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날카로운 칼날 절반이 전연우의 심장을 파고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 그가 완전히 바닥에 쓰러지고 눈을 감았다.“전연우!”장소월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려왔다. 맑은 액체가 그의 옷에 스며들어 검붉은 피와 뒤섞였다.장소월은 감히 그의 몸에 손끝도 대지 못했다. 왜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려움 때문이거나... 제 손으로 직접 그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이거나.“전연우, 너... 안 죽어. 내가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전연우의 가슴팍엔 단도 하나가 꽂혀 있었다. 장소월은 조심스레 그의 심장에서 흐르고 있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소리쳤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빨리 들어와 주세요!”“제발 살려주세요!”문밖에 있던 경호원들은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에 온몸이 피로 흥건한 사람 한 명이 누워 있었다.경호원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119에 전화했다.다행히 산장에도 의료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속해 있던 서철용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장소월의 손을 잡고 그 층을 벗어났다.서철용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지금 소월 씨에겐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는 거예요. 기성은이 3분 뒤면 도착할 테니 그 전에 떠나야 해요. 다른 하나는... 다시 전연우의 곁에서 예전과 같은 삶을 이어가는 거예요.”“소월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소월 씨 편이에요. 앞으로 전연우가 살든 죽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죽는다고?지금 장소월은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녀의 몸은 다친 곳 하나 없었다.장소월이 전연우를 죽이려 했음에도, 그는 결코 그녀의 몸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예전 그가 알던 전연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전연우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어떤 말은... 서철용은
송시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무슨 일 있어요?”소피아가 빠르게 말했다.“송 부대표님, 대표님께서 다치셨어요! 대표님이 구급대원들에게 들려 방 안에서 나가는 걸 제가 똑똑히 봤어요. 온몸에 피가 가득했고, 가슴엔 칼이 하나 꽂혀 있었어요. 심각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모님께서 도망치셨어요.”“부대표님, 저희 지금이라도 신고할까요? 하지만... 기 비서님께선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하셨는데...”“뭐라고요? 장소월이 감히 대표님한테 손을 댔다는 거예요? 지금 어느 병원에 있어요?”송시아의 음산한 눈동자가 번뜩거렸다.“부대표님과 같은 병원이에요.”“알겠어요.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절대 들키면 안 돼요.”“네, 부대표님. 전 먼저 회사에 들어가 볼게요. 다른 일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송시아는 전화를 끊은 뒤 간호사에게 휠체어에 앉혀달라고 부탁했다.“환자분, 죽 안 드실 거예요?”“제 남자가 다쳤어요. 가봐야 해요.”송시아가 알아보니 전연우는 수술을 받고 있는 중이고 기성은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기성은은 휠체어를 타고 온 여자를 보고서도 얼굴에 표정 변화 하나 생기지 않았다.송시아가 ‘수술 중’이라는 빨간색 글자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수술실 밖에서 연우 씨가 나오길 기다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연우 씨, 이게 바로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여자예요. 신혼 첫날 밤 가슴에 칼을 꽂아 넣는...”장소월 또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반복적으로 그녀를 시험해본 결과 이제 확신이 들었다.장소월은 확실히 그녀처럼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아니면 그토록 전연우를 좋아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기성은이 쏘아붙였다.“부대표님께선 자신의 일에나 신경 쓰면 됩니다. 대표님께선 무사하실 겁니다.”그때, 돌연 수술실 문이 열렸다.간호사가 안에서 걸어 나오자 기성은이 다급히 일어나 물었다.“상황이 어떻습니까?”“...”그때, 강지훈은 위풍당당하게
“누가 타라고 했어?”강지훈의 그 말은 선명히 소민아를 가리키고 있었다.뒤에 있던 부관이 말했다.“현아 아가씨가 차에 태우셨습니다. 함께 며칠 동안 머물러야 한다면서요. 현아 아가씨가 너무 기뻐하시는 걸 보니 저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소민아는 차 가장 안쪽에 앉아 있었다. 한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강지훈의 모습에 그녀는 그를 향해 올렸던 손을 빠르게 내려놓았다.소민아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소현아의 등 뒤로 조심스레 몸을 숨겼다.이 강지훈이라는 놈은 대표님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다.정말이지 사람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든다.대체 언니는 이런 사람과 어떻게 만났단 말인가.그들과 기성은을 비교해보니, 기성은은 그야말로 천사와 다름없었다.또한... 그녀를 보는 강지훈의 눈빛은 항상 그녀로 하여금 소름이 돋아오르게 만들었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볼 때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강지훈이 말했다.“외부인을 데려가는 게 그렇게 좋아?”소현아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줍고는 톡톡 먼지를 털며 말했다.“민아는 제 동생이에요. 엄마가 언니는 동생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민아는 좋은 사람이에요. 예전 절 도와 나쁜 사람을 쫓아주기도 했는 걸요. 저 민아와 함께 살고 싶어요.”“지훈 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도 민아랑 집에 갈 거예요.”소민아는 더러워진 과자를 입에 넣으려는 소현아를 보고는 재빨리 과자를 빼앗아 창밖에 던져버리고 말했다.“바닥에 떨어진 건 먹지 마.”왜인지 현아 언니의 병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그녀가 팔을 뻗으니 소매 안으로 멍이 든 흔적이 보였다. 색깔이 옅지 않은 거로 보아 적어도 3, 4일 전에 다친 것 같았다.저 상처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소민아는 최대한 얼굴로 드러날 뻔한 의심을 가라앉혔다.강지훈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민아를 데리고 북경 감옥에 가는 걸 허락한 것이다.다만 소민아는 아직 그들이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있었다.그때, 정장을 입
