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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1화

“전이혁 씨, 왜 그렇게 저를 쳐다보세요?”그가 막 대답하려던 순간 도아영의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다.그녀는 화면을 힐끗 보았다.발신자는 엄마였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엄마, 무슨 일이세요?”평소 그녀는 근무 시간에 사적인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다.가족에게서 오는 전화라면 반드시 급한 일이 있을 때였다.급하지 않다면 그녀의 부모님은 언제나 그녀가 바쁠 것을 알고 전화를 하지 않았다.“이번 주말에 시간 있지?”“왜요?”“일단 시간 있는지부터 말해봐. 엄마가 네가 직접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꼭 제가 해야 해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시면 안 돼요? 저 주말에 고객 미팅이 있어요.”“주말에도 고객을 만나야 해? 우리 도씨 그룹이 그렇게 장사가 안돼서 주말에도 일해야 해?”어머니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딸이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이 너무 길었다.같은 집에서 살아도 며칠이고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다.아침에 눈을 뜨면 딸은 이미 회사로 나가 있고 밤에는 자신이 잠든 뒤에야 돌아왔다.“엄마, 어떤 일인지 먼저 말씀해 보세요. 제가 시간을 좀 내볼게요.”도아영은 조금 미안해졌다. 평소에 부모님과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하는 딸이었으니까.그녀의 어머니는 좀처럼 딸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어렵게 입을 열어 부탁했건만 그녀는 또 부탁을 외면하려 했다.“오전만 시간 좀 내줘. 엄마의 아들 같은 애가 이번 주말에 해외에서 들어오거든. 네가 좀 나가서 공항에서 데려와. 너도 잘 아는 애잖아.”황서진에게는 자식처럼 아끼는 ‘아들’이 하나 있고 ‘딸’도 하나 있었다.그 둘은 각각 황서진의 두 절친의 자녀였다.또한 도아영 역시 그녀의 친구들이 딸로 삼으면서 서로의 아이를 함께 가족처럼 여겼다.“엄마, 혹시 태경 오빠 말씀하시는 거예요?”태경이란 이름이 나오자 전이혁의 귀가 순식간에 쫑긋 섰다.“그래, 너한테 오빠는 그 애 하나잖니. 태경 말고 또 누가 있겠어?”“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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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2화

뜻밖에도 김태경이 인사이동으로 인해 귀국하게 되었고 앞으로 오랫동안 해성에 머물러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그 소식을 들은 도아영의 절친은 곧바로 도아영에게 전화를 걸어 예전에 나왔던 결혼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황서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딸에게 김태경을 마중 나가보라고 할 생각이었다.“도아영 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예요. 제발 다른 사람과 엮으려 하지 마세요.”전이혁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들었다.도아영은 그를 잠시 바라봤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전화기 건너편에서 황서진은 전이혁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곧바로 물었다.“아영아, 전씨네 그 망할 놈이 또 너를 찾아갔어? 설 나흘째 되는 날에 한 번 왔을 때는 네가 없어서 우리 집 문턱도 못 넘기고 돌아갔잖아. 그 뒤로는 아무 소식도 없길래 완전히 포기한 줄 알았는데 회사까지 찾아갔단 말이야? 아영아, 그놈은 또 무슨 꿍꿍이야? 다시 너에게 구애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더더욱 네 태경 오빠에게 기회를 줘야지. 네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놈보다 훨씬 나은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저는 ‘그놈’이 아니라 전이혁이에요...”전이혁이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그러자 황서진은 전화기 너머로 콧방귀를 뀌었다.“놈이죠! 놈, 죽일 놈!”남의 집 귀한 딸을 괴롭힌 남자는 전부 죽일 놈이었다.“엄마, 금요일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마중 나갈 시간이 될지 아직 몰라요. 오늘은 수요일인데 너무 이르잖아요. 다른 일 없으시면 먼저 끊을게요.”도아영은 곧 통화를 마쳤다.전이혁이 재빨리 물었다.“아주머니께서 남자를 소개해 주신대요?”“알아서 뭐 하게요?”그 한마디에 전이혁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생각해 보면 정말 그녀의 말이 맞았다.도아영의 일에 그가 참견할 자격 따위는 없었다.지금의 그와 도아영 사이는 아무 관계도 아니었으니까.도아영은 본래 전이혁의 미래 약혼녀였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멀리 밀어냈다.이제 와서 되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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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3화

