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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1화

“그럼 오후 두 시에, 다시 주 회장님을 찾아뵙겠습니다.”양인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아무래도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갈수록 몸이 따르지 못하는 듯했다.양윤서가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주우빈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주 회장님, 우선 저희를 방으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오후 두 시에 다시 뵙기로 해요.”“네.”주우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안내했다. 그가 마련해 둔 방은 같은 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이었다.“두 분이 함께 계시는 게 낫겠다 싶어서 같은 층으로 잡았습니다. 제 룸과도 가까워서 여러모로 편하실 거예요.”로얄 스위트룸 앞에 도착하니 벌써 호텔 직원이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세 사람을 알아본 직원은 재빠르게 문을 열어젖히고 고개를 숙여 안으로 모셨다.주우빈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인사를 마치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그도 잠시 쉬고 싶었다.침대에 등을 기대며 그는 먼저 전시우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로얄 스위트룸에서 낮잠을 청한다고 말이다.[응.]전시우는 한 글자로 답을 대신했다.그 사이, 양인석과 양윤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몸을 눕혔다.특별히 나눈 대화는 없었다. 할 이야기는 저녁에 천천히 해도 되니까.한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오후 두 시, 주우빈은 초침 하나 틀리지 않고 양씨 일행의 방문 앞에 섰다.초인종을 누르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양윤서가 바로 문을 열어 주었다.“주 회장님, 안녕하세요.”“잘 쉬셨습니까. 저는 준비는 다 됐어요. 지금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그녀 자신도 시간을 철석같이 지키는 사람이었다. 한번 입 밖에 낸 약속은 반드시 지켰고 상대가 그 시간을 어기는 것 또한 참지 못했다.한성 상계에는 이미 정설처럼 자리 잡은 말이 있었다. 양씨의 양윤서 대표와 만날 약속이 있다면, 차라리 한 시간 일찍 도착할지언정 단 1분도 늦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단 한 번의 지각이 그 회사의 미래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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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2화

양씨 가문의 친척들은 외부인보다 양씨 그룹에 더 눈독 들였다.양윤서라는 이 외동딸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으면 그녀가 늙었을 때 양씨 그룹은 자연스레 그들의 손에 넘어갈 게 뻔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양윤서는 해외에서 시험관 아기를 낳을까도 생각했다. 남의 정자로 아이 둘만 키워 후계자로 삼으면 된다고.하지만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생각 자체를 못 받아들였다.반드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고집했다.양인석은 좋은 남자도 있다고 했다. 오직 사람 자체를 사랑하고 재산을 노리지 않는 남자 말이다.양윤서도 그런 남자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너무 드물었다.정말, 정말 흔치 않은 존재였다.인간의 악함이라는 것을, 양윤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몸소 겪어왔다.양인석과 양윤서가 탄 차는 임시로 빌린 것이었다.경호원 두 명이 뒤따랐지만 주우빈과 마주한 뒤로는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양인석은 주우빈을 믿었고 전씨 가문의 위세 또한 믿고 있었다.전씨 가문의 영역 안에서 감히 두 사람에게 손을 대는 자는 없을 터였다.그것은 주우빈과 적이 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전씨 가문과 직접 맞서 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노씨 그룹으로 옮기는 동안 양인석이 손녀에게 물었다.“윤서야, 그런 좋은 남자가 없다고 했지? 오늘 직접 봤잖아. 주 회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한 사람만 보고 모든 남자가 다 그럴 거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야.”양윤서가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뗐다.“주 회장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세심하고 배려도 깊고 함께 있으면 편해요.”‘휴!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우린 그냥 협력 관계일 뿐인데. 게다가 만날 일도 얼마 없을 텐데...’양윤서는 할아버지의 뜻을 무슨 뜻인지 사실 알고 있었다.그리고 할아버지가 굳이 자신을 데려온 까닭도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갔다.“할아버지, 저 아직 젊어요. 후계자 문제는 아직 생각하지 마세요. 몇 년 더 지나서 회사에서 제 자리를 더 단단히 굳힌 다음에 그때 아이를 낳는 걸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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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3화

