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의 달달한 아내 사랑: Chapter 3911 - Chapter 3920

3999 Chapters

제3911화

아무래도 친누나라서, 입으로는 투덜대면서도 속으로는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다. 이에 유민은 마침내 양보했다.“내가 방법을 좀 생각해 볼게.”그 한마디에 유진은 모든 일이 해결된 듯 안도하며, 기쁜 마음에 유민의 어깨를 말했다.“역시 내 동생, 네가 못 하는 일은 없지. 이 은혜는 내가 꼭 기억할게!”유민은 차분히 문제집 위에 보조선을 그으며 대꾸했다.“너무 좋아하지 마. 방법을 생각해 본다고 했지, 꼭 된다고는 안 했어.”“난 널 믿어!”유진은 아양을 떨며 유민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그러다 책상 위 문제집에 눈길이 갔다.고등학교 수학 올림피아드 전국 결승 문제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이에 유진은 말끝을 잇지 못하다가 목이 메 기침까지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이건 소희한테 가서 배우는 게 낫겠어.”이에 유민은 유진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 다시 자기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여자는 눈치껏 얼른 방을 빠져나갔다.심씨그룹.심명은 오전 10시에야 회사에 도착했다. 회장실 구역에 들어서니, 응접실 문이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심명의 아버지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듯했다.“무슨 일이죠?”흰 셔츠에 검은 재킷 차림, 손에는 커피잔을 든 심명의 얼굴은 요염한 기운을 풍겼다.그 얼굴에 사무실 여직원들의 마음이 괜스레 흔들렸다.그중 한 명이 서둘러 대답했다.“임씨그룹 사람이 오셨어요.”이에 심명은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임씨그룹?”“임씨그룹 사장의 비서, 백구연씨요.”여직원은 심명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도 떨렸다.심명은 귀에 낀 은빛 귀걸이를 손끝으로 한번 만지더니 응접실을 흘낏 보고는 비죽 웃었다.응접실 안에서는 구연이 프로젝트 자료를 책상 위로 밀어놓고 있었다.“회장님, 이번 프로젝트는 심씨그룹이 가장 적합해요. 양사 간 협력은 반드시 윈윈이 될 겁니다. 서로에게 이익만 있지 손해는 없습니다.”심문석은 자료를 들춰 보며 미소를 지었다.“이건 임구택 사장의 뜻이겠죠?”이에 구연은 담담히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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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2화

심명은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구연 씨, 지난번에 우리 다시는 안 본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구연은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다.“알고 보니 도련님이셨군요. 몰라뵈었네요.”심명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고 구연을 지켜봤는데, 마치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듯했다.구연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딱딱한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저는 회장님을 뵙고 업무 이야기를 나누러 온 거예요.”심명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우리 그룹하고 임씨 그룹은 원래 사업적 교류가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로 우리 아버지를 찾아온 거죠?”“아니면 혹시 구연 씨가 날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가까이 다가오려는 거 아닌가요?”심명의 자만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며 구연은 심호흡을 하고 침착하게 대꾸했다.“원래부터 교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모님이 오신 뒤로 두 집안의 거래가 점차 끊긴 것뿐이죠.”“하지만 저는 사적인 감정이 회사 일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심명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서서히 웃음을 지었다.“옳은 말이에요. 구연 씨는 정말 안목이 높고 사사로움이 없네요. 그러니 임구택이 널 중히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그 안목과 기개라면 나도 다시 보게 되네요.”구연은 서류를 두 손으로 들고 꼿꼿이 선 채로 답했다.“과찬이세요. 전 단지 비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거든요.”심명은 입술을 비웃듯 말아 올렸다.“우리 회사에 구연 씨 같은 비서가 있다면, 임씨그룹 쯤은 금세 넘어설 수 있겠는데요? 차라리 우리 쪽으로 오지 그래요? 연봉은 두 배로 주죠.”구연은 담담히 말했다.“죄송해요. 저는 당분간 임씨그룹을 떠날 생각이 없어서요. 그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아쉽네요.”심명은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어투로 중얼거리자 구연은 고개를 숙였다.“이제 돌아가서 사장님께 보고드려야 해서, 먼저 실례할게요.”구연이 자리를 떠난 뒤, 심명은 손에 쥔 라이터를 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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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3화

