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의 모든 챕터: 챕터 1131 - 챕터 1140

1190 챕터

제1131화

민지는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규정’을 아는 사람이 왜 ‘규정’을 어겨요?”정은은 고개를 돌려 세영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그날 저녁, 셋은 더 이상 컵라면을 사지 않았다.왜냐하면 매점에서 삶은 옥수수, 군고구마, 그리고 치킨이랑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이미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수련원 식당 음식이 얼마나 별로인지, 모두가 공감대를 이룬 듯했다.다들 ‘다른 생존 방법’을 찾은 셈이다.셋은 각자 줄을 나눠 섰다. 한 사람당 한 줄.각자 음식 삼 인분씩 구매.기숙사로 돌아와 작은 책상들을 붙여서 함께 식사했다.치킨이랑 햄버거는 평범했다. 먹을 만은 했지만,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었다.민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몇 입 먹더니 서준에게 다 넘겨주었다. 그런데 삶은 옥수수랑 군고구마는 예상외로 맛있었다.민지는 자기 몫을 다 먹고는 슬쩍 서준 쪽을 바라봤다.서준이 바로 고구마를 민지 앞으로 밀었다.“먹어.”“어, 뭐?”민지는 조금 당황했다.“아냐, 됐어. 너 먹어.”“진짜 안 먹을 거야?”서준이 다시 물었다.민지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다 먹으면, 서준은 뭐 먹지?’‘아무리 내가 먹는 걸 좋아해도, 눈치는 봐야지.’‘남자 친구는 내가 챙겨야지.’서준은 작은 한숨을 쉬더니, 고구마를 집어 민지 손에 쥐어 주었다.“나 치킨이랑 햄버거 있어.”결국 서준의 고구마는 민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옥수수 또한 아주 유혹적이었지만, 민지는 끝내 사양했다. ‘진짜... 더는 못 먹겠다...’식사가 끝난 후, 셋은 곧바로 쉬지 않았다.서준은 노트북을 껴안고 데이터 분석에 집중했다.이곳에 오기 전, 이미 새로운 연구는 네 번째 실험 단계에 진입한 상태였고, 앞선 세 번의 실험 데이터를 합치니 양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진도가 밀릴 순 없어.’‘일단, 밀어붙여야지.’정은도 옆에서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민지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바로 제지당했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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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2화

민지는 만두 두 개를 봉지에 넣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서준아, 수업하다가 배고플 수도 있잖아. 미리미리 대비하는 거지.”‘먹을 거 남기면 아깝잖아. 난 알뜰한 여자야.’오전 아홉 시, 세 사람은 정확히 강의실에 도착했다.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홉 시 반이 되어도, 세영은 나타나지 않았다.결국 민지가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뭐야, 또 결강이야? 시간 지키라고 엄청 뭐라고 하더니, 정작 본인은 왜 안 와?” 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정은은 어제 세영이 급히 강의실을 나서던 뒷모습이 떠올랐다.“뭔가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우리 그냥 기다리지 말고, 각자 할 일 하자.”그렇게 말한 정은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작업을 시작하자, 민지와 서준도 그제야 따라 움직였다.민지는 문득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정은 언니... 혹시 오늘 구 교수님 늦을 거 알고 있었어요?” ‘아니면 왜 갑자기 노트북 챙기자고 했겠어?’서준도 살짝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봤다.정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무슨 예언자야? 그런 걸 어떻게 알아.”민지는 여전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럼 왜 갑자기 노트북 챙기자고 한 건데요?”정은은 민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말했다.“정말 말해줄까?”민지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뭐 있어요?”정은은 한숨을 살짝 쉬고 입을 열었다.“그래, 말할게.”“네, 말해봐요!”민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다렸다.“네가 오늘 하루 종일 회화 연습할 것 같아서. 서준이랑 나는 할 게 없을까 봐 노트북 챙긴 거야. 그냥 실험 데이터 정리나 하려고.”그 이유를 듣고, 민지는 속으로 자신을 원망했다.‘아... 이건... 몰랐으면 더 나았을 텐데...’‘괜히 기대했잖아...’정은은 민지 속마음을 꿰뚫은 듯,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다.“네가 말하라며.”민지는 아무 말도 못 했다.‘맞는 말이라서 더 얄미워...’오전 열한 시가 되어서야, 세영이 강의실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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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3화

