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실험실이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을 때, 재석의 실험실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올 한 해에만 SCI급 논문 세 편, 국가 연구개발 과제 두 건, 주요 프로젝트 여섯 건, 수상 실적만 열두 번에 달했다.정은 팀이야 워낙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재석은 그야말로 ‘조용히 미친 듯이 일하는 스타일’이었다.티 안 내고 할 거 다 하는 사람... 그게 바로 조재석이었으니 말이다.재석 팀의 팀원들 성과도 어마어마했다.전진욱은 연말 성과급만 수십억, 손태민이랑 조미진도 각각 몇억씩 챙겼고, 무려 지난달에 들어온 신입조차 과제 두 개를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정은은 그 신입에 대해 딱히 관심 없었다.재석이 말하길, 말수 적고, 성실하고, 능력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그 말을 듣자 하니, 평범한 중년 남자 과학자 느낌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아침.재석이 욕실에 들어간 타이밍에 전화가 울렸다.“정은, 나 지금 씻는 중인데 전화 좀 받아줘. 아마 실험실 쪽일 거야.”정은은 아무 생각 없이 수신 버튼을 눌렀고, 그 순간, 귀에 닿은 목소리는 맑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였다.[교수님, CMD 데이터 쪽에 문제가 있어서요. 백엔드 접근해 보고 싶은데 권한이 안 열려요. 혹시 시간 되시면...]약간의 당혹감을 억누르며 정은은 차분하게 말했다.“여보세요? 조재석 교수님은 잠시 통화가 어려우시고요, 요청하신 내용은 전달해 드릴게요.”상대는 잠깐 침묵하더니 짧게 답했다.[네, 감사합니다.]뚝-전화를 딱 끊었다.‘어? 깔끔하네.’정은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욕실 쪽으로 걸어가 문틀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었다.살짝 미소를 머금고.재석이 머리를 닦으며 고개를 돌려 물었다.“누구였어?”정은은 천천히 말했다.“이름이 저장 안 돼 있던데요? CMD 권한을 요청했고요.”재석은 금방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 변리아 선생님일 거야.”“변리아 선생님이요?”정은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응, 우리 실험실 신입. 지난달에 왔는데...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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