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전화를 끊은 뒤 소은지는 곧바로 자신이 먹고 싶던 아침을 만들기 시작했다.원래는 맑은 국물의 샤브샤브를 먹으려 했지만 엔데스 명우가 끼어든 바람에 모든 계획이 망가져 버렸다.그때 손목에 어떤 힘이 닿았고 엔데스 현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 힘은 가볍지만 부드러움 속에 묘한 강압이 숨어 있었다.그가 말했다.“다 준비됐죠?”“필요 없어요.”그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고 이어 소은지가 얘기했다.“이제 그만 나가줘요.”그 네 글자에는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결국 그녀는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그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며 이 두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지만 지금은 그 둘이 그녀의 일상 자체를 심각하게 흔들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소은지의 눈동자 속에는 차가운 시선만이 남아 있었다.엔데스 현우는 그녀의 눈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에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소은지 씨.”“난 할 말을 다 했어요. 그러니까 나가줄래요?”이미 할 말은 다 했다.하지만 세상엔 아무리 말해도 정리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예를 들면 강이한과 이유영의 사이처럼 분명 서로 놓기로 했는데도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엔데스 현우는 소은지에게 단 한 번도 놓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다 정리됐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직 아니에요.”그의 목소리가 한층 단단해졌다.소은지는 말문이 막혔다.“지금 당신 바로 옆집에 있어요. 설마 다시 계속 얽히고 싶진 않겠죠?”“...”이미 어두웠던 얼굴빛이 그 말 한마디에 완전히 굳어버렸다.그녀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그 눈빛을 바라보며 엔데스 현우의 입가에는 조용히 웃음이 스쳤다.“내가 지금 나가면 집착은 끝도 없을 거예요.”끝도 없을 거란 그 말이 소은지의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몇 번이나 깊게 숨을 쉬었지만 그 답답함은 가라앉지 않았다.“명우 형이 완전히 당신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나에게 이런 감정이라면... 그때는 내가 떠날게요.
“은지야, 너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그 사람과의 결혼?”“응. 나도 은별을 낳은 걸 후회해.”소은지는 이유영이 은별을 낳은 걸 후회한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은별은 너무나도 착한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다음 순간, 이유영이 말했다.“우리 사이에 은별이 없었다면 나를 계속 괴롭힐 이유가 있었을까?”분명 이유영에게 은별이 없었다면 강이한은 더 이상 그녀에게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그가 계속 집착한 건 모든 것이 은별 때문이라는 뜻이었다.“너 예전에 강이한이 은별이 자기 딸인 걸 몰랐을 때도 널 괴롭혔다는 걸 잊었어?”“그때는 희망이 없었잖아.”이유영이 말했다.그때 강이한은 단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 희망이 희박했기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은별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강이한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었다.그들 사이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끝없는 집착이 이어진 것이다.소은지도 희망이 있는 집착과 없는 집착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아직도 전화 와?”사실 이 질문은 필요 없었다. 소은지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전화할 것이다.강이한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전에 이온유때문에 그녀를 찾아 이유영 앞에서 좋은 말 좀 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이것이 바로 이유영이 가장 마음 아파하는 점일 것이다.강이한이 한 번씩 찾아오는 이유다.“됐어.”전화기 너머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들으며 소은지는 어떻게 이유영을 달랠지 몰라 잠시 말을 멈췄다.강이한이라는 사람은 정말 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금의 소은지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그럼 내 말 이해했지?”“나는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소은지는 이유영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아이 이야기는 그녀 마음의 상처이자 민감한 부분이었다.눈을 감는 순간 눈빛 속에 감춰진 건 고통이었다.“이해했으면 돼. 최소한 지금은 엄마가 되지 마.”이유영 역시 소은지
소은지는 두 사람 사이에 살고 있었고 숨쉬기조차 답답했다.하지만 엔데스 현우와 엔데스 명우 사이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녀는 두 사람을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이유영은 전화로 엔데스 명우가 다시 소은지 옆집으로 이사 왔다는 소식을 듣고 듣기만 해도 끔찍한 싸움터가 펼쳐질 것 같다고 느꼈다.“저 사람들 널 죽일 셈인가 봐?”이유영이 깊게 숨을 들이쉬며 소은지에게 말했다.“내가 피 말리게 할 거야.”그 말을 하는 소은지의 눈빛에는 끝없는 위험이 도사렸다.이유영은 잠시 멈칫했다.분명 소은지 말투에서 무언가 벌어질 것을 감지한 것이다. 하지만 또한 소은지가 화가 난 상태임을 알았고 그녀라면 분명 아주 크게 분노했을 거라고도 짐작했다.“그럼 언제 떠날 생각이야?”이유영이 물었다.전에 약속했듯 이수연 사건이 끝나면 떠난다고 했다.하지만 지금의 소은지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그 나쁜 놈이 감옥에 들어가면 떠날 거야.”그 나쁜 놈은 이수연의 남편을 가리키는 것이고 소은지의 그 남자에 대한 모든 평가였다.아마도 이것이 이유영이 오랜 시간 소은지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의리 있고 정이 깊어 온몸으로 자신의 선함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그거 쉽지 않을걸.”소은지가 어떤 결과를 요구하는지 알지만 그들은 엔데스 명우를 잘 알고 있었다.엔데스 현우는 언제나 온화한 사람이어서 많은 경우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려 노력했지만 엔데스 명우는 달랐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이수연 일에 관해서는 개입하더라도 소은지를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기 위함이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제 이수연 남편의 건에 대해 소은지가 반드시 이런 결과를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는 즉시 소은지를 위협하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어조가 담고 있는 의미를 알아챘다.눈빛에 짙은 살기가 번졌다.“그렇다면...”분명히 이유영이 생각한 것과 동일하게 소은지도 이제 엔데스 명우가 분명 그
