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1931 - 챕터 1940

1985 챕터

제1931화 뒤바뀐 세상

곧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이권이 그의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도련님은 모르시겠지만 잠들어 있던 이 몇 달 동안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어요. 처음에는 회사의 오래된 직원들이 대거 떠나버렸고 우리를 노리던 경쟁사 때문에 회사가 거의 무너질 뻔했어요. 회사 주식은 초기 주가까지 내려갔고...”“온다연 씨가 위기에서 회사를 구했어요. 거기에 봉현수 씨, 시장님, 한 대표님, 그리고 진씨 가문과 박씨 가문도 큰 힘을 보탰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결국 난관을 이겨냈죠.”“지금 그룹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성스러운 오래된 직원들이고 온다연 씨가 또다시 신입 인재들을 뽑아 직접 키우며 자신의 측근으로 만들었어요.”“온다연 씨는 정말 대단합니다. 예전엔 그렇게 연약해 보이더니 일할 때는 도련님과 똑 닮았어요...”유강후가 뒤돌아보며 그를 흘깃 쳐다봤다.“나랑 똑 닮았다니 내가 일 처리를 잘 못한다는 뜻이야?”이권이 서둘러 말했다.“아닙니다. 제 말은 온다연 씨와 도련님은 천생연분이라는 뜻이에요.”유강후가 냉큼 코웃음을 쳤다.“그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어?”사무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장화연이 뒤쫓아왔다.그녀는 도시락통을 유강후에게 건넸다.“이건 사모님이 매일 먹어야 하는 연유 제비집이에요. 안으로 가져다주세요.”“하루 종일 일만 했고 또 임신까지 했으니까 행동을 조심해 주세요...”유강후는 도시락통을 받아 들고 깊이 숨을 내쉬었다.생각지도 못하게 그는 무려 네다섯 달이나 잠들어 있었고 그 네다섯 달 동안 그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꿈속에서 그는 직접 온다연을 키워 성인으로 만들며 오래된 소원을 이루었는데 현실속의 온다연은 아이를 가진 채 힘겹게 그의 회사를 지탱하고 있었다.순간 더 일찍 깨어나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그녀는 혼자서 그를 걱정하고 이 거대한 미래 그룹을 관리하며 얼마나 고생했을지 가늠조차 안되었다.문을 밀고 들어서자 안쪽은 은근히 어두웠고 책상 앞에만 램프 하나가 켜져 있었다.온다연은 헐렁한 옷을 입고 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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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2화 창밖의 화려한 불꽃

유강후와 온다연이 결혼하던 날 로맨틱한 불꽃놀이가 경원시의 하늘 대부분을 물들였다.화려한 불꽃은 경원시의 하늘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공항 상공까지 아름답게 비추었다.수많은 팬이 주혜성의 포스터를 들고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며 하늘 가득한 로맨스를 바라보면서도 사랑하는 우상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왔다. 왔다.”모두가 통로 쪽으로 몰려갔지만 키 큰 경호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아섰다.출구 쪽에는 언제부턴가 몇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그중 맨 앞의 젊은 남자는 단정한 티셔츠와 연한 색 청바지를 입어 무척이나 깔끔하고 소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검은 모자챙 아래로 은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단정한 인상 속에 한층 세련된 느낌을 더했다.그는 어깨에 가방을 비스듬히 메고 품에는 흑백 무늬의 집고양이를 안은 채 성큼성큼 걸어왔다.군중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주혜성.”“주혜성.”“사랑해. 주혜성.”젊은 남자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마스크를 내렸고 청순한 얼굴이 드러났다.조명 아래 그의 두 눈은 별빛이 쏟아진 밤하늘처럼 깨끗하고 청명했다.눈꼬리의 작은 눈물점이 소년다운 맑음 속에 어딘가 아릿한 기운을 더했다.팬들은 그가 마스크를 내리자 잇달아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품에 안은 고양이를 들어 보였다.“구월아, 누나들에게 인사해.”하지만 구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채 그의 품에서 계속 잠을 잤다.“와. 고양이 너무 귀여워.”“이름이 구월이래. 완전 마음에 들어.”“빨리 찍어.”간단히 팬들과 인사를 나눈 뒤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주희는 금세 차에 올랐다.“주희 씨, 아가씨께서 이미 집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청수가든으로 가실까요?”주희는 창밖을 바라보며 품에 든 새끼 고양이를 쓰다듬었다.“아직 봐야 할 대본이 있어요. 회사로 가죠.”기사가 조심스레 말했다.“하지만 아가씨께서 벌써 세 시간이나 기다리고 계십니다...”주희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맑고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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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3화 주희의 결심