서류에 필요한 결재는 계속 미뤄져 도무지 진행되지 않았다.심씨그룹이 기다리게 되면 구연 역시 따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며칠 전 임원회의에서, 구연은 왜 이렇게 중요한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심씨그룹을 선택했는지 정중히 설명한 바 있었다.당시에는 찬성하는 이도, 반대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녀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며 반드시 순조롭게 진행하겠다고 장담했다.그러나 거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자, 사내에서는 벌써 수군거림이 돌기 시작했다.오후, 구연은 구택의 사무실에 서류를 전달하러 갔다. 노크 후 들어서자, 남자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구택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집에 안 오면, 난 어떻게 하라는 거야?”구택이 말하면서도 손에 든 펜은 무의식적으로 자료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애교 섞인 억양이 묻어났다.구연은 곧장 눈을 내리깔고 공손히 옆에 서서 기다렸다.구택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소희야, 내가 데리러 갈게.”전화 너머에서 소희가 무언가 말했는지 구택은 이내 물러서듯 답했다.“알았어. 대신 오늘 밤엔 일찍 자. 내가 메시지 보내면 바로 답해야 해.”구연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날씨가 변해,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밤이 깊어질수록 비는 더욱 거세졌다.흐릿한 빗물에 잠긴 도시는 네온 불빛에 물들어 환상적이면서도 어지러운 빛을 내뿜었다.블루드 꼭대기 층에서 심명은 큐대를 들고 있었다. 긴 거리의 당구 샷이 날카롭게 들어가며 3번 공이 정확히 포켓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검은 정장을 입은 매니저가 조심스레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도련님, 한 분이 찾아오셨어요. 성함은 백구연 씨라고...”심명은 상체를 조금 세웠지만, 여전히 시선을 당구대에 두고 있었다. 하얀 셔츠에 검은빛이 감도는 귀걸이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남자는 옅게 시선을 옮기며 차갑게 물었다.“내가 여기 있는 걸 누가 말했죠?”매니저는 황급히 대답했다.“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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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4화

구연은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 심명에게 내밀었다.“프로젝트 책임자가 계속 심명 씨를 찾지 못해 결재가 지연되고 있어요. 저는 심명 씨가 그저 놀기만 하는 한량이라 생각하지 않아요.”“다만 저를 싫어해서, 협력하기 싫어 일부러 피하는 거라 믿고 싶거든요.”비에 젖을까 세심히 신경 쓴 구연은 서류를 방수 봉투에 넣어 가져왔다.심명은 한눈만 주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받지 않았다.“내가 왜 구연 씨를 싫어하겠어요?”“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느낌일 뿐이죠.”구연은 스스로 비웃듯 말하면서도 서류를 꼭 쥐고 있었다.“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심씨그룹과 임씨그룹 모두에게 중요해요. 또한 저를 만나기 싫으시다면, 다른 담당자를 세워도 돼요. 다만 진행이 늦어지지만 않으면 되고요.”구연은 말을 마치고, 서류를 억지로 심명의 손에 쥐여주곤 돌아섰다. 빗속에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은 연약하면서도 굳센 의지를 드러냈다.심명은 서류를 받아들며 눈길을 어둠 속 어딘가로 던졌고, 입가에는 차가운 기색이 번졌다.다음 날 아침, 칼리는 출근하자마자 마음이 불안했다. 구택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다가 그만 손이 흔들려 자료를 더럽힐 뻔했다.칼리가 나가자 구연이 물었다.“괜찮아요?”이에 리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자리로 돌아온 칼리는 핸드폰을 꺼내 전날 보던 웹사이트에 다시 들어갔다. 잠깐 사이에도 댓글은 몇백 개나 늘어나 있었다.누군가 몇 장의 사진을 올렸는데, 그 속에는 심명과 소희로 보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블루드 정문 앞, 빛이 어둡고 두 사람은 우산을 들고 있어 얼굴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 속 여자의 풍성한 트렌치코트 아래 불룩한 배 때문에, 곧장 임신한 듯 보였고, 누군가 그게 소희라고 운을 떼자 모두가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킹, 즉 구택의 와이프이자, 성대한 결혼식의 주인공이었던 여자였기에. 원래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심명 역시 강성에서 이름난 인물이니 두 사람이 깊은 밤에 만났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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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5화

