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그 참혹했던 낮의 살육이 한바탕 휩쓸고 간 지독한 밤.별채의 공기는 피비린내와 매캐한 연기가 한데 섞여 들어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후끈거리는 화로와 지독한 약초의 향내.유진은 결국 극심한 고열의 장막에 갇히고 말았다.새하얀 비단 이부자리 위에서.가쁜 숨을 몰아쉬며 붉게 달아오른 가녀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끙끙 앓아누웠다.뼈마디 하나하나가 화염 속에서 타들어 가는 듯 극심한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대본영의 중차대한 군무마저 모조리 내팽겨친 채.쇼는 밤을 지새웠다.사내는 직접 차가운 물에 무명 천을 적셔 유진의 불덩이 같은 이마와 목덜미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쇄골을 정성스레 닦아내며 극진히 간호했다.열에 겨워 의식이 흐릿했다.그 와중에도 그의 뜨거운 시선에 유진의 심장이 조여들었다.불과 몇 시간 전.단칼에 무고한 아낙의 목을 베어 냈던 사내의 잔혹함이 눈앞에 선명하게 겹쳐졌다.그의 차가운 손길이 닿는 모든 살결마다.온몸의 핏줄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두려움과 혐오가 전율처럼 피어올랐다.사내의 다정함은 그 자체로 가장 거대한 공포가 되었다.어느 순간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와 까무러치듯 아주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창살 너머로 스며드는 검푸른 새벽 달빛.문틈을 타고 들어오는 싸늘한 새벽바람에 흠칫 놀라며 파르르 눈을 떴다.순간 눈에 들어온 방 안의 정경은 너무도 기이했다.또다시 검은 장검을 품에 안아 쥔 채 웅크려 앉아 선잠을 자고 있는 쇼.어제 새벽과 한 치의 틀림도 없었다.언제 도륙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짓눌린 괴물.그 고독하고도 무시무시한 사내의 단단한 어깨가 기어이 그녀의 시선을 옭아맸다.유진은 비단 이불을 손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었다.순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컥울컥 밀려 드는 서글픈 의문들.목구멍을 죄어와 숨이 가빠졌다.[바닥에 누워 쉬지도 못할 만큼 이토록 무섭게 사방을 경계하면서까지…… 당신이 그토록 얻고자 소망했던 것이 결국 이 나라 여민국의 침략이었나요?]가슴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별채의 나무 대문이 열렸다.쇼가 차가운 정적이 흐르는 마당으로 들어서자.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타카오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쇼의 묵빛 옷자락 끝에서 자비 없는 살의가 뚝뚝 떨어졌다.그는 타카오를 내려다보며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명을 내리꽂았다.“내 처소의 수발을 들던 식모를 이 앞으로 즉시 호출하라.”타카오의 검은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흔들렸다.그러나 감정을 눌러 담은 채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얼마 지나지 않아.별채 앞 마당의 서늘한 흙바닥 위로 젊은 여민국 아낙이 무사들에게 끌려 나왔다.아낙은 불길한 예감과 압도적인 공포에 질려 온몸을 떨며 무릎을 꿇었다.헐떡이는 숨소리만이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쇼는 어떠한 사소한 설명도 자비 어린 경고도 건네지 않았다.그저 별채의 문 옆에서 얼어붙은 유진의 황금빛 눈동자를 정면으로 서늘하게 응시할 뿐이었다.그때 그의 커다란 손이 허리춤으로 내려갔다.서걱――! 촤아악――!별안간 쇼의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흑색 장검이 서늘하게 바람을 갈랐다.찰나의 순간.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아낙의 머리가 검은 머리카락과 함께 바닥으로 참혹하게 굴러떨어졌다.투둑ㅡ. 푸화학ㅡ!뜨거운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순식간에 아낙의 피가 별채 마당의 흙바닥을 붉게 물들였다.눈앞에서 일어난 처참한 살육.그 광경을 목도하자마자, 유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전신을 얼려버리는 사내의 무시무시한 살기.지독한 혈향에 숨통이 턱 막혀왔다.온 세상이 피비린내 나는 붉은 빛으로 물드는 환각이 그녀의 시야를 덮쳤다.검 날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그의 서슬 퍼런 흑색 장검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고 잔인하게 옭아맸다.이윽고 쇼가 잔인하도록 냉정하게 명령을 하달했다.“상을 다시 준비하지, 타카오. 그녀의 입맛에 영 맞지 않는 모양이니.”“네.”쇼는 품 안에서 무명천을 꺼내 아낙의 피가 흥건히 묻은 검 날을 천천히 닦아냈다.피를 지워내는 사내의 손길은 소름 끼치도록 차분하고