양인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흔히 삼 년이면 한 세대 차이라고 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그와 손녀 사이는 도대체 몇 세대나 차이 나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요즘 젊은이 생각 자체가 달랐다.노인들은 전통의 굴레에 갇혀 자식들이 얼른 결혼해 대를 이어가길 바랐지만 젊은이는 오직 자기 생활 질량에만 중점을 두고 있었다.스스로 잘 살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에 결혼과 출산은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자기 몸 하나도 먹여 살리기 힘겨운 판에 무슨 수로 가족을 부양하겠느냐는 식이다.자신이 번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어느새 두 사람은 노씨 그룹에 도착했다.주우빈이 벌써 건물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양 회장님.”차가 멈추자 주우빈이 발걸음을 옮겨 양인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주 회장님은 벌써 도착하셨네요.”일행은 함께 호텔에서 출발했지만 주우빈이 한발 앞서 노씨 그룹에 도착한 터였다.주우빈이 웃으며 대답했다.“길이 워낙 익숙해서요 좀 일찍 도착했어요.”양윤서가 차에서 내리자 주우빈이 두 사람을 건물 안으로 모셨다.회사 임원들도 벌써부터 1층에 내려와 있었다. 주 회장이 중요한 고객을 직접 마중 나갔다는 소식에 그들도 따라나선 것이다.주우빈이 몇몇 임원들을 양씨 할아버지와 손녀에게 소개하며 말했다.“앞으로 양사가 함께 일하게 되면 자주 뵙게 될 것 같아요. 제가 회사에 없을 때는 이쪽 임원분들이 대신 연락드릴 테니까 부담 없이 편하게 얘기하셔도 됩니다.”양씨 할아버지와 손녀는 미소를 머금으며 임원들과 악수하였다.일행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층으로 올랐고 VIP실로 자리를 옮겼다.최상층 VIP실은 1층 VIP실보다는 조금 아담했지만 주우빈을 직접 만날 자격이 되는 회장들만이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지위나 격이 부족해 주우빈의 얼굴조차 보기 힘든 이들은 이 방에 들어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다들 둘러앉아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누었다. 십여 분쯤 지나자 주우빈이 다시 두 분을 데리고 회사 곳곳을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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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4화

“네, 최상층 로얄 스위트룸에 모셨어요. 지금은 우리 회사에 계시고 저녁이 되면 식사라도 대접해야 할 것 같아요.”양씨 할아버지와 손녀는 노씨 그룹에서 오후 내내 시간을 보냈다.해가 저물어 가자 주우빈은 자연스레 저녁 식사를 청했다.이틀 동안 그는 두 분을 정성껏 모시며 함께할 작정이었다.어차피 그가 관성에 더 머물러 달라고 권한 터였으니 접대는 당연한 일이었다.“저녁에는 다른 일정이라도 있어?”“특별한 일정은 없을 것 같아요. 기껏해야 양 회장님네를 보시고 구경 나가거나 밤거리를 둘러보는 정도겠죠.”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오늘 저녁은 우리 리조트에서 식사하는 게 어때?”“갑자기 급하게 가기에는 좀 빠듯할 것 같아요. 내일 가는 게 좋겠어요. 이모, 저녁에 시간 돼요?”“당연히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지. 나도 저녁에 함께 식사할까? 구경시켜 드리고 싶다면 내가 가는 게 나을 텐데. 네가 데리고 다니면 너랑 그쪽이랑 누가 더 빨리 걷나 경주하는 꼴이 될라.”주우빈이 웃음을 터뜨렸다.“이모, 저도 접대는 나름 잘하는 편이에요.”“그래도 네가 단둘이 여자애랑 다니는 모습이 찍히면 소문날라.”주우빈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그러면 시간 되면 와서 좀 도와주세요. 이모부한테는 꼭 미리 말씀드려요. 안 그러면 질투하실 테니까.”“그 영감은 신경 쓰지 마. 맨날 질투만 하고... 수십 년을 그렇게 질투만 해.”주우빈이 참지 못하고 한바탕 크게 웃으며 말했다.“이모, 이모부를 영감이라고 하지 마세요. 아직 한창 젊으시단 말이에요. 제가 이모부랑 같이 걸으면 사람들이 형님 같다고 할 정도인데.”“사람들이 일부러 젊어 보인다고 치켜세우는 거지. 이모부도 이제 예순이 다 되어 가는 사람인데.”하예정도 덩달아 크게 웃었다.“이모도 네 앞에서나 그렇게 말하지, 네 이모부 앞에서는 절대 그런 말 안 해. 그래도 달래 줘야 해. 나이 드니 점점 애가 돼 가는 것 같아.”“그건 이모부가 이모를 정말 사랑하시니까 그런 거죠. 수십 년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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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5화

