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쉼 없이 내리고, 밤은 깊어만 갔다.한편, 집 안.“어머, 밖에 눈 오는 것 같네.”봉수진이 거실 창밖을 흘긋 바라보았다.현빈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네.”짧게 대답했다.‘첫눈? 매년 오는 거잖아.’눈은 그저 겨울의 일부일 뿐, 현빈에게 낭만이란 없었다.아니, 이 동네에서 자라난 대부분의 사람에게 눈은 그저 교통을 막고 일정을 꼬이게 하는 불편함의 시작일 뿐이었다.하지만 현빈의 머릿속은 여느 사람보다 복잡했다.‘지속해서 눈이 쌓이면 결국 폭설로 이어지고, 폭설이면 곧 재해...’‘재해가 오면 물류 차질, 생산성 저하, 에너지 공급 압박...’‘결국 소비 위축, 기업 수익 하락, 투자 심리 위축...’‘교통, 관광, 유통 관련 종목 주가 하락...’‘정부는 국채 발행 늘리고, 채권 금리 출렁이고...’‘유동성 수급 불균형, 기준 금리에도 여파가 올 수 있어...’짧은 찰나, 눈발 사이로 온갖 경제 흐름과 리스크 시나리오가 현빈의 머릿속을 질주했다.하지만 눈을 보고, 즐기고, 손에 받아보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할머니, 리모컨은 고장 난 게 아니라 건전지가 다 됐던 거였어요. 새 걸로 갈아놨고요. 이제 슬슬 가볼게요. 푹 쉬세요.”“그래, 운전 조심하고.”“네.”현빈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묵묵히 문을 열었다.순간, 찬바람이 가슴팍을 파고들며 확 밀려왔다.하지만 그보다 더 매섭고, 더 차가운 게 있었다.바로 현빈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었다.꽃이 가득한 온실 앞, 가로등 아래,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그 순간, 현빈의 몸이 굳었다.‘뭐지...?’그는 숨이 걸리는 듯했다.손끝부터 발끝이 싸늘하게 굳어갔고, 너무도 조용했던 탓인지 심장 소리가 고막에 울리기까지 했다. ‘정은...과 조재석...?’그는 분명히 봤다.정은이가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재석의 목에 감는 걸.재석이 웃으며 정은이를 더 깊이 끌어안는 걸.그 몇 초는... 현빈에겐 몇 분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