민지는 화가 난 건 사실이지만, 속으로는 구세영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긴... 일단 할 일부터 하고 나서 따지는 게 맞지.’세영은 다시 단정하게 자세를 고치고 질문을 던졌다.아직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탓인지, 민지의 초반 답변은 어휘 선택도 어설프고, 말 속도도 매끄럽지 않았다.그래서 세영은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이번엔 민지의 실력이 훨씬 나아졌다.큰 실수 없이 답변을 마치며, 가까스로 통과.그때가 딱 정오를 넘긴 12시 30분.구세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들며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그러고는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서 나가버렸다.민지가 막 뭐라고 한마디 하려던 찰나, 이미 세영은 사라지고 없었다.“아니... 구 교수님 진짜 뭐야?”민지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서준이 옆에서 말했다.“그만해. 아마 정식으로 허가받고 늦는 거겠지. 아니면 저렇게 당당하진 않을걸?”“아니, 진짜 이해가 안 가! 우린 겨우 한 번 일찍 나간 거고, 교수님은 그 이후로도 계속 지각이잖아?”“게다가 얼굴은 왜 맨날 굳어 있어? 누가 교수님한테 몇억이라도 떼어갔나?” 서준은 민지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왜 이렇게 낯선 사람한테 감정 쓰는 거야...’정은도 조용히 거들었다.“우린 그냥 우리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돼. 괜히 꼬투리 잡히지 않게.”“알겠어요.”민지는 억울한 마음을 꾹 눌렀다.‘진짜, 속은 아직도 안 풀렸어...’셋은 노트북과 짐을 챙겨 매점으로 향했다.오늘은 도착 시간이 빨라서 다행히 도시락이 남아 있었다.맛은 그냥 그랬지만, 식당보단 훨씬 나았다.식사를 마친 후, 셋은 방으로 돌아와 잠깐 낮잠을 잤다.오후 2시 반, 정확한 시간에 다시 강의실 도착.“구 교수님 또 늦었어!”민지가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외쳤다.수업 시작 시각에서 이미 10분이나 지나 있었다.정은은 익숙하게 노트북을 꺼냈고, 서준도 곧바로 따라 했다.민지도 분명 화가 났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따라 노트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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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4화

그래도 장민의 교육 내용 자체는 꽤 유익했다.정은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고, 처음에는 내내 장민을 향해 투덜대던 민지조차도 중간부터는 말없이 수업에 집중했다. 오후 다섯 시 반, 장민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수업을 마무리했다.“여러분, 오늘 수고 많았어. 내가 밥 한 끼 살까?”장민이 단상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민지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이 근처에 식당이 있어요? 어디서 사주시게요? 설마... 식당 밥 사주시는 건 아니죠?”장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여기 식당 음식, 솔직히 말해서 너무 별로잖아.”그 말 한마디에, 장민을 향한 민지의 호감도가 30%쯤 올라갔다.‘어라? 의외로 입맛은 나랑 잘 맞을지도?’“그럼 어디로 가요?”민지가 슬쩍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따라 와.”장민은 먼저 강의실 밖으로 나갔고, 셋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가만히 서 있었다. 장민은 금세 다시 돌아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왜 안 따라와? 설마, 식당이랑 매점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못 잊게 된 건 아니지?” 그 말에 셋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어쩌면 진짜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을지도...!’장민은 세 사람을 데리고 수련원 건물 뒤편으로 이동했다.텃밭을 지나, 후문 쪽으로 빙 돌아서.그는 능숙하게 경비 아저씨에게 담배를 한 개비 건넸다.라이터까지 직접 꺼내 불을 붙여주며, 둘은 몇 마디 농담도 주고받았다.경비는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한 시간 넘기면 저도 곤란하니까, 꼭 맞춰서 돌아오세요!”“네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장민은 성의 없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리고 셋에게 손짓했다.“얼른, 지금이 기회!”그렇게 넷은 슬쩍 후문으로 빠져나왔다.민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근데... 나오면 뭐 해요? 여기 근처에 식당도 없는데...”장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식당 간다고 누가 그래? 민지 학생, 사고방식이 너무 올드하다. 딱 보니까 평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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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5화

