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Bab 1211 - Bab 1220

1286 Bab

제1211화

외할머니댁에서 돌아온 후에야 정은은 알게 됐다. 재석이 일을 다 끝낸 게 아니라, 중간에 손 놓고 자기 외할머니댁으로 밥 먹으러 왔다는 걸.결과는...[수고스럽겠지만요, 교수님. 내일 다시 실험실로 오세요.]리아의 담담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핸드폰 너머지만, 정은은 리아가 지금 얼마나 벙찐 표정일지 눈앞에 그려졌다.재석은 아무 말도 못 했다.리아는 말을 끝내고, 재석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한 뒤 통화를 뚝 끊었다.“푸...”정은은 멍하니 핸드폰을 든 채 서 있는 재석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오후엔 일이 많다고 하더니, 금세 할머니 댁에 와서 밥 먹고 있으니까요. 설마 잠깐 빠져나온 거였어요?”“콜록!”재석은 헛기침하며, 진지하게 해명했다.“그 일이 끝나지 않는 건 맞는데... 밥이 더 중요하지.”“변 선생님은요?”“나 나올 때도 변 선생님은 계속 작업 중이셨고... 두 번 불렀는데, 들었는진 모르겠어...”재석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건, 형 지언이었다.‘아니, 혹시...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비슷한 사람은 통한다’인가?’ 그는 현빈이 준 배 두 박스를 집 한쪽 구석에 잘 두고, 통풍이랑 습기 상태까지 확인한 뒤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바라봤다.“곧 열한 시네. 넌 씻고 쉬어, 나 먼저 갈게.”정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어라? 해가 서쪽에서 떴나? 안 자고 간다고?’하지만 곧 리아의 전화가 생각나자 고개가 끄덕여졌다.‘아... 야근하러 가는구나.’그래서 정은은 그냥 무심하게 한마디 건넸다.“당신도 너무 늦지 않게 일찍 자요.”재석은 갑자기 긴장했다.‘정은이는 벌써 다 알고 있는 건가?’...정은은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이불 속에 파묻히자 곧바로 졸음이 밀려왔다.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던 그때, 문득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 하나.‘잠깐만... 권한 부여는 실험실에서 직접 해야 하는 거잖아?’‘근데 우리 남자 친구...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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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2화

결국... 정은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눈앞에 펼쳐진 건 순백의 설원.그 한가운데, 롱패딩을 입은 재석이 서 있었다.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눈밭.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은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머금고 정은을 바라봤다. 정은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언제 내려왔어요?!”“너보다 10분쯤 일찍.”재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어젯밤, 눈사람 연습은 의외로 잘 됐다.하나 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야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그리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바로 내려왔다.어젯밤 만든 눈사람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이미 쏟아진 눈에 완전히 덮여버린 뒤였다.정은을 깨우러 올라가려던 참에, 먼저 정은이 눈놀이 도구를 들고 내려온 것이다.재석은 조용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와, 정은아...”정은은 순간 멍해졌다. 어쩐지 마치 1년 전 그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날도 첫눈이 온 아침이었고, 그날도 재석은 저렇게 눈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발밑엔 눈놀이 도구들이 정갈히 놓여 있었고, 재석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정은은 천천히 다가가 재석의 따뜻한 손을 덥석 잡았다.그 시선은 자연스레 재석 발 옆에 놓인 도구 통으로 향했다.“새 거예요?”“응.”“언제 샀어요?”“어젯밤에. 오늘 새벽 배송으로 받았어.”정은은 자기가 들고 온 작년 도구 통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작년 거 아직 멀쩡하거든요? 왜 또 샀어요?”“다르지. 이번엔 신상이야.”그 말에 정은의 눈빛이 반짝였고, 곧장 쭈그리고 앉아 도구 통을 열어보기 시작했다.역시나... 전부 처음 보는 것들뿐이었다.기본 도구는 물론이고, 눈사람 눈으로 사용할 유리구슬, 전용 미니 목도리, 앙증맞은 모자, 심지어 아크릴 물감까지...“시작해요!!”정은은 이미 들떠 있었다.완전히 눈사람 모드로 돌입한 눈빛.재석은 그런 정은을 보며,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었다.그 시선을 가득 채운 건... 마치 동심 가득한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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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3화