도아영은 전이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 모습을 보더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그녀는 일부러 몸을 숙여 전이혁의 코앞까지 다가가며 시선을 마주했다.두 사람의 거리는 숨결이 섞일 만큼 가까웠고 전이혁은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향까지 맡을 수 있는 정도였다.그 향은 조금 익숙했다.하지만 ‘여우’로 변장했을 때의 냄새는 아니었다.‘여우’로 있을 때 그녀는 한 번도 향수를 쓰지 않았는데 아마도 향으로 정체를 들킬지 두려워서였을 것이다.‘그럼 이 향은 어디서 맡아봤지?’그는 곧 기억을 더듬었다.그렇다. 민지영이었다!예전에 민지영 가까이서 느꼈던 향기와 똑같았다.도아영이 곧 민지영이었다.이제 전이혁은 더 이상 그녀의 인정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전태윤의 말대로 그저 전씨 할머니를 믿으면 그만이었다.전씨 할머니라면 결혼 같은 큰 일에서 결코 손자를 잘못된 길로 이끌 분이 아니었다.이제는 그녀가 직접 말하는 것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전씨 할머니께서도 이미 답을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그가 사랑하는 ‘여우’가 누구인지 알고 계셨고 도아영에게 다시 구애하라고 하셨다.그건 곧 ‘여우’가 도아영이라는 뜻이다.전이혁은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 제 손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밀어낸 사람이 바로 전이혁 본인이었다.하지만 이제라도 되돌리면 된다.그는 결심했다. 전씨 할머니와 전태윤의 말을 따르기로.다시 도아영을 ‘잡아’와야 했다.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숨결이 엇갈렸고 도아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이 남자, 왜 이렇게 잘생겼지!’생각해 보면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잘생겼다. 전이혁의 형들도 멋졌고 그의 형수들도 다 아름다웠다.전씨 집안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전이혁의 아버지 세대는 지금도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젊은 시절에 얼마나 멋진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유전자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자식들도 모두 빼어나게 태어났고 그래서 전씨 가문의 아홉 형제는 하나같이 잘생긴 남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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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4화

전이혁은 도아영이 황서진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는 황서진이 그녀와 김태경이라는 남자와 이어주려 한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이제 그는 경쟁자가 생겼다.하지만 쫓겨났다고 화를 내지도 억지를 부리며 남지도 않았다.전이혁은 일어나며 차분히 말했다.“제가 방해했군요. 도아영 씨가 도씨 가문의 둘째 따님이라는 것도, 제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이번에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아까 하신 말이 맞아요. 저는 다시 도아영 씨에게 다가갈 생각이에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이 어떤 태도를 보여도 괜찮아요. 저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어요.”처음에 도아영이 먼저 진심을 내놓았지만 전이혁은 그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그의 잘못이었다.이번에는 전이혁이 진심을 내놓을 차례였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버텨야 했다.“할머니께서 시켜서 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 할머니가 손자들 결혼 문제에 강제로 개입하신 건 우리 큰형뿐이에요.”그때는 사정이 특별했다.나머지 손자들에게는 전부 1년이란 시간을 주시면서 감정을 쌓은 뒤 결혼하라고, 깜짝 결혼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이 선물들은 제가 드리는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세요.”전이혁은 다시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점심에도 바쁘신 것 같은데 그럼 저녁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저녁 식사는 제가 대접하고 싶어요. 실례했습니다.”전이혁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몸을 돌렸다.도아영은 그가 사무실을 나설 때까지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문이 닫히자 그녀는 꽃다발과 주얼리 케이스를 들고 급히 뛰어나갔다.“전이혁 씨, 이거 가져가요!”값비싼 주얼리를 그녀가 보관할 이유는 없었다.그러나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도아영은 발걸음을 멈추며 낮게 중얼거렸다.“토끼보다 빠르네...”비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꽃과 케이스를 들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리고 그 선물들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잠시 후 그 쓰레기통을 일부러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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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5화

