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Chapter 1571 - Chapter 1580

1753 Chapters

제1571화

소현아는 곁에 있는 남자를 흘깃 쳐다보았다.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얼굴엔 더 짙은 사나움이 깃들어 있었다.“왜 그렇게 멀리 앉아?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강지훈은 옆에 앉은 소현아를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긴 다리를 뻗어 꼼짝하지 못하도록 소파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강지훈 씨, 만약 아이들 때문이라면 한 번 만나게 해줄게요. 하지만 옛날 일을 따질 생각이라면 미안하지만 저로선 어쩔 도리가 없어요. 벌써 2년이나 지났어요. 우리 혼인신고한 거 말고는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요. 왜 아직도 절 괴롭히려는 거예요?”소현아는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묘한 감정을 억누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엔 약간의 장난기가 떠올라 있었다.“네가 나 원망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괜찮아, 원망해도 돼. 오늘부터 나 너한테 제대로 내 마음 전할 거야. 내가 정말 진심으로 널 원한다는 거 보여줄게.”강지훈의 눈동자엔 반드시 해내겠다는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소현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강지훈 씨, 저 놀리지 말아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어떤 여자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고작 저 때문에 그런 황당한 소리를 한다고요? 제가 당신 말 믿을 거라 생각해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 방 앞으로 걸어가 문을 살짝 열었다. 문틈으로 서로 끌어안은 채 달콤하게 잠들어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봤죠? 난 당신 없이도 충분히 잘살고 있어요. 그리고 나한테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도 있어요. 아이들도 그 사람을 받아들였고요. 더 할 말 없으면 가줘요. 여긴 당신 같은 대단한 분은 모시지 못하는 누추한 곳이거든요.”강지훈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네가 말한 그 마음에 뒀다는 사람, 김태훈이야?”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몸을 뒤덮자 소현아는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려왔다.“맞아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강지훈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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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2화

소현아는 김태훈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경계하듯 강지훈을 노려보았다.강지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슴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저릿해졌다.“강지훈 씨, 가요.” 강지훈은 아무 말 없이 피식 웃더니 자리를 떠났다.소현아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지훈은 성미가 불같아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는 그게 누구든 지옥 끝까지 몰아넣고야 만다.하여 조금 전 김태훈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자신 때문에 김태훈이 이 일에 휘말리는 건 결코 원치 않았다.“현아야, 괜찮아? 내가 안아줄게.”김태훈이 창백한 얼굴로 몸을 숙이자 소현아가 그를 제지했다.“괜찮아, 태훈 오빠. 일단 들어와.”소현아가 문을 열어주자 김태훈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문이 다시 닫혔다. 강지훈은 그 자리에 서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현아야, 방금 그 남자가 네 전남편이야?”김태훈은 자신의 상처를 처치해주는 소현아를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온통 다른 곳에 팔려있는 듯했다.‘얼굴에 또 상처가 생겼겠네. 혼자서 잘 처치할 수는 있을까? 흉터 남는 거 아냐?’머릿속에서 그 몇 줄의 문장이 어지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맴돌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내가 아니어도 강지훈 옆엔 알아서 챙겨줄 여자들이 차고 넘치겠지. 나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소현아가 실수로 손에 힘을 많이 주는 바람에 김태훈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아, 미안해, 오빠. 잠깐 딴생각했어. 방금 뭐라고 했어?”소현아는 스스로도 짜증이 밀려왔다. 머릿속이 왜 온통 강지훈으로 가득하단 말인가.정말이지 미친 게 분명하다.“괜찮아, 현아야. 방금 그런 일을 겪었으니 정신없는 게 당연하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너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라는 거야. 네가 날 남자로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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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3화

