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의 달달한 아내 사랑: Chapter 5391 - Chapter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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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1화

여자의 이름은 이하린이었다.서예 명문가 출신으로 올해 막 석사 과정을 마쳤다.이번 맞선 역시 할아버지가 직접 주선한 자리였다.이순철은 이름난 서예가였고, 김하운의 할아버지와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순철이 김하운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물었다.김하운의 할아버지는 손자가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그러자 이순철은 자신의 손녀가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해 연애를 시작할 나이가 됐다고 이야기했다.그렇게 두 노인은 금세 뜻이 맞았고, 이번 맞선을 성사시켰다.하린은 맞선을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부탁한 일이었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집에서는 늘 말 잘 듣는 손녀였으니 말이었다.오기 전 아래층에서 화판 하나를 사서 품에 안고 7층까지 올라왔다.중간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다.약속한 7층 카페에 도착한 하린은 화판을 내려놓고 커피를 주문했다.그리고 상대를 어떻게 정중하게 거절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어머니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목소리에는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하린아, 집으로 와. 맞선 안 봐도 돼.]갓 학업을 마친 딸이었고, 가장 빛나는 청춘을 이제 막 시작한 나이에 무슨 맞선이고 연애냐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었다.조금 더 자유롭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나 다만 할아버지의 뜻이라 어쩔 수 없이 보내긴 했을 뿐이었다.하린은 놀란 듯 물었다.“왜요? 할아버지가 마음을 바꾸셨어요?”[그건 아니야. 상대 쪽에서 지금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맞선을 취소했대.][듣기로는 얼마 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더라. 아마 아직 전 여자친구를 못 잊은 것 같아.]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추측하자 하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판을 안아 들었다.“그러면 저 바로 집에 갈게요.”하린은 커피를 포장해 달라고 부탁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집에 돌아온 하린은 곧장 할아버지의 서재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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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2화

김하운은 평소 작은 골목 거리 같은 곳을 거의 찾지 않았다.그날은 할아버지 부탁으로 19세기 I국 신고전주의 화집을 찾고 있었다.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린당서점이라는 서점을 발견했고, 직접 차를 몰고 찾아왔다.서점은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조명과 책장의 배치는 감각적이면서도 뭔가 깊이감이 느껴졌다.왼편에는 둥근 아치형 통창이 있었고, 창가에는 원목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다.테이블 위 꽃병에는 선명한 색의 거베라가 꽂혀 있었고, 창밖으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 어우러져 서점 전체를 편안한 분위기로 물들이고 있었다.서점 안에는 손님이 일고여덟 명 정도 있었는데 점장은 보이지 않았다.김하운은 책장에 붙은 분류표를 따라 직접 책을 찾기 시작했다.한참 책을 뒤적이던 순간,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김하운이 돌아보자 하린이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이에 김하운도 순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하린은 긴 머리를 굵은 땋은 머리로 묶어 앞으로 늘어뜨리고 있었고, 연노란 니트 셔츠 차림에 품에는 책을 여러 권 안고 있었다.또한 눈빛은 환한 기쁨으로 반짝였다.“정말 오빠였네요.”김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우연이네요.”하린이 환하게 웃었다.“우연은 아니에요. 이 서점, 제가 운영하거든요.”그러자 김하운은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책 사러 왔어요? 어떤 책 찾으세요? 제가 찾아드릴게요.”하린은 안고 있던 책을 옆에 내려놓고 소매를 걷어 올렸고, 김하운은 찾고 있는 책 제목을 말했다.“알아요.”하린의 눈빛이 생기 있게 빛났다.곧 하린은 김하운을 지나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더니, 잠시 후 가장 높은 책장에서 김하운이 찾던 책을 꺼냈다.크기도 크고 두께도 상당한 화집이라 김하운은 얼른 손을 뻗어 받아 들었다.하린은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칸쯤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그러고는 손을 툭 털며 웃었다.“이 책은 위에 오래 올려놔서 먼지가 좀 쌓였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깨끗하게 닦아드릴게요.”그녀는 금세 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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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3화