황서진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당연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지. 그놈만 잡으면 평생 편하게 살 텐데. 엄마가 본 수많은 남자 중에서도 그 애가 너한테 제일 잘 맞는 것 같아.]한때 사위로 마음에 품었던 청년이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황서진은 결국 딸이 전이혁을 붙잡기를 바랐다.도아영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미소만 지을 뿐 더는 답장하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전이혁이 자신을 거절했을 때 그다지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그가 사랑한 사람도 결국 자신이었으니까.다만 그가 속아 있었을 뿐 결국 자신이 그를 철저히 가지고 논 셈이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더 깊어지기 전에 깔끔히 물러났다.그 점만큼은 그녀도 인정했다.또한 도아영은 자신이 전씨 할머니가 직접 골라준 며느릿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녀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전씨 할머니가 자신을 왜 택했는지 궁금했지만 그래도 무척 기뻤다.만약 자신이 그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전이혁과 이렇게 엮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그 시각, 도아영이 올린 사진을 하예정이 보았다.그뿐만 아니라 성소현과 심효진도 보았다.하예정은 오늘 서점에 들렀다.심효진은 여전히 예전처럼 소설을 좋아했고 새로 들여온 책을 정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계산대 위에는 과자, 땅콩 같은 간단한 간식이 놓여 있었다.심효진은 그 간식들을 집어 먹으며 한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그때 하예정이 전화를 걸었다.“도련님, 지금 해성에 있죠?”전이혁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네, 맞아요. 왜요? 형수님?”하예정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혹시 아영에게 장미꽃과 주얼리 세트를 보낸 적 있어요?”“어떻게 아셨어요?”전이혁은 마침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전씨 할머니는 그에게 해성에 집을 사라고 하셨다. 가능하다면 도씨 가문의 저택 바로 옆에 살면 더 좋다고 하셨다.하지만 그곳의 이웃들은 아무도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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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6화

“지금 와서 다시 아영에게 다가가겠다는 거야? 무슨 자극이라도 받은 거야? 아니면 마음에 두었던 그 여자가 전이혁 씨를 거절했나? 아니면 너희 둘이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거기에 전씨 할머니의 결혼 압박까지 겹치니까 다시 미련이 생긴 거야? 아영이가 만만해 보인대? 원할 때면 갖고 놀다가 싫으면 버려도 된다는 거야?”전이혁은 하예정의 시동생이었지만 심효진은 그의 편을 들 수 없었다.예전에 도아영이 해성에서 관성까지 전이혁을 쫓아다니다가 하예정에게까지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돌아온 건 그녀를 사랑할 수 없다는 냉정한 말뿐이었다.전이혁은 정중히 사과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여우’라고 했다.‘여우’라니.그 여자가 도아영보다 나을 리가 있는가.심효진은 전이혁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신이 가출한 게 틀림없었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심효진은 그저 구경꾼일 뿐이었다.하예정 역시 나설 입장이 아니었다. 그녀도 그저 친척으로서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전이혁의 부모조차 나서지 않는데 하예정이 무슨 권한이 있겠는가.만약 지금 하예정의 통화를 우연히 듣지 않았다면 심효진은 전이혁과 도아영의 그 복잡한 감정사를 까맣게 잊고 있었을 것이다.하예정은 전화를 끊고 목소리를 낮춰 친구에게 말했다.“그래서 아영은 지금 도련님이 보낸 꽃다발이랑 주얼리 세트를 전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대. 사실 아영에게는 여러 개의 신분이 있어. 그중 하나가 바로 ‘여우’거든. 우리 도련님이 사랑했던 사람은 결국 그 ‘여우’였던 거지. 그리고 전에 우리 집에 왔던 민지영이라는 애 기억나지? 공은호 어르신의 제자라던 그 아이. 그 아이도 사실 도아영이었어.”심효진이 화들짝 놀랐다.“하지만 아영이랑 지영이는 생김새가 다르잖아. ‘여우’는 본 적 없지만 지영이는 몇 번 봤어. 같이 밥도 먹었잖아. 전혀 다른 사람이던데?”하예정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게 바로 아영이의 대단한 점이야. 그래서 ‘여우’로 나타나도 몰랐던 거지.”“근데,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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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7화