“현아야, 그냥 아예 우리 오빠랑 사귀어. 너 어차피 그 사람 싫어하잖아. 오빠랑 결혼하면 그 남자도 어쩌지 못할 거야. 그리고 너도 알잖아, 우리 오빠가 너 좋아한 지 꽤 됐다는 거.”김혜지는 머리를 쑥 내밀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현아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향해 눈을 흘겼다.“혜지야, 양심도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난 같은 마음 아니라는 거 알잖아. 네 오빠 인생 망칠 순 없어.”소현아는 쿠션을 툭툭 두드리더니 다시 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만약 그녀가 진짜로 김태훈과 결혼한다면, 강지훈이 어떤 짓을 벌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김혜지도 소현아가 거절할 줄 알았는지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대신 배달음식을 잔뜩 시키고 강지훈이 보낸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이처럼 좋은 물건들을 낭비할 순 없다는 명목이었다.두 사람은 아이들을 재운 뒤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모두 취해 테이블에 엎드려버렸다.그날 밤, 소현아는 바보였던 시절의 꿈을 꾸었다. 강지훈은 그녀에게 나쁘지 않게 대해 주었고, 적어도 먹고 마시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가끔 ‘운동’을 해야 했던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할 일도, 고민도 없이 빈둥거리며 지냈다.소현아는 입맛을 다시며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뺨을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 그 손을 쳐내며 눈을 떴다. 순간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는 익숙한 얼굴에 깜짝 놀라 새빨개진 얼굴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강... 지훈 씨? 나 지금 꿈꾸는 건가?”소현아는 강지훈의 팔을 철썩 내리쳤다.강지훈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무슨 꿈?”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씩 웃고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그러니까, 내 꿈을 꿨다는 거지?”소현아는 그제야 이건 꿈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소파 위로 뛰어 올라가고는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에 쇄골이 반쯤 드러났다.강지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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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4화

소현아는 결국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메추라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앉아있었다.한참이 지난 뒤 강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거칠게 쉰 목소리가 소현아의 귀에 닿았다.“어머니가 너 돌아왔다는 거 아셨어. 오늘 오시겠대.”소현아의 눈동자가 조금 어두워졌다.그녀는 당연히 강지훈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었다.고윤정은 그녀에게 늘 따뜻하고 친절히 대해줬었다. 하여 그때의 일로 소현아가 가장 미안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고윤정이었다.그녀는 고윤정이 아들의 결혼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강씨 가문의 후손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단호히 떠나버렸었다.하여 지난 2년간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강지훈의 말에 그녀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윤정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강지훈이 떠난 뒤, 소현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얼마 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소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역시나 고윤정이 서 있었다.고윤정은 안경을 벗으며 방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예전보다 약간 수척해진 모습이었다.소현아는 황급히 옆으로 비켜서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그녀는 고윤정이 자신을 보자마자 비난하거나 실망감을 내비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고윤정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현아야, 집에서 이런 거 먹고 마시는 거야? 몸 너무 안 챙기는 거 아니니?”고윤정은 안으로 들어와 탁자 위 배달음식과 맥주를 보고는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소현아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귓불을 만지작거렸다.“자주 이렇게 먹는 건 아니에요.”그녀가 변명하듯 말했다. 고윤정의 태도 때문일까, 소현아는 왠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고윤정이 예전부터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윤정은 한숨을 내쉬며 소현아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현아야, 2년 만이네. 너 얘기 다 들었어. 잘했어. 강지훈을 떠난 뒤로 너 정말 많이 성장했더구나. 오늘 이렇게 온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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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5화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소현아는 두 아이의 몸을 꼼꼼히 살피며 혹시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울음소리는 그칠 줄을 모르고 점점 더 커져만 갔다.“그만 울어. 시안아, 엄마한테 말해줘. 도대체 왜 우는 거야?”소현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고윤정의 눈동자엔 약간의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엄마, 우리 둘 버리고 가는 거예요? 저희 버릴 거예요?”강시안은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평소엔 어른스러운 척 의젓하게 굴어도 결국 두 살밖에 안 된 아이인지라 이런 일에선 울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소현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소현아의 반응에 두 아이는 더욱 확신한 듯했다.강시윤은 아예 소현아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엄마, 거짓말하지 말아요! 전에 다른 애들이 말하는 거 들었어요. 엄마가 자기들을 버리고 돼지족발이랑 도망갔다고요. 그전에 그 돼지족발이 매일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온갖 선물을 보냈다고도 했어요!”강시윤은 숨도 안 쉬고 한꺼번에 쏟아냈다.소현아는 잠시 멍하니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엉덩이를 털썩 바닥에 떨어뜨렸다.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옆에 있던 고윤정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소리에 두 아이의 시선이 고윤정에게로 쏠렸다.“예뻐요.” 강시윤은 고윤정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고윤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 꼬마는 예전의 소현아와 그야말로 똑같았다.“그 사람은 돼지족발이 아니라...”소현아가 낮게 중얼거렸다.그녀는 결국 모든 걸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다. 어쨌든 친아버지이기에 아이들에게도 알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두 아이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고윤정은 이미 회사 일 때문에 자리를 떠났다.“자, 이제 안심했지? 설령 누군가와 함께 간다고 해도, 엄마는 절대 너희를 버리지 않아.”소현아는 아이들의 부드러운 볼을 꼬집으며 미소를 지었다.그 후 며칠, 소현아는 강지훈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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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6화

