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태민아, 저 새끼 우리 아버지 골프장에서 캐디 연습이나 시킬까? 공 주워오라고."
거물 정치인 유승환의 아들, 이유준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에이, 그건 너무 약하지. 우리 아빠 나이트클럽에 데려가서 웨이터 발 닦는 거나 시키자. 잘할 것 같은데."
강남 일대를 주무르는 폭력조직 '흑룡회' 보스의 아들, 박성호가 너클을 낀 주먹을 부딪히며 으르렁댔다.
그 외에도 국내 최고 로펌 대표의 아들, 대학 총장의 아들, 방송사 사주의 아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손에 쥔, 법 위에 군림하는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한 '이너서클'이었다.
그리고 김진우는 그들의 왕국에 잘못 던져진, 가장 연약한 먹잇감이었다.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분들이었다. 그들의 성실함은, 악마들의 세계에선 조롱과 멸시의 대상일 뿐이었다.
"진우야, 미안하게 됐다. 근데 어쩌겠냐. 네가 너무 약한 걸."
그들 중 유일한 홍일점, 유명 배우인 어머니와 IT 재벌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최서현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유희에 동원된 장난감을 보는 듯한 권태로운 시선.
그들의 폭력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에서 그치지 않았다. 진우의 자존감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철저히 파괴했다. 돈을 빼앗고, 거짓 소문을 퍼트려 학교에서 고립시켰으며, 심지어는 부모님의 가게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다.
선생님에게 알려도 소용없었다. 학교는 그들의 아버지가 낸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자, 다음 날 담당 형사는 이유준의 아버지와 웃으며 골프를 치러 갔다. 세상은 그들의 편이었다.
그날, 빗속의 폐공사장에서 그들은 진우에게 마지막 '게임'을 제안했다.
"저기 보이는 한강 다리까지 기어가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줄게. 어때, 쉽지?"
강태민의 말에 모두가 미친 듯이 웃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짓밟으려는 잔인한 유희.
진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빗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얼굴로, 그는 짐승처럼 네 발로 땅을 짚었다. 차가운 아스팔트와 흙바닥의 감촉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등 뒤에서는 그들의 조롱과 웃음소리가 채찍처럼 날아와 박혔다.
얼마나 기었을까. 온몸의 감각이 마비될 때쯤, 거대한 한강 다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와, 진짜 하네! 독한 새끼!"
"인간 승리다, 김진우!"
뒤따라온 그들의 차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우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 지옥 같은 순간이 끝났다고.
하지만 강태민은 차에서 내리더니,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수고했어, 진우야. 근데 그거 알아? 네가 이렇게 비참하게 기는 모습을 보니까… 더 괴롭히고 싶어졌어. 내일은 뭘 하고 놀아볼까?"
순간, 진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어졌다.
희망.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이 지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우는 홀린 듯 다리 난간으로 걸어갔다.
"어어?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당황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진우는 차갑게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죽음의 공포보다, 내일 다시 그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절망이 훨씬 더 컸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다음 생에서는 절대로 약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 악마들을 심판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악마들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비웃음, 당황, 그리고 희미한 흥미로움이 뒤섞인 그들의 표정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는 몸을 던졌다.
차가운 강물이 그의 온몸을 덮치는 순간, 진우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온 세상이 멈추고, 수많은 빛의 가닥들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돈의 흐름, 권력의 이동, 인간의 욕망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거대한 운명의 태피스트리(Tapestry).
그것이 '마켓의 눈'이 개안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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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재, 뉴욕의 펜트하우스.
진우는 길고 깊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손에 들린 위스키 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그의 영혼에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사라."
"네, 대표님."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 에이펙스 캐피탈 아시아 지부 설립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사라의 눈이 커졌다.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고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 없던 그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한국으로?"
진우는 데스크로 돌아가 태블릿 PC를 켰다. 화면에는 7명의 사진과 프로필이 정리되어 있었다. 10년 전, 그를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악마들의 현재 모습이었다.
[강태민 (29): 태산그룹 전략기획실 총괄 상무.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
[이유준 (29): 최연소 여당 국회의원. 깨끗하고 소신 있는 정치 신인 이미지로 인기몰이 중.]
[박성호 (29): ㈜SH 파이낸스 대표. 흑룡회를 합법적인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신흥 사채업계의 큰손.]
[최서현 (29): 대한민국 톱 여배우. 각종 CF와 영화를 섭렵한 청순함의 아이콘.]
[그 외 3명… 각각 법조계, 학계, 언론계에서 부모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세상의 정점에서 화려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들이 한 소년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아니, 어쩌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하찮은 장난, 인생의 작은 유흥거리 정도로.