하예정도 깊이 공감하듯 말했다.“누구를 건드려도 전씨 할머니만은 건드리면 안 돼. 다행히 할머니는 우리 시할머니시군.”시댁 사람 중에서도 하예정이 가장 따르는 이는 단연 전씨 할머니였다.전씨 할머니는 언제나 하예정의 편이었다.전태윤과 다툴 때마다 전씨 할머니는 늘 가장 먼저 하예정의 편에 서주었고 그녀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을 때야 비로소 부드럽게 타이르며 전태윤을 대신해 몇 마디 해주곤 하셨다.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전씨 할머니는 하예정의 친할머니보다도 더 따뜻하고 가까운 존재였다.“그럼 너희는 전이혁 씨를 도와줄 생각이야?”심효진이 물었다.“어떻게 도와줘? 그건 일은 우리가 대신해 줄 수도 없어.”전태윤은 동생들의 사적인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들이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상 절대 나서지 않으려 했다.전태윤의 말대로 그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오직 하예정 한 사람뿐이었다.“맞아. 그냥 지켜보는 게 상책이지. 정말 너희 부부 앞에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마.”“난 그런 거 안 해. 아영은 이미 다 알고 있어. 아마도 잠깐은 밀당하겠지만 도련님이 완전히 포기하게 두지는 않을 거야. 때가 되면 받아들이겠지. 결국에는 둘이 다시 이어질 사이야. 단지 전씨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1년이라는 기간을 조금 넘기게 될 뿐이지.”하예정은 굳이 전이혁의 편을 들 생각이 없었다.그가 스스로 도아영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누가 대신 말을 전한들 소용이 없을 터였다.도아영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예전에 하예정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전이혁에게 마음이 흔들렸던 건 그가 뛰어난 사람이라서도 맞지만 그보다 전씨 가문의 가풍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심효진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럼 네 친 시동생 일은 어쩔 거야? 전이혁 씨는 먼 친척뻘이니까 상관없다 쳐도 친 시동생 일에는 좀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안 되겠다. 오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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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8화

설 연휴가 끝난 뒤 하예진은 다시 강성으로 떠났다.하예진은 유치원 선생님께 우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하예정에게 연락해달라고 당부해 두었다.그래서 이번에도 선생님은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제가 바로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네, 그럼 기다릴게요. 바로 병원으로 가보세요. 요즘 감기 걸린 아이들이 많거든요.”전화를 끊고 나서 하예정은 친구에게 말했다.“먼저 가볼게. 유치원에 가서 우빈을 데려와야 해. 열이 났대. 요 며칠 밤마다 이불을 차던데...”전태윤 부부가 자주 확인해 덮어주긴 했지만 매번 지켜볼 수는 없었다.결국 조금은 찬 기운이 몸에 밴 모양이다.심효진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요 며칠 날씨가 확 풀려서 그래. 낮에는 꽤 덥다니까. 봐, 나도 지금 외투도 걸치지 않았잖아.”한낮 기온이 20도를 훌쩍 넘었다.햇살이 쨍할 때면 외투를 입기에는 오히려 더운 날씨였다.“얼른 가서 우빈을 데려와. 데려오면 의사 선생님께도 연락하고. 심하지 않으면 굳이 병원까지는 가지 마. 요즘 병원에는 사람도 많고 병균도 많아서 괜히 옮을 수도 있잖아.”전씨 가문의 가정 의사는 의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하예정은 가방을 챙겨 휴대폰을 넣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나 먼저 갈게.”그녀는 급히 차에 올라 유치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하예정은 이미 가정 의사에게 연락해서 잠시 후 집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한 시간 뒤.로얄팰리스.우빈을 진찰해 주는 사람은 전씨 가문의 가정 의사가 아니라 정겨울이었다.정겨울은 여운초의 상황을 살피러 왔다가 일을 마치고 하예정을 만나러 들른 참이었다. 마침 하예정이 우빈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라 정겨울이 대신 우빈을 봐주게 된 것이다.집에 도착한 뒤 하예정은 다시 체온계를 꺼내 우빈의 겨드랑이에 꽂아주었다.몇 분 뒤 체온계를 꺼내 들여다본 그녀가 얼굴을 굳혔다.“금세 올라버렸네요. 벌써 39도예요.”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전화를 받고 유치원으로 갔을 때만 해도 38도였는데 집에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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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9화