정은은 정성껏 고른 사진 아홉 장을 정사각형 그리드에 올렸다.피드에 딱 예쁘게 맞춰지는 숫자.정은은 사진 위에 이렇게 적었다.[From 남자 친구.]‘아 진짜... 왜 피드는 3x3, 딱 9장만 보이게 해놨어.’‘그 이상 올리면 넘겨봐야 하잖아...’가능하다면, 정은은 90장도 올리고 싶었다.아니, 90장으로도 부족할 만큼.그만큼 너무, 너무 예뻤다.정은이 올린 그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속엔 하얀 눈밭 위, 색색의 눈사람과 장난감 같은 디테일, 그리고 눈보다 더 반짝이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예상대로, 피드를 올리자마자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은 난리가 났다.[와 미쳤다! 남친 금손이네 완전.][너희 어디야? 설국이야 뭐야?][L시엔 눈 한 톨도 안 오는데 억울해...][헉 저건 예술이지 진짜.][...]정은의 고등학교 친구들 대부분은 L시에 정착해 살고 있었고, 거긴 겨울에도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이렇게 눈이 푹 쌓이고, 눈사람까지 마음껏 만들 기회는 그 동창들에게는 거의 ‘판타지’였다.한편, 강도겸은 막 잠에서 깨어났다.늘 하던 대로 무심히 커튼을 젖히자 창밖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눈이 왔네...’순간, 도겸은 멍해졌다.‘정은이... 눈 정말 좋아했었지.’둘이 사귄 첫 해 겨울, 그해에는 이상하게도 눈이 안 왔다.포근한 겨울, 따뜻하긴 했지만 정은은 어딘가 아쉬워하는 눈치였다.그때 도겸은 차를 몰고 정은을 산속 리조트로 데려갔다.운이 좋았는지, 그날 밤 호텔 벽난로 앞에서 바라보던 창 너머 세상엔 눈이 조용히, 환하게 내리고 있었다.정은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도겸의 품에 안겼다.도겸은 뒤에서 정은을 감싸 안고, 턱을 정은의 어깨에 기댄 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은은한 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이 순간, 그냥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이대로 늙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하지만 그 평화로운 분위기를 정은은 오래 유지하지 않았다.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밖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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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4화

‘확실히... 조재석이 나보단 훨씬 낫네.’그 생각이 미치자, 도겸은 고개를 떨구고 입꼬리를 비죽, 자조하듯 올렸다.‘그래, 내가 자초한 일이지... 이게 벌이겠지.’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은 도겸뿐만이 아니었다.심현빈 역시 한참 동안 한 자리에 서 있었다.손에 쥔 핸드폰 화면.그 위에 떠 있는 선명한 ‘남자 친구’라는 말.그 문구가 보이지 않는 손바닥이 되어 현빈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남자 친구... 정은의, 남자 친구가 조재석이라니...’핸드폰을 쥔 현빈의 손가락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지더니, 어느 순간 팔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그제야 겨우, 현빈은 힘없이 핸드폰을 놓아버렸다.툭.소리와 함께 소파 위로 떨어지는 그 기계처럼, 남자의 마음도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어젯밤, 현빈은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서재에 앉은 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리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눈은 멀쩡한데도 잠은 찾아오지 않았다.그 사이 담배 두 갑이 비었고,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그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젖히자, 하얀 눈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눈이 부셨다.눈이 너무 하얘서, 현빈의 두 눈이 시렸다.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겨우 눈앞 풍경에 익숙해졌다.눈이 예쁘다고 느끼기엔, 마음이 이미 너무 새까매져 있었다.핸드폰을 다시 집어 든 건 그때였다.습관처럼 SNS를 켜기 직전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정은의 프로필.‘설마...’작게 기대하며 프로필을 눌렀고, 그 순간, 정은이 올린 ‘남자 친구’란 단어가 현빈의 가슴에 박혔다.꽂혔다.아프도록.하지만 그런데도, 현빈은 아홉 장 모두를 다 눌러봤다.일일이 확대해 가며 한 장 한 장을 꼼꼼하게 살폈다.전부 귀엽게 만든 눈사람 사진이었지만, 그 안에서 정은을 찾고 또 찾았다.그리고 결국 그는 찾아냈다.사진 한구석에 슬쩍 비친 정은의 장갑.바람에 날려 프레임에 걸린 머리카락 한 올.부츠.패딩 끝단.사진 속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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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5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화기 너머, 봉수진의 목소리가 다시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현빈아, 어떤 말은 말이야... 정말 잘 생각하고 해야 해. 한 번 입 밖에 내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어.]“알아요. 그래도, 전 말하고 싶었어요.”잠시, 긴 숨 같은 정적.곧이어 봉수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정은이를 좋아한다고 했지? 그럼, 정은이는? 정은이가 너를... 좋아하긴 하니?]짧은 질문 한 마디.그러나 그 질문은 현빈의 입을 완벽히 막아버렸다.‘할머니답다... 정확한 곳을 찌르시네.’[현빈아, 네가 아무리 고집부리고, 붙잡으려 해도... 아무 의미 없어. 정은이는, 이미 자기 행복을 찾은 애야. 왜 자꾸 그 안에 끼어들려는 거니?]그 말에 현빈은 쓴웃음을 지었다.“할머니가 더 잘 아시잖아요. 세상에 깨지지 않는 관계는 없다는 거. 그리고 변하지 않는 감정도 없다는 거...”[그건 네가 아직 못 봤을 뿐이지, 세상엔 있어. 지켜내는 사랑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 관계가 평생 간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결혼했다고 해도... 그 이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요.”봉수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현빈아, 할머니가 오늘 전화한 건, 널 말리려고 그랬어.]“알아요, 할머니.”현빈의 목소리는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단단했다.“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까 봐요. 차라리 다 해보고, 그다음에 후회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그럼, 네가 지금 하려는 일이 또 다른 후회가 되면 어쩔 건데? 그땐 다시 되돌릴 수도 없잖아!]“그 책임도, 제가 질게요.”봉수진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안 되겠다. 이 아이는, 지금 설득이 안 되는 상태야.’[됐다, 이젠 내가 뭐라고 해도 안 들을 거 같으니.]봉수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잠시 말을 고른 뒤, 차분하게 말했다.[그래도, 딱 하나만 약속해 줘.]“말씀하세요.”[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정은이한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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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6화

