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의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소외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그 순간, 다잡을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강이한의 마음은 이유 없이 갑자기 당황했다.“재욱 씨더러 아이를 데려가게 하라고? 당신은 나더러 평생 외롭게 지내라는 말이야? 아니면 나더러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는 잊으라는 말이야?”이유영은 지금 강이한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글자마다 무형 속에 엄청나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강이한이 되물었다.“당신, 그게 무슨 뜻이야?”그 순간, 강이한은 무엇인가를 의식했다.이유영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 이름 모를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이유영은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생에 당신은 내가 당신 아이를 낳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그렇게 많은 약을 먹으면서까지 그렇게 노력한 게 강씨 가문의 대를 이어주려고 한 것인 줄 아는 거야?”“유영아!”“난, 난 그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뿐이야.”강이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랬지. 유영이는 엄마가 되고 싶어 했지.’그 당시, 강이한은 줄곧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고통스럽게 쓰디쓴 약을 한 그릇 한 그릇 먹는 것을 강이한도 보았다. 그녀는 약의 쓴 냄새가 싫어서 먹을 때마다 미간이 한데 찡그려져 있었다.그때, 강이한은 이유영의 그런 모습들이 보기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녀더러 먹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아이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견지하였다.안타깝게도 그 아이의 출생은 너무나도 잔인했다.“내가 어렵게 임신한 아이였는데 난 한지음의 입에서 그 자인한 소식을 들었어. 강이한, 넌 정말 지난번 생이랑 바뀐 게 일도 없구나!”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강이한이 전생부터 온갖 고생을 거쳐서 이번 생까지 이유영을 찾아온 것을 알면, 그가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런 줄 알 것이다.하지만 전혀 모를 것이었다.강이한은 자기를 감동하게 한 줄 알겠지만... 그는 다만 마음속에 내키지 않는 게 있는
“그때 그 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게다가 출산조차 힘들어졌는데 당신은 어떻게 내가 어렵게 낳은 그 아이를 보내버리라고 말할 수 있어!?”“안 보내도 돼. 안 보내도 돼.”강이한은 앞으로 다가와 단번에 이유영을 와락 품속에 안았다.강이한의 품이 닿는 순간, 이유영은 그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떨림은 그녀에게 정말 아니꼬웠다.“보내지 말자.”그는 무의식적으로 두 팔에 힘을 주어 꽉 끌어안았다.“당신은 지금 상황이 우습지도 않아?”“유영아.”“우리 두 사람, 더 이상 우리 둘의 아이를 가질 수도 없어. 근데 당신은 날 곁에 두어서 뭐 해?”“유영아...”“한지음의 아이, 서재욱의 아이. 하하!”“그만 말해. 입 다물어. 그만 말하라고!”강이한은 지금 매 한마디가 다 너무 귀에 거슬렸다.마음이 아픈 나머지 그는 숨 쉬는 것마저 버거웠다.“당신은 아이의 새아버지가 되는 게 좋겠지만 나는 새엄마가 되기 싫어.”“유영!”한지음 딸의 일에 대해서, 이유영은 어느 때든지 물론하고 다 시종 이런 태도를 견지했다.그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이유영의 이 말을 들은 강이한은 가슴이 더없이 답답해졌다.“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응?”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계속 얘기하면 안 되었다.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 것은 이렇게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줄곧 이유영더러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만 했지, 전생의 그녀가 이렇게 힘들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유영의 짧은 몇 마디에서 강이한은 그녀가 전생에서 받은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다.이유영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강이한은 알 수 있었다.하지만 한지음에 대해...“유영아, 그 얘기는 일단 그만하자. 응?”너무 조급했다.전에는 강이한이 너무 조급하게 몰아붙였다.그 상처들은 아마 아직도 이유영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그녀더러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유영은 강이한의 품에서 그의 떨림을 느
