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완벽했던 밤

그 완벽했던 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By:  도옌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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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를 둔 은영. 평온한 결혼 생활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익숙해진 부부관계는 더 이상 그녀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우연히 목격한 유부남 상사와 여직원의 은밀한 정사. 그 장면은 은영의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운다. 잊고 지냈던 갈증, 싱글 시절 완벽한 절정을 안겨주었던 단 한 남자. 그 기억이 되살아난 순간, 은영은 스스로도 멈출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그를 찾아 나서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던 그 밤, 다시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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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 은영

"자자, 이거 하나씩들 먹고 시작하자구."

은영은 집에서 직접 싸온 샌드위치를 팀 동료들에게 하나씩 돌렸다. 삶은 달걀을 마요네즈, 후추와 함께 으깨어 넣고 토마토와 아보카도 슬라이스도 넣은 든든한 샌드위치였다. 팀원 여덟 명에게 하나씩 돌리고 은영도 하나 들어 한 입 베어먹었다.

"어머, 배 주임님. 매번 안 이러셔도 되는데 황송해서 어쩌죠?" 

"아이 등교시키고 남편 출근시키느라 바쁘실 텐데 어찌 아침마다 이러세요?"

"역시 이 정도 부지런함이 겸비되어야 결혼이란 걸 하는 건가 봐."

"주임님 남편분 부럽네. 진짜 상향혼 하신 분이야. 인정 인정."

"상향혼? 상향혼이 뭐야?"

"자기 자신보다 훨씬 나은 상대랑 결혼해서 팔자가 펴는 게 상향혼이야. 그 반대는 하향혼이고. 완전 나은 상대랑 결혼해서 완전히 팔자를 고치게 되면 초상향혼이지."

"어머, 무슨 그런 말이 있어? 근데 말은 된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말 잘 지어냈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상향혼, 하향혼 기준은 뭐야?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면 상향혼 한 거야? 결혼은 둘이 사랑해서 하는 거고 둘이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거야."

"아이고, 지현 씨 또 교과서에 나오는 말하네.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지현 씨같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더라. 호호."

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꺄르르 대며 전날 저녁에 본 드라마 이야기, 어제 한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존잘남 봤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어느덧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승희 씨는 오늘도 늦네."

작은 입술에 벽돌색 립스틱을 발라 펭귄같이 보이는 진경이 앞머리에 말려 있던 구루프를 풀며 한 마디 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승희 씨는 지각이 잦다. 지각에 민감한 윤 과장이 금방이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와 아침 순찰을 돌까 은영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계약직으로 시작해 천신만고 끝에 평사원이 된 후 8년을 버티다 겨우 주임을 단 지 10개월차인 은영은 잘하고 싶었다. 팀워크를 좋게 하기 위해 안 떠지는 눈을 힘겹고 뜨고 새벽배송 받은 신선한 재료로 매일 아침 김밥이며 샌드위치를 쌌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팀원들이 각자 조금씩 더 열심히 해주면 팀 전체 실적도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주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과장으로도 진급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다정한 남편과 결혼했지만 난임을 겪으면서 경력 단절이 되었고 무수하고도 다양한 시도 끝에 끝끝내 아들 하나를 품에 안아 세상 부러울 게 없어졌었다. 아이가 너무나 소중해 기관에 최대한 늦게 보내고 싶었고 끼고 있고 싶었다. 가정보육을 하며 아이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하나하나 쌓았었지만 그와 함께 이대로 전업주부로 일평생 나앉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으로 밤을 지샌 나날들도 많았다. 사십대에 진입하면서 남편도 회사에서 이리저리 압박을 받는 눈치였다. 윗선은 안 나가고 자리 보전하고 있는데 밑으로는 창창하고 빠릿빠릿한 해외 대학 출신들이 즐비하게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도 자라며 태권도다 영어다 줄넘기다 수영이다 미술이다 피아노다 시키고 싶은 게 생겨났다. 남들 보낸다는 영어 유치원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은영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혼을 결심할 즈음 친정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결혼 자금으로 차곡차곡 모아놨던 돈을 친정집에 많이 내놓고 결혼을 했던 것이다. 남편은 혼수나 결혼할 때 가져온 돈의 규모에 대해 여태 살면서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지만 은영은 스스로 움츠러들었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도 상처가 되었다.

