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녀의 복수는 우아하게

회귀녀의 복수는 우아하게

By:  잿빛은하수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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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직전, 남편과 아들에게 버림받고 정신병원에 갇혔던 날로 회귀했다. 그 순간, 남은하는 완전히 깨달았다. ‘사랑도, 관심도 주지 않는 남편과 아들이 뭐가 아쉬워?’ 남편? 필요 없다. 아들? 쓰레기 같은 유전자면 필요 없다. 이혼도, 절연도, 세상 모두가 찬성했다. 하지만 딱 한 명, 불륜녀만 반대 중. “언니! 생일날 남편이랑 조카를 좀 빌린 것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해요?” “언니는 그렇게 좋은 남편과 아들을 뒀으니, 복을 좀 나눠야죠!” 은하는 웃으며 말했다. “그 복, 쓰레기 처리장인 너나 가져.” 그리고 바로... 뒤도 안 돌아보고 이혼. 인연도 정리. 사업은 대박. 남자는 줄을 서시오! 수년 후, 업계 최고 디자이너가 된 은하. 인터뷰 중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 대표님이 남은하 씨 전남편이셨다고 들었는데요, 요즘도 연락하시나요?” 은하는 우아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한데요, 저 과부예요. 외동이고요.” 방송을 보던 전남편과 그의 아들이 경악하는 순간, 카메라를 향해 다시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아, 저 결혼했어요. 지금은 딸 가진 예비 엄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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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빨리 여기에 사인해.”

남은하는 눈을 떴다.

유정후가 냉랭한 표정으로 서류 한 장을 그녀 앞에 밀어놓고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어차피 당신한테는 필요 없는 거잖아. 이번 Y국 연수 자격은 처제한테 넘겨.”

은하는 고개를 숙여 눈앞의 익숙한 흑백 문서를 바라봤다.

잠깐 멍해진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난... 정말로 회귀한 거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정후는 은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침묵에 짜증이 난 듯 말했다.

“이번 연수는 Y국에서 반년이나 걸려. 석진이는 아직 어려. 당신까지 가버리면 애는 어떻게 해?”

‘석진...’

유석진은 은하와 정후 사이의 아이고, 올해 겨우 여섯 살이었다.

은하의 시선이 천천히 정후의 얼굴로 향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냉소적이고 차가웠다.

“석진이 당신 아들이기도 하잖아요.”

정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 무슨 뜻이야?”

은하는 담담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정후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얼굴을 굳혔다.

“우린 결혼한 지 7년이야. 굳이 석진을 들먹이며 협박하지 마. 당신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그래, 난 항상 참아왔지. 당신이 원하는 착한 아내 역할을 하느라.’

“정후 씨.”

은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눈엔 이제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고, 오직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 이혼해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은하는 온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그동안 날 짓눌러오던 족쇄가, 이제야 풀린 것 같아.’

정후는 불쾌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장난하지 마.”

“내가 장난치는 것처럼 보여요?”

은하는 되물었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진지했던 적, 한 번도 없었어요.”

정후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밀고 당기기 같은 유치한 수는 나한텐 안 통해. 이건 이미 결정된 일이야. 더 이상 떼쓰지 마.”

정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서 코트를 집어 들었다.

“오늘 밤엔 약속이 있어서 집에 안 들어올 거야.”

그 말만 남기고, 정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은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늘 이런 식이지. 나를 무시하고, 나를 피하고, 나를 투명 인간처럼 대하고.’

방으로 돌아간 은하가 핸드폰을 꺼내 변호사에게 상담을 요청하려던 순간, 화면에 알림 하나가 툭 떠올랐다.

남채원의 SNS 게시물이었다.

[이 나이에 누군가 나의 소소한 소원을 들어줄 줄은 몰랐어요! 관람차에서 보는 야경, 너무 예뻐요! 특별히 고마운 두 왕자님 덕분이에요.]

