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황후의 세번째 회임.연이은 회임과 황자의 출산으로 사츠마의 왕권은 신화처럼 공고해져 갔다.열 달의 기나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산달.산실청의 장막을 찢고 터져 나온 것은 축복이 아닌 핏물 가득한 절망의 비명이었다.“탯줄이…… 탯줄이 아기씨의 목을 단단히 가로감아 돌고 있사옵니다! 산도가 완전히 막혀 황후 마마와 태아 모두의 생명이 위급하옵니다!”유진의 자궁벽은 무서운 진통과 난산(難産) 앞에 파열되듯 비명을 질렀고.하얀 비단 이부자리는 순식간에 검붉은 피비린내와 선혈로 물들어갔다.의원으로서 태중 아기의 생사가 위태로움을 직감한 유진은 뼈마디가 바스러지는 극통 속에서도 핏줄을 살려내려 의원들을 붙잡았다.“아기를, 내 배를 갈라서라도 먼저 꺼내어 살려주십시오……!”그때 산실청 장막을 부수고 들어온 천황 요스케 쇼의 서슬 퍼런 포효가 유진의 절규를 가차 없이 집어삼켰다.자신의 여인이 하혈을 쏟아내며 죽어가는 꼴을 목도한 사내는, 이미 이성의 고삐가 완벽히 타버린 몰골이었다.천황은 떨고 있는 의원들의 목덜미를 억센 손으로 움켜잡았다.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명을 내리꽂았다.“당장 황후의 목숨부터 구하거라! 내 눈 앞에서 황후가 잘못되는 날에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삼족을 멸할 터이니.”결국 어이는 황제의 무시무시한 명을 따랐다.유진의 내궁에서 아기를 강제로 사산(死産)시키고, 잿빛으로 변해버린 차가운 주검을 황후의 핏물 젖은 나신 밖으로 받아내었다.세상 빛을 보지 못한 셋째 황자의 비참한 출산이었다.이후, 중궁전 내실은 침통한 적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유진은 열 달 동안 자신의 배 속에서 살과 피를 나눠 키워낸 아이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깊은 자괴감과 슬픔에 빠져 있었다.붉게 충혈된 황금빛 눈동자로 매일 밤낮없이 눈물을 흘리며 시름시름 앓아누웠다.게다가 너무도 짧은 주기의 연이은 출산 탓에.유진의 자궁 내벽이 심각하게 약해져 있어.차후의 회임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어의의 비참한 진단을 전해 들었을 때.쇼는 제 가슴을
사츠마 황궁의 후원.붉은 단풍잎이 금빛 햇살 아래 비단처럼 가붓하게 나부끼는 가을날이었다.첫 황자 렌이 세상 밖으로 나온 지도 어느덧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네 살이 된 어린 황자 렌(蓮)은 제 아비인 천황을 가히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또렷하고 날카로운 턱선과 깊은 칠흑 같은 눈동자.어린 나이에도 만인을 압도하는 남다른 무사의 기백까지 고스란히 흘러넘치고 있었다.“어머니, 보십시오! 오늘 아버님께 배운 검법입니다!”조그마한 나무 목검을 쥔 렌이 신이 난 얼굴로 정원의 잔디 위를 쌩하고 뛰어다녔다.유진은 나비처럼 단아하고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적삼 소맷자락으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아기의 하얀 이마를 다정하게 닦아주었다.“기특하구나, 렌. 하지만 너무 무리하면 몸이 상할 터이니 이리 와서 따스한 차를 마시려무나.”그때 묵직하고 당당한 발소리와 함께 칠흑의 곤룡포를 입은 천황 쇼 요스케가 후원으로 걸어 들어섰다.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세상을 집어삼킨 절대 군주의 오만한 위엄과 훤칠한 자태는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완벽했다.“아바마마!”렌이 목검을 꼭 쥐고 달려가자.쇼는 커다란 손으로 아들의 머리를 툭툭 쓸어 넘겨주며 안아 들었다.그러나 쇼의 검은 안광은 이내 아기의 작은 얼굴을 지나쳐.주홍빛 단풍 그늘 아래.눈부시게 앉아 있는 유진의 하얀 살결과 발그레한 붉은 입술 위에 단번에 멈춰 섰다.사내의 짙은 눈동자 속에는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는.아니 날이 갈수록 더욱 농밀하고 깊게 익어버린 맹목적인 정욕과 독점욕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쇼는 렌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옆에 서 있던 상궁들에게 나직한 어조로 명령했다.“황자를 모시고 내실로 들어가거라. 보모와 함께 조용히 수라를 들게 하라.”“예, 폐하.”혜선이 렌의 손을 잡고 후원 밖으로 물러나자.쇼는 단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유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억센 팔뚝으로 번쩍 들어 올리듯 바짝 끌어안았다.“폐하, 상궁들과 나인들이 지켜보고
