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스 신우든 종수든, 모두 이유영이 감정에 대해 완전히 냉담해져 있다는 걸 눈치챘다.마치 그 모든 것들이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일처럼 절망한 채 철저하게 벽을 쳤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청하시에서 강씨 가문의 문턱은 가장 넘기 힘든 곳입니다.”“특히 강 사모님이 유영 씨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종수는 말끝을 흐렸지만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충분히 전달되었다.강이한에게 시집간 이유영이 그동안 어떤 삶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엔데스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윤민성이 돌아왔다.엔디스 신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윤민성을 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처리했어?”“네. 강 사모님 측근 중에 눈치가 빠른 사람이 있더군요.”“떠나는 것까지 직접 확인해.”엔데스 신우는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태세였다.특히 오늘 진영숙을 본 후로 그녀가 절대 손 놓고 가만히 당할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반면 이유영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솔직히 진영숙에게 큰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알겠습니다.”윤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엔데스 신우가 여자 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윤민성과 종수가 모두 물러나고 홀로 남은 엔데스 신우는 표정이 깊고 어두웠다.머릿속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폭발하듯 떠오르며 줄곧 유지하던 차가움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졌다....이유영이 백산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여진우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심각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 이유영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채로 다가갔다. “왜그래? 무슨 일 있어?”‘혹시 진영숙의 일을 알고 있는 건가?”다시 생각해 보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지만 그때의 행동에 대해 후회는 전혀 없었다.진영숙은 이유영에게 있어서 마치 죽어 마땅한 존재였다.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 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여진우가 그녀를 바라보았
엔데스 신우는 그 말을 듣고 눈빛이 어두워졌다.“유영이가 싫다면 앞으로 그 사람들 다시는 못 마주치게 해줄게.”이유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비로소 엔데스 신우가 강제로 차에 태울 때 주변 사람들에게 진영숙과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모두 파리에서 쫓아내라고 지시했던 것이 생각났다.‘정말 쫓아낸 건가?’이렇게 강압적이고 제멋대로인 수법은 엔데스 가문의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하지만 이런 방법이 꽤 유용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유영도 고민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특히 방금의 일 이후로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돌아가면 여진우에게 부탁해서 그 사람들을 파리에서 내쫓아버리자고.지겹고 싫증 나서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고마워요.”마음만 먹으면 이유영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조치였지만 엔데스 신우가 먼저 선수를 쳤으니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다.감사 인사를 들은 엔데스 신우는 입꼬리가 올라갔다.“드디어 유영이가 예의를 차리는구나.”진영숙이 나타난 이후로 이유영은 줄곧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예의를 차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디저트랑 차 맛있네요. 잘 먹을게요.”이유영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경고도 했고 할 말도 다 했으니 이제 엔데스 신우가 어떻게 움직일지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가져갈 수 있게 더 준비해 놓을게.”“괜찮아요.”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이유영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식욕마저 사라진지 오래였다.엔데스 신우는 그녀의 우울한 모습을 바라보았다.진영숙 앞에서의 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유영아.”“네가 정씨 가문의 딸이긴 해도 모두가 널 이용하려는 건 아니야.”‘날 이용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든 이용당할 수 있는 소용돌이 속에서 이유영은 조심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파리는 마치 안개처럼 다음 순간 무엇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경계심을 풀 수 있겠는가?
이유영은 앞에 있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신우 씨가 이렇게까지 잘 사는 걸 알고 있나요?” 그 말에 숨겨진 뜻은 깊고 심오했다. 가족들조차도 모를 정도로 너무 깊었다.“지금 나를 여우라고 욕하는 거야?”‘뭐지? 설마 독심술이라도 있나?’“여우? 신우 씨는 여우보다도 더 교활한 것 같아요.” 마치 박연준처럼.박연준이 강이한을 상대로 머리를 굴렸던 그 모든 것, 이유영은 전혀 몰랐다. 배후에 이런 것들이 숨겨졌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리고 엔데스 신우.이유영의 눈에는 박연준과 마찬가지로 교활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엔데스 가문 사람들 중 그가 순진한 척한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알다시피 그들 중에는 착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엔데스 신우 역시 꽤 능력 있다는 걸 말해 준다.엔데스 신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때마침 도우미가 차와 간식을 내왔는데 아주 맛있어 보였다.이유영은 방금 밥을 먹었음에도 또 배가 고팠다.하긴, 레스토랑 입구에서 진영숙과 큰 싸움을 벌였으니 체력이 상당히 소모됐을 것이다. “먹어봐.”이유영이 움직이지 않자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됐어요!”비록 배고프긴 했지만 그녀의 방어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엔데스 신우도 이 점을 눈치채고는 한입 베어 물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함 그 자체였다.그리고 나서 남은 반 조각을 이유영의 입에 넣어 줬다.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이유영은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렸다.“독 없어.”남자는 부드럽게 웃었다.진영숙을 처리할 때의 날카로움과 위험함은 조금도 없었다. 어쩌면 이건 엔데스 가문 남자들의 일관된 수법일지도 모른다.앞뒤가 다르다는 건 아마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삼켜.”이유영이 뱉으려는 순간 엔데스 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이 묻었잖아요.”“그게 더러워?”남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스쳤고 다
