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소은지는 그날 밤을 떠올리기 싫었다. 하지만 엔데스 현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윤아정이 소은지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억인지. 그래서 소은지가 그때를 회상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도 말이다.그날 밤, 소은지가 마주 보지 못하는 그 죄책감에 대해, 엔데스 현우가 까밝혀 내고 있었다.소은지는 엔데스 현우를 보면서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엔데스 현우의 그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엔데스 현우가 물었다.“한 통도 받지 않은 거예요? 그때 뭐 하고 있었어요? 동료랑 파티라도 했나?”“그만해요!”그 말을 뱉어내는 목소리가 떨렸고 성대가 아팠다.그때, 윤아정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소은지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밤, 윤아정이 죽던 밤, 윤아정은 소은지에게 열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소은지는 하나도 받지 못했다. 이튿날 깨어났을 때, 소은지는 윤아정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그리고 그것 때문에, 소은지는 윤아정이 어쩌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소은지가 엔데스 현우를 보면서 물었다.윤아정을 한계 끝까지 밀어 넣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소은지는 그 사람들을 죽이지 못해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때의 소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였다.지금... 그 사건이 몇 년이나 지난 지금, 소은지는 그때 그 사람들이 정말 인과응보를 겪었을지 궁금했다.엔데스 현우는 검은 눈동자로 소은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그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 말에 소은지는 알게 되었다.아마 이 사건에 엮인 사람들은 엔데스 현우에 의해서 처리되었을 것이다.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인 소은지도 결국 엔데스 현우의 손바닥 안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소은지가 용기를 내 엔데스 현우한테 물었다.“죽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라고 생각해요?”“...”소은지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지금 소은지의 기분이
그래서 엔데스 운빈과 결혼할 때 미치도록 슬퍼한 것이다. 송연미는 엔데스 현우가 송연미한테 진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언제부터 알게 된 거야?”소은지가 송연미한테 물었다.“시합에 참석하러 단역시에 가려고 결정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그 말을 들은 소은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어쩐지, 유난히 엔데스 현우에게 집착하던 송연미가 순순히 떠나니 이상했었다.아마 그 순간 알았을 것이다.“나는 그 여자가 정말 부러워.”송연미가 말하는 그 여자는 바로 윤아정이었다.엔데스 현우가 송연미를 차갑게 대할 때, 송연미는 그게 엔데스 운빈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소은지의 일 때문인지 잘 몰랐다.하지만 엔데스 운빈이나 소은지 때문이 아닌, 윤아정이라는 여자 때문일 줄은 전혀 몰랐다.윤아정,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엔데스 현우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기에 엔데스 현우가 꼭꼭 숨기고 모든 사람이 윤아정을 모르도록 한 것일까.소은지가 복잡한 표정으로 송연미를 쳐다보았다. 소은지를 대하던 송연미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송연미가 엔데스 현우에게 설렌 것은 진심일 것이다.그래서 소은지는 송연미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한숨을 쉰 소은지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은지야.”“도와주지 않아도 돼.”소은지가 송연미를 보면서 얘기했다.송연미는 결국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나는 네가 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네가 무사하길 바라.”송연미는 처음부터 소은지가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런 소은지가 엔데스 현우 곁에 있는 것을 보면서 송연미는 질투심에 미칠 것만 같았다.하지만 지금의 송연미는 진심으로 소은지가 이성을 무기로 본인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송연미가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엔데스 현우가 돌아왔다.일주일이 지났다. 그 일주일 동안 엔데스 현우는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할리 연과 함께 다른 장소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엔데스 저택에 돌아오지도 않았다.갑작스러운
이곳에 남아서 한 사람만을 위한 복수를 한다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다. 그때 소은지의 마음은 아주 복잡했었다.엔데스 명우가 소은지의 인생을 망친 것처럼, 소은지도 똑같은 방법으로 엔데스 명우의 모든 것을 망치려고 했다.그때의 소은지는 엔데스 현우의 곁에 남는 것을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하.”남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라고 하려는 것 같았지만 영주의 일을 알고 나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남기는 소은지를 가엾다고 생각했다.남기는 원래 소은지가 엔데스 현우 곁에 남아있는 것이 그 자리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주의 일을 알고 난 뒤, 소은지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하지만 이곳에 남게 되면...오늘 할리 가문이 어떻게 소은지를 협박했는지, 남기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소은지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어쩌면 미래도 없을 것이다.“이곳을 떠나면 얼마나 힘들지 모르지만, 이곳에 남는다면 내일을 살아가기도 힘들 수 있습니다.”남기는 결국 고민하다가 귀띔해 주었다.소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일이라...소은지는 원래부터 내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삶이 순탄하다고 해도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말이다.“고마워요, 아저씨.”남기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의 결정을 바꾸지 못했다는 걸 알았지만 남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어쩌면 소은지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송연미가 단역시에서 돌아왔다.하선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송연미가 돌아왔다. 저번에 송연미가 떠날 때, 소은지는 송연미가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하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그쪽 시합은 끝났어. 난 출전하게 됐어!”송연미가 소은지를 보면서 얘기했다.소은지는 커피를 들고 송연미를 보면서 얘기했다.“왜 나한테 그걸 알려주는 거야?”“난 그저... 파리를 떠나도 파리에서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은 거야.”송연미가 얘기했다.