놀란 기색 속에서도 감춰지지 않는 반가움이 묻어났다.곧 하린은 책장 뒤편에서 걸어 나왔다.긴 머리는 느슨하게 하나로 묶여 있었고, 귀 옆에는 복슬복슬한 털 핀을 꽂고 있었다.풋풋한 소녀 같은 분위기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을과도 잘 어울렸다.하린은 김하운 맞은편에 앉았다.옥처럼 희고 맑은 얼굴 위로 황금빛 햇살이 내려앉았고, 귓불마저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생기 넘치는 눈동자가 김하운을 이리저리 살폈다.“오빠, 오늘은 정장을 제대로 차려입었네요?”김하운은 거래처를 만나러 온 길이라 깔끔한 정장 차림이라 평소보다 한층 더 차분하고 엄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곧 김하운은 담담하게 말했다.“잠깐 있다가 바로 갈 거예요.”하린은 김하운이 조용히 있고 싶어 한다는 뜻을 바로 알아차렸는지 시원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편하게 있어요. 저는 새로 들어온 책들 정리하고 있을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말을 마친 하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잠시 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오빠 드리는 거예요.”김하운은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하린은 다시 자기 일을 하러 갔다.새로 들어온 책들을 분야별로 책장에 꽂고, 손님들이 읽고 제자리에 두지 않은 책들도 하나하나 정리했다.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가 모든 일을 끝낸 뒤에야 자신의 소파에 앉았다.그러더니 화판을 꺼내 들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무슨 그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리 집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몇 번 붓을 움직이다가 한참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김하운이 떠날 무렵에는 하린이 소파에 기대 잠이 들어 있었다.한 손목으로 머리를 괸 채 긴 머리가 흘러내려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김하운은 일부러 깨우지 않고 읽었던 책 두 권을 들고 셀프 결제를 마친 뒤 조용히 서점을 나섰다....세 번째로 하린의 서점을 찾았을 때는 책을 사려는 것도, 우연히 지나가던 것도 아니었다.밤 9시까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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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4화

아마도 평소에도 자주 먹이를 챙겨 준 덕분인지, 고양이는 하린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가끔 고개를 들어 몇 번 야옹 하고 울어줄 뿐이었다.하린도 고양이를 따라 작게 대답했다.“야옹, 야옹.”그 한마디에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던 풍경이 금세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그 순간, 하린이 무언가를 느낀 듯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새까만 눈동자에는 잔잔한 빛이 일렁였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김하운은 마치 몰래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괜히 민망해졌다.다행히 감정을 숨기는 데는 익숙했기에 아주 찰나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시선을 책으로 내렸다.그리고 다시 창밖을 바라봤을 때는 하린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저녁 무렵.김하운은 읽던 책을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배낭을 멘 젊은 여자가 서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이하린!”그제야 김하운은 여자의 진짜 이름은 이하린이고, 그래서 서점 이름도 린당서점였다는 것을.하린은 책장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며 느긋하게 말했다.“손님, 서점에서는 큰 소리 내시면 안 돼요.”“무슨 손님이야. 여기 손님도 없잖아...”여자는 말하다 김하운을 발견했다.그러자 순간 얼굴이 붉어지더니 얼른 말했다.“죄송해요.”그리고 재빨리 하린에게 다가갔다.하린은 책장에 몸을 기댄 채 느긋하게 물었다.“우리 아가씨가 무슨 일로 찾아오셨으려나?”여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뻔뻔하게 묻기는.”“게임 캐릭터 디자인 맡은 거 아직도 안 끝났지? 클라이언트가 벌써 몇 번이나 재촉했어.”“나 계약금까지 받아놨단 말이야. 제때 못 넘기면 돈도 돌려줘야 하고 위약금까지 물어야 해.”하린은 대충 손을 내저었다.“알았어, 알았어. 매일 그리고 있잖아. 손목도 아플 정도라니까. 납품일까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뭘 그렇게 급해?”그 말을 들은 김하운은 속으로 웃음이 났다.‘매일 그리고 있다니. 내가 보기엔 대부분 소파에서 잠만 자던데.’여자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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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5화