"너네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이런 말을 들을 때조차도 은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돈 없는 나와 결혼해 줬으니까 좋은 사람이라는 뜻인가?'

이렇게 혼자 곡해해서 듣고 속상해 했던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은영은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기라도 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사남매 중의 장녀로 빠듯하게 자라서 그랬던 것일까.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동생들 탓에, 특히 딸 셋 끝에 태어난 막내 남동생 탓에 양보해 와서 그랬던 것일까. 고등학생 시절, 유난히 동경했던 해외 유학의 꿈이 좌절되어서 그랬던 것일까. 부모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훗날 스스로 벌어서 결국엔 일년의 해외 유학을 해냈지만 자라면서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집에서 안 받쳐주네.' 라고 생각해 왔던 건 결국엔 결핍으로 자리잡았다. 마음껏 펼치지 못한 자신의 가능성이 뭉개지고 줄곧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살아야 했던 삶의 방식은 결혼을 하고 둥지를 새로이 만들고 새 생명을 잉태해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부자도 아니고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업적도 없으니 좋은 사람이기라도 되고 싶었다.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저 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의 꽃이라 불리는 승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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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영
"자자, 이거 하나씩들 먹고 시작하자구." 은영은 집에서 직접 싸온 샌드위치를 팀 동료들에게 하나씩 돌렸다. 삶은 달걀을 마요네즈, 후추와 함께 으깨어 넣고 토마토와 아보카도 슬라이스도 넣은 든든한 샌드위치였다. 팀원 여덟 명에게 하나씩 돌리고 은영도 하나 들어 한 입 베어먹었다. "어머, 배 주임님. 매번 안 이러셔도 되는데 황송해서 어쩌죠?" "아이 등교시키고 남편 출근시키느라 바쁘실 텐데 어찌 아침마다 이러세요?" "역시 이 정도 부지런함이 겸비되어야 결혼이란 걸 하는 건가 봐." "주임님 남편분 부럽네. 진짜 상향혼 하신 분이야. 인정 인정." "상향혼? 상향혼이 뭐야?" "자기 자신보다 훨씬 나은 상대랑 결혼해서 팔자가 펴는 게 상향혼이야. 그 반대는 하향혼이고. 완전 나은 상대랑 결혼해서 완전히 팔자를 고치게 되면 초상향혼이지." "어머, 무슨 그런 말이 있어? 근데 말은 된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말 잘 지어냈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상향혼, 하향혼 기준은 뭐야?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면 상향혼 한 거야? 결혼은 둘이 사랑해서 하는 거고 둘이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거야." "아이고, 지현 씨 또 교과서에 나오는 말하네.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지현 씨같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더라. 호호." 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꺄르르 대며 전날 저녁에 본 드라마 이야기, 어제 한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존잘남 봤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어느덧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승희 씨는 오늘도 늦네." 작은 입술에 벽돌색 립스틱을 발라 펭귄같이 보이는 진경이 앞머리에 말려 있던 구루프를 풀며 한 마디 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승희 씨는 지각이 잦다. 지각에 민감한 윤 과장이 금방이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와 아침 순찰을 돌까 은영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계약직으로 시작해 천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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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승희