진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오래된 빚을 받으러 가야지. 아주 비싼 이자를 쳐서."
그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을 쓸어내렸다. 가장 위에 있는 강태민의 사진에서 멈췄다.
"첫 번째 타겟은 태산그룹. 강태민."
진우의 눈이 다시금 기이한 빛을 발했다. 그의 눈에 비친 태산그룹의 재무제표와 주가 차트는 거대한 성채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보이지 않는 균열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균열을 찾아내 붕괴시키는 것이 바로 '유령'의 방식이었다.
"사라, 지금 즉시 태산그룹과 관련된 모든 파생상품, 채권, 주식을 분석해. 내가 비집고 들어갈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는 말없이,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게임은 바카라였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잔인하게 운과 배짱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임.딜러가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다.김진우의 눈은, 카드가 아닌,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마켓의 아이’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지만, 지난 10년간 수많은 인간들의 탐욕과 공포를 읽어온 그의 감각은,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초월해 있었다.상대방의 미세한 눈썹 떨림, 숨 막히는 순간에 마른침을 삼키는 목울대의 움직임, 승리를 확신할 때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는 입꼬리. 그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숫자로 변환된 데이터처럼 읽히고 있었다.“레이즈.” 이반이 거친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 놓인 ‘정보 칩’을 밀어 넣었다. 그가 건 칩은, ‘아프리카 분쟁 지역의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 비리 정보’였다.“콜.” 이사벨라는 요염하게 웃으며, 자신의 칩을 걸었다. 그녀의 칩은 ‘미국 마약단속국의 차기 비밀 작전 계획’이었다.이제 김진우의 차례였다.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일본 정계의 비자금 리스트’ 칩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패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이 판이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그는 과감하게 카드를 던졌다.“폴드.”
* 가면들의 춤사전 만찬회가 열리는 연회장으로 향하기 전, 김진우가 머무는 독채 숙소는 조용한 전쟁터로 변했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에서 ‘김진우’의 마지막 흔적을 지워내고 있었다. ‘다나카 겐지’라는 새로운 가면을 완벽하게 쓰기 위한 마지막 의식이었다.“목표 인물들에 대한 최종 보고입니다.”최영진이 태블릿 화면을 띄우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방 안의 모든 요원들이 숨죽여 경청했다.“첫 번째, 이반 스미르노프. 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출신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무기 밀매 조직 중 하나인 ‘붉은 전갈’의 수장입니다.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이지만, 자신보다 강하다고 판단한 상대에게는 의외의 존중을 표하는 맹수와도 같은 자입니다.”화면에는 거대한 체구에 험악한 인상을 한 백인 남자의 사진이 떠올랐다.“두 번째, 이사벨라 로드리게스.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자금 세탁 총책임자. 미인계를 주 무기로 사용하며, 상대방의 가장 깊은 비밀을 파고드는 데 능한 독거미 같은 여자입니다. 그녀의 유혹에 넘어간 자는,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죽음으로 끝을 맺었습니다.”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는 라틴계 여성의 사진이 뒤를 이었다.“세 번째….”최영진은 연회장에 나타날 모든 괴물들의 특성과 약점,
차량은 화려한 카지노 단지를 지나,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마카오 남쪽의 한 섬으로 향했다. 섬 전체가, 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하나의 거대한 리조트였다. 이곳이 바로, 경매가 열리기 전까지 전 세계의 ‘그림자’들이 머무는 그들만의 성역이었다.리조트 내부는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화려했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숨 막히는 감시의 기운이 감돌았다. 친절하게 웃고 있는 직원들의 옷깃에는 초소형 통신 장치가 숨겨져 있었고, 아름다운 그림 액자 뒤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렌즈가 번뜩이고 있었다.김진우와 그의 팀은, 섬의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독채 숙소로 안내되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서로 다른 ‘참가자’들의 모습을 스치듯 볼 수 있었다.