“교수님, 혀 꼬이셨어요?”정은은 곧장 이어서 말했다.“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세요. 다음부턴 그냥 이름만 부르시죠. 즉, 소정은.”그 말과 함께, 정은은 노트북을 정리하더니 말도 없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장민은 멍하니 서 있다가 어색하게 코를 문질렀다.‘아니, 내가 뭘 잘못했지?’강의실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슬쩍 확인했다.피부 좋고, 이목구비 뚜렷하고, 오늘 헤어도 완벽.‘잘생겼고, 매력적인데... 왜 저 반응이지?’...그 무렵, 정은은 매점에서 물을 사고 돌아오던 서준과 민지를 마주쳤다.민지가 정은 얼굴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언니... 왜 그렇게 파리 삼킨 표정이에요?”정은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답했다.“삼켰어.”“네?”민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짜야? 설마? 으...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집중 훈련 교육은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다.세 사람은 어느 정도 훈련 리듬에 적응해 있었다.그 적응이란 건... 내용, 방식, 그리고 두 교수의 강의 스타일까지 포함한, 전방위 생존 스킬이었다.세영은 여전히 냉정하고 딱 부러지는 타입.실수 하나에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반면 장민은... 창의성 폭발, 늘 유머 있는 멘트, 그리고... 종종 정은을 귀찮게 하기까지. 정은에게 몇 차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후에도, 장민은 포기란 걸 몰랐다.아니, 오히려 더 들이댔다.“은이, 이번 문제엔 네가 한번 대답해 볼래?”정은이 조용히 일어나려 하자, 장민은 손바닥을 펴며 웃었다.“괜찮아! 일어나지 말고 앉아서 해도 돼.”그런데 다음 날, 민지가 지목됐을 땐 상황이 달랐다.민지는 앉은 채로 대답을 시작했다.“면접 중에 앉아서 답하면, 평가자 입장에선 실례로 받아들일 수 있어. 감점 대상!”민지는 벌떡 일어났다.‘아니, 뭐야? 어제 정은 언니는 앉아서 해도 된다더니...?’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그리고 그 ‘특별함’은, 장민이 다시 한번 정은을 점심 식사에 초대하면서 확실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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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6화

“아니... 아저씨, 이건 좀 아니잖아요?”장민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경비 아저씨는 장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예? 이게 뭡니까? 왜 아무나 문을 열어줘요?” “‘아무나’라니요? 교수님이 데리고 온 학생들이잖아요?”“딱 한 번뿐이었어요. 그 뒤론 제가 안 데리고 다녔거든요?” “크흠...”경비 아저씨는 옷 안주머니를 더듬었다.안에는 누군가 준 중국산 고급 담배 한 보루가 들어 있었다.‘아휴... 애들이 너무 많이 줘서... 안 열어줄 수가 없었지, 뭐.’...세 사람은 숙소로 돌아와 도시락을 펼쳤다.갓 볶은 제육, 계란찜, 깻잎무침, 그리고 뜨끈한 밥까지.민지는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트림을 한 번 했다.“요즘 진짜 사람답게 밥 좀 먹는다. 근데... 앞으로 5날이나 더 남았다니, 현타 와...”서준이 휴지 한 장 뽑아 민지에게 건넸다.“금방 가. 5일, 별거 아냐.”민지는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까 봤지? 장 교수님 말이야, 왕 사장님 도시락 보는 순간, 눈알 튀어나올 뻔했어. 크크...”사실 이 도시락 루트, 민지의 공이 컸다.며칠 전, 장민이 데려갔던 그 단독주택에서 먹은 ‘마늘종 볶은 훈제 고기’가 너무 맛있었던 탓에, 민지는 곧장 왕병산 사장님의 연락처를 따냈다.원래는 훈제 고기를 좀 사 가려던 거였는데...‘이왕 이렇게 된 거, 도시락 배달도 되냐고 여쭤봤더니...’‘왠걸? 당연히 된다고 하시지 뭐야?!’그렇게 성사된 게, 지금의‘하루 10만 원 풀코스 도시락’이었다.민지는 뿌듯했다.‘밥 문제 해결한 내가 진짜 MVP지.’그럼 민지는 왜 핸드폰이 있었느냐고?그야, 몰래 들고 들어온 거지 뭐.처음엔 좀 망설였지만, 옆 반 연성대학교 애들이 버젓이 쓰는 걸 본 순간...‘규정은 규정이고, 실전은 실전이지.’민지는 주저할 이유가 없어졌다.“아 맞다, 왕 사장님 아들이 어제 톡을 보내왔어. 앞으로는 메뉴를 하루 전에 미리 고를 수 있대!” 밥 문제 해결, 훈련에도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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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7화

