 도착하는 즉시, 태산 바이오의 모든 것을 긁어모아. 공시되지 않은 내부 정보, 연구원들의 불만, 사소한 루머 하나까지 전부."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의 한국 내 활동을 지원할 현지 책임자는 예정대로 이석호 씨로 진행할까요?"

"그래. 그 사람 외에는 대안이 없지."

이석호. 한때 여의도에서 가장 촉망받던 스타 애널리스트. 태산그룹의 분식회계를 폭로하는 리포트를 썼다가 역공을 당해 업계에서 매장당한 비운의 천재.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유령'이 보낸 익명의 정보 덕분에 재기하여 작은 투자자문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에게 목숨과도 같은 빚을 지워준 셈이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할 수밖에 없는 남자. 복수라는 거대한 작전을 수행하기에 가장 완벽한 현지 대리인이었다.

비행기는 부드럽게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10년 만에 마주하는 조국의 야경이 점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수많은 불빛 아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환영이 아닌 전쟁뿐이라는 것을 진우는 알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서울 강남의 한 멤버십 바.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최고급 양주와 시가 연기가 자욱했다. 대한민국의 0.1%만이 출입할 수 있다는 이곳의 가장 깊숙한 VIP 룸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크으! 역시 강태민 상무님! 이번 M&A 건도 완벽하게 성공시키셨습니다!"

"태산의 차기 회장님은 이미 따놓은 당상 아닙니까!"

아첨 섞인 찬사가 쏟아지는 중심에, 강태민이 다리를 꼰 채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10년 전보다 더욱 단단해진 체격과 날카로워진 눈매. 아버지인 강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만의 힘으로 그룹 내 입지를 완벽하게 굳힌 그의 모습에서는 오만함마저 느껴졌다.

"별거 아니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잖아?"

그가 씩 웃으며 술잔을 들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유준 의원이 잔을 맞부딪쳤다. 말끔한 수트 차림에 서글서글한 미소. 그는 방송에 나오는 '소신 있는 청년 정치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태민이 너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야. 그래도 이번에 우리 아버지께서 힘 좀 써주신 거 알지? 국토부 허가 건, 그거 아니었으면 골치 아팠을걸?"

"알지, 알아. 나중에 제대로 챙겨줄게. 그나저나 박성호 그 자식은 왜 이렇게 안 와?"

강태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룸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가 들어왔다. 어깨에 새겨진 용 문신을 명품 셔츠로도 다 가리지 못한 남자, 박성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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