쌍꺼풀 수술이 좀 과하게 됐다는 거 말고는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승희가 하이힐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사무실로 들어옴과 동시에 몸을 내던지듯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로그하는 시간이 기록되기 때문에 컴퓨터를 9시 전에 켜는 건 아주 중요했다. "아, 오늘도 성공." 하며 눈을 찡긋 하고는 그제서야 새삼스레 의자를 뱅그르르 돌려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승희 씨, 안녕? 오늘도 슬라이딩 도어네?" 만년 평사원 경은이 비꼬면서 한 마디 했다. "네, 제가 좀 타이밍을 잘 맞추거든요." 승희는 예의를 갖추면서도 일견 조소의 톤을 띄우고 받아쳤다. 그렇다. 승희는 누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매력적이게도 보이게 했고, 동시에 얄밉게도 보이게 했다. 승희는 언제나처럼 금방이라도 선자리에 나갈 듯 한껏 꾸민 채였다. 등의 중간까지 오는 굽실굽실한 갈색 머리에서는 은은한 모링가 향이 났다. 바람이 불어와 코끝에 그 향이 전해져 오기만 해도 침샘에 침이 순식간에 차올라오는 향기였다. 디자인은 단정하나 소재가 뭔가 야한, 속이 비치는 베이지색 쉬폰 블라우스에 나풀거리는 노란색 치마를 입고 키튼 힐의 미디엄 높이 하이힐을 신은 승희는 지각할까 봐 금방 허겁지겁 달려온 사람답지 않게 여유가 넘쳤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당당함이었다. 깡마르지 않았으나 하늘하늘한 핏을 가진 승희에게는 아직 단 한번도 아기를 낳아보지 않은 여자 특유의 몸선이 있었다. 단정한 옷 속에는 어딘가 모르게 헤픈 여자의 몸짓이 있었다. 승희는 조심성 없이 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줍기도 했고 의자에 앉아 무방비 상태로 다리를 무심코 벌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승희의 브래지어 끈과 팬티가 살짝씩 보이기도 했다. 어떨 때는 세상 도도한 커리어 우먼같기도 했고 어떨 때는 세상 헤픈 업소녀같기도 했다. 그야말로, 묘했다. "어머, 이거 또 주임님 솜씨죠? 어쩜 이렇게 솜씨가 좋으세요? 매일 이렇게 얻어 먹기만 해서 어떡하죠?" 승희는 특유의 콧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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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요일
"주임님, 3시 57분인데 콜 막아도 되죠?" 경은이 헤드셋을 내려 놓으며 은영에게 명랑하게 물었다. "응, 그럴까?" 그날은 한 달의 마지막 주 금요일이었다. 그들이 일하던 부서는 달의 마지막 금요일마다 4시에 업무를 마치고 회사 휴게실에서 조촐한 간식 타임을 가졌다. 업무를 마쳤다고는 하나 퇴근을 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간식 타임 또한 업무의 연장이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케이크를 주문해 그 달에 생일을 맞았던 직원들의 생일을 다같이 축하했고, 간부들이 일하고 있는 7층에서 센터장이 내려와 한 마디 하기도 했다. 가끔씩 맥주와 와인 등 가벼운 주류가 제공되기도 했다. 그들이 일하던 부서는 엘레베이터 4층에 있었는데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눈앞으로 커다란 유리문이 있었고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면 오픈플랜 사무실이었다. 유리문 안쪽 오른쪽에 사방이 유리로 된 신 과장의 사무실이 있었다. 오픈플랜이었지만 군데군데 기둥이 있어서 모든 자리를 한눈에 볼 수는 없었다. 유리문 안으로 들어오기 전 왼쪽에 휴게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휴게실에는 텔레비전과 냉장고와 싱크대와 소파 자리가 있어서 직원들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거기서 먹기도 하고 커피를 타 마시기도 했다. 4시가 땡 되자마자 직원들이 우르르 일어나 휴게실로 향했다. "주임님, 같이 가요." "응, 그래." 다들 금요일의 바이브에 젖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데이트가 있는지 다들 잘 차려 입은 모습이었다. 휴게실에 가서 생일 축하 노래를 다같이 부르고 케이크를 나눠 먹는 동안, 은영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 해야했다. 그날은 5시 땡 되자마자 퇴근해 아들을 데리러 가고 싶었다. 아들을 데리고 같이 마트에 가 찬거리를 사고 집에 가는 길에 놀이터에도 들러 잠깐이라도 그네를 밀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는 집에 가 아이 목욕을 시키고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구워 저녁을 차리고 싶었다. 남편과 아이와 셋이 둘러앉아 서로 쌈도 싸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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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건드려진 욕망
