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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Chapter 1901 - Chapter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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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1화 운명을 바꾸다

온다연은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묵묵히 그녀를 노려보았다.팽팽한 침묵이 길게 이어졌고 유강후의 눈빛을 끝내 피하지 못한 온다연이 마침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저를 미워하시는 게 당연해요...”유강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내가 묻고 있잖아. 넌 날 누구로 착각한 거야?”온다연은 눈을 꼭 감고 용기를 짜내듯 대답했다.“남... 남자 친구요...”그 순간 유강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네가... 남자 친구가 있다고?”온다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유강후 곁을 지켰고 등하굣길까지 직접 챙겼다. 학교 안에서도 늘 그의 사람들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런데도 온다연에게 남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유강후의 시선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누가 네 남자 친구야?”온다연은 주먹을 꼭 쥔 채 눈을 감았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끝에, 마침내 염지훈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이름은... 염지훈이고 경원시에 살아요...”유강후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스쳤다.“염지훈?”순간 그의 기억이 번쩍 떠올랐고 염지호의 친동생이 바로 염지훈임을 깨달았다. 불과 며칠 전 그가 형에게 붙잡혀 심천시로 끌려간 사실도 알고 있었다.유강후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네 말은... 염지훈이 며칠 동안 내내 너랑 함께 있었다는 거야?”유강후는 평소라면 그 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염지호의 동생이라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그때 문득 깨달음이 스쳤다. 수년간 온다연과 함께한 평온한 시간은 자신이 잃었던 모든 것을 보상받는 듯한 나날이었고 그녀를 그의 뜻대로 키워냈다.그래서인지 그는 거의 잊을 뻔했다. 이 세계가 현실인지 혹은 그저 덧없는 꿈인지조차 흐릿해져 버렸다.‘이거 꿈일 수도 있어.’희미한 기억 속 다른 세계에서 염지훈은 자신과 온다연을 두고 다투던 자였다. 그곳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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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2화 부끄러운 꿈을 꾸다

유강후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다.“진씨 가문과 연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본래 그는 온다연이 열여덟 살이 되는 해에 친부모와 상봉시키고 진씨 가문에 직접 가서 혼사를 정하려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열여덟 번째 생일 다음 날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염정훈까지 만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래서 혼사를 서둘러야 했다.그는 그녀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더 이상 참을 수도 없었다.“진씨 가문에서는 아직 반신반의하는 눈치입니다. 온다연 씨의 사진을 보여주니 합성 아니냐며 의심하더군요. 그런데 저희가 온다연 씨의 머리카락을 건네자 그제야 직접 와서 친자 확인을 하겠다고 했습니다.”유강후의 미간이 좁아졌다.“진씨 가문 사람들은 언제 도착하지?”이권이 답했다.“아마 머리카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이번엔 진 회장님께서 직접 오신다고 합니다. 벌써 마음속으로는 여덟 할은 믿는 듯합니다. 이틀 사흘 안에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심천시에 오신 사실이 새어 나간 모양입니다. 여기서 꼭 뵙고 싶다는 협력사들도 있고 몇몇 정계 인사들도 제게 예약을 걸어왔습니다. 며칠 더 머무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유강후는 짧게 답하고 다시 서류에 시선을 내리꽂았다.“진 회장님 접대는 최고 수준으로 준비해.”“네. 대표님.”동이 틀 무렵 유강후는 마침내 집무실을 나섰다.피로를 씻어내고 방으로 들어서니 온다연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침대 모서리에 몸을 웅크린 채 작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곁에 앉아 어둑한 빛 속에서 잠든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봤다.“왜 이렇게 많이 야위었지...”그녀의 손과 발마저 전보다 한 뼘은 작아진 듯했다.“내가 너를 너무 제멋대로 두었구나. 다연아, 이제부턴 그렇게 자유롭진 않을 거야.”적어도 혼인이 공식적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더욱 철저히 지켜야 했다.익숙한 기운을 느낀 듯 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쪽으로 몸을 기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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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3화 온다연의 속마음

