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산 쪽에서, 강이한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아까는 내가 미쳤지, 유영이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그 당시 강이한이랑 이유영이 7년이나 만난 후, 결혼을 앞두고서야 이유영은 강이한의 진짜 신분을 알았다.그것도 강이한의 어머니가 직접 찾아와서...그런 이유영이 과연 그런 짓을 했다고?“사모님, 오셨습니까?”강이한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밖에서 집사가 아주 공손하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러고 나서 이유영의 분노를 참는 소리가 들렸다.“집사님, 다시 한번 그딴 식으로 저를 부르면 당장 일자리를 잃게 할 수 있어요.”아주 건방지고 방자한 말투였다.하지만 강이한의 입가에는 총애하는 미소가 번졌다.전생의 이유영이 지금과 같은 이런 성격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그녀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다 손해를 봤을 것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당시의 이유영은 아주 온순하고 얌전했다.결국 끝까지, 그녀는 시력을 잃은 후에야... 딱 한 번 강력하게 나왔었다. 그러고는 강이한에게 이혼을 제기했다.이유영이 들어오자, 집사님은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강이한은 눈가의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채, 이유영을 바라보며 눈빛에는 사람이 부단히 퍼지고 있었다.“무슨 중요한 서류를 까먹었어?”“누구야?”이유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강이한은 얼음처럼 굳어진 이유영의 안색을 보며 눈가의 웃음기를 조금씩 거두었다. 그는 당연히 이유영이 뭘 묻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요즘 강이한과 관련된 데서 소은지 빼고는 그 아무도 이유영의 감정에 영향 줄 수 없었다. 그 속에는 한지음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지금 이유영이 자기에 대한 감정이 도대체 뭔지 강이한은 전혀 보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소은지에 대한 감정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소은지는 이유영에게 있어서 몹시 중요했다.그 누구도 비길 수 없을 만큼 중요했다.만약 할 수만 있다면 강이한은 정말 이 순간 이유영을 전생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두 사람이 아직 사랑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엔데스
이유영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이유영!”강이한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투는 아까보다 더 싸늘했다.“도대체 누구야?”“그래도 알아야겠어?”“그래!”“그 여자가 당신의 마음속에서 그렇게 중요해?”중요하기를 지금 소은지가 건드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여전히 누가 소은지를 데려갔는지 물어보고 있었다.중요하다고 하는 이유영의 말에 강이한은 이를 꽉 깨물었다.마치 소은지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이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제일 중요한 것처럼.이유영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전생으로부터 현재까지 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그건 이유영 본인만 알고 있었다.지금 모든 것이 변했다.전생으로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이 변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바로 소은지였다.전생에 있을 때, 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에 있어서 유일한 기둥이었다. 그리고 현재에서도 소은지는 여전히 그랬다.“그래. 은지는 소중해! 은지라는 존재는 내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다 초월했어!”그리고 강이한도 초월했다.강이한은 당연히 이유영의 뒷마디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그의 눈 밑은 점점 더 무겁고 어두워졌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의 뿜어내는 기운도 점점 차가워졌다.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얼기설기 얽혀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숨 막히게 했다. 그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 봐 심지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마주 보고 있었다.지잉 징잉.핸드폰 진동 소리가 이 상황을 끊어버렸다.강이한은 핸드폰을 꺼내서 보자 화면에는 지음 두 글자가 떴다. 이유영도 그걸 봤다.원래 차가운 기운을 뿜던 이유영은 지금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은지가 내 마음속에서 중요한 정도는 아마 한지음이 당신 마음에서 중요한 정도랑 같을 거야!”“...”이 말을 듣자, 강이한은 저도 모르게 몸이 섬뜩했다.이유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분노가 그득했다.“당신은 지음이 내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데?”이유영에게 되묻는 강이한의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이유영이 한 첫 번째 일은 안민을 회사로 부른 것이었다.지금 창문 앞에 서 있는 이유영은 온몸에서 무겁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안민은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그래서 안민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바짝 긴장했다.“안민 씨.”“네.”“안데스의 여섯째 도련님과 약속을 잡아 주세요!”안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은 안데스 가문의 여섯째 자식 안데스 명이었다. 파리에서는 다들 그를 여섯째 도련님이라고 불렀다.그리고 이 여섯째 도련님의 존재는 안데스 가문의 기타 몇 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이유는 그의 손에 갖고 있는 물건은 다른 사람들이 비할 수 없었다.심지어 외삼촌도 그를 만나면 그에게 예의를 갖춰야 했다.