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가 주경진에게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여보, 나 정말 못 버티겠어요. 서인이가 우빈한테 여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빈 연애 문제는, 우리가 감히 손을 댈 일이 아닌데...”두 노인은 이제 깨달은 지 오래였다. 그 부드러운 미소 아래 감춰진, 단호한 결심과 날카로운 이성의 존재를.우빈을 건드리는 순간, 앞으로 주씨 집안엔 발길도 끊고 생활비조차 보내지 않을 것이 뻔했다.노후를 그럭저럭 편안하게 보내고 있는 두 사람으로서는 굳이 스스로 행복을 깨뜨릴 이유가 없었다.게다가 딸의 눈높이와 인간관계로 과연 어떤 좋은 여자아이를 알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김은희는 딸이 접촉할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이 주우빈과 어울리지 못할 거라 여겼다.“신경 쓰지 마. 우빈 일은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우리는 그냥 편하게 지내자.”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회의실 문이 열렸다.주우빈이 안으로 들어왔다.훤칠한 키에 오똑한 이목구비, 검은 양복이 그의 단정한 얼굴 위에 무게와 성숙함을 더해주었다.마치 붓으로 그려낸 듯한 외모였다.“할아버지, 할머니.”주우빈이 들어서며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두 어르신이 일어서려 하자 주우빈이 얼른 말렸다.“할아버지, 할머니, 그냥 앉아 계세요.”그러고는 할아버지 곁에 자리 잡으며 물었다.“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오셨어요? 미리 말씀만 주셨어도 차를 보냈을 텐데요. 할아버지, 몸은 좀 나아지셨어요?”주경진이 얼마 전 건강이 좋지 않았던 터라 주우빈이 걱정스레 물었다.김은희가 대신 대답했다.“응, 훨씬 나아지셨어. 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 할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렇게라도 달려왔단다. 너는 워낙 바쁘니까 관성에 와도 집에는 얼굴 한 번 비추기가 쉽지 않으니...”출세한 손자를 보며 주경진은 흐뭇한 지소를 지었다. 그는 주우빈의 손을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우빈아, 너 그 독한 년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지? 할아버지가 네 아버지한테 수없이 말했지만 그녀석은 우리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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