진영숙은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에 잠겨 있었다. 이 모든 아픔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괴롭게 했다.결국, 시윤은 그녀를 강제로 집으로 데려갔다.별장에 도착한 시윤은 이미 사람을 보내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익숙하고 단호한 그의 태도에 진영숙의 눈엔 슬픔이 번졌다.“시윤아, 어떻게 너까지...”“사모님, 엔데스 가문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아시잖습니까. 지금은 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시윤이 이어서 말했다.“우린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특히 오늘 셋째 도련님께서 더는 우리를 보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니까요.”“하하.”진영숙은 헛웃음을 흘렸다. 셋째 도련님의 말 한마디로 떠나야 한다니?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졌다.도대체 이유영이 무엇이기에 남자들이 죄다 감싸고 도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유영이 가진 게 뭐가 있다고?’“일단 이곳을 떠납시다.”시윤은 단호하게 말했다.진영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떠난다는 말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 남아 손녀와 함께 생활하고 싶었다.아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곳은 손녀가 나고 자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진영숙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한 아이를 사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립고 애틋한 감정뿐이었지만 이유영은 손녀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정말 너무 잔인해.”시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과거에 강이한은 대부분의 시간의 밖에서 보냈고 강씨 집안에 남겨진 이유영과 진영숙의 관계는 나날이 어긋나고 있었다.사실 이 모든 상황은 진영숙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컸다.하지만 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 사실을 입에 담지 못했다. 진영숙은 그런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한편, 엔데스 신우는 이유영을 데리고 더블루 리버스로 향했다.“전 안 들어갈게요.”“응?”“전 이만 집으로 돌아갈게요.”방금 전의 상황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이유영은 그가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 같아
그 말을 남긴 뒤, 엔데스 신우는 이유영을 안아 번쩍 들어 차에 올렸다. 몸부림치는 이유영을 그의 강철 같은 팔이 단단히 감싸져 결국 저항할 틈도 없이 억지로 차에 태워지고 말았다.이유영은 진영숙이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과 윤민성이 위협적인 눈빛으로 다가가는 장면을 뒤로 차는 출발했다....진영숙은 엔데스 신우가 이유영을 데리고 떠난 차를 바라보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되짚었다.‘무슨 뜻이었을까?’“진 여사님?”윤민성의 차가운 목소리에 진영숙은 고개를 들었다.조금 전까지 이유영에게 퍼붓던 광기와 격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결국, 이유영을 마주할 때만 진영숙은 그렇게 무너졌던 것이다.이유영만 만나지 않았으면 이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감정이 한껏 가라앉은 진영숙이 대답했다“네, 접니다.”“제가 파리를 떠나는 걸 도와드릴까요? 아니면 스스로 떠나시겠습니까?”윤민성은 ‘도와준다’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어 말했다.그 말이 협박임을 바보라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시윤도 그 강압적인 태도를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진영숙은 순간 멈칫하며 윤민성을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셋째 도련님께서 앞으로 파리에서 더는 진 여사님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그러니까 지금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강압적인 방식으로 보내려는 건가?’명백히 그런 의미임을 진영숙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직 아이의 행방조차 모르는 지금, 그녀는 도무지 파리를 떠날 수 없었다.유일하게 아이의 행방을 알고 있는 이유영이 파리에 있는 한, 그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파리를 떠난다면 이제 그 아이를 찾을 길을 더 없을 테니까.“안 갑니다.”진영숙은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윤민성의 냉정한 협박이 마음속을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시윤도 심장이 터질 듯 긴장하고 있었다.하지만 셋째 도련님이 원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파리에 더는 머물 수 없었다.윤민성은 씩 웃음을 지었다.그 웃음은 싸늘하고 위험했다.“그렇다
이유영의 얼굴에 어둠이 내려앉았고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엔데스 신우의 위험했던 눈빛은 한층 더 짙어졌다.“셋째 도련님은 모르실 거예요. 이유영이 정씨 가문으로 돌아가기 전, 재벌가에 시집가기 위해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진영숙이 이어서 말했다.“이것도 모르시겠죠. 강씨 가문에 들어오기 위해 결혼도 하기 전에 내 아들을 유혹해서 아이까지 가졌어요.”“그만해!”이유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가방을 들어 진영숙을 향해 휘둘렀다.순식간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진영숙은 고함을 질렀다.“왜? 화가 나? 그래, 화날 만하지!”그녀는 쉼 없이 내뱉었다.“이 염치도 없는 년아, 날 속여서 내 자금까지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엔데스 가문 같은 명문가에 빌붙으려고 해?”이어진 말은 더욱 잔인했다.“말해봐, 이번엔 또 어떤 수작을 부릴 셈이야? 참 대단한 수작이더라. 어떻게 내 아들과 박연준을 죄다 네 발밑에 두고 무릎까지 꿇게 만들었어? 그것도 전부 잃게 하면서까지?”진영숙의 감정은 점점 격해졌고 시윤이 말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이유영은 필사적으로 참으려 했으나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짝!”“쿵!”따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다른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정씨 가문 아가씨가 사람 때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전 시어머니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아악!”“사모님!”이유영은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지만 진영숙의 외침에 그만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진영숙은 이미 도를 한참이나 넘어섰다.그녀의 그 모진 말들을 이유영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엔데스 신우가 차가운 눈빛을 보내자 그 기운에 눌린 사람들은 놀란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 남자와 더 가까이 있다간 위험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엔데스 신우는 앞으로 나아가 이유영을 진영숙에게서 떼어놓았다.이성을 잃은 이유영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과거 강이한을 봐서라도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