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유영의 이런 침묵에 강이한은 기분이 나빴다. 그는 불쾌함을 몇 푼 담아 입을 열었다.“내가 당신보고 나랑 같이 있어 달라고 했지, 나한테 이렇게 눈치 주고 있어 달라고 한 게 아니야.”“그럼 나보고 뭐 더 어떻게 하라고?”‘뭐 어떻게 하라고?’강이한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박연준을 어떻게 대했으면 나한테도 똑같이 대해!”“당신이 연준 씨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이유영의 직설적인 말은 비수가 되어 아주 꼿꼿하게 강이한의 심장을 저격했다.강이한은 아주 무섭게 이유영을 째려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더 말하면 안 되었다. 더 말하다가는 언젠가 이유영 때문에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지금의 이유영은 아주 입이 날카롭기에 그지없었다.아무나 상대할 수 있는 그런 날카로움이 아니었다.차 안이 조용해지자, 이유영도 그제야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도원산.이유영은 차에서 내릴 때야 자기가 신발을 안 신은 걸 발견했다.정말 강이한 때문에 화가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 이유영은 몸이 붕 뜨더니 강이한에게 가로 안겼다.이유영은 발버둥을 쳤다.“내려줘!”“정말 그래도 걸을 수나 있겠어?”“당신이 뭔 상관이야?”“이제 곧 상관이 있을 거야!”강이한은 이 말을 하고는 이유영을 안고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집사와 이시욱 등 사람들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온 것을 보고 긴장을 한 푼도 늦추지 않았다. 심지어 더욱 반짝 정신을 가다듬었다.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지금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언제든 한바탕 싸울 수 있었다.이 두 사람의 모순이 도대체 언제 풀릴지도 모른 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두 사람보다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먼저 미칠 게 뻔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안고 곧장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나 이 방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당신 좋기는 잘 생각하고 말해.’“그게 무슨 뜻이야?”“당신 표현이 좋으면 그 사람 소식을 줄게.”“...”‘그 사람은 소은지!?’처음에 강이한은 한
위층에서 이유영은 화가나 돌아버릴 것 같았다.소은지가 다쳐서 다섯 바늘을 꿰맨 것만 생각하면 이유영은 머릿속에 여러 가지 잡생각들로 가득했다.‘은지는 도대체 어쩌다가 다쳤지? 그리고 왜 꿰맸지?”이 많은 정보 때문에는 이유영은 전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나는 소은지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한다고 했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는 안 했어!”“보장할 수는 있어?”“아니, 없어!”“...”이유영은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강이한의 답으로부터 소은지는 아마 아주 엄청난 인물을 건드렸다는 걸 이유영도 알아낼 수 있었다.아니면 강이한 조차도 소은지의 안전을 보장 못 할 리가 없었다.“그리고 소은지의 일은 당신도 관여할 수 없어!”“...”이유영은 다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나도 관여할 수 없다고?’강이한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가슴이 멎는 것뿐만이 아니었다.심지어 두려움도 있었다.‘은지 도대체 어떤 인물을 건드린 거지? 왜 강이한마저도 자기가 건드릴 수 없다고 하지?’‘왜 관여할 수 없다고 하는 거지?’“내가 예전에 당신을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 은지의 일에도 관여할 수 있어.”이유영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그래. 왜 못해? 할 수 있어!’“그거랑 달라!”“다를 게 뭐가 있어. 당신도 전에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대화 말고는 정말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강이한은 골치가 아팠다.여자들은 다 뒤끝이 있다는 말이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단 여자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일을 하면 그 일을 잡고 언제까지 잔소리 해댈지 모른다.강이한도 정말 지긋지긋했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말이 없었다. 입을 열기만 하면 말로 상대방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강이한이 샤워하고 나와보니 이유영은 역시 침실에 있지 않았다.결국은 객실에서 이유영을 찾았다.불을 켜는 순간,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 불빛