그리고 이수연 역시 그가 해친 건 아니었다.강혁이 말했다.“하지만 그 재판이 길어지면서 결국 이런 결말이 나온 거죠.”그러나 재판이 길어진 이유가 결국 그의 개입 때문이었다.엔데스 명우는 눈을 감았고 그도 분명 예상치 못했다.이수연이 그렇게 연약할 줄 몰랐고 재판이 길어지면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아마 이수연보다 훨씬 더 억압된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모두 살아남았다.그런데 왜 이수연만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고 더 중요한 건 지금 소은지가 이수연의 죽음을 전부 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그러니까 지금 소은지는 절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지?”오랜 침묵 끝에 엔데스 명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의 어조에는 위태로운 기운이 감돌았고 강혁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소은지 성격상 용서할 리가 없다.다른 여성이었다면 엔데스 명우가 조금만 고개를 숙였더라도 일이 끝났을지 모른다.하지만 상대는 소은지다.수년간 그에게 굴복한 적 없는 여자가 단 몇 마디로 돌아올 리 없다.“잘 아시는군요.”강혁은 뒤의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엔데스 명우는 이미 그녀를 위해 파리 쪽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도 소은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정말 마음을 졸이게 하는 일이었다.말을 마치고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한층 무겁게 느껴졌다.매서운 독수리 같은 눈동자가 빛났다.엔데스 명우가 냉소했다.“흥!”그렇다면 그녀의 세상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거다.그 냉소를 들은 강혁은 더 숨을 죽였다.“조금 더 인내하세요. 어쨌든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시간을 좀 더 주세요.”인내심을 가지고 달래서 돌아오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하지만 이전처럼 강제로 하려고 하면 소은지의 꼬인 성격상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이수연의 남편을 구속시키려는 거야?”그 순간 남자의 어조가 위험하게 변했다.강혁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엔데스 명우는 그렇게 냉담한 표정을 짓는 소은지를 바라보며 가슴이 꽉 막히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분노가 그의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바로 다음 순간 소은지가 차갑게 말했다.“나랑 너 사이엔 평화 같은 건 없어. 그만 포기해.”평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그들의 시작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고 그런 방식으로 시작했으니 그 뒤에 따라온 모든 반작용과 고통은 그가 자초한 것이었다.“소은지!”남자의 어조가 한층 무거워졌다.그러자 소은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냄비를 그대로 엔데스 명우 쪽으로 내던졌다.그가 재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또 병원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재빨리 피했지만 끓는 국물이 일부 튀어 얼굴에 닿았고 그 뜨거운 감각에 얼굴빛이 잔뜩 어두워졌다.“너 나 죽이려고 작정했어?”남자가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소은지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가능하다면 정말 내가 직접 널 끝내 버리고 싶어.”한 마디 한 마디 독기와 결의가 가득했고 그녀 특유의 오만함과 냉기가 그 속에 섞여 있었다.이런 소은지를 바라보며 엔데스 명우는 그제야 희망이 없다는 것이 어떤 건지 깨달았다.그는 한때 엔데스 가문에서 무엇이든 원하면 쉽게 얻을 수 있었다.어쩌면 쉽게 얻지 못하더라도 결국엔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소은지의 자존심 강한 성격이 그에게 절망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가르쳐주고 있었다.“소은지!”그 세 글자는 거의 이를 악물고 내뱉은 것이었다.그는 이렇게까지 체면을 버리고 여자를 붙잡은 적이 없었다.그런데 소은지는 그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었고 오히려 독하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꺼져.”뱉은 단 한 마디는 얼음처럼 차갑고 온기라곤 전혀 없었다.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엔데스 명우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분노했다.결국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그는 옆집으로 돌아갔다.강혁은 온몸이 엉망이 된 엔데스 명우를 보자 깜짝 놀
이전에 엔데스 명우가 병원에 갔을 때 소은지가 그렇게 냉담하던 모습을 보고 강혁은 한때 소은지가 무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그녀는 엔데스 명우 한 사람에게만 무정한 것이 아니라 엔데스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도 냉정했다.이 모든 건 예전에 파리에서 겪었던 그 모든 일들 때문이었다.그녀의 마음은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기에 냉담함도 어쩌면 당연했다.“...”말이 끝나자 엔데스 명우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 눈빛은 마치 칼날처럼 그를 꿰뚫을 듯했다.강혁은 말했다.“소은지 씨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여자예요.”파리의 그 여자들과는 정말 완전히 달랐다.강혁의 눈에는 소은지가 자존심 강한 여자일 뿐이었다.엔데스 명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예리한 묘사에 머리가 더 욱신거렸다.그도 소은지가 자존심 강한 여자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예전에 그녀가 곁에 있었을 때 아무리 강압적인 수단을 써도 결코 그녀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그녀 눈 속의 그 완강함을 떠올리며 지금은 그 안에 냉담함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강혁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만약 그가 소은지 옆집으로 이사 간다면 예전 같은 일은 절대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전처럼 소란을 피우면 소은지는 더더욱 혐오하고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엔데스 명우는 강혁의 뜻을 알아듣고 손을 내저었다.“가서 준비해.”소은지가 매번 자신을 미치게 만들던 모습이 떠올라 그는 차라리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하지만 강혁의 말처럼 소은지의 성격은 너무 강했고 그녀에게 예전처럼 대했다간 더 멀어질 뿐이었다.다음 날 아침 소은지는 오픈형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밖에는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겨울의 이러한 모습을 싫어했다.눈만 내리면 꼭 샤브샤브가 먹고 싶어졌다.그래서 아침부터 담백한 육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절반쯤 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본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