두 아이는 그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이후 셋은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초조하고 다급한 얼굴의 김태훈이 보였다.“미안, 현아야. 나 급히 회사로 돌아가야겠어. 회사에 문제가 생겼어.”소현아는 괜찮다며 그를 다독였다.멀어지는 김태훈의 뒷모습을 보며, 소현아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불안감이 엄습해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김태훈의 회사는 늘 순조롭게 잘 굴러갔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게다가 그 표정으로 보아 작은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정말 그 남자가 벌인 일일 지도 모른다.소현아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나쁜 놈, 나쁜 놈! 저리 가!”그때,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소현아는 고개를 홱 들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아파트 뒤쪽 빈터에서 두 아이가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 옆에는 건장한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어디서 굴러먹던 꼬맹이들이야. 꺼져!”남자가 강시윤의 뺨을 때리려 손을 휘두르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의 팔을 잡아챘다.소현아가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 맺힌 채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그녀는 재빨리 두 아이를 끌어당겨 뒤로 숨겼다.“이 꼬맹이들, 내가 뭐랬어? 여기 오지 말라고 했지?”소현아가 주먹을 힘껏 말아쥐었다.“엄마, 저기요, 저 사람이 강아지들을...” 강시윤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소현아가 시선을 돌렸다. 작은 구덩이 안에는 몇 마리의 강아지 시체가 처참하게 놓여 있었다. 그중 유일하게 그들과 친했던 강아지만이 간신히 호흡하며 낑낑거리고 있었다.소현아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젠장, 이런 망나니 놈과 마주치다니.’소현아는 머리를 질끈 묶고 강시안의 어깨를 툭 쳤다.“시안아, 너랑 시윤인 가서 사람들 불러와. 어서.”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그녀의 발목을 잡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버텨볼 만할 것 같았다.강시안은 눈물을 훔치며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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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7화

강지훈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발로 걷어찼다.소현아는 정신을 차린 뒤 눈앞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보고는 황급히 강지훈의 손을 잡아끌며 고개를 저었다.강지훈은 한숨을 내쉬고 사람을 시켜 남자를 끌어냈다. 다만 잘 모시라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소현아는 목이 따끔거려 침을 꿀꺽 삼켰다.“병원부터 가.” 강지훈은 분노를 억누르며 소현아의 목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아이들은요?” 소현아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풀숲에서 튀어나오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곧장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엄마...”강시윤이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쏟아냈다. “자, 봐. 엄마 괜찮잖아.” 소현아가 강시윤의 코끝을 꼬집으며 말했다. 강시윤과 강시안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아빠, 감사합니다.”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소현아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강지훈도 처음엔 깜짝 놀라 당황했지만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 어색함은 좀처럼 가시지가 않았다.그들은 죽은 강아지들을 묻어주고, 간신히 숨을 쉬던 강아지는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다행히 시간이 늦지 않아 한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맡겨둔 뒤 그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소현아는 줄곧 괜찮다고 우기며 병원에 가는 건 완강히 거부했다.강지훈과 같이 병원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이 뻔뻔한 남자는 눈치도 없이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 집까지 와버렸다. 심지어 의사까지 불러왔다.한참 뒤에야 검진이 끝났고, 큰 이상이 없어 약만 처방받았다.“내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냥 가벼운 상처일 뿐이에요.”소현아는 손가락을 펼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강지훈은 어딘가 다소 불편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의사는 소현아의 검진을 마친 뒤에야 조심스럽게 강지훈을 쳐다보았다.“주인님, 저기...” 소현아는 그제야 강지훈의 얼굴이 창백하고 몸에서 희미한 피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아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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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8화