정은은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동네 마트.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기본, 집에 있는 생우유를 처리하기 위해 버터, 생크림, 박력분 같은 베이킹 재료도 몇 가지 챙겨 담았다.‘딱 유통기한 지나기 전에 구워버리면 되겠네.’정은이 기분 좋게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정은은 경비실에 들러 택배 두 개를 수령했다.하나는 재석이 쓰는 면도 거품.거의 다 써가던 참이었는데, 이번엔 평소 쓰던 브랜드 말고 다른 걸로 골랐다.그리고 나머지 하나는...‘음, 포장 잘했네. 겉으론 뭐가 뭔지 하나도 안 보이네.’보낸 사람 정보도 없고, 브랜드 로고도 없고, 겉박스 어디를 봐도 ‘오카모토’ 같은 단서는 없었다.‘요즘은 택배도 보안 철저하네!’두 상자 다 크지 않아 장바구니 안에 쏙 넣고, 정은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바로 그때, 집 앞에서 정은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오빠?”길모퉁이에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남자.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 얼굴은... 심현빈이었다.정은은 조금 놀란 듯, 그에게 다가갔다.“갑자기요? 무슨 일 있어요? 혹시 외할머니...?”“두 분 다 멀쩡해. 괜히 상상하지 마.”현빈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제야 정은은 살짝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다행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급한 일 아니면 오빠가 날 찾아올 일은 없을 거 같아서... 깜짝 놀랐어요.”“오늘은 안 바빠서.”정은은 그제야 자세히 현빈 얼굴을 살폈다. 그는 얼굴빛이 어딘가 창백했다.말투로는 늘 그렇듯 무심한 척했지만, 눈가에 드리운 피로감은 감추기 어려웠다. “말이 안 바쁘지, 밤새웠죠? 눈에 핏줄 잔뜩 터졌어요.”현빈은 순간 멍하니 정은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역시, 너한테는 아무것도 못 숨기겠다.”“외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이제 오빠가 회사 전면을 맡았다고요... 신임 대표가 바쁜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몸은 좀 챙기면서 해야죠.”“알겠어.”‘걱정... 지금 이거, 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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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7화