은영은 슬며시 휴게실에 돌아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람들 무리에 합류했다가 5시 땡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갔다. 하지만 그 층을 떠나진 않았다.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알 것 같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었다. 사무실 밖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복도에 있는 화장실엘 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하며 퇴근하는 사람들의 양말과 구두만 뚫어져라 봤다. 아들을 데리러 가는 것도 미룬 채. 왠지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계단으로 내려가려면 무거운 철제문을 열어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주임님, 퇴근 안 하시고 여기서 뭐 하세요?" 데이트를 가는지 클럽엘 가는지 한껏 꾸민 직원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반짝 빛냈지만 은영은 꿋꿋이 기다렸다. 승희도 퇴근했다. 약속이라도 있는지 신이 나서는. 몇십 명이 같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누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간식 타임이긴 했어도 엄연히 근무 시간 내에 그런 아슬아슬한 짓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도파민이 터졌을지 짐작도 안 됐다. 훅 분출했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나른한 만족감도 느꼈던 것일까. 은영은 질투인지 심술인지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일부러 존재를 알리고 싶어 큰소리로 인사했다. "승희 씨, 이제 퇴근해? 기분 좋아 보이는데 어디 가?" "아, 주임님. 그냥 친구들 만나서 저녁 먹을 거예요, 호호." 승희는 콧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치마가 나풀댔다. 저 안은 아직도 젖어 있으려나. 직원들 대부분이 빠져 나간 후 이제 그만 포기할까 하던 차에 은영은 마침내 그 구두를 봤다. 예상했던 대로 신 과장이었다. 구두로는 오히려 구별이 어려웠지만, 엘리베이터 안으로 스텝을 살짝 넓게 내딛을 때 분명히 봤다. 양말의 특정 브랜드. 검정 양말에 작게 노란색으로 수놓여진 그 브랜드의 동물 이미지. 책상 아래로 보였던 다리의 마름 정도도 매치했다. 은영은 왠지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아랫도리에서 뜨끈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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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첫 정사
"승재, 오늘 하루는 어땠어?"은영의 남편 태형은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아이에게 물을 따라주었고 의자를 바로해 주었으며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 밥 위에 올려주기도 했다.'예전에는 저런 다정함과 세심함이 다 나를 향했었지.'은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섭섭하지는 않았다. 세월과 함께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생각했다. 자식에게조차 무심한 남자도 많다던데 이 정도면 선방하는 거지,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저 남자의 관심을 고스란히 받았던 시절이 있었지.은영은 그들의 연애 시절을 떠올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뛰어든 어느 서점의 지붕 아래, 먹구름이 껴 갑자기 밤처럼 어두워진 그 한낮에 첫키스를 나눴었다. 둘 다 서툴렀다. 엉거주춤 서서 입은 맞추고 있으나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허공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손. 먼저 그 손을 잡은 것은 은영이었다. 은영의 적극성에 마음을 놓은 태형은 이내 한손으로 은영의 허리를 감쌌고 키스가 길어지는 동안 손은 은영의 엉덩이께로 내려와 부드럽게 움직였다."비 맞아서 옷이 다 젖었네. 춥지 않아?"그들은 맞은편 건물에서 대낮에도 요란한 네온사인 등을 발산하고 있던 모텔로 향했다. 소위 "나쁜 남자"와의 연애만 주구장창 하던 은영이 처음으로 마음을 풀고 성관계를 했던 상대였다. 태형은 꼼꼼하게 샤워했고 커튼을 완전히 쳐 방을 어둑하게 만들었으며 서둘지도 않았다. "내키지 않으면 그냥 티브이만 보다 나가도 돼."태형은 수줍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를 깨끗하게 닦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진짜로 티브이를 봤다. 태형은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 예능 프로그램을 찾았다. 몇 번이고 재방송을 봤던 익숙한 프로그램이었다. 둘은 침대에 나란히 앉아 간간히 농담을 주고받으며 티브이를 봤다. 소나기는 애저녁에 이미 그친 상태였다. 쏴아아 빗소리에 뭉개졌던 세상의 소리들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버스 소리, 발자국 소리, 신호등 초록불 타이머 소리... 은영의 목욕 가운을 살짝 펼쳐 허벅지를 드러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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