글 아래엔 아홉 장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채원이 관람차 안에서 한 손엔 석진을 안고, 다른 손으론 정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카메라를 향해 달콤하게, 세상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채원은 댓글로 직접 은하를 태그하며 적었다.

[언니! 언니의 보물 같은 아들이랑 남편 잠깐 빌렸어요! 곧 돌려줄게요! 화내지 말기!]

은하는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씁쓸함을 꾹 눌러 참았다.

‘유정후 때문이 아니야...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인간인 건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석진아, 내 아들... 왜...’

은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석진이 다섯 살 생일 잔치에서,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소원을 빌던 순간을.

그날 은하는 환하게 웃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무슨 소원 빌었어? 엄마가 들어줄게.”

석진은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채원 이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

그 순간, 은하의 심장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멈춰버렸다. 손끝이 저리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석진아, 엄마가 너를 어떻게 낳았는데... 난산 끝에 대출혈까지...’

‘내 목숨 절반을 바쳐서, 너를 내 몸에서 뜯겨내듯 낳았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석진이 입에 달고 사는 건, 언제나 ‘아빠’였다.

석진의 눈에 아빠는 늘 가족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이었다. 밥을 해주고, 함께 놀아주고, 아픈 밤을 곁에서 지새운 건 언제나 은하였는데도 말이다.

“내가 곁에 있던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었나...?”

은하가 항상 스스로 물었다.

전생에서 마지막, 은하는 정신병원에 갇혔고, 석진은 딱 한 번 면회를 왔다.

두꺼운 방탄 유리너머로 보인 석진의 얼굴엔 어린아이답지 않은 분노와 실망이 가득했다.

“엄마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이모를 그렇게 모함하다니... 내가 이런 나쁜 엄마를 뒀다니, 정말 창피해! 이모한테 사과 안 하면, 아빠한테 말해서 평생 못 나오게 할 거야!”

은하는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는 눈빛을 마주하자,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석진이 말한 ‘모함’은 전부 채원이 짠 자작극이었다.

채원은 일부러 불량배들을 동원해 자신을 위협하게 하고, 그 일을 은하가 사주한 것처럼 몰아갔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들여다봤다면, 얼마나 허술한 연출인지 금방 알았을 텐데...

하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은하가 뭐라고 말하든 돌아오는 건 일방적인 비난뿐이었다.

사람들은 은하를 시기심에 눈이 먼 여자, 본래부터 악한 여자라고 몰아세웠다.

“처음부터 저런 애는 데려오지 말았어야 해.”

그 말들 속에서, 마지막 결정타는 은하 부모님의 한마디가 되었다.

“아빠, 엄마, 난 언니를 원망하지 않아요. 언니가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해졌나 봐요. 일단 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한마디가 은하의 인생을 끝내버렸다.

너무도 가볍고, 너무도 잔혹하게.

핸드폰의 진동이 현실로 은하를 끌어당겼다.

그녀가 화면을 보니, 변호사에게서 도착한 메시지였다.

[자녀가 만 6세 이상일 경우, 우리나라 법률상 일정한 자율 판단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양육권 다툼에서 아이의 의사가 중요하게 반영됩니다. 되도록 아이와 먼저 대화를 나눠보시길 권합니다.]

은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눈동자엔 서늘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천천히 메시지에 답장을 쳐내려 갔다.

[필요 없습니다. 양육권 원하지 않습니다.]

‘개를 키워도 은혜를 안다는데...’

‘나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바쳤지만...’