“그냥... 생필품 몇 가지요...”정은은 아주 잠깐, 두어 초쯤 뜸을 들였지만, 곧바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반응 빠르네. 혹시 이미 예상했던 건가?’현빈의 시선이 살짝 가라앉았고, 입꼬리도 어느샌가 굳게 닫혀 있었다.장바구니 맨 위에 올라간 택배 상자.겉보기엔 평범했지만, 포장 테이프에 선명히 찍힌 글씨.OKAMOTO.그 단어 하나에 현빈의 손이 움켜쥐어졌다.‘같이 산다는 건 이미 알았잖아.’‘근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정은이 먼저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오빠, 우리 같이 들어요. 한 쪽씩 나누면 가볍잖아요.”현빈은 그녀가 돌아서는 그 타이밍에 손을 조용히 풀어내고, 표정을 정리했다.“야, 너 지금 나 무시하냐? 이 정도 가지고?”“아니면 말고요.”정은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넘겼다.장난스럽지만 어쩐지 쓸쓸한 그 웃음.‘왜 굳이... 이런 장면을 같이 만들어야 하지.’...집 앞에 도착하자 정은은 카드키를 꺼내 문을 열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현빈의 눈에 확실히 들어온 게 있었다.그녀 키링에 매달린 카드키는 두 개.예전엔 분명 하나뿐이었는데, 이제는 둘.‘그 두 번째 건, 누구 건지 안 봐도 뻔하지.’현빈은 잠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무심히 건너편을 돌아보았다.두 눈이 가늘게 좁아졌고, 흐릿한 어둠이 스치고 지나갔다.“들어올래요?”정은이 문을 열며 말했다.손을 내밀었지만, 현빈은 가볍게 몸을 틀며 피했다.신발을 벗고 익숙하게 슬리퍼를 신은 현빈은 당연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다.“어차피 들고 들어온 거, 내가 정리할게.”“알겠어요. 다 오빠가 해요.”정은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누가 뺏기라도 하냐... 아휴, 진짜 왜 이렇게 당당한데?’현빈이 장바구니를 조용히 주방 구석에 내려놓자, 정은은 급하게 물을 끓이고 최대한 빠른 손놀림으로 차를 우려냈다. “여기요...”정은이 따뜻한 찻잔을 밀어주자, 현빈은 소파에 앉아 조용히 그것을 들어 올렸다.먼저 향을 맡고, 그다음에 한 모금.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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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8화

“와... 냄새 뭐야, 정말 맛있는 냄새 나는데?”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재석은 코를 벌름이며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정은이 살짝 웃으며 주방에서 나왔고, 손엔 사각형으로 가지런히 잘라 놓은 티라미수가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다.“코가 진짜 귀신이네요?”“이 정도 향이면 귀신이 아니어도 맡아지거든?”정은이 수저까지 챙겨 건넸고, 재석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바로 받아 들었다.숟가락 가득 퍼 올린 뒤, 망설임 없이 한입에 쏙.입에 들어가자마자 부드러운 생크림과 은은한 럼의 향이 혀끝에서 퍼졌다.“맛있다.”말 끝나기도 전에 벌써 두 번째 숟가락.그 뒤로도 재석은 순식간에 티라미수를 다 먹어 치우고, 심지어 접시 바닥까지 깔끔하게 긁어냈다.‘진짜, 저렇게 잘 먹으면 안 해줄 수가 없잖아.’정은은 저녁 반찬 재료도 미리 다 준비해 둔 상태였다.재석이 팔을 걷고 주방으로 들어왔을 땐, 이미 프라이팬이 예열되고 있었다.“나는 뭐 도와줄까?”“아니에요. 나가 있어요. 두 개만 더 하면 끝이에요.”하지만 재석은 그대로 서 있었다.옆에서 정은이 요리하는 걸 조용히 바라보다가 타이밍 맞춰 소금이랑 간장을 척척 건넸다.요리가 끝나자 이번엔 정은 손에서 접시를 받아 들고, 재빠르게 테이블에 옮겨놓았다.‘도울 게 없다고 하니까, 알아서 찾네...’‘이러니까 이런 사람이 같이 살기 편한 거지.’20분쯤 지난 후, 반찬 세 가지와 국 하나가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였다.고기, 채소, 국... 균형까지 완벽.재석은 앉자마자 밥 한 공기를 거침없이 퍼먹고, 곧바로 두 번째 공기를 뜨러 일어났다.정은은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당신, 점심 안 먹었어요? 왜 이렇게 허겁지겁 먹어요?”재석은 입 안의 음식을 다 삼키고 나서야 천천히 대답했다.“먹었지. 학교 식당에서.”‘근데 말해 뭐해. 맛은...’‘그냥, 먹었다는 데 의의가 있는 수준.’“정은아, 너도 얼른 먹어.”“네.”정은도 수저를 들었지만, 결국 식탁 위 반찬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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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9화