유강후는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온다연이 바라보는 그가 얼마나 눈부신지조차 알지 못했다.며칠 전 그가 「시대」 잡지 표지에 실렸던 사진이 떠올랐다.젊음과 기품 차가운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사진 속 모든 디테일이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 깊이 박혀 있었다.그 사진은 한동안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온다연은 몰래 한 장을 휴대폰에 저장해두었다. 가끔 한밤중에 몰래 꺼내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지금 눈앞의 유강후 또한 그 사진만큼이나 눈부셔서 온다연은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는 것을 느꼈다.유강후는 한 손에 가느다란 도자기 찻잔을 들고 다른 손엔 그날의 신문을 든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무심하게 물었다.“깼어? 와서 아침 먹어.”온다연은 차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느릿느릿 식탁으로 다가갔다.식탁 위에는 경원시 집에서 늘 먹던 바로 그 아침 식사들이 차려져 있었다.이곳은 외국식 브런치 문화가 익숙해서 이런 아침상은 흔치 않은데 굳이 이렇게 준비해 둔 것이었다.온다연이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강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쪽 재료로는 이 정도밖에 못 해서 미안하다. 대충 먹어. 집에 가면 제대로 해줄게.”바로 그때 서류를 전하러 들어온 이권이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온다연 씨, 대표님께서 호텔 주방까지 빌려 특별히 아침을 준비하신 겁니다. 혹시 여기 음식이 입에 안 맞을까 봐 걱정하셔서...”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이권, 쓸데없는 소리 마. 일이 없는 모양이지?”이권은 얄밉게 웃으며 서류를 내려놓고 황급히 방을 나섰다.온다연은 생선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익숙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자 그녀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맛있어.’너무나 맛있어서 어쩌면 그가 차려주는 마지막 밥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앞으로 그가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따뜻한 밥을 해주고 자신은 영원히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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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4화 믿고싶지 않다

‘염지훈과 다연이가... 도대체 언제부터 만난 거야?’그 의문은 칼날처럼 유강후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는 숨조차 막힐 듯 답답했다.그는 온갖 방법으로 악연을 끊어내려 했지만 운명의 손길은 끝내 그들을 제자리로 밀어 넣고 있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차갑게 물었다.“온다연, 너 정말 염지훈이랑 사귀는 거야?”온다연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 작은 동작이 또다시 날카로운 칼이 되어 유강후의 가슴을 할퀴었고 그는 너무 괴로워 거의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그럴 리가 없어.’둘은 원래 한 쌍으로 결혼하고 아이까지 가질 예정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은 완전히 잘못된 흐름이었다.‘왜 하필... 다연이가 염지훈을 좋아한다고 하는 거지? 분명 거짓말일 거야.’마치 현실을 부정하듯 유강후가 낮게 입을 열었다.“온다연, 사실 아주 중요한 얘기가 있는데 아직 너한테 하지 못했어.”온다연이 고개를 들었다. 긴 속눈썹 끝에 맺힌 눈물이 흔들렸다.“무슨 일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당장 꺼져’라고 말할까 봐 그 말이 나오면 곧장 도망치겠다고 본능적으로 마음을 굳혔다.그러나 유강후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네 친부모를 찾았어. 며칠 안에 자리를 마련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둬.”온다연은 그 순간 완전히 얼어붙었다.“저...제 친부모요?”유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분들은 H국 사람이 아니야. 넌 신국 진씨 가문의 딸이지. 이미 네 유전자 샘플은 넘겨뒀고 진씨 가문 사람들이 곧 직접 와서 확인할 거야.”온다연은 멍하니 굳어버렸다.그가 처음 자신을 데려왔을 때도 온준용은 친부가 아니라고 말하며 성인이 되면 반드시 친부모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했었다.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친부모 찾기’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물론 만나고 싶긴 했지만 유강후 곁에만 있다면 굳이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토록 오래 기다려도 소식 없던 일이 왜 하필 지금에야 들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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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5화 온다연의 죄책감