중궁전 내뜰의 옥빛 정각.연분홍색 벚꽃 잎이 기분 좋은 봄바람을 타고 눈처럼 가붓하게 휘날렸다.유진은 고요한 햇살 아래 부사령관 타카오, 그리고 그의 아내 유키와 차분하게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싱그럽고 푸른 봄바람이 정전의 비단 장막을 은은하게 간지럽히는 평화로운 오후였다.유진의 바로 곁에는 갓 두 살이 된 어린 황세자가 비단 이부자리 위에서 새근새근 고운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황후 마마, 황세자의 용모가 갈수록 폐하를 쏙 빼닮았습니다. 분명 천황 폐하처럼 강건하고 대골한 자태로 자라나실 게 분명합니다.”유키가 수줍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단아한 어조로 건네자.유진은 잠든 아기의 오동통한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서글프고도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이 아이가 절 살렸습니다. 이 아이의 용모가 둘째 황자처럼 저를 닮거나, 여민국의 오라버니라도 닮았더라면 저는 이곳 사츠마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테니까요.”“만약 그렇다고 했어도, 분명 폐하께서 마마를 반드시 지켜주셨을 것입니다. 저 또한 폐하의 뜻을 받들어 무조건 황후 마마의 안전을 제 일순위로 두었을 것입니다.”타카오가 묵직하고 강건한 의지를 보이며 굳은 표정으로 서약을 올리자.유진은 살짝 난처한 듯 유키를 돌아보며 그를 살그머니 나무랐다.“타카오 상의 충심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도 저도 유일하게 믿는 저희 사람이시니까요. 그러니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런 무거운 충심의 맹세는 매번 하실 필요 없으십니다.”“마마.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오라, 제 진심입니다.”“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계속 이렇게 눈치 없이 구시면, 제가 유키 상에게 면목이 없습니다.”그제야 타카오가 멋쩍은 듯 하얀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아내 유키를 바라보았다.“바깥일에 지나치게 진심인 남자는 참으로 남편으로서 꽝이지 않습니까, 유키 상?”유진이 은밀하게 농을 건네자, 유키가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웃어 보였다.“다행이지 않습니까. 타카오 상의 얼굴이 수려해서. 아니었으면 유키 상에게 벌써 몇
그 찬란한 평화의 정점에서.중궁전(中宮殿) 내실에는 또다시 기적 같은 경사가 났다.황후가 첫 왕자를 출산한 지 기껏해야 겨우 4개월 만에,또다시 천황의 핏줄을 또 한 번 연달아 회임하게 되었다.이 경이로운 연속 회임(懷妊) 소식에 사츠마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사츠마의 새 황실의 굳건한 번영을 증명해 낸 여민국의 공주는, 이제 그 누구도 감히 흠집 낼 수 없는 공공연하고 위대한 사츠마의 국모(國母)로 추앙받기 시작했다.회임으로 전신이 무겁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전란의 잔흔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이국의 백성들을 향한 구휼 활동과 의료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우리 황후 마마는 정녕 신이 내리신 성녀(聖女)이시다……!”천황의 무자비하고 잔혹했던 찬탈로 세워진 새 황실.이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정재의 소용돌이 속에서.두려움에 떨던 사츠마 백성들은 유진의 어진 성정에 매일같이 뜨거운 찬사와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내었다.천하의 민심이 황후의 발밑에 완벽히 정착했다.정복 전쟁으로 건국된 위태로웠던 천황의 왕권과 지위도 누구도 감히 침범할 수 없을 만큼 무섭도록 견고하게 강화되었다.당초 대신들과 그들의 책사들이 예견했던 파멸의 우려는 마침내 사라졌다.이제 쇼의 황실은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사츠마로 변모해 갔다.그것은 국경을 마주한 여민국 역시 마찬가지였다.괴물 쇼군과 세자 부안대군이 맺었던 비밀 조약아래.가혹한 피의 숙청이 끝난 여민국 강토 위에도.비로소 역사상 가장 안온하고 평화로운 치유의 시간이 도래했다.그렇게 다시 10개월이라는 축복 같은 세월이 흘러간 붉은 새벽녘.유진은 중궁전 침상 위에서 마침내 건강한 두 번째 황자를 무사히 순산해 냈다.사내를 끔찍하리만치 빼다 박아 묵직한 기백을 뿜어내던 첫째 황자와 달리.갓 태어난 둘째 황자는 눈부시도록 새하얀 피부와 수려한 골격, 유진을 쏙 빼닮아 천하절색의 용모였다.자신의 여인과 똑 닮은 핏줄을 품에 안은 천황의 심장은 또 한 번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사정없이 요동쳤다.