하예정이 말했다.“너도 일이 많으면서 시우 일까지 덜어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 그건 시우가 장남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야.”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짐은 아들의 책임이었다.아들이 뛰어나지 못하고 전씨 그룹을 맡을 능력이 없었다면 몰라도 능력이 있는 이상 그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전태윤은 입으로는 은퇴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는 마음에 아직도 출근하고 있었다.주우빈이 한숨을 내쉬었다.“어쩔 수 없죠. 우리 각자 짊어질 짐이 있으니까요.”“너 지금 두 분 모시고 밥 먹으러 갈 거지? 내가 네 이모부 회사에 들러볼게. 저녁에 시간 되는지 보고 괜찮으면 우리도 같이 가서 밥 먹을게.”“좋네. 저도 시우한테 시간 되는지 물어볼게요.”“그래.”통화가 마친 하예정이 전씨 그룹으로 향했다.20여 년 동안 회장 부인으로 살아온 하예정에게 전씨 그룹은 집 드나들듯 자유로운 곳이었다.회사에는 오래된 직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하예정과 전태윤의 사랑을 지켜본 증인이기도 했다.새로 들어온 직원들도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하예정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전태윤이 벌써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지만 그가 전씨 그룹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미 누군가 전태윤에게 전했을 터였다.“여보,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전태윤이 자연스럽게 하예정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왜 그렇게 생각해요?”하예정이 묻자 전태윤이 웃으며 대답했다.“여보가 기분이 좋을 때만 이렇게 직접 마중 나오잖아.”하예정이 말했다.“그랬나요? 내 생각엔 기분 때문이 아니라 그냥 오고 싶을 때 오는 건데... 근데 오늘 확실히 기분은 좋아요. 일 다 끝냈어요?”“아직, 여보가 조금만 기다려 줘.”전태윤이 사무실 문을 열고 아내를 감싸안은 채로 들어갔다.비서는 이런 광경에 이미 익숙했다.하예정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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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6화

전태윤이 말했다.“내 마음속에선 네 엄마가 첫 번째야.”“엄마가 아빠 마음속에 첫 번째인 거 저도 알아요. 저랑 하연이가 엄마랑 그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거든요. 그냥 아빠가 너무 심하게, 너무 티 나게만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엄마 방금 오셨잖아요.”전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예정에게 자리를 내주었다.“엄마, 아빠 좀 혼내주세요. 맨날 저러세요. 자식 된 우리 마음이 진짜 다 상해요.”전시우가 어머니에게 일러바치며 새삼 억울한 표정까지 하고 있었다.하예정이 허리에 감긴 남편의 손을 살며시 떼어냈다.아들은 이미 이런 광경이 익숙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하예정은 여전히 민망했다.벌써 오래된 부부인 데다 자식들도 훌쩍 컸는데 전태윤은 아직도 이 모양이었다.“시우야, 아빠가 뭐라든 신경 쓰지 마.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아까 두 사람 뭐 얘기하고 있었어? 계속해. 방해 안 할 테니까.”하예정은 곧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왔다.“여보, 얼른 손에 쥔 일부터 마무리해요. 이따가 한성 호텔에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요. 우빈이가 중요한 거래처 두 분을 모셨는데 한성에 있는 양씨 그룹 회장님이래요.”전시우가 한마디 덧붙였다.“양씨 그룹 대표라는 분, 여자 아니에요? 제 기억에는 여자였던 것 같은데. 우빈 형이 우리한테도 밥 먹으러 오라고 한 거예요? 우리 가족 셋이 가면 거래처 분들이랑 얘기 나누는 데 방해되지 않을까요?”하예정은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양씨 그룹이랑 노씨 그룹 협력은 이미 확정돼서 계약까지 끝났대. 양 회장님께서 손녀분과 함께 관성에 이틀 머무실 거라서 우빈이가 한번 대접해 드리고 싶은가 봐. 양 회장님이 우리 서원 리조트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우빈이가 나한테 먼저 물어봤는데 나도 괜찮다고 했어. 그래서 내일은 회사 안 나가고 집에서 귀한 손님 맞이할 생각이야. 여보, 회사 일이 별로 안 바쁘면 당신도 올래? 시우도 그렇고.”전태윤이 말을 받았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는데 체면 세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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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7화