이유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응.”“그놈은 정말 못하는 짓이라고 없네! 난 심지어 그런 생각까지 했었어. 그 당시 그놈이 너를 아꼈던 감정들은 도대체 다 뭐야?”그랬다. 아꼈었다.그때 강이한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 건 이유영에 대한 아낌이었다.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 감정들은... 다 우습기만 했다.우습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그런 아낌은 한지음이 나타나기 전까지였다.그리고 한지음이 나타난 이후로 모든 것들이 다 변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요즈음 네가 사교계에서 엄청나게 얼굴을 잘 드러내던데.”이유영이 말했다.맞는 말이었다. 엔데스 현우와 결혼한 뒤로, 소은지는 재빨리 사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게다가 이유영은 소은지와 설유나 사이에 있었던 일화도 전해 들었다.소은지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맞아.”“예전에 넌 이런 것들을 안 좋아했잖아!”“앞으로는 좋아하게 될 거야.”소은지가 대답했다.예전에 싫어했던 건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에 상류사회 사람들의 행위를 이해할 시간도 전혀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럼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선 위치에 맞게 일을 해야 했다.“설유나가 입원했어.”이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자기가 알고 있던 소식을 소은지에게 말해주었다.하지만 소은지는 전부 알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었다.“나도 알고 있었어!”“그럼, 여섯째 도련님 쪽은?”소은지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들은 이유영은 아주 자연스럽게 순식간에 포인트를 잡아냈다.‘설유나가 입원한 건 아마 은지와 상관이 있을 가능성이 아주 커.’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이유영의 심장은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그 사람? 하!”엔데스 명우의 얘기가 나오자, 소은지는 냉소를 지었다. 마치 엔데스 명우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말했다.“유영아. 난 네가 내 걱정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랑 그 사람은... 내가 현우 씨와 결혼한 순간부터 이미 대립 면에
뜨거운 찻물이 피부에 닿으면서 가슴 저리는 아픔을 느꼈다. 하지만 소은지의 눈빛은 그저 그렇게 뚫어져라 배천명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넌 내가 일곱째 사모님인 거 알고 있네?”“일곱째 사모님...”“꺼져!”소은지는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름이며 싸늘하게 두 글자를 내뱉었다. 동시에 아주 짙은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배천명은 잠시 넋이 나갔다.비록 전에 엔데스 명우의 곁에 있었을 때도 소은지가 여러 차례 여섯째 도련님한테 반항하는 것을 보아서 그녀의 성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정도로 성격이 나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꺼져라는 두 글자는... 절대 엔데스 가문의 여인한테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일곱째 사모님,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일곱째 도련님을 위해...”“아직도 헛된 꿈을 꾸고 있네!”배천명의 말은 다시 소은지 때문에 끊어졌다. 지금, 이 순간 소은지는 아니꼬운 눈빛으로 배천명을 바라보고 있었다.배천명은 어안이 벙벙했다.‘꿈을 꾼다고? 누가...?’배천명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소은지는 비꼬면서 웃으며 말했다.“다들 이젠 어린아이들도 아닌데 설마 여섯째 도련님은 아직도 소문 속에 자기랑 일곱째 도련님이 사이가 좋다는 것을 믿고 있는 건가?”이 말을 듣자, 배천명의 안색은 순간 확 변했다.소문이라는 두 글자가 세게 그의 신경을 자극한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것들이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은지가 엔데스 현우와 결혼한 후로 두 형제의 사이는 금세 긴장해졌다.조금 전 배천명은 소은지더러 엔데스 현우의 체면을 생각해 여섯째 도련님한테 너무 강경하게 맞서지 말라고 망상이 담긴 말을 했다.소은지는 자신의 손톱을 어루만지면서 배천명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거의 죽어가?”말투는 유달리 각박했다.배천명은 침묵을 지켰다.소은지는 계속해서 말했다.“죽어도 사실 별로 나쁠 게 없지.”“일곱째 사모님!”“난 한 번도 그 여자를 살려주겠다고 약속