사람이 눈 위를 걷기만 해도 발이 푹푹 빠졌다.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워야 했고, 외출도 생각보다 번거로웠다.하지만 정은에겐 그게 오히려 즐거움이었다.해가 뜨기 전, 정은은 몇 날 며칠을 설렘 가득한 얼굴로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곤 했다.재석은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실험실에 가지 않았다.아마 급한 일은 다 마무리된 듯했고, 명절 전까지는 온전히 휴식 모드인 것 같았다.그렇게 둘은 매일 아침 눈밭부터 밟았다.깨끗한 아침 눈 위를 툭툭 소리 내며 걷고, 가끔은 장갑을 낀 손으로 눈을 뭉쳐 던지기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눈놀이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따뜻한 아침을 함께 먹었다.식사가 끝나면 장을 보러 동네 마트를 함께 돌았고, 며칠 치 식재료를 한꺼번에 챙겨왔다.그 이후엔 굳이 외출할 필요도 없었다.둘이 함께 요리하고, 같이 설거지하고... 뒷정리를 마친 후엔 거실에서 가볍게 산책하듯 왔다 갔다 하며 대화 나누고, 배가 꺼지면 나란히 앉아 TV를 봤다.별거 아닌 하루하루인데... 둘은 아주 행복했다.그런 나날 속에서 가끔은 재석이 새로운 요리를 하나씩 시도했다.정은은 영상으로 본 디저트 레시피를 따라 만들었다.그렇게 서로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맛있다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서로의 노력을 칭찬하는 사이.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커플이 아니라, 오래 함께 산 부부 같은 일상.놀라운 건... 둘 다 그런 일상을 질려하지도, 따분해하지도 않았다는 거였다.오히려 무척 만족하고, 서로를 편하게 여기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정은이 웃으며 말했다.“수민이가 나한테 그랬어요. 우리 둘이 연애하는 거 보면... 정말 맹물 마시는 기분이라고.”재석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수민이가 그런 말을 했어?”“네, 완전 진심으로...”“왜 나한텐 말 안 했지?”정은은 그 말에 재석을 힐끔 보며 웃음 섞인 눈빛을 던졌다.“수민이는 당신만 보면 눈치 보여서 말도 제대로 못 하거든요?”“내가 뭐라고, 왜 눈치를 봐?”“본인을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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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0화

정은은 이번엔 수민의 어머니, 백지영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실종이니 뭐니 말하면 괜히 불안만 키울 수 있어.’‘그냥 조심스럽게 떠보자.’전화를 받은 백지영은 평소처럼 밝았다.[정은이니? 어머, 웬일이야?]“아... 혹시 요즘 수민이 뭐 하고 지내요? 제가 이번에 친구들이랑 무슨 산 쪽으로 스키 여행을 가려는데, 수민이도 같이 가자고 연락하려고요.”[산? 와, 좋겠다. 근데 정은아, 아마 수민이는 명절 전까진 시간 안 될 거야.]“그래요? 수민이 요즘 많이 바쁜가 봐요?”정은은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아니, 바쁜 건 아닌데... 지난주에 연락이 왔었거든? 회사에 두 달짜리 장기 휴가를 냈다더라. 동건이랑 둘이 남반구에 있는 섬으로 여행 간다고 명절에도 못 들어온다고 하던데?]“섬이요? 혹시 어느 섬인지 말해주던가요?”백지영은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말했다.[어... 이름이 ‘피크’? 아니면 ‘코피’? 정확하진 않아. 동건이 친구가 소유한 개인 섬이라던데, 초대받아서 간다고 했지.]“아, 그렇구나... 그럼 스키는 다음에 가야겠네요.”[그래. 기회야 또 생기지. 요즘 애들은 워낙 바쁘잖니.]백지영은 수민이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소소한 근황을 덧붙이며 몇 마디 더 나눴고, 정은은 적당한 타이밍에 전화를 정리했다.전화를 끊자마자 정은은 벌떡 일어섰다.“수민이... 무조건 무슨 일 생긴 것 같아요.”재석이 고개를 돌렸더니, 표정이 단번에 진지해졌다.“무슨 단서라도 있어?”정은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수민이는 절대 장기 휴가 안 내요. 두 달씩이나 놀러 다닌다고요? 그건 수민이가 아니에요.”‘수민이한테 일을 뺏는 건... 숨 쉬지 말란 말이랑 다름없어.’정은은 수민을 누구보다 잘 안다.그녀와 함께한 지난 수년간, 수민이 자발적으로 일주일 이상 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심지어 정강이뼈가 부러졌을 때도, 딱 닷새만 쉬고 출근했을 정도였다.“게다가... 명절에도 집에 안 온다고요? 이건 진짜 말도 안 돼요.”정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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