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28화

Author: 진헤이
차로 돌아온 유영은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부드러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우울한 분위기가 차 안에서 맴돌았다.

조민정은 저택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간 맞춰서 유영을 데리러 왔다. 하지만 한지음이 안에서 나온 것을 봤을 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유영에게 생수 한병을 건넸다.

“물이라도 좀 마셔요.”

“고마워요.”

시원한 물줄기가 목덜미를 적시자 갑갑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어졌다.

“민정 씨.”

“네.”

“결혼의 의미는 뭘까요?”

유영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강이한과 7년 연애하는 동안에도 진영숙은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적어도 가문이라는 족쇄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지만 직접적으로 나서서 그녀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와 결혼한 뒤로 모든 게 변했다. 시댁의 갑질이 시작되었고 유영은 그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쪽이었다.

조민정이 말했다.

“각자의 선택이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따르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영이 말이 없자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유영 씨가 그때 사랑이 아닌 일을 선택했더라면 아마 그래도 많은 난관을 겪었을 겁니다. 고민의 종류가 다를 뿐이죠.”

고민이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이 가져다준 고민이 없어도 일을 하면서도 각종 고민을 겪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으로 인해 따르는 고민이 있다.

유영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오늘 그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은 속시원했어요.”

그때 그녀가 느꼈던 감정은 드디어 무거운 굴레를 벗어던진 느낌이었다.

드디어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다가는 말라 죽을 것 같았다.

마치 지난 생처럼….

지난 생에는 그녀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손에 죽어갈 때 그토록 절망했다.

고용인들은 소방차도 불러주지 않았다.

고작 불륜녀 때문에 그녀는 불길 속에서 죽어가야 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9화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이미지의 배준석과는 다르게 박태준은 강이한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다.혼잡한 술집 안에서 그들의 존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왜지?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그만해, 형. 핸드폰 여기 내려놓고 술도 그만 마셔!”배준석이 강이한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여기 와서 앉은 순간부터 강이한은 유영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상대가 무시하는데도 그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그들도 오늘 노부인 생신 잔치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그거 알아? 내가 그 여자랑 결혼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과거 강이한은 유영과 결혼하기 위해 가문의 모든 압력을 이겨내야 했다.지금은 그가 세강의 대표로 부임했지만 그때는 손에 쥔 지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는 유영을 위해 친척들의 위협과 싸워야 했다.심지어 그의 어머니조차 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물론 유영과 결혼한 뒤로 그는 회사에서 피바람을 일으켜서 빼앗겼던 것들을 전부 되찾아왔다.하지만 그녀와 결혼하기 전에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족들에게 양보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그래. 형수님이 잘못했네!”배준석은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그러니까 조건이 서로 비슷한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해준 형은 어떻게 생각해?”“그만들 해.”박해준은 배준석과 생각이 전혀 달랐다.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느 한쪽만 잘못했다고 볼 수 없었다.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짜증만 내지 말고 제수씨가 왜 꼭 이혼을 선택해야 했는지, 네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생각해 봐.”그들은 유영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유영이 이해심 많고 온순한 성격이라는 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런 사람이 갑자기 단호하게 이혼을 결심했다면 강이한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강이한이 냉소를 지으며 질문에 대답했다.“그 여자 바람 났어.”둘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바람은 부부 사이에 신뢰를 깨뜨린 엄중한 문제였다.그렇듯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30화

    박해준의 질문에 강이한은 침묵했다.그 순간에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 여자는 친척이 없어. 고아야.”그들이 결혼한 뒤로 그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가족 같은 남편을 그녀가 버린 것이다.그를 떠나면 그녀의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알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지? 조부모도 그 충격으로 아무런 유언도 못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하지만 조부모 외에 다른 친척이 있을 수도 있잖아.”강이한이 말했다.“친척이었으면 나한테 얘기했겠지.”이 일이 있기 전에 그들은 서로에게 숨기는 비밀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우울감이 찾아왔다. 대체 언제부터 서로가 마음을 닫아버린 걸까?“그건 아무도 몰라.”배준석이 말했다.그는 유영이 강이한 같은 남편을 두고 아빠뻘 되는 남자랑 바람이 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강이한도 그의 말을 듣고 조금씩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유영은 가족들이 그녀가 어릴 때 다 돌아가셨다고 말했지만 방계 친척에 대해서는 말을 꺼낸 적 없었다.만약 그 남자가 유영의 먼 친척이라면?만약 그렇다면….그 순간 강이한의 마음에 다시 희망이 샘솟았다. 정국진이 그녀의 먼 친척이라면 그녀는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는 얘기였다.그는 눈을 질끈 감고 쓴 술을 삼켰다.그의 앞에는 이미 비워진 술병들이 하나씩 늘어갔다.그날 밤, 유영을 제외하고 모두가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한지음은 병원에 돌아오자마자 진영숙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네 처지는 나도 안 됐다고 생각하지만 내 아들은 건드리지 마. 자꾸 주제도 모르고 선을 넘으면 지옥이 뭔지 맛보게 해줄 거야.”강요이자 협박이었다.진영숙은 오늘 한지음이 연회에 나타났기에 유영이 연회장에서 그 난리를 부렸다고 생각했다.그 소란으로 세강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다.그녀는 며느리도 싫지만 한지음을 더 혐오했다.“사모님, 저랑 태한 씨는….”“닥쳐! 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31화