연희는 할 말을 잃은 듯 말없이 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소희는 의자에 앉은 채 손짓했다.“서 있으면 피곤하지 않아? 와서 앉아.”연희가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심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일어났어? 이 한심한 바람둥이야, 어젯밤 또 누구랑 만난 거야?]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연희는 화면을 읽더니 이마를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 소희를 바라봤다.“백구연이래.”소희는 미간을 올리며 중얼거렸다.“심명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연희는 당장 전화를 걸어 따져 물으려다, 갑자기 새 알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고는 웹사이트를 열어 확인하고는 놀란 듯 말했다.“백구연이 직접 해명 글을 올렸어!”구연은 성명문을 발표했다. 어젯밤 심명을 만난 건 자신이며, 임씨그룹과 심씨그룹의 협력 문제로 업무 차 찾아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늦어진 것뿐이라는 것이다.사진 속 인물이 임신한 것처럼 보인 건 바람에 코트 자락이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자신이 입었던 코트 사진을 함께 공개해 증거를 남겼다.사건은 단순한 오해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온라인에서는 아쉬움과 안도의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연희는 차갑게 입술을 굳히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사진을 흘린 게 본인일 가능성이 높은데, 정작 또 스스로 나서서 해명하다니.”소희는 성명문을 끝까지 읽은 뒤,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예전엔 나와 심명의 일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어. 하지만 이번 일은 그 추측을 공개적으로 꺼내놓은 거나 다름없어.”연희는 그제야 깨달았다.심명이 과거 소희를 쫓아다녔다는 사실은 이미 은밀히 알려져 있었지만, 모두가 뒷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의 입에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사진 속 여자가 소희가 아니라고 해명되었어도, 소희와 심명 사이의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정말 역겹네.”연희는 이를 악물었다.“네 남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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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6화

심명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경찰에 신고해요. 그리고 은행 계좌랑 최근 연락처 전부 조사하고요.”사람은 죽었지만 세상에 남긴 흔적까지 사라질 수는 없었다.“네!”부하들이 즉시 움직였고, 십여 분 뒤 조사하던 이가 돌아와 보고했다.“사망자는 오강주, 29세에 미혼입니다. 과거에는 네트워크 정보 엔지니어였는데, 온라인 게임에 빠져 퇴직한 후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부모는 일찍 이혼했고 모두 재혼해 각자 가정을 꾸렸습니다. 현재 혼자 살았고, 은행 계좌의 입출금 내역이나 최근 연락 내역에도 이상은 없었습니다.”심명은 소파에 앉아 손에서 라이터를 굴리며, 잘생긴 이목구비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이상이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잠시 후, 다른 이가 들어왔다.“도련님, 경찰이 도착했습니다.”경찰은 심명의 사람들에게 진술을 받고 현장을 살폈다. 법의학자가 검안하니, 사인은 분명 자살이었다. 사망 시각은 심명의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불과 5분 전이었다.시간까지 이렇게 정확히 맞춘 것에, 심명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이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소희야, 글을 올린 사람이 죽었어.”잠시 정적 뒤, 소희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움직임이 아주 빠르네.]심명은 낮게 당부했다.“배후가 심상치 않아. 너 조심해. 당분간은 절대 외출하지 마.”어제 심명은 누군가가 몰래 촬영했다는 걸 알고, 상대가 다음 행동을 취하기를 기다리며 뒤를 캐려고 했다. 오늘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자, 즉시 발신자의 IP를 추적시켰다. 본인은 현장에서 돈과 배후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예상 밖이었다. 상대는 이미 모든 걸 계획해 두었고, 심명이 도착하기 직전에 글을 올린 자를 자살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생각할수록 오싹했다. 죽은 자는 일도 가족도 없는 인물이었다. ‘어떤 협박을 받았기에 죽음을 선택했을까?’은행 내역도, 연락처도 아무 흔적이 남지 않았다.‘사람이 목숨을 걸 때는 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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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7화

