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지는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 올리며 욕실 유리문을 잡아당기려 했다.그러나 손끝이 문틀에 닿는 순간 주희가 힘껏 문을 닫아버렸다.“으악. 아파... 아파요.”허연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주희 씨, 뭐 하는 거예요?”주희는 한 손으로 문을 강하게 누른 채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한 발짝이라도 더 들어오면 네 손은 이제 없어지는 거야.”“으악.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아요. 주희 씨, 당신 미쳤어요? 이 손은 피아노 쳐야 하는 손이에요. 엄청 귀한 손이라고요. 놓아줘요... 으악 끊어질 것 같아.”그제야 허연지는 주희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정말로 자기 손을 부러뜨릴 기세였고 겁에 질린 그녀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놓으라고요. 진짜 부러지겠어요. 주희 씨, 완전히 미쳤군요.”주희가 손을 놓자 허연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손가락 마디마다 선명하게 남은 자국을 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주희 씨... 세상에 당신 같은 미친놈이 어딨어요.”“나가.”주희의 낮은 포효가 공간을 울렸다.허연지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갔다. 그리고 문턱을 넘으며 돌아서서 소리쳤다.“주희 씨,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꺼져.”허연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주희는 겨우 숨을 고르며 벽에 몸을 기댔다. 차갑고 단단한 벽에 몸을 붙여 열기를 식히려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그는 다시 찬물을 틀어 끊임없이 몸에 끼얹었다.그 순간 욕실 문이 또다시 열리자 주희는 허연지가 돌아온 줄 알고 즉시 소리쳤다.“나가라고 했지.”하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남하윤이었다.“주희야, 다 씻었어?”그 이름이 들리자 주희의 내면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오히려 더 거세졌다.그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직... 안 끝났어.”잠시 망설이는 듯한 남하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내 방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잠깐만 욕실 좀 빌리려 하는데...”주희는 눈을 꼭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금방 나갈게. 대신 내 방에서 갈아입을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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