침묵하고 있는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일어나 불빛을 조금 어둡게 조절한 강이한은 이유영의 기운도 불빛 따라서 사그라든 것을 보았다.하지만 자신을 등지고 누운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가슴이 몹시 답답했다.그는 침대로 올라가 이유영의 뒤에 눕고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이유영이 거부하고 발버둥 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강이한의 품에 안겨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은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사람은 분명 품속에 안겨 있지만 강이한은 마치 천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이런 거리감 때문에 강이한은 팔에 힘을 더 주어 이유영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유영아.”아주 나지막한 소리로 그녀를 불렀지만, 이유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결국은 다시 강이한의 품속으로 돌아왔다. 2년... 외부인이 보기에는 2년이지만 강이한에게는 이게 몇 년 만이지?지난번 생에, 이유영이 식물인간이 된 후, 강이한이 요양원에서 이유영 곁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 줬는지 본인도 모른다.그건 가슴을 쥐어뜯는 아픔이었다!결국 이유영이 세상을 떴을 때, 강이한은 세상을 다 잃는 것 같았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생을 건너 다시 이유영을 쫓으러 왔다.하지만 이번 생에 다시 왔을 때 들은 건 역시 이유영의 부고 소식이었다.오늘날 이렇게 겨우겨우 다시 그녀를 품속에 안으니 강이한은 뭐가 됐든 이제 다시는 그녀를 놔주고 싶지 않았다.이날 저녁, 이유영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반면 강이한은 전례 없는 꿀잠을 잤다.아침에 일어난 이유영은 핸드폰을 들어 안민한테 여기로 와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전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강이한에게 뺏겼다.“오늘은 회사에 가지 마.”강이한의 말투는 마치 명령을 내리는 듯 아주 강력했다.이유영은 당연히 강이한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나 꼭 가야 해!”“로열 글로벌의 기초를 놓고 말해서, 당신이 회사에 하루 말고 일 년을 안 간다고 해도 큰 문제 없을 거
이쁘장하게 생긴 여인이었다. 큰 웨이브 파마에 아주 매혹적인 몸매를 갖고 있었다.“잘됐네. 너 이제 여자 보는 눈이 점점 좋아졌네!”“...”“전에 한지음 씨보다 훨씬 낫네. 이봐, 취향이 아주 크게 발전했어!”강이한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이 여자도 참, 왜 아무 때나 한지음 얘기를 꺼내는 거지?’이 생각이 들자 강이한은 머리가 아팠다.“여기 이분은 의사 선생님이야!”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유신비 이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한지 생각이 났다.저번에 소군리 의사가 소개했었던 실력이 아주 뛰어난 의사 이름이 바로 유신비였다.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아, 이분이 바로 그 소문으로만 듣던 강 씨 사모님이시네요.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강 씨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듣자, 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저는 로열 글로벌의 대표이지 강 씨 사모님이 아니에요.”인사를 건네고 악수하면서 손을 잡았을 때, 두 사람 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유신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군요.”사적인 대화는 여기에서 끝을 맺었다.그리고 유신비가 입을 열었다.“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먼저 검사부터 할까요?”검사!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에 있는 흉터들을 전부 다 없애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분고분 말을 들을 이유영이 아니었다.“필요 없어요.”“유영아!”“강이한 당신은 내 몸에 있는 흉터들이 없어지면 당신이 한 그 죄들도 다 같이 사라질 줄 아나 봐?”“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강이한은 그저 최선을 다해 이유영을 보상해 주고 싶었다.이유영은 웃었다. 아주 비웃음이 가득한 웃음이었다.“유신비 씨, 그냥 돌아가 주세요.”“저 일정이 아주 빠듯해요. 지금 이렇게 저를 보내면 아마 앞으로 한 2년 동안 절 보지 못할 건데 확실해요?”“네! 확실해요.”태도가 아주 굳건한 두 마디였다.유신비는 아주 거만한 의사였다. 그래서 이유영의 대답을 듣고 더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바