심명은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옆에 던졌다. 차에 시동을 걸기도 전, 화면에 또 다른 메시지가 들어왔다.[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끝내고 곧 갈게, 기다려!]사망 사건은 경찰이 심명의 사람들에게 진술받고, 최근 인터넷에 떠돌던 뉴스와 관련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이어 사망자의 신원과 정보를 조사했으나, 자살의 정확한 이유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협박도 사주도 아니었고 타살 가능성도 배제됐다.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마도 죽은 자가 뒤늦게 임씨 집안을 건드린 걸 깨닫고, 임구택의 보복을 두려워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했다.결국 이 사건은 흐지부지 덮여 버렸다....심명은 소희의 조언을 떠올리며, 당분간 움직이지 않고 돌아가는 형세를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다시 구연이 찾아왔다.산악 모터사이클 경주.심명은 올블랙 레이싱 슈트를 입고 HP4를 몰아 트랙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레이서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그는 선두였다. 그러나 곧 검붉은 F4 한 대가 뒤를 바짝 추격해 왔다.두 대의 바이크는 굉음을 터뜨리며 산길을 가르며 내달렸다. 속도도, 기세도, 심지어 코너링 자세까지 똑같았다.푸른빛과 붉은빛이 공기를 찢으며 스쳐 가는 장면은 마치 극광이 번쩍이는 듯 강렬하고 눈부셨다.결국 심명이 3초 차로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남자는 바이크에서 내려 헬멧을 벗고,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막 도착한 여자를 바라봤다.구연 역시 가죽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매섭고도 당당한 자태였다.구연은 헬멧을 벗어 머리칼을 털어내며 진심 어린 감탄을 내뱉었다.“완전히 프로 수준이네요!”심명은 바이크에 몸을 기댄 채 헬멧을 끌어안고, 비릿하게 웃었다.“구연 씨, 설마 또 날 찾으러 온 건 아니겠죠? 서류 결재 때문이라든가.”“우연이에요.”구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믿지 않겠죠, 마치 그날 밤, 몰래 사진을 찍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처럼요.”심명의 입꼬리가 장난스레 비틀렸다. 구연은 곧장 휴대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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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8화

구연이 집으로 돌아오자 도우미가 말했다.“어르신께서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세요.”그러자 구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표정을 가다듬은 뒤,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재 안에서 백호균은 붓을 들고 화선지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여전히 날카롭고 힘 있는 궁서체에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은 웅장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구연은 한발 다가서며 말했다.“할아버지 글씨가 점점 더 훌륭해지셨어요.”백호균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흘낏 보고는 다시 시선을 글씨로 돌리며, 알 수 없는 어조로 물었다.“왜 심명을 찾아갔느냐?”구연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고 무심코 눈을 내리깔았다.서재의 창은 열려 있었고, 오후의 햇살이 비쳐 들어와 답답한 공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방 안은 고요했고, 붓이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흘렀다.오랜 침묵 끝에, 구연은 낮게 물었다.“할아버지, 제가 소희만 못한가요?”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한번 보면 잊지 않을 기억력, 어떤 걸 배우든 늘 상위권. 주변에서는 늘 칭찬과 부러움이 쏟아졌고, 구연 또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소희가 이룬 성과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면 자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백호균은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노려보았다.“오늘 심명을 만난 것도, 네 자신을 소희와 비교한 것도, 전부 어리석은 짓이야!”냉혹한 말은 뺨을 후려치는 바람 같았다. 구연은 곧 정신을 차리고, 곧장 허리를 펴며 공손히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그제야 백호균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가서 쉬어라.”구연은 더욱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네.”유진과 구은정의 약혼식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약혼식은 구씨 집안이 소유한 정원 호텔에서 열렸다. 강성에서 양대 최고 명문가로 꼽히는 두 집안의 혼사인 만큼, 오가는 손님들 또한 하나같이 신분이 남달랐다.오전 10시, 메인 파티장과 야외 정원에는 이미 귀빈들이 가득했고, 우아한 피아노 선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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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9화