또다시 주말이었다.김하운이 서점 안으로 들어서자, 하린이 나무 사다리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오빠, 안녕하세요.”김하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평소처럼 자주 앉는 책장 앞으로 가 책 한 권을 꺼내 창가 의자에 앉았다.서점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곧 하린은 김하운의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오빠는 주말에 여자친구 안 만나요?”김하운은 시선을 들어 하린을 바라봤다.단정하고 수려한 얼굴에는 늘 그렇듯 잔잔한 기색뿐이었다.“여자친구 없어요.”하린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우리 처음 만났을 때는...”김하운이 옅게 웃었다.“오해했나 보네요. 그 사람은 회사 동료예요.”하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랬군요.”하린은 창밖의 화사한 햇살을 한번 바라본 뒤 입가를 살짝 올렸다.“커피 한 잔 마실래요? 사장님이 직접 내려드리는 거예요. 하루 한 잔만 나오는 한정판이에요.”김하운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좋아요. 고마워요.”“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가져올게요.”하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쪽으로 향했다.커피가 놓였을 때 김하운은 책을 겨우 한 페이지 넘긴 참이었다.유리창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커피잔 위에 내려앉았고, 피어오르는 김에서는 고소하고 진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번졌다.하린은 돌아서려다 잠시 망설이더니 분홍빛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한정판 커피도 드렸으니까 이제 이름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지 않아요?”김하운은 하린을 바라보며 되물었다.“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하린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오빠 같은 엘리트들은 사생활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던데 맞나봐요.”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됐어요. 안 물어볼게요.”김하운은 하린의 눈에 스쳐 지나가는 아쉬움을 보았다.순간 하린을 불러 세우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도 그는 해 질 무렵까지 책을 읽었다.계산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하린이 다가와 물었다.“오빠, 내일도 와요?”김하운은 잠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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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6화

[11월 6일, 흐림.세 번째로 그 남자를 만났다.오늘은 정장을 입고 왔는데, 왠지 더 멋있어 보였다.지금도 서점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이상하게도 나는 자꾸만 바닥에 드리운 그 남자의 그림자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그려야 할 캐릭터 디자인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자서였을까?결국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아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창가를 바라봤는데 언제 갔는지 그 남자는 이미 떠난 뒤였다.][11월 9일, 밤.오늘 밤에는 지하와 우안이 놀러 왔다.우리는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밖에서 그 남자를 본 것 같았다.급히 문밖으로 나가 봤지만 이미 보이지 않았다.정말 그 남자였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걸까?겨우 몇 번 마주쳤을 뿐이었다.이름도 모르고 게다가 여자친구도 있는 사람인데...]글 아래에는 턱을 괸 작은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었고 잔뜩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11월 16일, 흐림.드디어 그 남자가 또 왔다.밖에서 타르트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곁눈질로 보니 남자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못 본 척해야 했는데 나는 그런 걸 너무 못 참는 편이다.결국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고 말았다.그 사람은 조금 놀란 것 같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날 같이 있던 여자가 여자친구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정말 여자친구가 있다면 왜 주말마다 혼자 서점에 와서 책을 읽는 걸까?그 사람이 돌아갈 때 결국 참지 못했다.그래서 회원카드를 만들어 주겠다는 핑계를 대며 이름이라도 알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다.마음이 너무 허전했다.그리고 나는 지하에게 그 사람은 절대 좋아하지 말라고 말했다.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니까.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괜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말이다.][11월 22일, 맑음.좋아하면 안 된다고 계속 다짐했는데도 보면 자꾸만 기분이 좋아진다.정말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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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7화