유강후가 다가와 그녀의 머리칼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온다연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며 그 손길을 피했다.그녀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그를 거부한 건 처음이었다.유강후의 미간이 희미하게 좁혀졌다. 이내 손짓을 하자 누군가가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대표님, 방금 전달되었어요.”뚜껑이 열리자 안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머리핀들이 빛을 뿜으며 들어 있었다.“네 생일 때 할아버지가 보내신 거야. 하지만 그다음 날 네가 도망쳐 버려서 보여주지도 못했어. 이번에 네 부모님을 뵐 때 쓰면 딱 좋을 거야.”온다연은 힐끔 안을 들여다보았다.다이아몬드와 보석이 박힌 머리핀들이 일고여덟 개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하나같이 진귀한 수집품 같은 품격을 풍겼다.유강후는 그중 파란 나비 모양 장식을 집어 그녀의 머리칼에 꽂았다.“오늘 옷이랑 잘 어울리네.”따뜻한 손끝이 머리카락을 스치자 온다연은 간지러운 듯 몸을 움찔하며 또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제가... 제가 직접 할게요.”그녀는 황급히 머리핀을 빼 귀 옆에 다시 꽂으며 분명 그의 접근을 막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그 순간 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졌다.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강하게 끌어당겼다.“온다연, 내가 널 이렇게 키워 온 게 나한테서 멀어지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온다연은 얼어붙은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아저씨...”유강후의 시선은 싸늘히 내려앉아 있었다.“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넌 벌써 도망치려 들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어?”순간 온다연의 머릿속이 하얘졌다.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가락을 초조하게 꼬아 쥔 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꼼짝도 못 했다.“죄송해요... 죄송해요...”유강후는 하늘의 달처럼 닿을 수 없는 존재였고 온다연은 그 빛을 더럽혀 버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과뿐이었다.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그 말밖에 할 게 없어?”온다연이 경원시에 있을 땐 염지훈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 오히려 이곳에 와서야 우연히 마주쳤다는 것까지 그는 이미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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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6화 착각하고 있다

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목의 핏줄이 불끈거리는 것을 느꼈고 이를 악물고 낮게 내뱉었다.“나랑 돈 얘기를 하자는 거냐? 좋아. 그러면 제대로 계산해 보자.”“온다연, 네가 지금까지 입은 옷 중 가장 싼 것도 억 단위야. 악세사리 하나만 집어도 수천만 원은 족히 넘지.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돈은 갚는다 치자. 어차피 네겐 부족할 리 없지. 하지만 내가 널 위해 쏟아부은 정성과 시간, 그건 네가 어떻게 갚을 건데?”온다연의 가슴이 먹먹하게 죄어왔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그 처량한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유강후의 마음속 ‘벌을 주고 싶다’라는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강압적이면서도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덮쳤다.온다연은 심장이 미친 듯 뛰어 눈을 크게 뜨고 얼어붙은 채 꼼짝도 못 했다.유강후가 낮게 명령했다.“눈 감아.”꿈속처럼 얼떨떨한 상태에서 온다연은 순순히 눈을 감았고 긴 속눈썹이 그의 눈두덩을 스치며 간지럽게 흔들렸다.사실 그는 원래 그녀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진심을 드러낼 생각이었다.하지만 상황은 이미 그의 계획을 벗어나 있었고 온다연이 마치 도망치려는 기세를 보이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그는 품을 더 단단히 조이며 입술을 더욱 깊게 탐했다.온다연이 숨이 막힐 듯 가빠질 때야 겨우 입술을 떼었다.멍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붉게 부풀어 오른 자기 입술을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아저씨...”유강후 역시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낮게 말했다.“네가 내게 갚아야 할 건 바로 이런 거야.”온다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뺨을 세게 꼬집었다. 뽀얀 살결 위에 금세 붉은 자국이 번졌다.“안 아파... 정말 꿈이네...”그녀는 다시 한번 꼬집었지만 찌릿한 감각은 있었음에도 가슴이 너무 요동쳐 고통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유강후는 얼떨떨한 듯 계속 자신을 꼬집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쓰다듬으며 자신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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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7화 현실과 꿈