    그녀는 어렴풋이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수님, 이한 형이 술 취해서 형수님 이름만 불러요. 혹시 지금 천상의 소리로 와주실 수 있나요?”수화기 너머로 배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졌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전화 잘못 거셨어요.”그리고 상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이한이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이 남자에게 남은 거라고는 깊은 실망감과 배신감밖에 없었다.지난 생에 죽음까지 경험한 그녀에게 그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그가 술 취해서 객사했다고 해도 절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한편, 배준석과 박해준은 강이한을 부축해서 차에 올렸다. 유영과 통화를 마친 배준석은 착잡한 얼굴을 하고 밖에서 바람을 맞았다.“왜 그래?”옆에 있던 박해준이 물었다.“잘못 걸었다고 끊어 버리는데?”배준석은 그제야 둘 사이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게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분명 이유를 제공한 사람은 강이한 쪽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유영이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나올 이유가 없었다.여자가 한번 돌아서면 남자보다도 더 차갑다더니 유영이 전형적인 예였다.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바로 끊어버리다니.그래도 10년을 함께한 정이 있는데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게다가 그는 강이한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것이었다.잘못 걸었을 리가 없었다.“일단은 홍문동으로 데려가자.”박태준이 말했다.부부 사이의 일에 대해 방관자인 그들이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배준석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둘은 차를 운전해서 강이한을 홍문동까지 데려다주었다. 새로 바뀐 고용인들은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강이한을 보고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강이한을 부축해서 침실로 데려갔다.강이한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한지음의 전화였지만 한 번도 받지 않았다.배준석도 그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32화

    그 말을 들은 강이한은 순식간에 머리가 멍해졌다.응급실이라니!자세히 물어볼 여유도 없이 그는 재빨리 침대를 내려 외투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아래층에 있던 집사는 옷도 안 갈아입고 내려오는 그를 보고 다가가려 했지만 이미 강이한은 냉기를 풀풀 풍기며 밖으로 나가버렸다.강이한에 비해 유영은 간만에 긴 휴식을 취했다. 비록 지난밤에 배준석의 전화 때문에 한번 깨기는 했지만 전화를 끊고는 바로 잠들었다.그녀는 아침 일찍 회사로 나왔다.조민정이 업무 일정을 그녀에게 보고하고 있었다.“박 대표님께서 오후에 동교 개발 현장에 방문할 예정이에요. 시간 나면 같이 가보는 게 좋겠어요.”VIP고객이니만큼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히 가야죠.”조민정이 말하지 않아도 원래 같이 가려고 했었다.조민정이 계속해서 말했다.“새로 들어온 의뢰는 이미 팀원들에게 나눠줬어요. 이번에는 유영 씨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자신감에 찬 말투였다.유영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경영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디자인팀원을 고용할 때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다들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이 출중한 엘리트들이었기에 간단한 의뢰에서 문제가 생길 수 없었다.“알겠어요.”유영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조민정이 말했다.“인력이 부족해서 채용 공지를 냈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뽑을게요.”“그래요.”하루아침에 스튜디오가 이렇게 바빠질 줄은 몰랐다.전에 직장 경험이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보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그래도 정국진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서 의뢰가 끊길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었다.“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나요?”“네. 양 변호사님 만나기로 했어요.”유영이 말했다.강이한이 이혼을 해주겠다고 공표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절차를 진행하고 싶었다.오늘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세강그룹에 방문할 예정이었다.합의가 어려운 부분은 다시 협상할 수도 있고 오늘은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33화