그가 온다연에게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복잡했다.누나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하며 그보다도 그녀에게 남아있는 깊은 미련이었다.특히 형이 세상을 떠난 뒤로 온다연은 이 세상에서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자 유일한 끈이었다.어릴 적 철없을 때는 형과 온다연이 그렇게 가까운 것이 질투 나 온다연을 형 곁에서 빼앗아 와서 영원히 자기 곁에 두고 싶다는 상상까지 했었다.그러나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녀와 형이 서로에게 얼마나 절실한 존재였는지 깨달았다.형이 떠난 뒤에는 그녀와 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그때 그는 그러한 상황에 잠깐 기뻐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했던가 싶었다.이제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온다연이 무사히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그녀를 잃어버렸고 자신의 결혼식조차 그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주희는 고개를 떨구었다.깨끗하고 수려한 얼굴이 그림자에 잠기며 모든 빛을 마음 밖에서 막아버린 듯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차는 회사 앞에 멈춰 섰다.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업계에서 명망 높은 한 변호사와 그의 조수가 자리하고 있었다.“주희 씨, 이렇게 젊으신데 유언장을 작성하시려는 건가요?”주희는 말없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이것이 제 전 재산입니다.”변호사가 대충 훑어보며 말했다.“자산이 상당히 많아 처리가 조금 복잡하고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습니다.”주희가 조용히 말했다.“상관없습니다. 제 오래된 집은 온다연 씨에게 그 외의 모든 건 전부 남하윤 씨에게 주세요.”“제 명의의 모든 부동산, 주식, 회사 채권 그리고 앞으로 수년간 영화와 기타 사업에서 나올 배당까지 전부 남하윤 씨에게 부탁드려요.”남하윤의 이름을 꺼내며 그의 눈가에는 미묘한 죄책감이 스쳤다.“하지만 남씨 가문이 워낙 거대하니 이 정도로는 눈에 차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이게 제 전부입니다.”변호사가 말했다.“적지 않은 규모입니다. 최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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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4화 기억 속 온다연

들어온 여자는 젊고 사랑스러웠으며 현재 인기 급상승 중인 신인 여배우 중 한 명인 허연지이었다.하얀 미니 드레스가 그녀의 영민함을 돋보이게 했고 앞으로 나와 주희의 팔을 끌어안았다.“오빠, 돌아왔네요.”주혜성이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내 사무실에서 나가.”허연지가 아쉬운 듯 말했다.“이러시면 안되죠 톱스타님, 저는 대본 보러 왔어요. 내일 우리 새 드라마가 본격 촬영에 들어가고 발표회도 함께 참석해야 하잖아요.”“게다가 새 드라마의 스타일 사진도 나왔어요. 보실래요?”“역시 미래 그룹이 투자한 작품답네요. 남녀 주인공이 쓰는 장신구와 의상 모두 고급입니다. 예전 촬영할 때 쓰던 모조품과는 달라요.”주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열었다.“보세요. 이런 스타일 예쁘지 않아요?”“이 사진은 수십 가지 스타일 중에서 골라낸 거예요. 아마 모르셨겠지만 미래 그룹 대표님이 직접 고른 스타일 사진이거든요.”“아마 캐릭터와 가장 맞는 사진일 거예요.”주희는 사진 속 인물을 한눈에 알아보았다.정교하고 단정하며 미소가 사랑스러웠다.검은 긴 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수줍게 웃는 모습은 마치 기억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 같았다.기억 속의 사람과 사건들이 밀물처럼 몰려오자 주희는 잠시 멈칫했다.온다연이었다.허연지의 스타일 사진이 온다연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그의 마음속이 흔들렸고 저도 모르게 허연지를 몇 차례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사실 그녀와 온다연은 닮지 않았다.다만 두 사람 모두 정교하고 작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의도적인 연기와 스타일 사진 때문에 조금 닮아 보였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렇게 메이크업 후 온다연과 닮아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주희에게는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그는 태도를 조금 부드럽게 바꾸며 말했다.“오늘 밤은 대본 볼 시간이 없어. 내일 얘기하자.”허연지는 어릴 때부터 그를 매우 좋아했으며 데뷔할 때부터 그의 1호 팬이었다.지금 드디어 주희와 가까워질 기회를 잡았으니 놓칠 리 없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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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5화 씁쓸한 마음

