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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일촉즉발

Author: KRYS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4 19:07:19

붉은 장막 뒤에서 수벌의 화려한 비단옷을 든 시종들이 줄 지어 섰다.

그 옷들을 향해 최고 상궁 혜선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오만하게 옷을 골랐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핏빛 탐욕과 독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무리 폐하의 침소를 독점했었다 한들……

난 그저 그 고결하신 황후 마마의 뒤를 가리는 들러리에 불과했던 것인가.

어느덧 반년이 다 되도록 천황이 그녀의 침소를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마음은 온통 황후뿐이었다.

여인의 책무도 못하는 인형에 불과한 계집이 도대체 뭐라고.

그리 감싸고 놓지를 못하시는 것인지.

폐하의 야수같은 정욕을 받아 줄 여인은 이 황궁에 나뿐이거늘……

자신이 낳은 어린 황자를 안아 올린 혜선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천황은 아들을 낳아주었음에도 끝내 그녀에게 빈(嬪)의 첩지를 내리지 않았다.

황세자 렌의 정통성만을 고집하는 천황의 비정한 의지에 그녀는 비참했다.

그깟 작은 나라의 공주가 뭐라고……

이리 나를 무시해.

미천한 신분의 한계 그리고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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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도록 절실한 쇼의 검붉은 안광이 유진의 등 뒤를 사정없이 꽂혔다.폐가 찢겨 나갈 것만 같이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삼 년 반이라는 잔혹한 세월 동안.단 한 번도 목놓아 부르지 못했던 제 유일한 구원.자신의 여인을 가쁘게 부르짖었다.철썩ㅡ. 콰르르르.웅장한 파도 소리를 가르고 터져 나온 사내의 거친 외침.바로 그 순간.유진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불안하게 흔들리는 황금빛 눈동자가 그를 바라봤다.안돼.쇼의 시야를 강렬하게 뒤흔드는 잔혹한 광경.위태롭게 서 있는 유진. 그리고……옥색 치맛자락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그때 그녀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이내 피를 토해내듯 비명을 질렀다.“……오지, 오지 마세요! 폐하!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그 애달픈 경고가 해안가 바람에 찢겨 나가기가 무섭게 유진의 가녀린 몸이 몽돌 해변 위로 툭, 꺾이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순간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잔혹한 살수들의 검날이 핏빛 노을 아래 일제히 번뜩였다.“아아아아악ㅡㅡㅡ!!!”쇼는 미친 야수처럼 말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폭주하며 뛰어갔다.그의 서슬 퍼런 장검이 휘몰아치며 들이쳤다.단 일격에 자객들은 모조리 도륙됐다.피바람 속.쇼는 정신없이 바닥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유진의 가녀린 몸을 품 안으로 부서져라 끌어안았다.“이제 너는 안전하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다오.”쇼의 짙은 동공이 시뻘겋게 물들었다.“미안해요. 이번만큼은…… 당신의 아이를 목숨 바쳐 지켜주고 싶었는데.”유진의 핏기 가신 처절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그제야 쇼의 떨리는 시선이 지난 여섯 달 동안 홀로 소중하게 키워온 그녀의 아랫배에 닿았다.그 배를 필사적으로 감싸 안은 유진의 두 팔.그녀의 하얀 손가락 사이로, 이미 뜨거운 선혈이 울컥울컥 고여 들어 옥색 치마자락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안돼. 유진. 말하지 마, 제발 말하지 마라……!”쇼는 유진의 손등을 으스러져라 움켜잡았다.그럼에도 결국 그의 커다란 두 손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114화. 황후를 향한 질주