이유영이 더 몰랐던 건 강이한은 생을 건너 이번 생으로 온 사람이라는 것이었다.“당신한테 건강검진 의사를 불렀어!”결국 강이한의 말소리가 들렸다.병원 쪽에서 이유영의 진료기록을 찾을 수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다.특히 어젯밤, 이유영이 잠든 후 새벽 때 그녀는 땀이 흠뻑 나서 베개까지 다 적셨다.이런 신체 상황인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걸 강이한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래서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건강검진 해줄 의사 선생님을 집으로 불렀다.“시간 낭비하지 마!”“당신은 정말 당신 몸의 이상을 못 느꼈어?”이유영은 강이한을 대꾸하기도 귀찮아 바로 집을 나서서 회사로 갔다. 안민은 이유영이 불러 이미 도착해 있었고 루이스도 와 있었다.도원산에서 이유영을 픽업한 루이스와 안민은 다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루이스!”“네! 아가씨.”“혹시 소은지 파리에 있는 게 아닐까요?”이유영은 아주 심오한 말투로 물었다.어젯밤에 본 소은지의 모습과 강이한이 소식을 알아내는 속도를 종합해 보니 이유영은 소은지가 파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제일 먼저 파리부터 뒤졌었다. 하지만 파리에서 사람을 찾지 못하지 그제야 수색 범위를 해외로까지 확장한 것이었다.하지만 지금...“파리요?”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병원부터 뒤져봐요!”이유영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병원뿐만이 아니었다.어젯밤에 비록 강이한이 제대로 밝힌 건 아니었지만 이유영은 그에게서 얻은 정보 중 하나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그건 바로 파리에 있는 귀족을 조사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강이한이 나도 관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왜 관여할 수 없다는 거지?’유일한 답은 상대방이 아주 강력하게 나올 것이라는 거였다.도대체 누가 소은지랑 이렇게 원한이 있는지 이유영은 이 근원을 조사해 내야 했다.“네!”“그리고 이 몇 년 동안에 소은지가 맡았던 사건 중에 파리랑 연관이 되는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다.정국진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한입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유영이 때문에 온 거야!?”“유영이 이 2년 동안 줄곧 몸이 안 좋았나요? 맞아요?”강이한은 목이 멘 상태로 물었다.강이한을 바라보는 정국진의 눈빛에는 한기가 돌았다.당연한 말을...!아무리 한지음이 강이한 옆에 나타난 데는 숨은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강이한이 이유영의 몸 상태에 관해 물어보는 것에 대해 정국진은 여전히 첫 반응이 강이한은 그걸 물어볼 자격이 제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무래도 근본적인 원인 제공은 강이한이었다.뒤에 일어난 일들에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다고 해도 결국 진실이 드러날 때는 이미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다 핑계에 불과했다.정국진은 강이한의 대답에 대답도 안 하고 되물었다.“한지음 아직도 모리나 호텔에 있어!?”모리나 호텔도 사실은 로열 글로벌 아래의 호텔 중 하나였다.‘강이한이 한지음을 모리나 호텔에 안배해 놨다고?’‘강이한은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한지음 얘기가 나왔을 때 두 사람의 얼굴색은 다 안 좋게 변했다.특히 강이한의 얼굴색은 선명하게 안 좋아졌다.정국진은 강이한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음이 너한테 아주 중요한가 보네. 그럴 거면...”“정 회장님!”정국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강이한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도대체 언제부터인지 누구든 강이한의 앞에 서면 무조건 강이한이랑 한지음을 엮어서 말했다.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정국진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며 강이한은 목이 좀 뻣뻣해 났다. 그리고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전 그저 이 2년 동안 유영이가 잘 지냈는지만 알고 싶어요.”그랬다. 강이한이 정국진을 찾으러 온건 사실 제일 직접적으로 이유영의 몸 상태에 알아볼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정국진의 생각대로, 어젯밤 강이한은 그걸... 느꼈다.새벽 늦게까지 이유영의 몸에는 아무런 온도도 없었다. 이건 정상적