허연지는 재빨리 휴지를 집어 물을 닦았다.그때, 문이 열리며 목소리가 들렸다.“주희야.”옷을 닦고 있던 두 사람의 손길이 멈추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남하윤은 편안한 홈웨어 차림이었다.단순한 캐주얼 세트만 입고 화장은 하지 않아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맑은 얼굴이 약간 창백해 보였다.출근룩이 아닌 편안한 일상 차림의 그녀는 날카로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젊은이의 청춘 같은 싱그러움만 남아있었다.하지만 그 눈에는 약간의 슬픔이 스쳤다.주희는 여배우와 얽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예전에는 어떤 대본이든 여배우와 스킨십이 있는 장면은 모두 대역을 썼다.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가 직접 등장할 것이라고 명확히 말했다.물론 상대역인 허연지와의 스킨십 장면도 포함해서였다.비록 키스나 배드신은 없고 서로에 대한 호감과 서로 의지하는 모습뿐이지만 주희에게는 이미 최대의 한계였다.이유는 남하윤과 주희만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았다.여주인공이 온다연을 모델로 한 것과 온다연이 주희의 청춘과 소년 시절의 모든 사랑과 기대였다는 이유에서였다.그녀는 온다연과 비교할 수 없었다.주희를 좋아하는 마음 또한 그녀와 주희 사이의 비밀일 뿐이었다.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주희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그가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다정하고 세심했다.온다연과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그는 충분히 괜찮은 연인이었다.그런데 지금 온다연을 위해 여배우와 이렇게 친밀해지려는 것을 보고 마음이 씁쓸해진 그녀는 못 본 척 안으로 들어갔다.“왔으면 전화라도 하지. 왜 안 했어?”허연지는 그녀를 보자 순간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고 급히 일어나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윤 언니 오셨어요? 시간이 늦었는데 아직 안 쉬신 거예요?”남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보온 용기를 책상 위에 올렸다.“와서 좀 봐.”허연지는 그녀의 차림을 보고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여전히 상냥하게 웃었다.“하윤 언니, 제대로 쉬셔야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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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6화 미련과 흔들림

이러한 같은 디자인의 목걸이는 그녀에게 이미 네 개나 있었다.색깔만 다를 뿐 느낌은 거의 비슷했다.남하윤이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이자 주희가 눈살을 찌푸렸다.“왜. 마음에 안 들어?”남하윤은 목걸이를 집어 들어 목에 대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직접 채워줘.”가느다란 체인이 남하윤의 고운 목을 감싸자 그 목선이 더욱 섬세하고 아름다워 보였다.화장을 지운 그녀는 조명 아래에서 실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이는 맑고 소녀 같은 느낌을 풍겼다.평소 성숙한 여사장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고 주희의 마음도 순간 흔들렸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누나, 내 머리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해 줘.”남하윤은 그의 은빛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이 머리 염색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왜 또?”데뷔 후 줄곧 은발로 알려진 그는 그야말로 은발의 상징이었고 만약 검은 머리로 돌아가면 분명 큰 화제가 될 터였다.주희는 담담히 말했다.“이번 대본에서 검은색 머리를 요구해. 이젠 질리기도 했고 그냥 다시 염색하자.”그는 보온통을 집어 들고 열었고 삼계탕의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그가 국물을 따라 보자 위에는 기름기 하나 없었다.주희가 국물에 기름이 있는 것을 싫어했기에 남하윤은 늘 꼼꼼히 기름을 다 걷어냈다.주희가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맛있어. 북미에 있는 동안 내내 이게 생각났어.”남하윤이 미소 지었다.“입에 맞으면 더 마셔. 집에도 더 있어.”보기에는 단순한 삼계탕였지만 사실 그녀는 여섯 시간을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주희는 편식이 심해 비린 맛이 조금이라도 나면 입에 대지 않았다.집안 요리사들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그녀가 직접 주방에 섰다.어릴 적부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남씨 가문의 아가씨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 요리를 익힌 것이다.두 사람이 사는 집은 회사 근처에 있는 400평 규모의 대형 아파트였다.정면 발코니에서는 미래 그룹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주희는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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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7화 냉정과 감정의 충돌

