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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오래된 태블릿

Author: 루니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26 03:21:11
“찾았다고 좋아하지 마. 이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 난 또 7년 전 거짓말에 혼자 미치는 여자가 되니까.”

세령의 말에 이도가 먼지 묻은 태블릿을 쥔 채 웃음을 거뒀다. 별장 창고의 맨 아래 선반. 그의 무릎 옆에는 낡은 충전선과 가족 여행 사진이 흩어져 있었다.

“형수님, 오늘은 희망 고문 안 해요. 켜지는지부터 보죠.”

“안 켜지면?”

“제가 밤새 충전기라도 찾아볼게요. 형수님은 밤샘 감독만 하세요. 대신 제 얼굴 오래 보다가 반하시면 곤란한데.”

“충전기 찾기 전에 네 입부터 꺼버릴까?”

이도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기기 뒷면의 충전 단자를 확인하는 손은 신중했다. 세령도 바닥에 앉아 엉킨 선을 하나씩 풀었다. 먼지가 날려 기침이 나왔지만 일어날 생각은 없었다.

십여 분 뒤 두 사람은 빈 객실 탁자 위에 태블릿을 올려놓았다. 오래된 충전기를 연결하자 반응이 없었다. 세령이 화면을 두드리는 사이 이도가 손목을 잡으려다 멈췄다.

“조금 기다려요. 방전된 기기는 바로 안 켜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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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제165화. 증거 내놔

    “그럼 세령이가 당신을 감시했다는 증거, 지금 보여주시겠어요?”태겸의 물음에 서윤이 쥔 휴대전화가 허공에서 멈췄다. 조금 전까지 윤혜란에게 세령을 감시자로 몰아가는 문자를 보내던 손이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관람객들이 발걸음을 늦췄고, 환기 때문에 걷어 올린 직물 견본 아래로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세령은 태겸이 왜 처음부터 거짓말이라고 소리치지 않았는지 알았다. 거짓말은 증거를 요구받는 순간부터 스스로 모양이 달라지는 법이었다. 세령은 한때 유건이 자신에게 들려줬던 다정한 거짓말들을 떠올렸다. 믿고 싶은 마음 때문에 놓친 빈틈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늘은 그 빈틈을 스스로 확인할 생각이었다.“증거요? 제가 당한 일을 꼭 사진으로 찍어둬야 믿으시겠어요?”“아뇨. 서윤 씨 말씀을 사실이라고 놓고 확인하자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 세령이가 따라왔는지요.”태겸은 그녀의 휴대전화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 세령의 어깨를 감싸지도 않았다. 그 대신 직원들이 정리 중인 안내판 옆으로 물러서서 서윤이 대답할 공간을 남겼다. 세령은 그 태도가 고마우면서도 이번 일의 마지막 문장은 자신이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와 다시 사귀기로 정한 날의 약속도 떠올랐다. 가족의 허락을 받지 않고, 상대의 뜻을 대신 정하지 않을 것. 태겸은 그녀 대신 싸우지 않고도 곁에 서 있을 수 있었다.“식당에서 저를 노려봤어요. 오늘도 옷이랑 향수를 검사했고요.”“식당은 서윤 씨가 세령이 맞은편으로 예약했죠. 오늘은 서윤 씨가 이 전시장에 왔고요. 그게 따라다닌 증거입니까?”“말을 그렇게 하면 제가 스토커라도 된다는 거예요?”“그 말은 제가 한 적 없어요. 감시당했다는 근거를 묻는 중입니다.”유건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서윤아, 그만해. 네가 보내놓은 문자부터 바로잡아.”“또 전처 편이네. 유건 씨는 여자친구가 울어야 속이 시원해요?”그 말에 세령이 웃었다. 이번에는 속이 시원해서가 아니라, 서윤이 끝내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 자리로만 밀어 넣으려는 게 기가 막혀서였다.“유건이 누구