온다연은 내내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불타듯 붉었고 심장은 쉴 새 없이 요동쳤다.식당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두 볼은 여전히 붉게 달아올랐고 유강후는 그녀가 부끄러워서 말조차 못 하는 줄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식사 내내 그녀는 제대로 앞을 보지 못했다.그녀의 시선은 늘 피했고 젓가락을 떨어뜨리거나 물잔을 엎는 일도 잦았다.유강후가 정성껏 게살을 발라 그녀 앞에 놓아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고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심지어 주스를 마시다가 입가로 흘려보내는 바람에 그의 미간은 점점 좁아졌고 유강후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마침내 식사가 끝나갈 즈음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태를 알아차렸다.온다연의 볼만이 아니라 목덜미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손을 대보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그는 서둘러 그녀를 호텔로 데려와 유명한 의사를 불러들였다.한 층 전체가 보안 인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낯선 의사는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진찰을 마친 의사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심장이 빨리 뛰고 맥도 불안정합니다. 혹시 흥분제를 섭취한 건 아닌지요?”“무슨 뜻이죠?”유강후가 눈썹을 좁혔다.“이 아가씨는 극도로 흥분된 상태입니다. 마치 현실과 꿈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처럼 신경이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열은 아마 심리적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약을 조금 먹으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내려다보았다.그녀의 눈동자는 몽롱하게 흔들리며 자신만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 속엔 현실감이 없는 희미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그는 단박에 이유를 짐작했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마음은 안쓰러웠다.“약을 처방해 주세요.”약을 받아온 뒤, 그는 직접 조제해 그녀에게 건넸다.유강후는 쓰다며 고개를 젓는 그녀를 달래려 급히 곶감을 사 오게 해서 겨우 먹였다.약을 먹은 후에도 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가끔 바보처럼 웃기까지 했다.유강후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고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그녀가 분명 많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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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8화 병일지도 모른다

온다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자신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유강후 같은 사람이 그런 행동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는 너무 높고 찬란해서 감히 누구도 쉽게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그와 함께한 세월 동안 온다연은 수없이 많은 여인이 그를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모습을 보아왔다.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명문가 출신에 뛰어난 미모와 지위를 갖춘 이들이었지만 유강후는 언제나 냉혹하게 굴었다. 마치 사랑 따윈 모르는 차가운 기계처럼 어떤 감정에도 응답하지 않았다.가끔 철없는 이들이 억지를 부리면 끝은 더욱 참혹했다.예전에 한 집안의 아가씨가 전통 한옥까지 찾아와 매일 대문 앞에 서서 그를 보겠다고 버틴 적이 있었다.온다연은 그때 유강후가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아가씨는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고 아프리카로 쫓겨나 다시는 귀국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그 과정에 유강후가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맛보았을 절망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본래부터 그는 특별히 매혹적인 사람이었다. 압도적인 아우라는 차치하더라도 준수한 외모만으로도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그러니 온다연이 유강후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이상할 리 없었다.온다연은 늘 속으로 은근히 자부했다. 사랑을 얻지 못하더라도‘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날 밤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가 그런 짓을 저질러 버릴 줄이야.’지금은 차라리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고 있었다.온다연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대낮에도 유강후가 자신에게 먼저 키스한다는 망상을 꾸었고 생각할수록 가슴이 조여 오며 답답함을 느꼈다.온다연은 소파에 웅크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잠시 뒤 집사가 문을 두드렸다.“온다연 씨, 아침 식사 준비되었습니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식탁에 앉았지만 그곳에 유강후는 없었다.그 순간 온다연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그와 마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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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9화 유강후의 존재감