이것도 그 당시 이유영이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과 합작한다고 했을 때 외삼촌이 뿌듯해하면서도 걱정했던 이유였다.뿌듯한 건 이유영이 독립적으로 그렇게 큰 프로젝트에 합작한 것이었고, 걱정스러운 건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은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여섯째 도련님을 아는 사람들이 그에게 남긴 평가는 다 한가지 뿐이었다. 마음이 독하다는 것이었다!이때 이유영은 심지어 마음속으로 소은지가 건드린 사람이 제발 여섯째 도련님이 아니기를 속으로 기도했다.만약 소은지가 건드린 사람이 진짜 여섯째 도련님이라면, 강이한이 왜 자기에게 내가 상관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지 이유영은 대충 알 것 같았다.만약 진짜 여섯째 도련님이라면...여기까지 생각하자 이유영은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반 시간도 안 지나 안민이 보고하러 왔다.“대표님, 안데스 여섯째 도련님은 지금 퀘벡에 계시는데 한 3일 뒤에 돌아오신 답니다.”“3일?”“네! 3일이랍니다!”3일...‘퀘벡에 있다고?’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지가 엔데스 가문 사람한테 당할 것을 생각하면, 3일은 말할 것도 없고 3시간이라고 해도 이유영은 걱정이 되었다.단서를 찾지 못했을 때 이유영은 끊임없이 단서를 찾아 헤맸고, 지금 아주 힘들게 단서
“당신 그게 무슨 뜻이야?”“소은지는 엔데스 가문의 여섯째 도련이 데려갔어. 여섯째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도 알잖아. 응?”“...”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숨결이 조금 거칠어졌다.박연준을 보고 있으니, 가슴은 참지 못하고 벌렁벌렁했다.“당신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이유영은 자기 자신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낮은 목소리로 더듬으며 물었다.‘루이스가 단서를 이제 얻었는데 연준 씨가 여기로 왔다고?’‘아니면 연준 씨도 강이한처럼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그럼 쭈욱 나만 몰랐던 거네?’‘이 사람들...!’“쭉 알고 있었어요!”“당신...”“유영 씨, 소은지 씨가 당신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저도 잘 알아요.”소은지를 위해서라면 이유영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강이한뿐만 아니라 박연준도 잘 알고 있었다.정국진도... 알고 있다.이유영은 눈앞의 남자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원래도 잘 몰랐는데 지금은... 더욱 모호해졌다. 그리고 이유영은 이런 모호함이 싫었다.주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이유영도 그랬다!이유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박연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나뿐만 아니라 강이한도 알고 있고 당신 외삼촌도... 알고 있어!”“외삼촌?”“당신 외삼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처음부터라면 언제를 말하는 거지?’소은지가 실종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외삼촌은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이유영은 질식하는 것만 같았다.‘다 알고 있었어. 소은지가 뭘 겪었는지 다들 알고 있었어!?’‘은지가 그 사람 곁에 있는 걸 알면서, 심지어 언제든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왜 결국 그 누구도 나한테 안 알려줬어?’이유영은 가슴이 끊임없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당신들이 나한테 숨겼던 이유가 이거였어?”“유영 씨, 엔데스 가문이 파리에서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요!?”그랬다. 이유영도 다 알고 있다.‘그런데 그렇다고 해서?’이
박연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 조금 더 진지해졌다. 그는 다시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차가운 손끝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말했다.“루이스가 이전에 소은지를 조사할 때 그녀의 모든 작업 흔적이 지워졌다고요?”“이걸 어떻게 알았죠?”“유영 씨...!” “연준 씨, 내가 말했었죠?”“뭐라고요?”“당신 사람들을 내 주변에서 철수시키라고!” 이렇게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것은 이유영에게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박연준은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심지어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박연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 속에는 습관적인 애정이 담겨 있었지만 그 애정은 너무 깊고 깊어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유영은 그런 느낌을 매우 싫어했다. 박연준이 말했다.“그가 있는 상황에서는 안심할 수 없어요!” 그는 강이한이다! 이유영이 말을 하기 전에 계속해서 말했다. “왜 그날 그렇게 극단적인 날씨 속에서 운전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는지 생각해 봤어요?” “당신...” 이유영은 놀라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명히 믿기지 않았다. 그날 길에서 그녀는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앞에 깜빡이는 차 한 대만 보였다. 그 차는 그녀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그녀는 그 깜빡이를 따라 계속 갔다.도원산 갈림길에서 그 차는 다른 길로 떠났다. 그녀는 그 차가 같은 길을 가는 줄 알았다. 그저 차에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깜빡이를 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박연준의 말을 듣고 이유영의 마음 속 모든 거부감이 그의 한 마디로 순간적으로 해소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게 하는 건, 나는...”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한 적이 있나요?” “없어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면적인 감시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그녀의 위험을 피하게 해주었다. 청하시에 있을 때와는 달랐다. 청하시에 있을 때마다 위험에 처하면