    조형욱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사모님께서는 현재 강성건설과 협업 관계가 있으니….”그가 난감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공적으로는 유영도 강성건설과 손을 잡은 사람이니 경쟁사인 세강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가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였다.유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접대실에서 기다리죠.”어디에서 기다리든 상관은 없었다.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강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히 기다리면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잠시 후, 그가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나 지금 당신 사무실이야.”“거긴 왜?”강이한은 유영이 좋은 마음으로 사무실까지 찾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이혼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유영이 말했다.“어제 사람들 앞에서 나랑 이혼하겠다고 공표했잖아. 서류에 사인 받으러 왔어. 그래야 당신도 자유로워질 거 아니야.”“자유는 당신이 나보다 더 원하고 있는 것 같은데?”“그렇게 말해도 난 할 말 없어.”“뭐?”강이한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얼마나 그가 싫었으면 아침부터 이혼 서류를 들고 찾아왔을까?그런 생각이 들자 강이한은 가슴 한구석이 쓰리고 아팠다.“그래, 알았어.”한참이 지나 남자가 말했다.수화기 너머로도 그의 분노와 실망이 전해지고 있었다.유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피어났다.“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지금은 못 돌아가.”유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병원으로 와. 사인해 줄 테니까.”남자가 차갑게 말했다.유영은 병원 얘기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병원이라는 곳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강이한이 그녀를 병원으로 부를 때마다 깊은 공포마저 느꼈다.“그럼 언제 돌아올 거야?”유영이 물었다.어차피 서류에 사인하는 건 어디서나 가능했기에 굳이 병원까지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남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왜? 무서워?”“자극해도 소용없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34화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과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여자가 안타까웠다.망막을 이혼 조건으로 내걸다니! 그건 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맞은 유영이 안쓰러웠다.그 시각, 강이한의 본가에서도 싸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 진영숙은 유경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제 일로 사과하려고 전화한 건데, 전화를 받은 유경원의 모친은 돌려서 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한지음 이 나쁜 년이!”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한지음의 등장이 유경원 일가를 불쾌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직 이혼도 하지 않은 강이한이 와이프와 불륜녀를 둘 다 데리고 가족 행사에 참석한 일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세강의 세력이 워낙 막강해서 어떻게든 그들과 연을 맺고 싶어하는 가문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아무리 재벌가가 정략결혼을 중시한다지만 딸을 귀하게 키운 집안이라면 당연히 이런 가문에 딸을 시집 보내는 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진영숙은 유경원의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청하시에서 세강과 비등비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유경원 본인의 조건도 재벌가 며느리가 되기에 완벽했다.그런데 전에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됐어, 엄마. 화 풀어. 저쪽 집안도 너무하네!”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강서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진영숙을 위로하는 척했다.진영숙은 화가 치밀었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그쪽에서 잘못한 게 아니야. 다 그 한지음 때문이지!”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유경원 모친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귀하게 키운 딸을 사생활이 문란한 남자에게 시집 보내기 싫을 것이다.좋은 남편을 만나야 딸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건 모든 엄마들이 아는 사실이었다.아들인 강이한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대체 한지음 걔를 왜 그렇게 신경 써주는 거야? 그래 봐야 비서실 직원이었을 뿐이잖아. 굳이 이한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35화

    진영숙은 절대 한지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그녀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안 되겠다. 병원에 다녀와야겠어.”“같이 가, 엄마.”강서희의 두 눈이 간사하게 빛났다.이 판에 한지음을 끌어들인 건 강서희였다. 그랬기에 한지음의 생각에 대해 그녀보다 잘아는 사람은 없었다.이제 유영을 해결했으니 한지음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영숙은 고개를 저었다.“넌 집에 있어. 네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야.”싸우러 가는 현장에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키운 양녀를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아주 오래 전부터 진영숙은 나름 최선을 다해 강서희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알았어.”고집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강서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영숙이 떠난 뒤, 강서희의 입가에 진한 비웃음이 드리웠다.뒤에서 아줌마가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아가씨, 디저트를 새로 만들었는데 드셔보실래요?”“좋죠.”강서희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이 집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강서희였다. 고용인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버럭 화를 내던 그녀였다.하지만 왕숙은 달랐다. 진영숙이 가장 신임하는 고용인이었기에 강서희는 왕숙에게만큼은 예의를 갖춰서 대했다.“맛있네요.”“맛있으면 많이 드세요. 여기 코코넛 밀크도 있어요. 피부에도 좋다잖아요.”“고마워요, 아줌마.”“어서 들어요.”왕숙은 인자한 얼굴로 강서희를 바라보았다.한편, 유영은 씩씩거리며 스튜디오로 돌아왔다.조민정이 다가오며 물었다.“괜찮아요?”“네, 괜찮아요.”괜찮다고는 했지만 사실 속은 이미 뒤집어진 상태였다. 남자의 냉철함을 이미 경험해서 아는 그녀였지만 망막 기증 얘기를 다시 꺼냈을 때 저도 모르게 긴장되고 온몸이 떨려왔다.그 한마디로 인해 그에게 남았던 마지막 미련마저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지난 생에서 그랬듯이 결국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민정 씨.”“네, 듣고 있어요.”“강서희 사생활 좀 조사해 줘요.”만약 강이한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36화