현빈은 꾸밈없는 얼굴로 낮은 목소리를 냈다.“그러면 우리 어디 가서 기다리다가 의식 시작하면 들어올게요. 형님,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좋아.”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현빈은 이문과 다른 친구들을 불러 내려가 자리를 잡게 했다. 자기들 때문에 은정이 바쁠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다른 넓은 방 안에서는 소희와 성연희, 우청아, 유정 등이 함께 있었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유진의 화장과 의상 준비를 하고 있었다.오늘 유진이 입은 드레스는 새틴 소재의 순백색 드레스였다. 오프숄더 스타일에 어깨를 덮은 가벼운 흰 망사가 이어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와 쇄골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 허리는 잘록하게 조여 있었고, 치맛단은 겹겹이 흘러내렸으며, 허리 뒤에는 커다란 리본이 장식되어 있었다.정식 웨딩드레스는 아니었지만, 약혼식에는 더없이 잘 어울렸고, 순백의 색감은 유진의 기품 있는 기질과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순수하고 환한데다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유진은 긴장을 풀지 못해 연신 심호흡했고 휴대폰을 들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옆에서 유진을 바라보던 성연희, 우청아와 유정은 눈부신 그녀의 모습에 괜히 뭉클해졌다.이때 연희가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자기 딸이 다 자란 걸 보는 기분 아니야?”소희는 힐끗 그녀를 보며 답했다.“나랑 유진이는 동창이야.”연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래도 넌 유진의 숙모잖아.”소희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럭저럭 괜찮네.”유정은 컵에 물을 따르고 빨대를 꽂아 유진에게 건넸다.“너무 긴장하지 마. 힘 빼.”유진은 물을 받으며 물었다.“유정 언니, 언니는 오빠랑 약혼할 때 긴장 안 했어요?”유정은 웃음을 터뜨렸다.“물론 안 했지. 난 그때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어.”“뭔데요?” 유진이 눈을 반짝였다.“자기방어!” 유정은 진지하게 말했다.“혹시 전 여자친구들이 나타나서 술이라도 끼얹을까 봐, 아니면 더 무서운 걸 당할까 봐 늘 긴장했지.”“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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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0화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은정은 유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깊고도 단단한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수줍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자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은정의 손바닥을 살짝 긁듯이 스치며 기대어서고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오늘 정말 멋있어요.”은정은 유진을 이끌며 거칠게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늘은 너야말로 가장 아름다워.”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 은정을 바라봤는데, 평소 같으면 남자가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다.두 눈이 서로를 마주한 순간, 은정은 유진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마치 앞으로의 삶도 이렇게 꽉 잡은 채 함께 걸어가겠다는 약속처럼 말이다.유진은 조금 더 차분하게 행동하려 했으나, 입꼬리가 저절로 활짝 올라갔다. 그리고 그 기쁨을 억누르지 않고 모두에게 보여주었다.홀 안에는 양가 어른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임시호와 구은태는 나란히 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곧 구은태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우리가 진짜 사돈이 될 줄은 몰랐네!”임시호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이는 아주 훌륭한 아이야.”노정순는 눈에 가득 애정을 담아 말했다.“언제나 우리 유진이가 아직도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새 약혼을 하게 되다니.”그때 집사가 다가와 보고했다.“강재석 어르신과 도경수 어르신께서 도착하셨어요.”이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강재석과 도경수가 함께 와서 유진에게 기쁜 축하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상석으로 안내 받았고, 임시호는 유진과 은정이 두 어른께 차를 올리도록 했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응접실 안은 한층 더 즐겁고 따뜻한 분위기로 물들었다.시간이 되어 모두가 아래층 파티장으로 내려갔다.강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가 옆으로 오기를 기다린 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걸어 나갔다.“오늘은 사람이 많으니 특히 조심해. 피곤하면 언제든 쉬고.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어.”강재석이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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