그저 간단한 운전이었다...하지만 정국진의 말은 그렇지 않았다.“그날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정말 큰 일이 일어날 뻔했어!”“유영이의 두 눈은 2년 전의 그 큰불 때문에 엄청나게 크게 다쳤어!”순간 강이한은 이유영을 만날 때 그녀가 언제든지 항상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어젯밤에도 강이한은 이유영이 강력한 불빛을 엄청나게 무서워하는 것을 느꼈다.2년 전의 그 화재는 이유영의 피부만 태웠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그녀의 두 눈까지 빼앗아 갈 뻔했다.어둠!인생의 궤적이 결국은 달라졌다. 전생의 이유영은 두 눈이 실명되었지만, 이번 생은 실명이란 어둠과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의 집에서 나와 어떻게 로열 글로벌까지 왔는지 모른다.방금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온 이유영은 사무실 문을 연 순간 바로 강이한의 품속에 들어갔다.익숙한 서늘한 기운에 이유영은 끊임없이 발버둥을 쳤다.“이거 놔!”‘이런 빌어먹을 강이한, 왜 어디에나 다 있지?’이 점에 대해 이유영은 정말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하필 강이한을 철저하게 거절할 수도 없었다.필경 지금 소은지의 소식이 강이한의 손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는 여기를 자유자재로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왜 말 안 해줬어?”이유영이 발버둥 칠수록 강이한은 더 세게 이유영을 끌어안았다.이 시각, 강이한의 따뜻한 숨결은 그저 이렇게 이유영의 귀에 떨어졌다.“...”‘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강이한의 앞뒤 없는 질문에 이유영은 정말 그가 뭘 물어보는지 몰랐다.특히 강이한의 고통이 담긴 말투가 정말 이해가 안 갔다.‘하하, 강이한이 고통스러워한다고? 나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고?’하지만 이유영의 인식 속에 강이한은 절대로 자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리가 없었다. 마치 이 남자는 아픔을 못 느끼는 것처럼...“먼저 이거 좀 놔!”이유영은 인내심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아직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였다.강이한은 몸을 돌려 이유영을 소파에 앉혔다.자유를
점심때 일어난 일은 전혀 이유영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그녀는 마치 냉혈 인간처럼 강이한이 간 후 다시 일에 몰두하였다.오후에 루이스가 왔지만, 그의 표정은 아주 심각해 보였다.“은지 소식이 있어요?”소은지!지금 아무리 소은지 때문에 강이한을 계속 상대하고 있지만 이유영은 그래도 주변 사람더러 소은지 소식을 알아보라고 했다...이유영은 정말 강이한이랑 더 깊숙한 사이가 될 기회마저 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실망스럽게 루이스는 고개를 흔들었다.“없습니다.”“없다고요?”이유영은 가슴이 조여들었다.하지만 루이스의 안색은 엄숙하다 정도가 아니었다. 이유영이 보기에는 소은지 소식이 없는 것만이 아닌 것 같았다.“또 다른 일 있어요?”이유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온몸에서 심각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이유영 곁에 오래 있으면서 루이스가 이런 적은 아주 드물었다. 이로써... 이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었다.루이스는 이유영을 한눈 보고는 입을 열었다.“그쪽에서 우리가 소은지 씨를 조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서 그런지, 소 변호사님 전에 맡았던 사건들, 기록이 전부 다 사라졌습니다!”이 말을 듣고 이유영은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전부요?”“네!”‘모든 사건 기록이 다 지워졌다고!?’“그래서 우린 지금 은지가 어떤 사람들이랑 원한이 있는지도 알아낼 수 없다는 건가요?”“네.”이유영은 숨이 꽉 찼다.‘그럼, 이 배후의 사람은 은지의 일과 연관이 있다는 건가?’하지만 이유영 쪽에서 사람을 써서 조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이렇게 귀신같이 알고 소은지랑 관련된 사건들을 다 지웠다.이로써 이 사람은 참...이유영은 숨이 턱턱 막혔다.“대표님.”“왜요?”“지금...”지금! 분명한 건 지금 이유영은 밝은 곳에 있고 그 사람은 어두운 곳에 있으니, 당연히 이유영이 뭘 하든 그쪽에서는 다 알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헛수고하는 문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