  •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제164화. 감시한 사람

    “그걸 네 마음대로 결정해?”세령이 서윤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윤혜란에게 보내려는 문장이 떠 있었다. ‘한세령 씨가 저를 계속 감시하고 있어요.’ 거짓말을 적은 손가락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사진 폴더를 감추느라 허둥대던 여자가 이제는 피해자의 자리를 예약하고 있었다.“내가 언제 당신을 감시했는데요?”“식당에서도 저를 쳐다봤고, 오늘도 향수며 옷이며 하나하나 따지셨잖아요.”“내 데이트 자리에 먼저 찾아온 사람은 누구였죠? 오늘 내 전시장에 향수병 들고 들어온 사람은요?”서윤은 대답하지 않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메시지 발송 표시가 뜨자 유건이 한 걸음 다가왔다. 세령은 그보다 먼저 전시 담당 직원을 불렀다. 통로에 서 있던 관람객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고, 미래는 직물 견본을 보호용 덮개로 가렸다. 세령의 손바닥에는 손톱이 눌린 자국이 남았지만, 그녀는 서윤의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잠깐만요. 담당자님, 오늘 일어난 일 기록 남겨주세요. 이분이 향수병을 견본 쪽으로 겨눴고, 그래서 관람 동선을 바꿨습니다. 이 뒤로 제 동료와 제가 들은 말도 필요하면 직접 말씀드릴게요.”서윤이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보세요, 유건 씨. 이렇게 저를 쫓아다니면서 기록까지 남긴다잖아요.”“기록은 당신이 방해한 전시 업무에 관한 거예요.” 미래가 받아쳤다. “휴대전화 안의 사진은 당신이 직접 열어서 보여줬고요. 제가 남의 가방 뒤진 적 있어요?”유건이 서윤 쪽으로 몸을 돌렸다.“서윤아, 어머니께 그런 말 보내지 마. 내가 사실대로 설명할게.”“네가 설명할 일 아니야.” 세령은 그 말을 끊었다. “네 여자친구가 내 이름으로 거짓말을 했어. 정정도 본인이 해야지. 너 또 내 대신 좋게 끝내겠다고 나서지 마.”유건은 입을 다물었다. 한때 세령의 말을 대신 정리하고, 그녀에게 유리하다고 믿는 답을 혼자 골랐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그가 물러서는 동안 세령이 직접 서윤 앞에 섰다.“나는 당신 연애에 관심 없어요. 유건이랑

  •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제163화. 훔친 얼굴들

    “내 앞에서 다시 말해봐. 이게 전부 우연이라고?”미래가 가리킨 휴대전화 화면에는 세령의 이름이 붙은 사진 폴더가 열려 있었다. 서윤이 영수증을 보여주겠다며 직접 켠 화면이었다. 엄지손가락이 미끄러지는 찰나, 결혼식 사진과 전시 인터뷰 사진, 거리에서 찍힌 듯한 세령의 옆모습이 차례로 스쳤다. 미래는 남의 휴대전화를 빼앗지 않았다. 그저 본 것을 똑똑히 말했을 뿐이었다.“폴더 이름이 ‘한세령’이었어요. 제가 잘못 읽은 거면 지금 다시 보여주세요.”서윤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밀어 넣었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천 견본이 환기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향수 때문에 설명 순서를 바꾼 직원들이 멀리서 관람객을 안내하는 동안, 세령은 서윤의 손이 지퍼를 끝까지 잠그는 모습을 지켜봤다.“인터뷰 사진 좀 모아둔 거예요. 전시하는 사람들 자료 찾아보면 안 돼요?”“아까는 매장에서 향수를 추천받았다면서요.” 세령이 물었다. “그전엔 유건이가 알려줬다고 했고요. 이번엔 제 사진을 연구했다고요?”“다 맞는 말이에요. 추천도 받았고 사진도 봤죠.”“그럼 왜 하나만 물을 때마다 다른 대답이 나와요?”서윤은 세령 대신 유건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유건은 선뜻 다가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향과 옷 색깔이 겹친 건 우연일 수 있다고 말했던 자신이 우스워진 듯했다. 하지만 세령은 그의 표정까지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서윤이 가방끈을 잡아당기자 작은 향수병이 안쪽에서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세령은 그 소리에 어제 작업실 문 앞에 놓였던 꽃 상자를 떠올렸다. 사진을 지워달라고 하면 유건의 허락을 들먹였고, 찾아오지 말라고 하면 공개 행사라서 왔다고 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 속에까지 자기 이름을 따로 모아놓고 있었다. 세령은 무엇보다 그 집요함이 싫었다.“유건 씨, 저 사람들 지금 제 휴대전화까지 검사하겠다는 거예요. 사진 몇 장 저장했다고 범인 취급하는 게 말이 돼요?”“검사하자고 한 사람 없어.” 미래가 잘랐다. “본인이 영수증 보여준다면서