러시아 마피아의 무기상으로 보이는 거구의 남자와, 그의 뒤를 따르는 전직 스페츠나츠 출신 경호원들.남미 카르텔의 자금 세탁을 담당하는, 모델처럼 아름답지만 손에 굳은살이 박인 여자.아프리카의 작은 독재 국가에서 모든 것을 착취하여 부를 쌓은, 늙고 병든 독재자.이곳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들이 모이는 만찬장이었다. 그리고 김진우는, 그 악마들을 사냥하기 위해 악마의 가면을 쓴 늑대였다.숙소의 문이 닫히자마자, 최영진은 말없이 가방에서 최첨단 장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지금부터, 이 방에 대한 정밀 수색을 시작한다.”그가 가장 먼저 꺼내 든 것은, 모든 종류의 전파를 탐지하는 소형 탐지기였다. 그가 탐지기를 켜고 방을 훑자,
* 폭풍 전야, 마카오인천 국제공항의 별도 격납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자가용 비행기가 조용히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김진우’와 그의 팀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나카 겐지’라는 이름의 일본인 거물과 그의 수행원들이 대신하는 순간이었다.비행기가 안정 고도에 접어들자, 김진우는 창밖으로 멀어지는 대한민국의 불빛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는 더 이상 김진우가 아니었다. 걸음걸이, 말투, 심지어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의 각도까지, 그는 야쿠자 조직의 비밀 고문이자 냉혹한 자산가인 ‘다나카 겐지’가 되어 있었다.“대표님, 아니, 회장님.”최영진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완벽한 일본어 경어로 보고했다. 그림자 팀의 다른 요원들은 과묵한 경호원 역할에 몰입한 채, 기내 곳곳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한국의 지휘 본부와 마지막 통신입니다.”김진우가 귀에 꽂힌 초소형 통신 장치를 통해 음성을 확인하자, 서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카오 현지 통신망은 ‘거미집’이라고 불릴 정도로 복잡하고 위험해. 신디케이트가 직접 관리하는 영역일 가능성이 높아. 마카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제한적인 지원밖에 할 수 없을 거야. 모든 것은 현장의 판단에 맡겨야 해. 조심해, 대표님.]“알겠다.”김진우는 짧게 대답하고는 통신을 끊었다. 이제부터는 완벽하게 고립된 적진
그녀는 화면에 자료 몇 개를 띄웠다.“이건…?”[경매가 열리기 약 한 달 전. 민도준이 언급했던 주요 참석자들에게, 스위스 제네바의 한 고미술상으로부터 똑같은 크기의 소포가 발송된 기록이야. 품목은 ‘18세기 스위스제 시계’로 되어 있어. 물론 가짜 품목이지. 저 시계가 바로, 암호화된 통신 기능과 초대장 정보를 담고 있는 물리적인 ‘열쇠’였던 거야!]그녀는 올해 발송된 소포의 수신자 명단까지 확보했다. 전 세계의 무기상, 마약왕, 부패한 독재자의 자금 관리인, 그리고… 일본 야쿠자의 한 거물급 총책임자.“이들 중 한 명의 초대장을 빼앗아야 한다는 겁니까?” 최영진이 물었다. “경호가 삼엄할 셔틀콕.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신디케이트 전체를 자극하게 될 겁니다.”“빼앗는 게 아니야.”김진우가 말했다.“우리는 그 자리를, ‘양도’받을 것이다.”그의 시선이, 명단에 있는 한 인물의 사진에 멎었다.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중 하나인 ‘이나가와 카이’의 고문, ‘스즈키 겐야’.그는 잔인하고 교활했지만,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편집증적인 의심과 몸을 사리는 성격으로 유명했다.“최 팀장님. 지금부터 ‘스즈키 겐야’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해 주십시오. 특히, 그와 적대 관계에 있는
김진우는 자신의 상황실에서, 조사실에 설치해 둔 초소형 도청 장치를 통해 민도준의 모든 자백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다.그의 눈앞에 있는 화면에는, 최영진이 스위스에서 막 보내온, 클라우스 베버의 다음 도박 베팅 정보가 떠 있었다.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완벽한 미끼였다.하지만 이제, 그 미끼는 필요 없어졌다.더 크고, 더 확실한 사냥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그는 최영진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클라우스 베버 건은 잠시 보류한다. 지금 즉시, 마카오로 갈 준비를 해.]그리고 그는, 자신의 상황실 화면 중앙에, 거대한 도시의 야경 사진을 띄웠다.동양의 라스베이거스, 욕망과 기회가 뒤섞인 도시, 마카오.그의 입가에, 아주 오랜만에 진정한 사냥꾼의 미소가 떠올랐다.“경매라….”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오랜만에, 쇼핑을 좀 해볼까.”* 악마의 초대장‘마카오에서의 비밀 경매.’민도준이 토해낸 마지막 정보는, 김진우의 상황실을 새로운 종류의 긴장감으로 채웠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싸움을 예고하고 있었다. 태산그룹과의 전쟁이 한 국가의 운명을 건 장기였다면, 이 경매는 전 세계의 그림자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벌이는, 단 한 번의 포커 게임과도 같았다.상황실의 대형 화면에는, 현란한 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