굳게 닫힌 나무 대문 너머. 유진은 붉은 비단 치마자락을 움켜쥐며 차가운 문고리를 잡은 채 숨을 죽였다.그때 타카오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에 잔인하게 닿았다.“……쇼군께서 대본영의 군무를 마치고, 곧 이곳 별채 침소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마마, 부디 그 어떤 헛된 짓도 도모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문 너머로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서늘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만약 이곳에서 마마에게 만에 하나라도 불상사가 생긴다면, 바로 그 순간 저를 비롯한 이 저택의 모든 이들의 목이 베여 나가는 광경을 가장 먼저 보게 되실 겁니다.”서서히 내려앉는 그의 시선.그의 목소리에 참을 수 없는 불안과 애틋한 감정이 낮게 일렁이고 있었다.“그리고 이 땅의 모든 백성들 또한 남김없이 모조리 도륙 내어 피바다로 물들 것입니다. 물론 도망친 여민국의 왕실과 세자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공주 마마라는 유일한 협상 가치가 그들에게서 사라진다면, 이 여민국에서 쇼군의 자비 어린 관용 따위는 단 한 자락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십시오.”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타카오의 끔찍한 경고.유진은 버티고 있던 다리의 힘이 풀려 결국 제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문을 등진 채 뺨을 타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오직 그의 정욕을 채우며 만족시켜야만 모두가 안전하다는 굴욕적인 구속.달빛마저 무서운 듯 서늘하게 비껴버린 어두운 별채 안.도망칠 모든 길을 완벽하게 잃어버린 공주의 처절한 절망만이 사방에 울려 퍼져 깊어 가고 있었다.끼이익ㅡ.순간 귓가를 치고 들어온 문소리에 마치 거대한 벼락이라도 맞은 듯.유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허겁지겁 방 안으로 도망쳐 들어왔다.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와 제어가 안됐다.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것만 같았다.그때 정적을 깨고 별채의 두꺼운 미닫이문이 느리게 열렸다.조금 전, 탈주하려 문턱을 넘어서던 때의 극한의 한기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스으윽―.쇼군이 칠흑 같은 어둠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가학적이고 거친 결착이 마침내 끝났다.탕실 내부에는 숨이 턱 막힐 듯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초점을 잃은 황금빛 눈동자.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가 시신처럼 널브러진 유진의 살결 위로 서늘한 공기가 맴돌았다.쇼는 말없이 물에 적신 무명 천을 들었다.조금 전까지.짐승처럼 그녀를 탐하고 짓밟았던 사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상처 입은 여린 살결을 훔쳐내는 손길은 기이하리만치 정성스러웠다.그는 그녀의 붉게 짓눌린 목덜미와 허벅지 안쪽의 흔적을 조심스레 닦아냈다.그리고 사츠마국 특유의 화려한 붉은 비단 의복을 가져왔다.놋빛 기름불 아래.뽀얀 살결 위로 포개지는 선붉은 비단.쇼는 유진의 가녀린 몸 위에 옷을 입히고 매듭을 단단히 여며 옷고름을 고정했다.유진은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어떠한 감각도 온기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차갑게 식은 몸을 사내의 손길에 내맡기고 있을 뿐이었다.사내의 몸에서는 여전히 비린 철분 냄새가 풍겼다.이윽고 쇼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쥐고 끌어당겼다.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그의 압도적인 악력.그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무거운 걸음을 내딛던 바로 그 찰나.“……아악!”짧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방 안의 공기를 갈랐다.유진의 가녀린 작은 몸집이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 위로 무참하게 쓰러져 내렸다.바닥에 발걸음을 제대로 내딛자마자.밤새도록 이어졌던 거친 난도질과 가혹한 유린의 통증이 해일처럼 솟구쳤다.하복부 전체를 찌르는 듯한 끔찍한 파열통.붉은 비단 치마자락 사이로 드러난 가녀린 두 다리가 경련하듯 떨렸다.실핏줄이 터지듯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다.제 의지로는 단 한 걸음조차 서 있을 수 없었다.순간, 유진의 황금빛 눈동자 너머로 다시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유진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과거의 간절했던 사랑이 오늘의 가장 끔찍한 저주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온 영혼을 다해 사랑했고.살려내고자 제 숨결까지 불어넣