“생각났어요?’“그래요, 그녀는...” 육씨 가문의 둘째 아들과 이혼했고 소송에서 져서 자살했다고한다!?이유영은 그때 일이 청하시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고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순간, 이유영은 기억해냈다.당시 설선비 남편의 대리 변호사가 바로 소은지였다는 것을!“...”그 소송 때문에 설선비가?“설선비와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은 어떤 관계죠?” 그녀는 유씨 가문의 며느리 아니었나?박연준은 충격받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은 청하시에서 공부한 적이 있고 설선비는 그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예요.”이유영이 말했다.“...이럴 수가!”“결국 어떤 이유로 약속된 시간에 돌아오지 못했고 설선비는 그의 진짜 신분을 모른 채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기다림에 지쳐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요. 죽을 때까지도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이유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조여 왔다.“사실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발목이 잡힌 거였어요?”“네.”이제 이유영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말할 필요도 없지, 이건...!설선비는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의 마음속에서 마치 강이한 마음속에 있는 한지음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대체할 수 없다.강이한조차도 한지음을 위해 그녀를 감옥에 보낼 수 있었는데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이 마음속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소송에서 패한 소은지를 어떻게 대할지...이제야 알겠다!이유영은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왜 매번 강이한이 보여준 사진들이 그렇게 끔찍했는지를.그것들은 모두 소은지가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의 옆에 있는 실제 모습이었다.지금 그녀는...!생각할수록 이유영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 왔다.“유영 씨, 이 일은 당신이 관여할 수 없어요, 알겠어요?” 박연준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렇다, 그녀는 관여할 수 없다.특히 지금 일의 전말을 알고 나니 이유영은 더더욱 이 일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강이한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안에 있는 장면을 보고 동공이 수축되고 분노가 온몸을 불태웠다...!가슴은 끊임없이 요동쳤다!“이유영.” 이 세 글자는 거의 이를 갈며 말했다.이유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의식적으로 박연준과 거리를 두었다.박연준은 고개를 돌려 강이한을 바라보며 깊은 눈빛 속에 도전적인 기운이 스쳤다.본래 화가 나 있던 강이한의 눈은 지금 더욱 타오르는 붉은 빛으로 가득 찼다.“연준 씨, 먼저 돌아가요!” 이유영이 일어났지만 머리가 아파왔다.강이한은 한지음을 찾으러 간 게 아니었나? 잠깐... 그녀의 이 생각은 왜 자신이 정말로 훔친 것 같은 느낌이지?젠장!박연준은 이유영을 곤란하게 하지 않고 일어나며 이유영을 한 번 돌아보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는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까 한 요청을 고려해볼게요, 그리고 나에게 어떤 보답을 줄지 생각해봐요.”이유영의 가슴이 순간 조여 왔다.박연준이 보답을 요구했지만 그가... 어떤 보답을 원하고 있는지는 둘 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대답할 틈도 없었다.강이한이 들어와서 박연준의 손을 그녀의 머리에서 떼어냈다. “그녀가 너에게 원하는 유일한 건 네가 꺼지는 거야!”“강이한!”이유영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지금 그녀는 단순히 머리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강이한을 여덟 조각으로 찢어버리고 싶었다!이 죽일 놈의 남자는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가슴이 계속해서 요동쳤다!이 순간의 상황은 전례 없는 혼란스러움이었다.박연준은 늘 엄숙한 남자였지만 이 순간에는 그는 강이한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더 나가길 원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말하자면, 박연준이 이렇게 직설적인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반격하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그리고 그는 놀라운 말을 남기고 떠났다.남겨진 혼란은 이유영이 직접 수습해야 했다.사무실에는 이유영과 강이한 둘만 남았다. “따닥따닥” 이유영은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별과 바다처럼 광활했다.깊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이유영은 그의 손목을 잡고 강력한 맥박을 느끼며 그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강이한은 그녀를 놓았다.그의 눈빛 속 탐구심은 더욱 짙어졌다.정말, 그녀일까?여기에 온 이후로, 다시 그녀를 만난 이후로... 그녀의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았다.모든 것이 변했다, 더 이상 다른 세상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그녀도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이라면 현재 그녀의 변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그녀가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이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유영이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이라면...!그렇다면 그들 사이의 갈등과 간격은 더 깊어지고 더 이상 넘을 수 없게 될 것이다.