“흑흑흑... 이랑 씨, 저 죽을 것 같아요!”소민아는 쓰러질 듯 힘없이 신이랑에게 다가가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댔다. 신이랑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요.”신이랑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아침밥 먹었어요?”“저 지금은 아무것도 못 먹겠어요.”“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 일단 차에 타서 얘기해요.”쌀쌀한 아침이라 산장 길옆에 내린 서리는 아직 채 녹지 않았다. 신이랑이 손에 들고 있던 목도리를 소민아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가 눈을 내리뜨리니 검은 속눈썹이 조금씩 떨려왔다.“아침엔 추워요. 얼른 타요.”신이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머지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했다.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소민아가 차에 탄 뒤, 신이랑은 운전석에 올라타 얼이 빠진 채 앉아 있는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해주었다.신이랑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하게 운전했다.“어젯밤 일은 미안했어요. 민아 씨를 또 귀찮게 했네요.”“괜찮으면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요?”소민아는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 아무것도 숨기지 못한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몇 글자 내뱉었다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입을 닫았다.“아니에요. 이랑 씨까지 위험하게 만들 필요 없어요. 이번 일은 모르는 게 더 나을 거예요.”“알겠어요. 묻지 않을게요. 일단 조금 자요. 도착하면 깨워줄게요.”신이랑은 초췌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필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어 밤을 새웠을 거라 생각했다.신이랑은 차 속도를 늦추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던 소민아는 조수석 의자에 기대어 앉아 빠르게 잠이 들었다. 시내에 들어와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 돌연 소민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희미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서울 경찰서입니다.”소민아가 번쩍 눈을 떴다. 단번에 모든 졸음이 사라져버렸다.25분 뒤.소민아는 경찰서에 도착했다.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취조실에 갇혀버렸다.4, 5
떠나기 전, 소월 언니의 몸엔 핏자국이 가득했었다... 설마... 그 피... 소월 언니가 다쳐서 묻은 게 아니라 대표님의 것이었던 거야?경찰이 물었다.“소민아 씨,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소민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득 신이랑이 떠오른 그녀가 말했다.“저 제 친구랑 몇 마디 얘기 나눠도 될까요?”“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전엔 소민아 씨와 친구분 모두 풀려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 일이 두 사람과 관련이 없다는 걸 증명해 주어야만 나갈 수 있습니다.”소민아의 머릿속엔 기성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오직 기성은 만이 당시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그녀는 정말 자신이 신이랑을 위험에 빠뜨릴 줄은 몰랐다.그녀가 기성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린 지 1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좀처럼 연결이 되지 않았다.소민아는 인내심을 갖고 한번 또 한 번 반복해 걸었다.마지막으로 그 번호에 걸었을 땐 이미 전원이 꺼진 상태가 되어버렸다.분명 기성은도 대표님이 다친 일이 그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소민아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누군가 제 결백을 증명해 주어야만 나갈 수 있는 거예요?”“이번 건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저흰 성세 그룹 사람이 직접 와 두 사람이 이번 일과 확실히 관련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줘야만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소민아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바깥에 서 있는 저 사람은 성세 그룹의 편집장이에요, 소설 을 쓴 작가님이기도 하고요. 저 사람은 절대 이번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몸도 좋지 않은데 먼저 보내면 안 될까요? 전 계속 여기에 있을게요.”옆에 있던 여경이 보내온 서류를 훑어보고는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처리할게요.”옆 유치장.여우림은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달려와 신이랑의 알리바이를 증명한 뒤 그를 유치장에서 빼냈다.신이랑이 형사에게 물었다.“민아 씨 상황은 어떤가요?”“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여우림은 그 말을 끝으로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얼마나 기다렸을까. 아침부터 시작된 기다림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이어져가고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경이 더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 설득했다.“신이랑 씨, 이렇게 기다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여자친구분이 신이랑 씨 건강을 걱정하고 있어요.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도 집에 돌아가세요.”신이랑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계속 이렇게 기다리는 건... 휴. 됐어요! 그럼 음식이라도 좀 드세요.”얼마 후 그녀가 경찰서 안에서 빵과 따뜻한 물을 들고 나왔다.물이 담겨 있는 컵을 감싸니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그의 손에 따스한 온도가 전해졌다.눈을 내리뜨니 차갑고 무거운 무언가가 속눈썹에서 느껴졌다. 쌀쌀한 날씨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다 보니 서리가 내려앉은 것이다.