“교수님, 혹시 눈썹에 쥐 난 거예요?”정은의 한마디에 장민이 멈칫했다.“은이, 너 또 이렇게 나오는구나? 알겠다, 너 원래 밀당 스타일 좋아하는구나!”‘와, 진짜. 이럴 땐 우리 재석 씨가 그립다. 최소한 눈치는 있는 사람이니까.’“장 교수님,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죠? 은이 아니고 정은입니다. 그리고... 길 좀 비켜주세요.”장민은 정은 뒤쪽에 다른 학생들이 있는 걸 보곤, 그제야 민망함에 몸을 살짝 비켰다. 그래도 체면은 지켜야 하니까.하지만 정은이 지나가자, 장민은 또 금세 따라붙었다.“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 좀 들어봐...”정은은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 중이었다.‘아메리카노일까, 아보카도일까... 둘 중 뭘 얼굴에 붓는 게 덜 죄책감 들까...’그때 울려 퍼지는 차가운 목소리.세영이었다.“장 교수.”장민이 고개를 돌렸다.“응?”“장 교수의 노트북, 아직 연구실에 있는 거 알고 있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청소 들어갔어. 얼른 가지 않으면 청소 아주머니가 폐기물 처리할지도...”장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헉!! OMG!! 거기 내 논문 미완성 버전 들어 있는데...”비명을 지른 장민은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세영은 장민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말없이 돌아서려 했다.“감사합니다.”정은이 조용히 말을 꺼내자, 세영의 걸음이 살짝 멈췄다.하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 “너 도와주려던 건 아니야. 그냥... 장 교수 귀찮게 구니까...”“그래도 결과적으로 도와주신 건 맞잖아요?”정은은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계단을 오르려 했다.“잠깐...”세영이 정은을 불러 세웠고, 정은이 돌아봤다.둘의 시선이 정확히 맞닿았다.서로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의 눈빛 속엔 무언가 묘한 기류가 오갔다. 찰나의 정적.그리고 그 정적을 깬 사람은... 세영이었다.“너, 날 알아보는구나.”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네, 알고 있어요. 구 교수님도... 아시죠?”세영 역시 조용히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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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8화

그날 밤, 세영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이불을 뒤척이다 결국 밤을 새우며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쳤다.“소정은...”소정은의 이력, 연구 분야, 논문 실적... 관련된 모든 정보를 샅샅이 뒤졌다.그리고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세영은 마지못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이 여자, 진짜 대단하네.’그 어떤 것도 생략할 수 없을 만큼 성실한 커리어, 혼자서 인맥을 모아 독립 연구실을 차린 추진력과 실행력.세영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걸... 소정은은 벌써 해내고 있었다.‘나보다 어릴 텐데... 이미 저만큼.’놀랍게도, 그 순간 세영의 마음속에 피어난 건... 질투도, 반감도 아니었다.그녀는 소정은이라는 여자가 정말 멋있고,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한 후로 세영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자신이 어떻게 공부해 왔고, 얼마나 매 순간 치열하게 버텨왔는지를.‘나는 왜 이렇게 버거웠을까?’‘어째서 내 길은 늘 이렇게 꼬이고, 더딜까?’‘그럼, 그동안의 노력은 다 무의미했던 거야?’밤새도록 쏟아낸 물음표들.그때 세영은 처음으로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물음표는 천천히 마침표로 바뀌기 시작했다.‘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같을 수 없어.’‘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기고, 누군가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어가는 거지.’‘빠르다고 더 나은 것도, 느리다고 틀린 것도 아니야.’‘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했잖아. 그러면 된 거야.’그렇게 정리하자, 세영의 마음이 서서히 가벼워졌다.그런데... 운명이란 건... 늘 묘한 타이밍에 장난을 친다.세영은 자신이 정은과 얼굴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학교 측의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세영은 집중 훈련 교육 교수로 투입됐다.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검색하던, 그 ‘소정은’을 실제로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사실, 정은 씨는 내가 상상했던 사람이랑... 좀 달라.”세영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정은은 눈썹을 살짝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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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9화