“당신의 뒤에 정씨 가문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당신을 함부로 할 수 없겠지만... 소은지 씨, 나는 당신한테 경고하는 겁니다.”“...”“지금 파리에서 소은지 씨를 처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가득해요. 정씨 가문 모르게 당신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예요.”“그래요?”“당연하죠.”“하지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정씨 가문은 할리 가문을 의심할 겁니다.”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여전히 팽팽했다.소은지는 본인을 찢어 죽일 듯이 바라보는 하선희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지금 파리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나한테 문제가 생긴다면 모두가 할리 가문을 가장 먼저 의심할 겁니다.”그러니 이 상황에서 할리 가문의 경고는 먹히지 않았다.하선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은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보지 말아요. 나는 여태껏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은 적이 없으니까.”“...”“엔데스 가문의 일이 다 처리되기 전에 결정하지 그러셨어요.”소은지는 그 전부터 엔데스 현우의 곁에 있었다.그러니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하선희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그래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양보라니.소은지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나는 그저 내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내가 손에 넣은 자리를 왜 양보해야 하죠?”“그래요, 소은지 씨의 뜻은 잘 알겠어요.”하선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더는 소은지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 같았다.두 걸음 내디딘 하선희가 갑자기 멈춰서서 소은지를 보더니 차갑게 얘기했다.“소은지 씨, 난 당신의 용기를 높이 사요.”소은지는 파리에 혈혈단신으로 온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본인의 신념을 위해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릴 용기가 있었다.소은지는 약간 미간을 좁히고 하선희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선희는 돌아서서 얘기했다.“정말 내가 정씨 가문을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해요?”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하
남기가 소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은지는 받지 않고 바로 엔데스 저택으로 들어갔다. 경비원을 지나치고 건물에 들어설 때, 문 앞의 고용인이 소은지의 차가 멈춰 선 것을 보고 다가왔다.“돌아오셨군요.”“왜요?”겁을 먹은 고용인은 소은지를 막으려고 하고 있었다.소은지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고용인을 쳐다보았다. 소은지의 눈빛을 마주한 고용인은 더욱 겁을 먹고 고개를 숙였다.“남기 님이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아.”“할리 가문 사모님이 왔습니다!”“...”하선희가?그 순간 소은지는 남기를 향한 인상이 약간 바뀌었다. 소은지가 엔데스 가문에 들어온 이후 남기는 소은지를 아니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하지만 지금...전에 소은지와 하선희가 만났을 때, 그때의 분위기는 아주 날카로웠다.남기는 아마 소은지가 나간 뒤 하선희가 온 것을 보고 소은지한테 돌아오지 말라고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선희와 소은지의 모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소은지는 안을 쳐다보고 얘기했다.“괜찮아요.”소은지는 개의치 않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했다.어찌 되었든 소은지는 이곳에서 살아야 했기에 결국에는 하선희와 마주칠 것이다.아까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하선희가 이곳에 있다는 건...소은지는 무언가를 알 것만 같았다.소은지는 오늘의 그 사고가 할리 가문과 연관 있다고 생각했다.안으로 들어가자 남기가 하선희를 공경하게 모시고 있었다.하선희의 화장은 전보다 더욱 두꺼워졌다.하지만 소은지는 그런 하선희의 얼굴 밑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선희는 소은지가 멀쩡하게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남기 씨.”“네, 사모님.”“먼저 내려가 봐요. 난 소은지 씨와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하선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은지를 쳐다보았다.남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은지를 쳐다보았다.그동안 상류층은 아주 시끄러웠다. 그 소문의 주인공은 바로 할리 가문이었다.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소은지 때문이었
돌아가는 길. 코너에서 소은지의 앞으로 커다란 화물차가 다가왔다. 소은지는 차를 한쪽에 댔지만 그 화물차는 여전히 소은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소은지의 동공이 차갑게 얼어붙었다.화물차가 소은지를 치려던 순간, 소은지는 차를 드리프트 시켰다. 하마터면 절벽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소은지를 들이박으려던 화물차는 그대로 숲에 떨어졌다. 차량의 헤드와 화물칸이 분리될 정도의 속도였으니 얼마나 빠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화물차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이마의 피를 닦으며 소은지를 쏘아보는 그 순간, 소은지는 무언가 알 것 같았다.핸드폰에 이유영의 전화번호가 떴다.지금 이 순간, 소은지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파리에 남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소은지는 어떤 결말이 소은지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하지만 그것을 두 눈으로 마주한 순간 소은지의 마음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마치 줄 끊어진 연처럼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이, 불안한 소은지의 모습 같았다.소은지는 이유영의 전화를 받았다.“은지야.”“응, 유영아. 얘기해 봐, 이게 누굴까?”소은지가 심호흡하고 전화기에 대고 물었다.전화기 너머의 이유영은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그러더니 얼른 정신을 차렸다.“은지야!”이유영은 무언가를 느낀 것만 같았다.“그 사람들이 나한테 파리에 남으라고 한 거잖아.”그런데 왜 지금 이 후과는 소은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아무리 심호흡해 봐도 이 무거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너랑 같이 있어 줄까?”이유영은 소은지가 너무 걱정되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소은지는 정신이 확 들었다.“아니야. 네가 얼마나 어렵게 도망친 건데. 절대 돌아오지 마.”그동안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얼마나 매달린 것인지, 소은지는 잘 알고 있었다.강이한은 곧 파리를 떠난다.하지만 강이한은 여전히 이유영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꾸만 후회를 반복했다. 지금의 소은지는 이유영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어차피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