바닥에서 매를 맞고 있는 배천명을 보고 있으니 그 순간 이유영은 마치 엔데스 명우를 본 것만 같았다.소은지는 막연하게 몸을 일으켜 서면서 말했다.“죽도록 패지는 마세요.”“네.”그러고는 몸을 돌려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소은지는 뒤의 혼란한 상황을 뒤로 한 채, 그저 그렇게 자리를 떴다.한때 그녀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 바로 이런 장면이었다. 세력을 믿고 함부로 하는 짓은 그녀의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지금, 엔데스 명우의 사람만 보면 그녀는 그들을 패버리고 싶었다.설유나의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엔데스 명우는 온몸에 중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돌아온 배천명에게 눈길을 한번 주고는 또 그의 몸 뒤를 한번 보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어떻게 된 일이야?”“오기 싫다고 하셨습니다.”배천명은 소은지를 위해 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그러자 엔데스 명우의 별로 안 좋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으며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음흉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오기 싫다면 다야?’“너 언제부터 이렇게 쓸모가 없어졌어?”상처투성이인 배천명의 모습을 보며 엔데스 명우의 말투는 더욱 차가워졌다.배천명은 공손하게 고개를 떨구었다.그의 몸에 있는 상처들은 더구나... 지금 파리에서의 여섯째 도련님과 일곱째 도련님의 관계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만약 예전에 이미 소은지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사이였다고 하면 지금은 더욱... 세게 붉히는 것이었다.“명우 오빠.”병실 침대 위의 설유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짧디짧은 시간에 그녀의 입술은 이미 말랐다.사실 설유나의 병은 더욱이 음식을 조심해야 했으며 평상시에도 보양에 주의해야 했다.게다가 사교 연회의 어떤 것들은 그녀에게 적합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엔데스 명우 곁의 여자라는 입장을 굳히기 위해, 중요한 연회가 있을 때마다 꼭 따라가곤 하였다.하지만 설유나의 몸이 이렇게 빨리 악화할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도 당황했다.“괜찮아.”
저녁 식탁에서 이유영은 조용히 국을 먹고 있었다국물의 맛은 정말... 별맛이었다.아마도 이유영이 아침에 성질을 부린 것 때문인지, 강이한은 그 뒤로 주방한테 최대한 이유영이 좋아하는 것들로 하라고 시켰다.“온유야, 왜 그래?”이온유가 시무룩해하는 것을 본 강이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특히 그동안 아이가 밥을 먹을 때의 습관에 대해 강이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지금 이렇게 밥을 먹고 있는 것은 분명 오늘 저녁의 음식들이 입맛에 안 맞아서였다.“먼저 좀 먹어봐.”“네.”이온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눈빛이 쌀쌀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비꼬면서 말했다.“두 사람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역겹네!”“...”“...”그 순간 강이한의 안색은 확 어두워졌다.비록 오전에 나눴던 얘기들 때문에 강이한은 마음속으로 이유영이 조금 안쓰러웠지만 그녀가 이온유의 면전에 대고 대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강이한은 마음이 어느 정도 불편했다.“어떤 사람은 참 가식을 잘 떤다니까. 그 사람과 같은지 모르겠네?”강이한이 말이 없는 것을 보자 이유영은 더욱 세게 비꼬면서 말했다.이에 강이한은 정말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젓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힘이 조금 셌기에 그 누가 들어도 강이한이 화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빠.”이온유는 나지막하게 강이한을 부르며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강이한은 고개를 숙여 국물을 먹고 있는 이유영을 한 눈 보고는 이온유에게 말했다.“아빠가 우리 온유 데리고 나가서 먹을까?”말을 마친 뒤, 그는 아이를 확 일으켜 세웠다.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피식 웃었다.‘어디서 좋은 아버지 행세야? 참 잘 놀고들 있네.’강이한은 이유영을 보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 이때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그는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식탁에 이유영 혼자만 남았을 때, 그녀의 입맛은 오히려 더