의사가 떠난 뒤에도 강지훈은 여전히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소현아의 집에 남아있었다.“강지훈 씨, 거머리예요? 빨리 돌아가요!” 소현아가 팔짱을 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가기 싫어. 하지만 소원 하나 들어주면 다시 생각해볼게!”소현아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만지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황급히 고개를 흔들고는 머리를 아래로 떨구었다.“뭔데요?”소현아는 내키지 않았지만, 강지훈에게 도움을 받았던지라 이번만큼은 자비를 베풀어주리라 다짐했다. 강지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일 나랑 관람차 타러 가자. 아이들도 데리고.”그의 시선이 문틈으로 두 사람을 엿보고 있는 두 아이에게로 향했다.소현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강지훈은 아침 일찍부터 옷장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옷을 골라 입을 뒤 소현아의 집 앞에 도착했다.놀이공원은 텅 비어 있었고, 관람차 아래엔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소현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여기 왔을 때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강지훈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 소현아는 고개를 숙이고 괜히 옆에 있는 자갈을 툭툭 차버렸다.“기억 안 나요.”“괜찮아, 내가 기억하니까. 관람차 꼭대기에서 키스하며 소원을 빌면, 우린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했어.”강지훈이 웃으며 말했다.그때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집착을 해서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나랑 같이 타줄래?”그가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소현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강지훈 씨, 한 가지 물어볼게요. 태훈 오빠 회사 일, 당신이 한 거예요?”강지훈은 살짝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왜 하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 얘기를 꺼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난 몰라. 그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한테 뭘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단호한 강지훈의 대답에 소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관람차 쪽으로 걸어갔다. 강지훈은 잠시 멈칫하다가 곧바로 그녀를 따라갔다.관람차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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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9화

그 후 며칠 동안, 강지훈은 매일 소현아의 집을 찾아갔다. 불쌍한 척 연기하며 소현아의 측은지심을 자아내 약을 발라주게 하려는 속셈이었다.“강지훈 씨, 오늘 바빠요?”소현아가 베개를 끌어안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준비해 온 아침 식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던 강지훈은 그 표정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소현아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매일 남이 만든 음식만 가져오니까 진심이 하나도 안 느껴져요. 계속 이러면 화낼 거예요.”소현아가 빵빵하게 볼을 부풀리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동안 두 사람은 늘 이런 식의 묘한 분위기를 형성해 왔다. 강지훈이 화해를 청하려 하면 소현아가 모르는 척했고, 그 이후엔 강지훈이 다시 문제를 외면했다.“그래서 뭐? 내가 직접 만들어주길 바라는 거야?” 강지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소현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대에 부푼 얼굴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강지훈의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소현아는 순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평소 성격이라면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고도 남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부엌은 평소 주로 김혜지가 쓰는 곳이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부엌을 바라보며 소현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베개를 쥔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한 시간이 지나고, 소현아는 식탁 앞에 앉아 손을 비비며 기대에 찬 눈으로 덮개에 가려진 두 접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걱정 말아요. 지훈 씨 고생해서 만든 음식 맛있게 먹을게요.”소현아는 강지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신나게 덮개를 들추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얼굴이 굳어버렸다.“이게 뭐예요? 지금까지 만든 게 고작 이거예요?”거뭇하게 타버린 두 그릇의 국수를 본 소현아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경직되었다. 강지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자연스레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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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0화

전화를 끊은 뒤, 강지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그 후 며칠 동안 음식은 전부 다른 사람이 배달해 왔다. 소현아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고작 한 달 보내주고 포기했나 봐. 회사 일이 많다나 뭐라나. 진짜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소현아는 손에 든 홍당무 모양 베개를 꾹꾹 주무르다가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지 연이어 쾅쾅 내리쳤다. 옆에 있던 김혜지는 너무나 질려버려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소현아가 강지훈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으니 말이다. 이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거짓말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면 회사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되잖아?”김혜지의 말에 소현아는 탁 하고 그녀의 허벅지를 내리쳤다.“좋은 생각이야. 김혜지! 역시 네가 똑똑해.”흥분제라도 맞은 듯 돌연 의욕에 활활 불타오르는 소현아를 보며, 김혜지는 얼얼한 허벅지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끝났네. 우리 오빠 그 멍청이는 이제 기회도 없겠어.”소현아는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어떤 핑계를 대고 내일 강지훈을 찾아갈지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말이다.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소현아는 부산스럽게 준비를 시작했다. 수십 벌을 갈아입으며 고민한 뒤 결국 연분홍색 짧은 치마를 입었다. 초인종이 울리자 소현아는 바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돼요.” 말을 마친 뒤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 그녀를 보며 문 앞에 선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소현아는 심지어 두 꼬마까지 말끔히 꾸며 놓았다. 만약 강지훈이 정말 그녀를 속인 거라면, 아이들과 함께 회사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작정이었다.셋은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강지훈이 새로 설립한 회사를 향해 출발했다.소현아는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아까 엄마가 한 말 다 들었지? 엄마가 손가락으로 신호를 주면 바로 울음을 터뜨려야 해, 알겠지?” 소현아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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