‘단 한 줌의 존중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렇다면 이젠... 남편도, 아들도... 다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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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빨리 여기에 사인해.”남은하는 눈을 떴다. 유정후가 냉랭한 표정으로 서류 한 장을 그녀 앞에 밀어놓고 있었다.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어차피 당신한테는 필요 없는 거잖아. 이번 Y국 연수 자격은 처제한테 넘겨.”은하는 고개를 숙여 눈앞의 익숙한 흑백 문서를 바라봤다.잠깐 멍해진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난... 정말로 회귀한 거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정후는 은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침묵에 짜증이 난 듯 말했다.“이번 연수는 Y국에서 반년이나 걸려. 석진이는 아직 어려. 당신까지 가버리면 애는 어떻게 해?”‘석진...’유석진은 은하와 정후 사이의 아이고, 올해 겨우 여섯 살이었다.은하의 시선이 천천히 정후의 얼굴로 향했다.입에서 나온 말은 냉소적이고 차가웠다.“석진이 당신 아들이기도 하잖아요.”정후는 인상을 찌푸렸다.“그 말 무슨 뜻이야?”은하는 담담하게 말했다.“말 그대로예요.”정후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얼굴을 굳혔다.“우린 결혼한 지 7년이야. 굳이 석진을 들먹이며 협박하지 마. 당신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그래, 난 항상 참아왔지. 당신이 원하는 착한 아내 역할을 하느라.’“정후 씨.”은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눈엔 이제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고, 오직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다.“우리, 이혼해요.”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은하는 온몸이 가볍게 느껴졌다.‘마치 그동안 날 짓눌러오던 족쇄가, 이제야 풀린 것 같아.’정후는 불쾌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장난하지 마.”“내가 장난치는 것처럼 보여요?”은하는 되물었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이렇게까지 진지했던 적, 한 번도 없었어요.”정후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밀고 당기기 같은 유치한 수는 나한텐 안 통해. 이건 이미 결정된 일이야. 더 이상 떼쓰지 마.”정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서 코트를 집어 들었다.“오늘 밤엔 약속이 있어서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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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다음 날, 은하는 약속된 로펌을 찾아 변호사와 면담했다.그리고 반나절을 꼬박 들여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양육권은 포기하고, 위자료로 60억 원.이 정도면 은하도 깨끗하게, 아주 말끔하게 떠날 수 있었다.‘60억... 유정후한테는 그리 큰돈도 아니야.’‘결혼 7년 동안 내가 감당한 것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받아야 해.’은하가 합의서를 가방안에 넣은 채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현관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모, 이모!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배우고 싶어!”석진은 채원 품에 파묻히듯 안겨 있었고,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이모는 진짜 멋져! 마술도 할 줄 알고! 우리 엄마는 아무것도 못 해!”정후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가 널 낳고 키웠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예의도 없니?”문을 밀려던 은하의 손이 잠시 멈췄다.‘저 말... 처음도 아니잖아. 남채원이랑 조금만 놀다 오면, 석진은 꼭 나랑 비교해서 깎아내리곤 했지.’처음엔 은하도 참 많이 속상했다. 열이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식히며 밤을 새웠던 날들, 미운 투정도 다 받아주며 견뎌낸 그 시간이, 고작 그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은하는 그런 석진의 말이 마음에 걸려, 조심스레 정후에게 말해본 적도 있었다.하지만 돌아온 건 무심한 한숨이었다.“애가 뭘 안다고? 당신도 왜 그런 걸로 아이한테 감정 소비를 해?”그 말에, 은하는 처음으로 ‘이 사람은 내 편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그리고 지금, 은하는 코웃음을 치며 문을 열었다.거실 한가운데, 채원이 정후의 팔을 가볍게 툭 치며 부드럽지만 나무라는 어투로 말했다.“석진이는 아직 어리잖아요! 애가 한 말 가지고 왜 그렇게 진지해요? 애가 무서워하잖아요!”그 말투, 그 표정, 그 태도.마치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정후는 근엄한 아버지, 채원은 다정한 어머니... 어쩐지... 잘 어울리긴 했다.