“아, 맞다. 구 교수님 댁은... 괜찮으세요?”정은이 조심스럽게 묻자, 세영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이 질문은 예상 못 했는데.’잠시 말이 없던 세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장민... 아니, 장 교수님한테 들었어요.”정은은 말끝을 흐렸다.사실, 세영의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세영의 친부는 일찍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고, 삼촌 가족은 외국에 살아 손쓸 수 없었다.그리고 어머니는 이미 재혼.젊은 시절부터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기에, 그 어머니에게 전 시어머니를 돌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집중 훈련 하루 전, 세영은 병원으로부터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곁에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세영은 학교 측에 상황을 알리고, 담당 교수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하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에 학교 측도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다.결국 타협점을 찾았다.세영은 오전 수업만 맡고, 퇴소 규정을 예외로 적용받아 매일 병원을 오가게 된 것.그래서 집중 훈련 첫날, 정은과 민지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택시에 올라타는 세영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어.”세영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눈빛 어딘가엔 묵직한 그늘이 있었다.90세... 긴 세월을 산 만큼...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별’일 수 있었다.하지만 마지막 순간, 세영의 할머니는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다가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그 모습이 눈에서 지워지질 않아.’“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정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위로란 게 때론 더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그 순간, 정은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구 교수님은, 위로 따윈 바라지 않았을지도...’“고마워.”세영이 짧게 답했다.둘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각자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러다 세영이 다시 돌아서 말했다.“장민 교수... 사람 자체는 나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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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0화

“아니... 정은 언니 아직 안 탔잖아!”민지가 바로 문을 열려는 찰나, 서준이 어이없다는 듯 민지를 말렸다.“교수님까지 왔는데, 차가 없을까 봐?”“아, 그러네!”민지는 그제야 납득했다.‘맞다, 조 교수님이 왔는데... 설마 대중교통이겠냐고...’민지는 못 이기는 척 택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과연 재석의 뒤엔 SUV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됐네, 됐어! 정은 언니랑 조 교수님, 둘만의 세상으로 직행이네!’‘좋겠다, 차도 있고 사람도 있고... 아 몰라! 난 그냥 간다!’“아저씨! 출발이요!”기사가 좀 어이가 없었다.‘출발은 출발인데, 왜 다들 소리가 점점 커져?’...정은은 조용히 걸어가 재석과 마주 섰다.둘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재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럴 때 영화처럼 내 품에 뛰어들고, 키스 한 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정은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팔이라도 벌리고 있었어야죠?” “지금 하면 늦었을까?”말이 끝나기 전, 재석은 팔을 뻗어 정은을 가볍게 안았다.그리고 꼭 껴안았다.정은은 남자의 따뜻한 품 안에 안긴 채 작게 중얼거렸다.“이렇게 안아놓고, 늦었냐고 물어보는 건 또 뭐예요... 진짜, 이런 사람 처음 봐요...”한편, 세영은 뒤따라오는 발소리에 속도를 더 높였다.‘제발... 따라오지 마라, 제발...’‘하필 이런 날에, 왜 또...’하지만 그 바람은 상대가 장민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구 교수! 왜 이렇게 빨리 가? 하이힐 안 불편해? 나한테 밴드 있는데, 뒤꿈치에 붙이는 거! 투명한 거라 티도 안 나.”세영은 결국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고개를 돌려 정면으로 장민을 마주 봤다.“장 교수, 요즘 많이... 한가한가 봐?”“그렇지? 어떻게 알았어? 요즘 진짜 시간이 남아돌아. 그래서 말인데, 오늘 저녁... 내가 살게. 장소는 구 교수가 고르면...”‘이 사람 진짜... 입이 방정인 스타일이네.’“No.”세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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