일기는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김하운의 표정은 당황스러움에서 미묘한 흥미로움으로 바뀌었다.김하운은 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내려간 뒤에야 노트를 조용히 덮어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하린은 친구와 함께 애니메이션 전시회를 다녀온 뒤, 저녁에는 같은 업계 사람들 모임까지 참석했다.늦은 밤이 되어서야 모든 일정이 끝났고 일부러 자신을 바쁘게 몰아붙였다.조금이라도 한가해지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고, 괜히 긴장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하루 종일 그 남자에게서는 전화 한 통 오지 않았고 카톡 추가도 없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아무런 반응도 없는 침묵이 오히려 마음속을 거센 파도처럼 뒤흔들었다.밤이 되자 어머니에게서 일찍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다.하지만 집으로 가기 전, 하린은 결국 서점에 한 번 더 들렀다.밤 11시.김하운은 이미 돌아간 뒤였다.서점의 불을 켜자마자 소파 위에 그대로 놓여 있는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심장이 제멋대로 빨라졌다.천천히 다가가 쪼그려 앉은 채 한참 동안 그 노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한 장 한 장 넘기며 자신이 써 내려간 글을 다시 읽었다.김하운이 이 내용을 읽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하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김하운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기대에 부풀어 있던 마음이 한순간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어느 정도는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밀려오는 실망감은 막을 수 없었다.머릿속이 새하얘졌고 허탈함과 슬픔, 창피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목을 꽉 막아 버렸다.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짝사랑이었고 용기를 내 고백했지만 거절당한 기분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하린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그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건 아니야.’‘안목이 없는 건 그 사람이야.'몇 번이고 자신을 다독였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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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8화

낮에 한가한 시간이 생겨도 하린은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그저 혼자 창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내가 그 사람을 도망가게 만든 거야.'하린은 풀이 죽은 채 그렇게 생각했다.한겨울이 찾아오자 서점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마저 차갑고 쓸쓸해 보였다.그날도 날씨는 좋지 않았고, 밤새 찬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아침부터 잔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아침을 먹고 아직 집을 나서기도 전, 이순철이 갑자기 하린을 서재로 불러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눈도 오니까 서점은 가지 말고 할아버지랑 같이 나가자.”하린은 서점에 가고 싶었다.오늘은 주말이었기에 어쩌면 김하운이 올지도 몰랐다.희망은 아주 희박했지만 그래도 기다려 보고 싶었다.“어디 가시는데요? 오늘은 아빠도 쉬니까 아빠랑 다녀오세요.”하린은 가기 싫어 적당한 핑계를 댔다.“오늘 손님이 책 찾으러 오기로 했어요. 어제 미리 약속했거든요.”이순철은 웃으며 말했다.“지난번에 할아버지가 소개팅 주선했던 거 기억하지? 김씨 집안 그 남자가 다시 만나 보겠다고 했대. 오늘 같이 김씨 저택에 가자.”하린의 표정이 금세 굳었다.“싫어요. 왜 그 사람이 만나겠다고 하면 제가 가야 하는데요?”이순철은 다정하게 달랬다.“지난번 일 때문에 우리 하린이가 속상했던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소개팅이 아니야. 그냥 그 집에 놀러 가는 거야.”“그 집 손자도 한 번 만나 보고, 마음에 들면 천천히 알아가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할아버지랑 바람 쐬러 다녀왔다고 생각하면 되잖아.”“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마침 조언도 받을 수 있고.”하지만 하린은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김군호 어르신은 국화의 대가시잖아요. 저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고요. 애초에 분야도 다르고 수준도 달라요.”잠시 말을 멈췄던 하린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그래?”이순철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연애 중인 거냐? 학교 친구야? 이름이 뭐니?”하린은 말문이 막혔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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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9화