은하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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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정후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이미 설명했잖아. 더 뭘 바라는 거야?”은하는 더는 참을 필요 없다는 듯, 짧게 잘라 말했다.“일단 이혼합의서부터 봐요. 사인 안 하면 법원 가서 법대로 처리할 거니까.”그 말만 남기고 은하는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정후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은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순간, 속이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뒤엉켰다.‘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물질적으로 부족하게 한 적도 없고...’‘친구들 앞에서도 아내 체면 세워주려고 늘 신경 썼는데... 고작 그깟 채원이 일로 이렇게까지?’‘요 며칠 집사람이 너무 이상해. 예전엔 절대 하지 않을 말들까지 서슴없이 하고... 표정도, 말투도, 눈빛도, 너무 낯설어...’정후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도, 속은 진정되지 않았다.결국 참다못해 은하를 다시 찾아 나섰다.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정후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침대는 너무나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옷장은 반쯤 열려 있었으며 그 안에서 은하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따로 자겠다는 건가?’그 순간, 정후의 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쿵!그는 입도 열지 않고, 뒤돌아서 문을 닫아버렸다.하지만 그 소리에도 은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지금 그녀는 손님방에 이불을 펴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겨우 이 정도로 자존심 상한 거야? 하지만 이번엔 절대 물러서지 않아.’ ...밤이 깊었다.은하는 겨우 잠이 들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엄마... 엄마...”문을 열자, 문 앞에는 조그마한 몸을 꼭 웅크린 석진이 있었다.창백한 얼굴,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 작게 떨리는 입술.“엄마... 배가 너무 아파... 계속 설사했어...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자겠어...”석진은 선천적으로 위장 기능이 약했다. 기름지고 짠 음식, 차갑거나 매운 음식은 물론, 조금만 자극적인 걸 먹어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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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정후는 순간 멍해졌다.은하의 감정 하나 없는 눈빛과 마주하자,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들끓었다.“그래서, 이걸로 날 협박하겠다는 거야?”정후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말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석진이 6년 동안 당신이 키웠다고,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애가 당신 없으면 안 되는 걸 아니까 이 타이밍에 이혼을 들고 나선 거잖아. 대체 무슨 꿍꿍이야?”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진짜 웃게 되는구나.’입가의 웃음을 억누르려 했지만, 이미 올라간 입꼬리를 막을 순 없었다.‘지금 이 사람과는 무슨 말을 해도, 다 소용없겠구나.’그래서 은하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맞아요. 당신 말이 다 맞아요.”정후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정말 이혼할 거라면, 석진이 양육권은 절대 못 줘. 그리고 내 허락 없인, 다시는 석진이 못 만날 거야.”그 말엔 위협이 섞여 있었다.은하가 주저하고 흔들리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맘대로 해요. 석진이는 당신 아들이잖아요.”그 말에 정후의 눈빛이 단단히 얼어붙었다.그리고 은하의 얼굴을 한 치도 놓치지 않고 응시했다.그 안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낌새라도 찾고 싶었다.하지만, 끝까지 은하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차분하고, 담담하고, 너무나도 낯설 만큼 차가웠다.‘이 여자는... 진심으로, 아무 감정이 없는 거야...?’정후는 알 수 없는 불쾌감에 가슴이 조여오는 듯했다.그가 말을 더 이어가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채원에서 온 전화였다.정후는 화면을 보자마자 짜증을 눌렀고, 전화를 받았다.[형부!]채원의 목소리는 밝고 가벼웠다.[석진이 깼어요. 형부 보고 싶다고 해서요. 병원에 잠깐 와주실 수 있어요?]정후는 감정을 억누르며 짧게 대답했다.“지금 갈게.”그렇게 말하곤, 은하를 다시 보지도 않은 채 돌아서 문을 열고 나갔다.‘그래, 당신은 늘 그랬지.’‘상대 눈에 어떻게 보이든, 본인 기분이 우선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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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정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돌아가라고 했잖아.”