“시우는 아직 결혼에 마음 쓸 여유가 없는데 우리도 굳이 서두를 필요 없어요.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봐요.”하예정은 전혀 급하지 않았다.아들딸 모두 무척 빼어난 덕에 전시우는 장가갈 걱정 없고 전하연도 시집갈 걱정이 없었다.아들이 결혼할 마음만 먹으면 줄 서서 시집오겠다는 여자들이 세상에 널렸으니까.“우빈이가 오히려 서둘러야 할 때예요.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는지 눈여겨봤다가 소개해 줘요. 언니는 입으로는 재촉 안 하지만 속으로는 나한테 우빈이 일 좀 더 챙겨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주우빈은 벌써 서른을 넘겼다. 전씨 가문에서만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니라 주씨 집안에서도 주우빈이 하루빨리 장가가서 아기를 낳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예전이야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주씨 집안 사람들은 주우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심지어 새어머니 서현주조차 주우빈에게 보상하려 애쓰며 주우빈이 잘되기만을 진심으로 바랐다.전시우가 말을 이었다.“우빈이 형은 눈이 하늘 높이 달려 있어서요. 관성 시내 그깟 따님들은 성에 안 찰걸요. 지연 누나 같은 커리어 우먼 스타일만 좋아해요. 그런데 지연 누나는 율이 형이 코앞에서 꽁무니를 쫓아다니니까 결국 우빈 형한텐 기회가 없는 거죠.”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네 사촌 형은 지연한테 남녀 감정 같은 건 없어. 둘은 그냥 친구 사이, 오누이 같은 정만 있을 뿐이야.”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익숙한 사이였다.주우빈은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예지연에게 이성 감정은 전혀 없었다.예전에 용정이 주우빈을 떠본 적도 있었다. 주우빈이 예지연을 좋아하면 자기가 좀 도와줄 수도 있다면서, 주우빈 사람됨됨은 믿는다면서 말이다.용정은 선우율을 원래부터 달갑지 않게 여겼다.어릴 적부터 자기 귀한 여동생 곁만 맴돌고 있는 녀석이 곱게 보일 리가 있겠는가.선우율 말고 예지연과 결혼할 배짱 있는 남자가 몇 안 된다는 사실을 용정도 사실 뻔히 알고 있다. 그래도 입만 열면 꼭 그 ‘도둑놈’을 한마디씩 깎아내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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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8화

동생들은 아직 어려서 그 무거운 짐을 떠안을 실력이 없었다.부모님 연세도 점점 늘고 있는데 장남이자 큰형인 전시우가 당연히 앞장서서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그래야 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다행히도 전시우는 돈 버는 데 재미를 느끼는 타입이라 그룹 전체를 맡는 일을 스트레스로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재미있었다.“젖먹이였을 때가 제일 좋았겠지.”전태윤이 아들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맞아요. 젖 먹을 때가 진짜 좋았어요. 아무 걱정 없이 그냥 먹고 놀고 아빠랑 엄마를 쟁탈전하던 그 시절이요.”전태윤은 또 할 말을 잃었다.이 녀석, 영락없이 자기 아버지 약 올릴 생각뿐이었다.하예정이 웃으며 전태윤에게 재촉했다.“얼른 운전해요. 우빈이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시우야, 넌 아빠랑 그만 좀 티격태격해.”전시우가 웃으며 받아쳤다.“아빠가 속 좁게 엄마를 독차지하시니까 그렇죠. 엄마는 저랑 하연이 거예요!”“이 고약한 녀석! 내가 없었으면 너희 둘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겠냐.”전태윤이 웃으며 아들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불경도, 아들에 대한 무관심도 아니었다.다만 그렇게 묵묵히 지내는 게 이들 부자의 방식이었다.세 식구는 한성 호텔로 향했다. 주우빈은 이미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세 사람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주우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맞이하러 갔다.“이모, 이모부! 시우야.”주우빈이 웃으며 사촌 동생과 손바닥을 마주쳤다.“오랜만이네.”전시우가 웃으며 대꾸했다.“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형이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우리가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렵지.”“어쩔 수 없잖아. 너도 바쁘니까 만날 시간이 안 나는 거지.”주우빈은 아주 자연스럽게 사촌 동생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이번에 형이 한동안 관성에 있을 거니까 시간이 엄청 많아. 언제든 둘이 샤브샤브도 먹고 술도 한잔하자. 임준이도 부르고.”“아, 임준이 걔? 나한테 휴가 냈어.”“휴가? 왜 휴가를 냈대? 아, H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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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9화