신이랑은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이며 가로등 아래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그는 들고 있던 물이 차갑게 식어버린 뒤에야 다시 내려놓았다.마지막으로...신이랑은 핸드폰을 꺼내 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문밖에 홀로 서 있는 그의 얇은 뒷모습은 너무나도 고독하고 쓸쓸해 보였다...몇 초 뒤, 전화기 너머로 두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10년 전 이후로 처음 연결된 통화였다.남자는 애써 흥분한 감정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신이랑이 입을 열었다.“도움을 청할 일이 하나 있어서요...”“그래...”얼마 후.“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시간이 있으면 이쪽으로 와. 어쨌든 난 네 아버지잖아. 네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 난 자랑스럽게 생각해.”신이랑은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갑게 한 글자만 내뱉었다.“네.”“다음 주 월요일 시간 되면 우리 가족 같이 밥 한 끼 먹자. 장소는 네가 정해.”“그럴 필요 없어요. 이번 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상대방이 한동안 침묵하자 신이랑이 다시 말했다.“다음번엔 꼭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전화를 끊고 난
소민아는 신이랑의 차에 올라탔다. 똑같이 경찰서 문 앞에 정차되어 있던 검은색 승용차 안에서 기성은이 깊은 눈동자로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그들의 꼭 맞잡은 두 손까지도 그는 똑똑히 보았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소피아가 어두워진 기성은의 얼굴을 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기 비서님, 소민아 씨 이제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들어가실래요?”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에 기성은이 직접 여기까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표님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사경을 헤매고 계신다. 하여 성세 그룹이 직격탄을 맞은 이 혼란한 시점에 소민아에게 낭비할 시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기성은은 차가운 얼굴로 액셀을 밟아 경찰서를 떠났다.소민아는 밤새 휴식하지 못했던 탓에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신이랑도 차 속도를 늦추었다. 아파트 단지 아래 도착한 뒤 조심스레 그녀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소민아는 깊이 잠이 든 것 같았다. 신이랑이 침대에 눕히고 신발을 벗겨주자 그녀는 이불 속으로 쏙 파고 들어갔다.신이랑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하루종일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침대 옆 서랍 안에서 진통제 한 통을 꺼내고 이미 차가워진 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다음 날, 소민아는 오후 한 시가 되어서야 깨어났다. 거실에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자신이 신이랑의 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침대 옆 정연하게 개어진 깨끗한 옷 위 쪽지 한 장이 놓여있었다.[새 옷이니까 깨면 갈아입고 나와서 밥 먹어요.]다정한 그 한 마디를 본 순간 마음속에서 따스함이 피어올랐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민아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늘 혼자였기에 외로운 생활에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상태였다.처음으로 이런 대접을 받아보니... 기분이 꽤나 좋았다.소민아는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신이랑이 입으려고 샀던 옷이라 그녀가 입으니 사이즈가 조금 커 긴 소매를 말아 올렸다.
소민아는 핸드폰을 들고 방에서 나갔다. 본래 낯설었던 곳이 어느새 점점 더 제집 같이 익숙해졌다. 그녀는 방을 나서며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이랑 씨, 밥 먹고 나서 회사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기 비서님이 절 찾으시네요.”신이랑이 그녀에게 삼계탕을 떠주며 말했다.“아침에 내가 말해뒀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먹어요. 그러고 나서 나랑 같이 회사 가요. 아직 시간 많아요.”“그래요.”식사를 마친 뒤, 소민아는 방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에도 신이랑의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회사 지하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녀는 두말없이 기성은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밖에 다다른 뒤 잠시 고민하고는 똑똑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지금 비서팀에는 직원이 몇 명 남아 있지 않았다. 대표님이 결혼식 기념으로 직원들에게 휴가를 준 것이다.소민아가 들어간 뒤에야 기성은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한동안 그녀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내 전화 왜 안 받았어요?”“배터리가 없었어요. 밤에 이랑 씨가 충전해줘서 그나마 빨리 확인할 수 있었어요.”그 말에 기성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리를 떨구고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같이 있었어요?”소민아가 대답했다.“그건 제 사생활이에요. 기 비서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잖아요? 기 비서님, 무슨 일로 절 부르신 거예요?”“대표님은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해 중환자실에 계세요. 내가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거기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민아 씨밖에 없어요.”“하지만 전 송 부대표님의 비서예요.”기성은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이제부턴 아니에요. 송 부대표님한테는 내가 얘기할게요. 이번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은 민아 씨가 똑바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거예요. 대표님은 의식을 되찾으면 분명 민아 씨한테 그 죄를 물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조금이나마 속죄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그 말에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