그때였다.쇼는 자신이 입고 있던 청색 유카타 자락을 미련 없이 벗어던졌다.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거구가 유진의 시야를 가득 덮쳐왔다.지독하게 압도적인 남자의 거대한 존재감.순간 유진은 겁부터 먹었다.그리고 그는 그녀가 몸을 담근 나무 욕조 안으로 가차 없이 걸어 들어왔다.출렁―.커다란 물보라가 일며 사내의 단단하고 탄탄한 하복부가 유진의 골반에 빈틈없이 밀착되었다.물속에서 느껴지는 사내의 뜨거운 아우라와 거대한 체구가 그녀를 압박했다.그는 그녀를 마주 보며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우악스럽게 끌어안았다.그리고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 위로 강제로 앉혀버렸다.물속에서 여인의 여린 살결과 사내의 단단한 살결이 아무런 경계 없이 날것으로 맞닿았다.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풀무불의 용광로처럼 뜨겁게 들끓었다.유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버둥거렸다.수많은 전장의 흉터들이 새겨진 그의 단단한 가슴을 가냘픈 손으로 거세게 밀어냈다.물보라를 일으키며 자신을 또다시 완강하게 거부하는 그녀.그의 내면의 지독한 허기와 파괴적인 정복욕이 다시금 눈을 떴다.그는 유진의 가느다란 양팔을 거칠게 붙잡아 나무 욕조 가장자리에 거칠게 짓누르며 고정했다.그리고는 애절한 안광으로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사내의 목소리가 피폐하게 갈라져 나왔다.“넌 내 것이다. 넌…… 이제 온전히 내 몸 아래에서만 숨을 쉬고 내 허락 아래서만 살아야 하는 내 것이라고! 그러니까 나에게 통하지도 않을 그 가당치도 않은 저항을 하겠다고 아까운 힘 빼지 마라.”그의 손가락이 유진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꽉 움켜쥐었다.“내 손으로 또다시 널…… 어제처럼 처참하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유진.”그에게 완전히 짓눌린 채.그녀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욕조 안에서 온몸을 벌벌 떨었다.밀려드는 수치심과 지독한 비참함.하얗고 연약한 어깨가 서럽게 들썩였다.“흑…… 아아…….”그는 다시금 그녀의 붉은 입술을 거칠게 탐하려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거친 폭풍이 수십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납처럼 무거웠다.정사의 잔흔으로 완전히 탈진한 채.정신을 잃어버린 유진을 그대로 놔둔 채로.쇼는 단 한 순간도 등을 대고 눕지 않았다.온 세상을 제 발아래 꿇린 정복자의 거구.그럼에도 그는 극단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삼 년 전 영주 태산 자락.그녀를 허망하게 잃어버렸던 그 끔찍한 새벽이 여전히 그의 숨통을 조여오는 듯.그는 차가운 장검을 품에 단단히 안아 쥔 채 어둠 속에 우뚝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그의 매서운 안광은 방의 입구만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사방을 주시하는 날 선 경계 태세로.그는 오직 짐승처럼 얕은 선잠을 청할 뿐이었다.이윽고 창살 틈새로 하얀 아침 햇살이 칼날처럼 들이칠 무렵.“아…… 윽……!”유진의 정신이 겨우 돌아왔다.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허리와 골반 아래쪽은 마치 말에 짓밟힌 것처럼 부서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간신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스스륵―.이불이 쓸리는 아주 작은 기척이었다.그 사소한 마찰음에.등지고 앉아 있던 쇼가 번뜩 몸을 돌렸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사내의 핏발 선 검은 눈동자가 유진을 서늘하게 쳐다보았다.그리고 그녀가 누워 있는 보료 앞으로 다가왔다.그러고는 기어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거친 두 손으로 자비 없이 감싸 쥐었다.짓이겨져 터져버린 유진의 붉은 입술이 드러났다.사내의 두껍고 단단한 엄지손가락이 유진의 찢어진 입술 위를 끈적하고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쓰라린 통증에 유진의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쇼는 손을 떼지 않았다.이내 그의 매서운 시선이 그녀가 누워 있던 이부자리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순백의 이부자리 여기저기에 엉망으로 번진 핏자국들이 어지럽게 묻어 있었다.거칠고 난폭했던 지난 밤의 흔적.그녀의 완전했던 순결을 가차 없이 도륙해버린 명백한 잔흔이었다.그 선연한 붉은 얼룩을 눈에 담는 순간.쇼의 잘생긴 미간에 불쾌한 듯 깊은 주름이 잡혔다.가슴 안쪽이 시리도록 저려왔다.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