김하운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말했다.“제가 직접 이 어르신을 찾아뵙기로 하지 않았나요?”그 말에 김군호는 웃으며 말했다.“원래는 우리가 그 집으로 가기로 했었지. 이번 주말에 찾아뵙기로 약속도 해 뒀어.”“그런데 오늘 눈이 와서 아침에 전화해서 날짜를 미루자고 했더니, 성격이 급한 양반이라 오히려 너를 보러 직접 오겠다고 하더구나.”“먼저 온다는데 내가 거절할 수는 없지 않겠니?”김하운의 단정하고 온화한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리고 이내 남자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집에서 기다릴게요.”김군호는 손자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만족스럽게 말했다.“옷도 갈아입을 필요 없어. 지금 그대로가 딱 좋구나.”김하운은 다시 고개를 끄덕인 뒤 시간을 확인했다.“곧 도착한대요?”“거의 다 왔을 거야.”김군호가 대답했다.김하운은 창밖으로 점점 굵어지는 눈발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제가 나가서 모시고 올게요.”“그래.”김군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의아했다.‘분명 전에는 하린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한 걸까?’게다가 꽤 신경 쓰는 눈치였다.이유야 무엇이든, 김하운이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이씨 집안의 차량이 김씨 집안 별장 정문으로 천천히 다가왔다.운전기사는 속도를 줄였고 하린은 멍하니 창밖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생각은 이미 먼 곳으로 흘러가 있었다.‘한동안 서점에 오지 않았어. 오늘은 눈까지 내리고 있으니 더더욱 오지 않겠지.’‘하지만 혹시 오늘 왔다가 서로 엇갈리면 어떡하지?’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괜히 할아버지를 따라 김씨 집안에 오겠다고 한 것이 후회됐다.차가 검은 철문 앞에 멈춰 서자 이순철이 웃으며 말했다.“도착했다. 내리자.”하린은 복잡한 생각을 접고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눈길이라 바닥이 미끄러웠다.그래서 하린은 운전기사에게 우산을 받아 한 손으로는 할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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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0화

하린은 이제야 모든 자초지종을 이해했다.두 사람은 이순철의 양옆에서 남자를 부축하며 별장 안으로 걸어갔다.계단을 오를 때 김하운은 이순철의 팔을 받쳐 드리면서도 일부러 고개를 돌려 하린에게 말했다.“하린 씨, 조심하세요.”그 말에 하린의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이에 하린은 분홍빛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조용히 대답했다.“네.”분명 이미 여러 번 만나 익숙한 사이였는데, 김하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또 낯선 느낌이 들었다.괜스레 긴장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이순철은 손녀를 한 번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때 김군호가 직접 마중을 나오며 시원시원하게 웃었다.“며칠 뒤에 내가 하운이를 데리고 찾아가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눈 오는 날 굳이 온 거야? 오히려 우리가 예의를 못 지킨 것 같잖아.”하린은 김군호가 ‘하운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심코 고개를 살짝 돌려 김하운을 바라봤는데, 공교롭게도 남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붉어진 하린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그러자 이순철이 웃으며 말했다.“저녁 무렵 눈이 오려는데 한잔하지 않겠냐는 말도 있잖아. 집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이런 분위기가 더 좋지 않겠어?”김군호는 호탕하게 웃더니 시선을 하린에게 옮겼고 인자한 눈빛이 금세 환하게 빛났다.“이 아가씨가 자네 손녀 이하린인가?”“내 손녀야.”이순철은 자랑스럽게 하린의 손목을 잡자 여자는 얌전히 인사했다.“할아버지, 안녕하세요.”“그래, 그래.”김군호는 기쁜 얼굴로 대답한 뒤 농담을 던졌다.“이순철이 평생 허풍을 떨며 살았는데, 너를 칭찬한 건 몇 안 되는 진심이구나.”하린은 수줍게 웃었다.“감사드려요, 할아버지.”몇 사람은 함께 거실로 향했고 김하운이 말했다.“이순철 어르신과 하린 씨는 먼저 앉아 계세요. 차는 제가 준비할게요.”“그래, 다녀와.”김군호가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고 이순철은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가서 하운이를 좀 도와줘.”하린은 잠시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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