  •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제162화. 우연의 값

    “끝까지 우연이라고 우길 거야?”세령의 질문에 유건은 방금 내뱉은 말을 도로 삼키고 싶은 사람처럼 입술을 다물었다. 서윤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팔을 잡았다. 어두운 먹청색 재킷 소매에서 흰 꽃 향이 흘러나왔다. 세령이 오래 쓰던 향이었다. 유건이 한때 매일 맡았던 냄새를 이제는 다른 여자에게서 맡고도 모른 척한다는 사실이 기막혔다.“향수랑 옷은 우연일 수 있지.” 세령은 전시장의 직물 견본을 가리켰다. “그럼 내 결혼사진에 선 그어서 촬영업체에 보낸 것도 우연이고, 내 첫 데이트 식당 맞은편 예약한 것도 우연이야? 세 번이나 연달아?”“그건 서윤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잘못했다고 말한 사람은 너야. 정작 본인은 아직도 내가 예민하다는데?”세령은 예전에 유건이 자기 말보다 가족의 설명을 먼저 믿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모두가 좋은 뜻이었다고 말하면 그 좋은 뜻을 믿지 못하는 사람만 이상해졌다. 이제는 그 순서를 다시 겪을 생각이 없었다. 유건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도 그녀가 묻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서윤은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가.유건의 손이 서윤의 팔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입꼬리를 내리며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봤다. 뒤편에서는 예약 관람객들이 설명회 안내문을 읽고 있었고, 미래는 향이 밴 견본을 바람이 드는 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한 사람이 멋대로 연 향수병 때문에 전시 동선이 바뀌었는데, 서윤은 그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한 관람객이 문제의 직물을 손끝으로 만지려다 안내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세령은 원래 설명 순서를 바꾸고 다른 작품부터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전시 하나를 완성하려고 수십 번 시료를 펼쳐본 사람들 앞에서 서윤의 우연은 전혀 우연한 손해가 아니었다.“그냥 세령 씨 스타일이 예뻐 보였어요.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에요?”세령은 대답 대신 아까 들었던 말을 되짚었다.“방금은 유건이가 예전에 맡아본 향이라고 해서 샀다면서요.”“맞아요. 아니, 비슷한 향 같다고만 했어요.”“유건이는