따스한 금빛 햇살이 중궁전 내실의 붉은 비단 장막 너머로 은은하게 쏟아져 내렸다.은은한 백단향이 피어오르는 침상 위.유진은 갓 태어난 소중한 황자를 품에 안고 다정한 눈빛으로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주먹을 꼭 쥐고 유진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기의 포근한 숨소리가 내실 안을 채웠다.그때 편전의 정무를 마치자마자, 들뜬 발걸음으로 달려온 천황이 내실 문을 성급하게 열고 들어섰다.세상을 얼어붙게 만드는 천황의 위엄 어린 칠흑 곤룡포를 내팽개치듯 벗어던졌다.황후의 앞에서 천황은 그저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쩔쩔매는 평범한 사내일 뿐이었다.그는 자신의 여인과 아이 앞으로 다가가 무방비하고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유진.”쇼는 침상 위로 커다란 몸을 숙여, 아기를 안고 있는 유진의 가녀린 허리와 어깨를 한꺼번에 자신의 넓고 단단한 품 안으로 가득 안았다.그의 억센 팔뚝이 유진의 등을 받치고, 그의 뜨거운 숨결이 유진의 뽀얀 목덜미와 귓불을 간지럽히며 입술을 내리꽂았다.“폐하, 황자가 아직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서두르지 마소서.”“내 마음이다. 온종일 이 작은 녀석에게 내 여인을 빼앗긴 기분이라, 편전에서도 정무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천하를 호령하는 천황이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향해 묘한 질투와 어리광을 부리자 유진의 붉은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쇼는 유진의 젖은 입술 위에 길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그레한 뺨과 어깨선을 따라 혀끝으로 은밀하게 살결의 온기를 마셔 올렸다.곧이어 사내의 커다랗고 억센 손이 아기의 조그마한 손가락을 살포시 감싸 안았다.자신의 이목구비를 오롯이 닮은 아기의 모습에 그의 검은 안광이 눈이 시리도록 아늑하게 일렁였다.“이 아이의 이름을…… ‘렌(蓮)’이라 하고 싶다.”쇼는 유진의 황금빛 눈동자를 마주 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더러운 핏빛 진흙탕 속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눈부시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이 아이가 우리의 핏빛 과거와 전란의 상흔을 모두 씻어내고, 나와
중궁전 내전의 붉은 비단 장막 너머.삼엄한 바깥 정세의 소란은 천황과 황후가 머무는 침상 안으로 단 한 자락도 스며들지 못했다.가혹한 안팎의 시선과 위태로운 권력 암투 속에서도.쇼 요스케와 서 유진은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소유한 채 가장 완벽하고도 행복한 꿈결 같은 나날을 함께 보냈다.매일 밤.은은한 향연이 피어오르는 은밀한 침상 위.두 사람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의 살결을 거칠고도 부드럽게 옭아매며 밤을 지새웠다.동이 터오는 푸르스름한 새벽녘이면.여인은 사내의 단단하고 넓은 팔베개에 누운 채 가쁜 숨을 나누며 아침을 맞았다.이제 더 이상 적국의 장수와 공주라는 운명 뒤에 숨어.사랑하면서도 증오해야 했던 그 비참한 정념을 장막 뒤로 감출 이유가 없었다.비로소 처음으로 온 영혼의 고삐를 풀어헤친 채.마음껏 서로를 탐닉하고 열렬히 사랑했다.회임 중에는 관계를 금하는 왕실의 예법 따위는 까마득히 뒤로한 채.사내의 뜨거운 중심이 그녀의 부드러운 속살의 깊은 곳을 파고들며 과거의 상흔과 미련을 남김없이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그렇게 국혼이 성대하게 이루어졌던 그 밤으로부터.정확히 일곱 달의 세월이 흐른 어느 푸른 새벽녘.마침내 유진의 진통이 시작되었다.시종들과 책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천황은 중궁전 앞뜰을 밤새도록 초조하게 서성였다.비단 장막 너머로 유진의 가녀린 비명 소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사내의 심장은 검게 타들어 갔다.“왜 이리 오래 걸리는 것이냐! 혹여 황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쇼는 내의원의 어의를 불러 세우며 핏발 선 눈으로 다그쳤다.어의가 바닥에 엎드려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잘 버티고 계시옵니다. 폐하,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똑똑히 들어라. 혹여라도 일이 잘못된다면…… 황후가 먼저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황후의 털끝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자네의 목숨 역시 무사치 못할 터이니 그리 알라!”“폐하! 명을 받잡겠나이다!”으아앙—!그때 두 사람의 지독한 연모가 맺은 결실이자, 장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