“내 친구 중에 결혼식 사진 올린 사람이 있어. 볼래?”주희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안 봐도 돼.”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녀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였을 것이다.유강후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다 주었을 게 분명했다.게다가 이제 그녀는 진씨 가문의 장녀다. 혼수 역시 상상을 초월할 것이 뻔했다.주희는 고개를 숙이며 낮게 말했다.“염색은 이제 거의 다 됐어. 남은 건 내가 할게.”“이따 나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 너 먼저 자.”그렇게 말하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남하윤은 베란다를 간단히 정리한 뒤 거실로 돌아오자 소파에 놓인 주희의 백팩이 눈에 들어왔다.지퍼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아 안쪽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남하윤은 무심코 발걸음을 옮겼다.상자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지만 포장부터 남다르게 고급스러웠다.뚜껑을 열자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한 주얼리 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목걸이, 팔찌, 귀걸이, 그리고 반지까지 가지런히 있었다.남하윤도 명문가 출신이라 웬만한 보석에는 놀라지 않지만 이건 달랐다.세계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추령의 대표작인 영원의 백월광이었다.방금 자신이 선물 받은 얇은 목걸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한눈에 봐도 수억 원대의 작품이었다.지난달 북미 경매에서 8억 원 낙찰돼 뉴스까지 탔던 바로 그 세트였다.그 경매의 낙찰자가 바로 주희였음을 그녀는 단번에 알아챘다.하지만 이건 분명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누구를 위한 선물인지 생각할 것도 없었다.남하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상자를 원래 자리에 두었다.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주희가 나왔다.검은 머리카락이 아직 물기를 머금고 빛났다.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 차림과 맑고 또렷한 이목구비까지 남하윤이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청량한 소년의 기운이 그대로였다.주희는 남하윤이 가방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미간을 좁혔다.“내 물건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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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8화 불꽃의 여운