“이유영.”“뭐?”“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질문을 할 때, 강이한은 계속해서 이유영의 눈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그는 다시 실망했다.이유영은 무심하고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것 같네!”부활?아니, 바로! 환생했기 때문에 사람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강이한은 그녀의 눈 속에서 실망만을 보았을 뿐 더 이상의 것은 없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몇 번이나 깊이 숨을 들이쉬며 가슴 속의 무거움을 억눌렀다.더 이상 그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다.그대신 물었다. “너와 박연준이 방금 무슨 얘기를 했어?”이유영과 박연준 사이의 장면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박연준이 떠나기 전 이유영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그는 무엇을 고려하겠다는 걸까?소은지의 일을 고려하는 걸까?그러나, 그가 원하는 보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명백하다!눈에 차가운 기운이 퍼졌다.날카로운 강이한은 단시간에 그 이유를 간파했다.박연준 이자식...!이유영이 말했다. “너와 상관없어!”그래, 이제는 상관없다.이전에는 그들의 얽힘이 본래 소은지 때문에 시작되었고 이제는.. 소은지로 인해 끝
위험할 거라는 그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엔데스 신우를 바라보았다.“신우 씨가 정씨 가문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않았어도...”이유영의 말끝이 흐려졌다.차는 이미 백산 별장에 도착해 있었고 이유영은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하지만 곧장 들어가지 않고 등진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지우고 싶던 기억들이 밀려왔다.강이한과 함께했던 너무나 찬란하고 아팠던 순간들 말이다.한지음 이후로 그녀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이었다.숨을 크게 들이쉬며 가슴속의 무거움을 억눌렀다. 이 밤하늘 속 별빛조차 오늘은 감당하기 힘들었다.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알고 있다면 저한테서 멀리 떨어져 계세요.”“...”그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유영은 이미 저 멀리 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작은 체구에 하이힐을 신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았지만 그녀의 등에는 증오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엔데스 신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이내 눈빛이 변했다.복잡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날카롭고 위험한 기운이었다.“민성아.”“네, 도련님.”“예전 강씨 집안에 있을 때 교양 있고 품위 있었다는 사실, 확실해?”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지금의 이유영은 '교양'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자료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조사 결과대로라면 그녀의 내면에는 아마 맹수가 숨어 있는 거라고 신우는 생각했다.겉모습은 순진해 보였지만 박연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조사 결과를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후회돼.”“뭐가요?”운전석의 윤민성이 놀라서 물었다.그가 생각한 셋째 도련님의 사전에는 '후회'라는 단어가 없었다.그렇기에 후회된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곧 엔데스 신우는 짧게 덧붙였다.“로한에게 서둘러 진행하라고 해. 난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내려 했다.“놔줘요.”그러자 엔데스 신우가 조용히 말했다.“늦었어요. 제가 바래다줄게요.”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오늘 그의 차에 타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유영은 급히 대답했다.“혼자 갈 수 있어요.”예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에도 그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지금은 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남자는 손에 힘을 더 주며 이유영을 자연스럽게 차에 태웠다.“제가 말했잖아요...”“늦었어요. 여자 혼자 집에 가게 하는 건 신사의 예의가 아니죠.”“엔데스 가문에 신사가 있다고 생각하세요?”이유영은 날카롭게 받아쳤다.엔데스 가문에 대한 반감은 소은지 때문이었을 것이다.지금 눈앞의 엔데스 신우까지 더해져 이유영의 마음속 엔데스 가문 남자들은 모두 막무가내로 보였다.특히 그녀가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다섯째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엔데스 예준의 강렬한 기운은 단번에 각인되었다.“제 차가 싫다면 택시를 불러드릴게요. 그럼 좀 안심이 되겠어요?”남자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는 듯 말했다.“...”그런 굴욕적인 제안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혼자 갈 수 있어요.”시력은 되찾은 그녀는 지금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었다.결국 그녀는 남자의 차에 올랐다.차가 출발하자 남자는 조용히 서류를 꺼내 펼쳤다.좁은 공간에 정적이 흘렀고 백산 별장이 가까워질 즈음, 이유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엔데스 신우가 옆자리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엔데스 신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꼭 그 사람과 이혼해야 할까요?”“아직 마음이 있는 모양이네요.”그 말투엔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며 있었다.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아직 마음이 있냐는 그의 말을 들은 이유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