유강후는 여전히 바빴다.오후가 되자 호텔 옥상에서는 작은 헬리콥터들이 끊임없이 이착륙했고 호텔 전체가 마치 특별히 통제된 공간처럼 보였다.로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런트 직원들과 소수의 근무 인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유강후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었다.경원시에 있을 때 온다연은 그의 회사를 거의 방문한 적이 없었고 전통 한옥에는 감히 누가 찾아올 수도 없었다.그래서 유강후가 권세를 가졌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다.하지만 이곳에 온 지 불과 이틀 만에 온다연은 이제야 깨달았다.그는 정말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그를 만나길 원했고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유강후는 점심조차 함께 먹지 못했고 그저 현지의 특별 요리 몇 가지를 시켜 그녀에게 보내줄 뿐이었다.해가 기울 무렵 드디어 옆 회의실에서 유강후가 나왔다.로비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온다연은 그가 들어서는 순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광택 없는 검은색 슈트를 입은 그의 온몸에서는 기품이 흘러넘쳤다.유강후는 단정하고 차갑고 철저히 공식적인 분위기였다.그 시선을 느낀 그는 짧게 말했다.“조금 뒤에 네가 가고 싶다던 식당에 가자.”그러고는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후 한결 편안한 분위기의 연한 색 정장을 입고 나왔다.분명 이곳 사람들과 비슷한 차림인데도 그에게서 풍기는 오랜 지위의 기운은 감춰지지 않았다.평범한 옷차림조차 그의 몸에 걸치면 곧 상징적인 권위로 변해버렸다.저녁 공기가 무더운 이곳에서 온다연은 간단히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었다.집 앞에 나가려고 슬리퍼를 신으려는 순간, 유강후가 그녀를 붙잡았다.“슬리퍼 신고 밖을 나가면 단정하게 보이지 않아.”온다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여기선 다 이렇게 입고 다녀요. 아저씨도 한번 해보실래요?”그러나 유강후는 그녀의 발끝 분홍빛 둥근 발가락이 드러난 걸 보자 곧 인상을 찌푸렸다.“신발 제대로 신어. 밖에서 슬리퍼 끄는 버릇은 들이지 마.”며칠 동안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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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0화 예상치 못한 만남

유강후가 자신에게 따지겠다는 말을 하자 온다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물었다.“어떻게 나한테 책임을 묻겠다는 거예요?”유강후는 시선을 내리깔고 냉랭하게 그녀를 훑었다.“아직 정하진 않았어.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온다연은 입술을 꼭 깨물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그가 자신을 내쫓지 않는다면 어떤 벌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때 차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며 덜컥거리자 온다연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유강후의 품에 쓰러졌다.더구나 손까지 하필이면 그의 민망한 자리를 정확히 짚고 말았다.순간 차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온다연은 눈이 휘둥그레져 어찌할 바를 몰랐고 심지어 두어 번 미묘하게 뛰는 듯한 감각까지 전해졌다.‘아! 나 어떡해.’한 박자 늦게 손을 홱 빼내며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유강후의 표정은 살벌하게 굳어 있었다.“운전 똑바로 안 해? 또 이따위로 흔들리면 당장 그만둬.”운전기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사과할 뿐이었다.이후 차 안은 무겁고 어색한 침묵에 잠겼다.온다연은 얼굴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길이 막혀 한참을 갇힌 듯 답답한 시간이 흐른 뒤 목적지에 도착했다.하필이면 그곳은 그녀가 평소 자주 지나던 동네 원룸 근처의 유명한 음식점이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도망치듯 뛰어내렸다.마침 입구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의 고양이를 품에 안고 다가왔다.“온다연 씨의 고양이도 데려왔어요.”온다연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며칠간 정신이 없어서 사랑하는 고양이를 생각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다.고양이를 품에 안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이제 경원시에 돌아가면 너랑 구월이는 같이 지낼 거야. 구월이는 언니니까 잘 챙겨주고 사이좋게 지내야 해.”유강후는 고양이를 흘깃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둘을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온다연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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