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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작가: 잿빛은하수
은하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돌아섰다.

정후를 마주 보는 눈빛이 단단하게 맺혔다.

“방금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면, 당신 조건... 받아들일게.”

그 시각, 회의실 밖.

시우는 계속 시계를 보고 있었다. 손목시계 유리 위로 반사된 조명이 그의 얼굴에 은은하게 번지며, 서늘한 분위기를 더했다.

‘벌써 15분째야... 뭐라도 얘기 좀 해줬으면.’

조금씩 자리에서 들썩이던 순간, 문이 열리며 은하가 나왔다.

“사장님.”

시우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은하의 팔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손을 들었다.

하지만 바로 뒤에서 따라 나온 정후를 보고, 그 손을 허공에서 멈췄다.

정후는 눈에 띄지 않게 눈썹을 찌푸렸고, 그 시선을 감지한 시우는 정후와 눈이 마주쳤다.

정후의 목소리는 낮지만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루시아르’ 직원들은 상하 관계 교육을 안 하나 봐. 지나치게 자유롭네.”

‘비꼬는 거네.’

시우는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유 대표님, 혹시 너무 많은 걸 간섭하시는 거 아닌가요?”

정후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은하에게 옮겼다.

“남 사장, 이 정도면 내가 뭐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은하는 두 사람 사이에 도는 싸늘한 분위기를 느끼며 속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시우 씨는 저런 식으로 감정 드러내는 사람 아닌데...’

‘유정후랑 무슨 일 있었던 건가?’

곧 은하는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조 팀장님. ‘루시아르’와 NW그룹의 협업은 일단 합의됐어요. 이후 세부 조율은 양 비서님과 직접 진행해 주세요. 남은 건 실무니까 두 분이 잘 조율하길 바랍니다.”

시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현준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명함을 주고받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정후는 은하와 시우를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은하와 시우가 나란히 들어섰다.

정후는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저렇게 붙어 있는 거, 보기 싫은데.’

문이 닫히려는 찰나, 정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7시. 네가 한 말... 잊지 마.”

시우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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