채원은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석진이 아직 아픈데, 제가 어떻게 그냥 가요?”채원은 가져온 보온 도시락을 병상 머리맡에 놓고, 직접 죽을 덜어냈다.“형부, 석진이가 죽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집에 가서 특별히 정성껏 끓였어요. 석진아, 얼른 먹어봐. 따뜻할 때가 제일 맛있어.”죽은 찹쌀에 대추를 넣어 푹 곤 것이었고, 향도 좋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석진은 원래 입맛이 없었지만, 채원의 다정한 말투에 못 이겨 한 숟갈 떠넣었다.그리고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엄마가 끓여준 죽이 더 맛있는데...’“형부.”채원이 부드럽게 말을 걸며 정후의 생각을 끊었다.“언니도 그냥 잠깐 화난 거예요. 형부가 가서 말만 잘하면, 아마 풀릴 거예요.”채원은 애써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저도 언니한테 사과하려고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아예 받지도 않고, 만나주지도 않더라고요...”그 말에 정후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정후는 조용히, 낮게 말했다.“굳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사람, 스스로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이번만큼은... 정후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만약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이면, 은하는 앞으로도 아이를 볼모로 마음대로 휘두를 게 분명했다.‘감정은 이해하지만, 원칙까지 무너뜨릴 순 없어.’...다음 날 아침.은하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서 손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성예그룹 본사로 향했다.성예그룹은 그녀가 출전했던 디자인 공모전의 주최사였다.이번 공모전은 해외 연수 프로젝트와 연계되어 있어, 성예그룹이 수상자의 해외 연수에 드는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구조였다. 은하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정말 큰 노력을 기울였다.‘나는 경력도 짧고, 스펙도 부족해.’‘결국, 실력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아.’그리하여 그녀는 역대 수상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밤새워 분석했고, 시장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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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채원은 은하의 말에 얼굴이 살짝 굳었다.‘남은하...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봐.’은하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채원의 속이 타들어 갔다.“언니, 이번 공모전에서 언니가 좋은 결과를 낸 건 맞아요. 근데 언니도 알잖아요. 그 성적, 온전히 언니 실력만으로 얻은 건 아니었어요.”“유씨 가문의 배경이 있었고, 형부가 도와준 부분도 분명히 있었잖아요. 형부가 이렇게 배려해 주는 것도, 결국 언니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그 마음마저 그렇게 짓밟을 필요는 없잖아요.”은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채원을 바라봤다.그 시선엔 숨김없는 냉소가 담겨 있었다.“나한테 진 사람은 내 실력을 운운할 자격이 없어. 그리고 두 사람이 말하는 그 ‘배려’? 필요 없어. 미안한테 도로 가져가.” 채원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정후는 지금 이 상황이 영 못마땅했다. 눈빛에 분명한 불쾌함이 담겼다.“지금은 우리 둘 문제를 이야기하는 중이야. 괜히 화살을 딴 데로 돌리지 마.”은하는 가볍게 웃었다.그 웃음은 차갑고 비꼬는 듯했다.“그럼 하나만 물을게요. 우리 두 사람 얘기라면, 굳이 내 동생을 끼워 넣은 이유는 뭐예요? 아, 이제는 떼놓고는 못 움직이는 사이가 된 거예요?” 은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덧붙였다.“그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왜 아직도 이혼합의서에 사인 안 해요?” 채원은 말없이 정후를 바라봤다. 표정엔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하지만 정후는 그녀를 외면했다.대신, 은하를 향한 시선에 살짝 변화가 스쳤다.‘결국, 아직도... 내가 다른 여자와 가까워진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거네.’“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처제는 당신 여동생이고, 난 그 관계 이상은 넘은 적 없다고. 괜히 혼자 확대 해석하지 마. 당신만 정신 차리면, 여전히 당신은 내 아내야. 다만... 선을 지켜야지.”이 말들...은하가 가장 혐오하는 말이었다.선을 지켜라.적당히 해라.그 정도에서 멈춰라.‘그동안 내가 얼마나 선을 지켜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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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채원은 은하의 단호한 말에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언니는 진짜... 