    조민정이 나간 뒤, 유영은 사무실 전화로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강이한의 회사에서 핸드폰을 박살냈을 때 전화가 걸려와서 못 받은 것 같았다.“외삼촌.”수화기 너머로 정국진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아, 한지음 걔 좀 이상해.”“뭐가요?”“둘이 전에 만난 적 없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그 사고가 있기 전까지 유영은 한지음을 만난 적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그럼 다시 확인해 봐야겠구나.”“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유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한지음 걔 일부러 너만 물고늘어지는 것 같은데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그러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납치사건부터 시작해서 여론전, 그리고 망막 기증을 강요하는 것까지 모든 화살이 유영을 겨냥하고 있었다.“제가 그만큼 미운 거겠죠.”어제 한지음을 만났을 때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무언가 느끼는 게 있었다.그래서 일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단순히 강이한을 좋아해서 그런 거라면 이혼만 하면 끝나는 일인데 굳이 망막까지 요구할 필요는 없었어.”정국진이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전화기를 잡은 유영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정국진은 계속해서 말했다.“어쩐지 너한테 보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지난 생에서도 한지음은 끝끝내 유영을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영은 한지음의 동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에는 진짜 접점이 없었는데요.”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도 한지음이라는 인물을 만난 적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알았어. 내가 더 조사해 볼게.”정국진이 말했다.이미 어느 정도 단서는 확보한 상태였다.한지음의 의도를 알았다면 이제 그 동기를 알아볼 차례였다.얼핏 보면 남자를 두고 치정극을 벌인 것 같지만 정말 그랬다면 유영이 이혼을 선언한 순간부터 멈추어야 했다.하지만 한지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줄곧 망막 기증을 빌미로 유영에게 압력을 가

Latest chapter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3화

    위험할 거라는 그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엔데스 신우를 바라보았다.“신우 씨가 정씨 가문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않았어도...”이유영의 말끝이 흐려졌다.차는 이미 백산 별장에 도착해 있었고 이유영은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하지만 곧장 들어가지 않고 등진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지우고 싶던 기억들이 밀려왔다.강이한과 함께했던 너무나 찬란하고 아팠던 순간들 말이다.한지음 이후로 그녀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이었다.숨을 크게 들이쉬며 가슴속의 무거움을 억눌렀다. 이 밤하늘 속 별빛조차 오늘은 감당하기 힘들었다.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알고 있다면 저한테서 멀리 떨어져 계세요.”“...”그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유영은 이미 저 멀리 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작은 체구에 하이힐을 신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았지만 그녀의 등에는 증오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엔데스 신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이내 눈빛이 변했다.복잡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날카롭고 위험한 기운이었다.“민성아.”“네, 도련님.”“예전 강씨 집안에 있을 때 교양 있고 품위 있었다는 사실, 확실해?”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지금의 이유영은 '교양'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자료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조사 결과대로라면 그녀의 내면에는 아마 맹수가 숨어 있는 거라고 신우는 생각했다.겉모습은 순진해 보였지만 박연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조사 결과를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후회돼.”“뭐가요?”운전석의 윤민성이 놀라서 물었다.그가 생각한 셋째 도련님의 사전에는 '후회'라는 단어가 없었다.그렇기에 후회된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곧 엔데스 신우는 짧게 덧붙였다.“로한에게 서둘러 진행하라고 해. 난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2화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내려 했다.“놔줘요.”그러자 엔데스 신우가 조용히 말했다.“늦었어요. 제가 바래다줄게요.”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오늘 그의 차에 타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유영은 급히 대답했다.“혼자 갈 수 있어요.”예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에도 그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지금은 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남자는 손에 힘을 더 주며 이유영을 자연스럽게 차에 태웠다.“제가 말했잖아요...”“늦었어요. 여자 혼자 집에 가게 하는 건 신사의 예의가 아니죠.”“엔데스 가문에 신사가 있다고 생각하세요?”이유영은 날카롭게 받아쳤다.엔데스 가문에 대한 반감은 소은지 때문이었을 것이다.지금 눈앞의 엔데스 신우까지 더해져 이유영의 마음속 엔데스 가문 남자들은 모두 막무가내로 보였다.특히 그녀가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다섯째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엔데스 예준의 강렬한 기운은 단번에 각인되었다.“제 차가 싫다면 택시를 불러드릴게요. 그럼 좀 안심이 되겠어요?”남자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는 듯 말했다.“...”그런 굴욕적인 제안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혼자 갈 수 있어요.”시력은 되찾은 그녀는 지금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었다.결국 그녀는 남자의 차에 올랐다.차가 출발하자 남자는 조용히 서류를 꺼내 펼쳤다.좁은 공간에 정적이 흘렀고 백산 별장이 가까워질 즈음, 이유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엔데스 신우가 옆자리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엔데스 신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꼭 그 사람과 이혼해야 할까요?”“아직 마음이 있는 모양이네요.”그 말투엔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며 있었다.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아직 마음이 있냐는 그의 말을 들은 이유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1화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0화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9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8화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7화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6화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5화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