    말발굽 아래 잿빛 먼지가 들이치는 깊은 밤.타카오는 결국 황궁의 장막을 부수고 천황의 개인 침소 안으로 거칠게 들이닥쳤다.스륵ㅡ!순간 장검을 쥔 천황이 폭군의 안광을 들어 올리며 소름끼치게 쏘아보았다.“낙향을 했다 들었는데…… 이 으슥한 밤중에 짐의 침소를 침범하다니. 타카오, 이젠 내 서슬 퍼런 칼날이 정녕 두렵지 않은 모양이로구나.”“폐하……! 이성을 차리소서!”단숨에 타카오의 목덜미에 천황의 흑색 장검이 겨눠졌다.하지만 타카오는 물러서지 않았다.아니 더욱 가까이 천황에게 다가가 섰다.“넌 죽고 싶은 것이냐. 넌 내 상대가 안된다.”타카오의 안광이 번뜩 빛났다.그는 더 깊고 위협적으로 천황에게 다가섰다.“지금…… 황후 마마의 목숨이 위험합니다.”순간, 쇼의 거대한 흉판이 사정없이 굳어졌다.“무슨 소리냐. 자신의 조국 땅에 있는 황후가 대관절 왜 위험하다는 것이냐!!!”“자세한 내막은 일단 나중에 고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돗토리에서 병선을 띄울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 출발하면 그자들을 도륙 낼 수 있사옵니다!”“그자들……? 대관절 그자들이 누구란 말이냐!”“살수이옵니다, 폐하! 그자들이 여민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콰아앙—!순간, 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그는 순식간에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가 군마 위로 몸을 날렸다.자신의 여인을 지키려는 야수의 본능이 그를 지배했다.“고정하소서! 제가 목숨을 걸고 가겠나이다! 지금 이 시국에 폐하께서 궁을 비우시는 것은, 황후 마마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옵니다!”타카오가 천황의 말 앞머리를 가로막았다.쇼는 말 고삐를 쥔 손가락의 뼈마디가 부러져라 움켜쥐며 사정없이 소리쳤다.“아니! 내가 가야 한다. 타카오! 내 여인이다! 그러니 내가 직접 가서 내 손으로 데려올 것이다. 비켜서라.”그는 급히 말 머리를 돌리며 처음으로 그에게 속내를 전했다.“그리고 타카오. 나 대신…… 황궁에 남아 렌을 부디 지켜주기 바란다. 부탁한다.”천황의 입술을 뚫고 나온 그 처절한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113화. 반역죄

    다음 날 오후.따스한 볕이 유난히 내리쬐는 동궁전(東宮殿)의 정각.황세자 렌이 정갈하게 들어앉아 글을 읽고 있었다.제 아비인 천황 요스케 쇼의 훤칠한 윤곽과 또렷한 기백을 오롯이 빼닮은 아이의 눈동자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바로 그때.혜선이 보낸 나인 하나가 정갈한 소반을 들고 조심스레 들어섰다.“마마, 최고 상궁께서 특별히 기운을 돋우는 귀한 음청을 준비해 올렸사옵니다.”달콤한 꿀과 당귀 향이 감도는 시원한 음청 상이 렌의 책상 앞에 차려졌다.아무런 의심 없이 잔을 들어 올리려던 렌의 조그마한 손.그 순간.동궁의 미닫이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칠흑 같은 갑주를 입은 사내가 들이닥쳤다타카오.그의 굳건한 손은 이미 차가운 검자루를 깊게 쥐고 있었다.“그 잔을 내려놓으십시오, 황세자 마마…!”날카로운 일갈과 함께.렌이 쥐고 있던 잔이 옻칠 마루판 위로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시원한 화채와 달콤한 꿀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더니, 이내 붉은 비단 방석을 지저분하게 적셨다.“바닥을 핥아라.”“네?”음청을 올렸던 궁녀가 허옇게 질려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렌은 놀란 눈으로 타카오를 바라보았다.타카오는 렌의 조그마한 몸을 자신의 넓은 품에 감싸 안으며 냉혹하게 명했다.“동궁전의 대문을 밀폐하라. 단 한 명도 이 내실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타카오는 이미 혜선과 대신들의 밀회를 은밀히 추적하고 있었다.황후와 황세자 렌을 지키기 위해 황궁 내에 심어놓은 자신의 무사들이 그대로 동궁전으로 들이닥쳤다.타카오의 핏발 선 안광이 바닥에 엎드린 궁녀를 찌를 듯 내리꽂혔다.“너에게 비약을 건넨 자가 누구냐. 거짓을 고하는 순간 네 목통이 잘려 나갈 것이다.”“살, 살려주옵소서, 마마! 최고 상궁 마마께서…… 좋은 약재라면 수라에 섞으라 하셨사옵니다!”“그런데 왜 핥지 못하느냐. 핥지 않으면 여기서 네 목이 날아간다.”“살려주시옵소서. 저는…… 최고 상궁 마마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옵니다.”궁녀의 자백이 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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