후훗...”그리고 일부러 말을 흐리며 은하의 반응을 기다렸다.‘봐, 또 욱하겠지? 예전처럼 나서지도 못하고 입 꾹 다물겠지.’하지만, 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흥미도 없는 눈빛으로 채원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뭐야, 왜 아무 반응이 없어?’채원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곧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아, 언니. 이 가방 진짜 예쁘지 않아요? 경울시에선 여기에만 들어온 한정판이에요. 형부 어머님 선물로 딱 일 것 같은데, 언니 생각은 어때요?” 은하는 대충 쓱 보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별로야.”채원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잠시 입꼬리를 다물었다가, 마치 기회를 잡은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언니, 그건 언니가 좀 가볍게 본 거예요. 이 가방 디자인, 작년에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 받은 소피 디자이너님 작품을 오마주한 거예요.”“겉에 들어간 이 패턴도 그냥 무늬가 아니고, 북두칠성 별자리 구조를 정밀하게 배치한 거라니까요? 이런 디테일, 아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은하는 그 말을 들으며, 표정이 잠시 흐트러졌다.‘이건, 내가 한 건데?’채원은 은하의 미세한 반응을 자기 말에 당한 거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더 우쭐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요즘 이런 상징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브랜드에 녹이는 게 트렌드예요. 언니도 알면 좋을 것 같아서요.”‘진짜... 들을수록 민망하네.’은하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네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 디자인에 네가 말한 고상한 의미 같은 건 없어. 그건 단순하고 직관적인 의도로 만든 거야. 퀄리티를 지키면서도, 소비자가 자신의 매력을 쉽게 인식하게끔. 그게 전부야.” 채원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언니... 언니가 요즘 ‘전업주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근데 그렇게 아무 근거 없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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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죄송해요. 오늘은 원래 안 오려고 했는데, 꼭 전해드려야 할 말이 있어서요.”은하는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무심하게 말했다. 말투는 담담했고, 태도는 느긋하기 그지없었다.그 모습을 본 한때 은하의 아부를 즐기던 유씨 가문의 어른들은 하나같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내 날이 선 말들이 쏟아졌다.“이게 무슨 꼴이야? 시어머니 생신인데, 늦게 오는 것도 모자라서 빈손으로 와? 며느리가 이래도 되는 거냐?”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은하를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내가 어머니 선물 준비하라고 했잖아. 왜 빈손이야?”석진은 은하를 보고 잠시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하지만 모두가 은하를 나무라자, 금세 표정이 굳었다. 어린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단호한 말이 튀어나왔다.“아빠 말이 맞아요. 엄마는 게을러서 선물 안 산 거잖아요. 진짜 예의 없어요! 예의 없는 사람은 사과해야 해요!” 은하는 부자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아까 사과했잖아요? 제가 며느리로서 실격인지 아닌지는, 제 양심에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상관없어요.” ‘그래, 예전엔 인정받고 싶어서 별의별 짓 다 했지.’‘그래봤자 결국엔 집안일 시키기 좋은 공짜 가사도우미 취급이었잖아.’한때 유씨 본가에 들어가기 위해 정후의 친척들에게 온갖 아양과 노력을 쏟았던 은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건 ‘편한 대접'이 아니라 ‘편한 부림'이었다.이제, 은하는 더 이상 유씨 가문의 사람들을 섬기지 않기로 했다.은하의 태도에 어른들은 더 격앙됐다.“정후야, 네 마누라 입만 산 거 봐라.”“그러게 말이야. 어른들 앞에서 저게 무슨 태도야?”“됐어, 됐어. 사과 같은 거 안 받아. 그런 거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무슨...”“...”정후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했다.“늦은 것도 잘못인데, 어른들 앞에선 사과해야지.”그러자 은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끝을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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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은하는 문자를 보고 순간 정후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자세히 보니, 번호 끝자리 6666.