‘한번? 무슨 말이지?’분명한 건 이유영은 정국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하지만 그녀가 모르게... 사실 아주 일찍이 이유영이 퀘벡으로 갔었을 때, 강이한은 무슨 방법을 써서인지 모르게 비밀리에 정국진과 협의를 달성하였다.하지만 그때 강이한이 한 말들은 정국진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국... 정국진은 이번 한 번만 봐주겠다고 약속하였다.만약 이번 한 번의 시도 끝에 성공을 이루지 못하면 그럼 그는... 앞으로 더 이상 이유영에게 집착하지 않겠다고 했다.“아빠...”“됐어. 난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어. 나중에 봐!”이유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정국진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 안에서 뚝뚝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이유영은 제자리에 앉은 채 오래도록 정신을 되찾지 못했다.‘두 사람...’탈칵 도어록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이유영은 순간 정신을 다잡았다.고개를 돌려보니 강이한이 온몸의 기운을 짓누른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저녁 식사 자리가 불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온 하루 세 끼에서, 아침은 이유영 때문에 난리가 났고 점심때 강이한은 이온유를 데리고 그냥 밖에서 먹었다. 온 하루가 지나 이유영의 기분도 조금 괜찮아졌을까 했는데 결국 저녁에도 그는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외식했다.어찌 됐든 하루라는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다...“우린 꼭 이렇게 지내야 해?”강이한은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앞에 웅크리고 앉더니 그녀의 차가운 손을 끌어 잡았다.그는 말하면서 얼마나 자신의 불쾌함을 애써 억눌렀는지 모른다.이유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자기 앞에 웅크리고 앉은 강이한을 보며 자신의 손을 따뜻한 그의 손에서 빼내려고 했다.하지만 강이한은 손에 힘을 더 꽉 주었다.“다 당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이유영은 냉랭하게 말했다.맞는 말이었다.두 사람은 원로 서로를 간섭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서 누구도 상대방에게 영향 주지 않아도 되었다. 강이한이 이온유의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해
이 말이 끝나자, 이유영의 눈빛에는 짙은 위험한 기운이 퍼졌다.“내가 도원산으로 왔다고 해서 당신이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그녀는 이를 악물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전화 안의 사람은 마치 그녀의 감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만 같았다.“내 목적은 당신이 생각해야 할 바가 아니야. 당신은 그 서류나 빨리 찾아!”말투에는 온통 위험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핸드폰을 부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 전 상대방이 한 말이 떠올라 늠름한 말투로 물었다.“그 애가 열이 난 것도 당산과 연관이 있어?”“추측해 봐!”“난 이런 질문 놀이를 하나도 안 좋아해!”이유영의 말투는 더욱 심각해졌다.전화 안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안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자신감이 없는 거야?”“난 당신처럼 아이조차 가만히 놔두지 않는 변태가 아니야!”비록 그녀는 마음속으로 한지음을 지극히 미워했고 이온유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건 엄마인 그녀가 한 아이를 무정하게 이용하고 상처를 줄 수 있게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아니야!”“당신이랑 상관이 없어야 할 거야. 아니면...”여기까지 말한 이유영은 잠시 멈칫하였다. 동시에 그녀의 눈빛은 더욱더 싸늘해졌다.전화 안에서 남자의 그윽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당신 한 가지 잊고 있나 본데, 당신은 나랑 조건을 따질 권한이 없어!”“...”‘권한이 없다고?’그랬다. 그녀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강이한의 마음속에서 그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유영은 줄곧 잘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순간... 공기는 조용해졌지만, 그녀의 삶은 오히려 엉망이 되어버렸다.‘박연준이...’그랬다. 방금 이유영과 통화한 사람은 박연준이었다!이유영이 박연준과 사이가 틀어진 뒤로, 두 사람은 이런 관계가 되었다.이유영은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눈망울은 반짝거렸다. 마치 얼음이 빛에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박연준은..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