“이모, 이 약은 너무 써요.”우빈이 힘없이 말했다.“약은 원래 쓰지. 쓴 약이 병에는 이롭다고 하잖아.”하예정이 다정히 달래며 말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이끌려 우빈은 결국 약을 삼켰다.우빈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더 마시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뒤 하예정의 품에 안겨 깊이 잠들었다.하예정이 아이를 안아 2층으로 데려가려 하자 정겨울이 나섰다.“제가 안을게요. 지금 몸이 불편하잖아요.”그러자 집사가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제가 모시겠습니다.”정겨울은 하예정이 중히 여기는 손님이었기에 그녀에게 우빈을 안겨 계단을 오르게 할 수는 없었다.집사는 조심스레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받아 들고 어린이 방으로 데려갔다.하예정도 함께 올라가 아이를 확인했다.정겨울은 그 뒤를 따르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런 정도의 감기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우빈이가 귀엽고 마음에 드는 아이라 특별히 직접 살펴 준 것뿐이었다.하예정은 침대 곁에 앉아 집사에게 말했다.“제가 잠시 자리를 못 지키니까 정 선생님을 잘 모셔요.”“걱정하지 마세요.”집사는 공손하게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그때 하예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치원 선생님도 하예진에게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었다.“예정아, 우빈은 괜찮아?”전화기 너머의 하예진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우빈은 두 살이 되기 전까지 감기와 열이 잦았다.몇 번은 바이러스성 감기로 고열이 며칠씩 이어지기도 했다.그때마다 하예진 자매는 번갈아 밤새 간호했고 원래 통통했던 하예진은 며칠 사이 몇 킬로씩 빠지곤 했다.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뒤로는 면역력이 훨씬 좋아졌다.그동안은 감기 한번 없이 잘 지내왔는데 오랜만에 열이 난 것이다.“열이 났어. 유치원에서 쟀을 땐 38도였는데 데리고 와서 다시 재보니까 39도였어.”“의사한테는 보여줬어? 해열제는 먹였지?”하예진의 말투에는 여전히 걱정이 묻어 있었다.38도까지는 미지근한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아주며 열을 식혀줘도 되지만 39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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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0화

“약 먹었으면 곧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간호할 땐 꼭 마스크를 써. 혹시라도 감기 옮으면 안 되잖아. 넌 몸에 아기까지 있는데 감기 걸리면 더 힘들어.”하예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곧바로 동생의 건강이 걱정되었다.아들의 감기가 동생에게 옮을까 봐 불안했다.임신부는 먹을 수 있는 약이 적기에 대부분은 가벼운 감기 정도면 꾹 참고 버티곤 한다.“난 괜찮아. 몸도 튼튼해. 우빈은 아프면 유독 예민해지고 나한테만 매달려. 내가 직접 돌봐야 마음이 놓여. 태윤 씨도 그럴 거야.”전태윤은 하예정보다 훨씬 바빴기에 그녀는 이런 사소한 일로 남편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우빈이가 나으면 바로 연락할게. 앞으로는 아무리 우빈이가 졸라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은 절대 안 먹일 거야.”“아이는 감기 한두 번쯤은 다 걸려.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빈이가 열이 내리면 나한테 알려줘. 그리고 잠시 후에 동명 씨한테도 말해줘. 굳이 데리러 가지 말라고. 내가 지금 강성에 있으니까 우빈이가 너희 집에 있는 게 더 편할 거야.”노씨 가문 사람들도 우빈을 무척 아꼈지만 하예진이 강성에 가 있는 동안 우빈은 거의 하예정의 곁에서 지냈다.우빈과 노동명의 사이도 친부자처럼 좋았지만 엄마가 곁에 없을 땐 언제나 우빈의 마음은 이모 쪽으로 기울었다.이 꼬마를 키워준 건 다름 아닌 하예정이었으니까.“조금 있다가 형부한테 말할게.”주말이면 우빈은 늘 노동명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노동명은 회사를 비우고 직접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았다.평일에는 근무 때문에 오후에 유치원에 들러 우빈을 데려오곤 했다.가끔 하예정이 먼저 데려오면 노동명에게 굳이 안 와도 된다고 문자로 알려주기도 했다.하예진이 마음 편히 강성으로 가서 이윤미와 인수인계 업무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렇게 도와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덕분에 하예진은 아무 걱정 없이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이제 땀이 나기 시작하네.”하예정은 다시 우빈의 이마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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