차는 영운산을 향해 달렸다.가는 길 내내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고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폭죽은 더욱 화려하게 터졌다.별하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산 전체가 거대한 불꽃으로 감싸인 듯했다.이런 스케일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유강후 말고는 없을 것이다.이제 하객들은 대부분 떠났지만 정상 부근에는 여전히 최고급 차량들이 즐비했다.주희의 차는 눈에 띄지 않는 나무 밑에 조용히 주차돼 있었고 그는 별장을 멍하니 바라봤다.별장 안은 여전히 밝은 조명과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잔치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가끔 하객들이 나오면 유씨 가문의 집사가 직접 배웅을 했다.새벽 무렵, 불꽃이 한결 줄고 손님들도 거의 다 떠나자 주희는 마침내 봉현수와 지예솔이 함께 아이를 안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이들 이야기를 그는 익히 들은 바 있었다.세상 누구도 봉현수와 지예솔의 관계가 오래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혼인했고 이제는 아이까지 있었다.세상에선 결국 연인들이 모두 해피엔딩을 맞는 모양이었다.주희는 그들이 차를 타고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멀지 않은 별장 발코니에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다.온다연이었다. 그녀의 품에는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고 뒤에서 유강후가 그녀를 끌어안았다.온다연이 고개를 돌리자 유강후가 그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때 다시 밤하늘이 거대한 폭죽으로 물들자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환상 같았다.품에 안긴 아기가 놀란 듯 작은 울음소리를 냈고 순간의 고요함을 깨는 아기의 울음이 바람을 타고 주희의 귀에도 스쳤다.곧 집사가 들어와 아기를 데리고 나갔다.유강후는 다시 온다연을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다정했다.온다연은 가끔 손가락으로 멀리 풍경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그의 표정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분명 행복하고 달콤했을 것이다.주희는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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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9화 아픔을 나누는 순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는 무렵 주희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누나... 행복해야 해... 제발 가르쳐 줘요.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는지...”그는 놓아주려 했고 그녀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자신이 놓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사실 애초에 붙잡을 자격조차 없었다.그녀 마음속의 사람은 예전엔 형이었고 지금은 유강후였다.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사실 주희도 가장 힘들던 시절 온다연과 서로 의지하며 버텨 왔으니까 잠시나마 온다연을 차지했었다.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그녀 곁을 지키며 살고 싶었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를 보려 하지도 않는다.온다연이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 그의 마음에 심어진 씨앗이었다.세월이 흐르며 그 씨앗은 거대한 나무로 자라 이제는 그의 몸과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뿌리를 뽑으려 하면 남는 건 죽음뿐이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온다연에게서 멀리 떨어져 오래 살 수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온다연은 그의 삶에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신앙이었다.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고 주희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됐다.얼마나 흘렀을지 문득 빗줄기가 조금 잦아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들자 그의 머리 위로 커다란 우산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거센 비바람 속에서 남하윤이 힘겹게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그녀는 빗줄기를 막아주기 위해 우산의 대부분을 주희 쪽으로 기울였고 그 탓에 자신은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가냘프고 마른 그녀가 마치 무한한 힘을 가진 사람처럼 주희를 위해 한쪽 하늘을 지탱하고 있었다.주희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하윤아... 너무 아파...”남하윤의 가슴이 칼에 베이듯 저렸다.그녀는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그를 끌어안았다.“알아... 나도 알아.”그가 아프면 그녀는 더 아팠다.온다연이 떠난 지난 3년 동안 그는 수없이 자신을 해쳤었고 몇 번은 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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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0화 은퇴 선언

그날 밤 비는 아주 세차게 내렸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멎었다.남하윤은 아침을 준비한 뒤 주희를 깨우러 갔지만 그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그는 흰 셔츠를 입고 창가에 서서 빗물로 축축해진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남하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졌다.얼굴을 보지 않아도 지금 그의 표정이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한지 알 수 있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주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이렇게 일찍 안 일어나도 돼. 조금 늦게 가도 돼.”아침 햇살 속 그의 모습은 몇 해 전 처음 만났을 때처럼 깨끗하고 단정했다.마치 어젯밤 절망 속에서 무너져 있던 초라했던 사람이 그가 아닌 것만 같았다.남하윤은 잠시 넋을 잃은 듯 서 있었다.“오랜만에 집에서 아침을 먹을 것 같아서 그냥 일찍 일어나서 만들어봤어.”주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윤아, 나 사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네가 이렇게까지 할 만한 사람도 아니고.”그의 차가운 눈빛이 남하윤의 가슴을 찔렀지만 남하윤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건 내가 선택한 거야. 네가 네 고집이 있듯 나도 내 고집이 있어.”주희는 더 말하지 않고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식탁 위에는 고요하고 묵직한 침묵만 흘렀다.사람들은 둘이 사적으로 함께 있을 때는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은 몰랐다.함께 살고는 있었지만 포옹도 드물었고 살을 맞대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주희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늘 스캔들도 없었고 그의 생활은 언제나 단순하고 깔끔했다.이제 온다연도 결혼을 했다.남하윤은 비록 마음 한구석이 쓰렸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그렇게 생각하니 답답했던 공기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아침이 거의 끝날 무렵 주희가 불쑥 입을 열었다.“내 스케줄 얼마나 남았어?”남하윤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올해 건 이미 다 잡혀 있고 내년도 아마 6월 이후까지 꽉 차 있어.”주희가 말했다.“이제 새 스케줄은 받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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