주우빈은 하예정 세 식구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에 양인석과 양윤서가 있는 룸으로 안내했다.“이모, 저는 위층으로 양 회장님네 모시러 잠깐 다녀올게요. 음식은 이미 주문해 뒀으니까 혹시 더 드시고 싶은 메뉴 있으시면 추가해요.”하예정이 대답했다.“네가 주문했으면 됐지. 우리 호텔 음식인데 네가 시킨 거라면 뭐든 다 잘 먹을 수 있어.”자기 호텔 요리인 만큼 하예정 부부는 그 맛과 품질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얼른 모시고 와. 우린 차나 한잔 마시고 있을게.”“네.”주우빈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양인석과 양윤서를 데리고 들어왔다.양인석은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다. 하예정 세 식구는 그들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양 회장님, 양 대표님.”주우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회장님, 여기 세 분은 제가 따로 소개 안 해도 누군지 다 아실 거예요. 제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아들, 제 사촌 동생 전시우입니다. 지금은 전씨 그룹 후계자로 일하고 있고요.”양인석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전 대표님과 하 대표님은 TV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만 전시우 씨는 처음 뵙네요.”그래도 아버지와 아들이 워낙 닮아서 굳이 묻지 않아도 전씨 가문의 큰 아드님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다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나서 모두 자리에 앉았다.그때 호텔 매니저가 직접 룸으로 들어왔다.주우빈이 음식을 내오라고 하자, 매니저는 곧바로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양씨 그룹과 노씨 그룹이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였기에 식사 자리에서는 더 이상 비즈니스 이야기가 오가지 않고 오히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식사가 끝난 뒤, 전태윤 부자는 호텔에 남아 양인석과 담소를 나누고 주우빈은 하예정과 함께 양윤서를 모시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주우빈으로선 호텔에 남아도 상관없었지만 양인석과 양윤서는 어디까지나 자기 손님이라 전부 하예정에게만 떠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예정이 대신 손님을 상대해 주는 것만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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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0화

심지어 사촌 형제자매조차도 없었다.지금은 어머니 친정 쪽 사촌들뿐이었다.아버지 쪽 친척이라고는 먼 친척들뿐이었다.가장 가까운 친척이 아버지 외가댁 쪽이었지만 요즘은 연락도 뜸했는데 그나마 자주 오가는 건 어머니 친정 쪽 식구들이었다.하지만 양윤서는 그 이모와 외삼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양씨 가문에서 뭔가를 뜯어내려 하거나 심지어 양씨 그룹을 집어삼킬 속셈까지 드러내고 있었으니까.양윤서가 스물여덟이 되도록 연애 한 번 안 하자 외삼촌과 이모들은 몹시도 서둘렀다. 걸핏하면 맞선 상대를 붙여 주며 어떻게든 조카를 시집보내려 했다.마치 양윤서를 시집보내기만 하면 양씨 그룹을 물려받지 못할 거라도 되는 양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양씨 그룹 경영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왜 모르는 걸까. 설령 시집을 간다고 해도 양윤서는 여전히 양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사실을.양씨의 모든 것은 여전히 그녀의 것이었기에 외가 쪽 친척들이 넘본다고 해도 그저 헛된 상상일 뿐이었다.양인석도 손녀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어머니 친정 쪽 식구들이라고.자기 핏줄인지라 양윤서의 어머니로서 그 사이에 끼어 난처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음이 여린 데다 형제자매들의 말이라면 쉽게 넘어가곤 했다.양윤서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줄곧 할아버지 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양인석은 며느리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친정 식구들의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켜준 데 대해 마음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그리고 스무 해 넘게 과부로 지내며 손녀를 키워준 은혜에도 늘 고마워했다.하지만 며느리의 성격을 양인석은 빤히 꿰뚫고 있었다. 만약 양윤서가 며느리의 손에서 자랐더라면 그녀는 아마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버릇이 한번 들면 고치기 어려운 법.그러면 양인석이 눈을 감은 뒤 누가 이 그룹을 감당할 수 있을까.며느리의 품에서 자랐다면 양윤서는 자연히 외가 쪽 집안에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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