  •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제161화. 그 향기, 누구 거야

    “그거 지금 당장 치워.”세령이 가리킨 것은 차서윤의 손에 들린 향수병이었다.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천 소재 견본 앞에서 서윤은 병마개를 열고 있었다. 분사구는 하필 세령이 직접 고른 얇은 직물을 향해 있었다. 벽에는 ‘작품 및 견본 접촉 금지’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지만 그녀는 못 본 척 웃었다.“어머, 세령 씨. 여기서 또 뵙네요.”“향수부터 닫아요. 저 천에 묻으면 색이 달라져요.”서윤은 한 박자 늦게 병을 가방에 넣었다. 그 짧은 사이 허공으로 번진 냄새가 세령의 기억을 건드렸다. 처음엔 깨끗한 비누처럼 느껴졌다가 끝에 흰 꽃 향이 남는 향. 결혼 전부터 즐겨 쓰다가 이혼 후에도 가끔 손목에 묻히던 것이었다. 세령은 그 향을 뿌리고 태겸을 만나던 날을 기억했다. 그날 그가 뭐가 달라졌느냐고 묻기에 새 향수를 샀다고 대답했었다. 유건과 결혼한 뒤에도 한동안 썼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으려고 고르는 물건이 아니었다. 작업실 서랍에 넣어두고 기분 좋은 날 혼자 쓰는 향이었다. 향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서윤의 옷이었다. 먹청색 재킷에 크림색 치마. 세령이 오래전 전시 인터뷰 사진에서 입었던 조합과 같았고, 목에 맨 가느다란 스카프의 매듭 위치까지 비슷했다.이날 행사는 세령이 맡은 전시의 소재를 미리 공개하는 작은 설명회였다. 누구나 예약하면 들어올 수 있었지만, 견본 옆에서 향수를 뿌려도 되는 장소는 아니었다. 세령은 미래와 함께 오전 내내 천의 질감에 따라 조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는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미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서윤의 뒤에 유건이 서 있다는 걸 알았다.유건은 서윤의 옷을 살피다가 세령에게 눈을 돌렸다. 식당에서 있었던 일 이후 처음 마주친 두 사람이었다. 그는 먼저 다가오지 않았지만 서윤의 향수병을 보자 미간이 구겨졌다. 세령은 유건에게 전날의 잘못을 변명할 기회까지 줄 생각이 없었다. 식당에서 그가 서윤의 사진 사용을 막겠다고 약속했지만, 또다시 새 여자친구와 같은 장소에 나타난 것은 설명이

  •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제160화. 네 여자부터 막아

    “내가 네 사진을 넘겨도 된다고 했냐고?”유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굳었다. 세령은 작업실 문을 다시 열었다. 복도에서 발을 떼지 못한 서윤의 얼굴이 보였다. 미래는 문턱에 선 채 물기에 젖은 꽃 상자를 발끝으로 밀어놓았다. 사진 속 결혼식은 4년 전 끝났는데, 그 사진 때문에 오늘의 전시 도면이 몇 시간째 방치돼 있었다. 복도에는 꽃 상자의 단 향과 작업실 접착제 냄새가 뒤섞였다. 화사한 꽃과 냉정한 설계도 사이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좋아. 모두 있는 데서 끝내자.”세령은 통화를 스피커로 전환해 서윤에게도 들리게 했다.“유건아, 서윤 씨가 네가 허락했다며 내 결혼사진을 촬영업체에 보냈어. 내가 있던 위치까지 표시해서 똑같이 찍어달라고 했고. 사실이야?”잠깐의 침묵 뒤 유건이 말했다.“서윤이가 내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봤어. 그거 가져도 되냐고 물어서, 나한테도 있는 사진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지. 그런데 촬영업체에 보낸 줄은 몰랐어.”“그럼 그 말이 허락이 아니라고 우길 거야?”“아니. 내가 경솔했어.”세령은 대답이 빠르다는 사실에 오히려 화가 났다. 유건은 이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알았다. 그렇지만 인정은 일이 벌어진 다음에 하는 것이고, 그 사이에 남의 사진이 누구 손으로 건너갔는지는 되돌릴 수 없었다. 결혼식 날 웃던 자신이 낯선 여자의 촬영 지시서에 붙어 있었다. 세령은 그날 행복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할 생각이 없었다. 유건이 베일을 들어 올려줄 때 분명 설렜고, 끝까지 잘 살아보려 애썼다. 그렇다고 서윤이 그 표정을 가져다가 자신의 연애가 더 진짜라고 증명할 권리는 없었다.서윤이 휴대전화를 쥔 손을 들어 올렸다.“보셨죠? 허락하셨잖아요. 세령 씨만 왜 이렇게 예민하세요?”“아니, 지금 그게 변명이라고 나오는 소리야?”유건이 끼어들었다.“내가 사진을 쓰라고 했어도 세령한테 물어봤어야지. 너 어제 식당도 그렇고 왜 자꾸 이 사람한테 가?”“이 사람이요?”서윤의 웃음이 사라졌다.“전처는 이름으로 부르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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