‘전 시어머니?’그제야 그녀는 알아챘다. 문자 보낸 사람은 진양숙이었다.은하는 반사적으로 거절하려다,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늘 나를 ‘우리 정후한테 안 어울리는 여자’라며 무시하던 사람인데...’‘설마 이제 와서 날 ‘구제’라도 하겠다는 건가?’거절 문자를 지운 은하는, 곧장 한 글자를 보내고는 핸드폰을 내려놨다.[네.]10분 뒤.은하는 블랙 롱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우아하게 틀어 올렸다.차분한 발걸음으로 UM그룹 본사 1층 카페에 들어섰다.예전 은하의 이미지는 ‘늘 정후와 석진 뒤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늘 양보하고, 말 없고, 어딘가 수수했던 모습 때문에...유씨 가문의 사람들조차 그녀를 ‘평범하고 칙칙한 며느리’로 여겼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뽐내며 카페로 들어선 은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속삭였다.“어디서 저런 사람이 나타났지?”진양숙도 마찬가지였다. 은하의 생기가 도는 얼굴을 보고는, 손에 든 커피잔이 잠시 멈췄다.은하가 미소 지으며 건너편에 앉았다.“또 뵙네요.”진양숙은 눈빛만으로 은하를 관찰하듯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알겠지?”은하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말끝을 비꼬듯 말했다.“혹시 저랑 정후 씨 이혼 문제 때문인가요?”진양숙은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목소리는 차분하고 점잖았다.“네가 우리 정후한테 시집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를 썼는지... 나는 다 알아. 석진이도 어느덧 컸고, 정후도 외국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았고...”“이제야 좋은 날 시작되려는 참인데, 왜 지금 이혼하겠다고 나서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여전히 날 그렇게 본다 이거지? 내가 계획적으로 유씨 가문에 들어온 여자라고?’‘내 노력은 전부 계산이라 믿고, 진심은 애초에 없었다고 보는 거네.’은하는 그 말속에 배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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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해외 연수... 제가 합격했다고요?”은하는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다시 한번 확인하듯 되물었다.[네, 남은하 씨. 제출하신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매우 우수해서요. 여러 차례 심사를 거쳐 최종 연수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지금부터 3일 내로 관련 서류들을 준비하셔서, 안내해 드릴 메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행정 절차가 끝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유정후가 어떻게든 막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합격할 줄 몰랐어!’혹시라도 준비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까 싶어, 은하는 상대방에게 자료 목록을 정리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확인 메일과 첨부 파일이 도착한 후에야, 은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성예그룹이... 날 밀어줬다고?’ ‘설마 유정후가 막지 못했나? 아니면 일부러 가만히 두는 건가?’들뜬 마음을 눌러가며, 은하는 프린트된 체크리스트를 들고 집 안 서류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런데... 가장 중요한 여권이 없었다.잠시 기억을 더듬던 은하는, 작년 이맘때 정후와 해외 휴양지를 예약해 뒀다가 결국 함께 가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그때 두 사람 여권을 따로 챙겨둔다고 했었지.’‘그래서 내가 안방 서랍에 넣어놨었는데...’은하는 결국 여권을 찾기 위해 정후의 별장으로 향했다.하지만 그녀가 현관문을 통과한 직후, 그 소식은 곧장 집사에 의해 정후에게 전달됐다.정후는 전화를 끊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정리한 뒤, 비서에게 말했다.“차 준비해. 석진이 데리러 간다.”...은하는 그런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평소처럼 익숙한 발걸음으로 안방으로 향한 그녀는, 서랍을 열어 여권을 꺼냈다.그러나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하던 순간, 집사가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그녀 앞을 막아섰다.“사모님, 잠시만요. 이 집의 모든 물품은 대표님의 소유입니다. 대표님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방에 들어가 물건을 뒤지신 건, 저희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은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반발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녀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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