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Bab 1261 - Bab 1270

1271 Bab

제1261화

“주방에 아직도 설거지 안 된 그릇들이 수북해. 나는 정말 태어나길 일만 하라고 태어난 팔자인가 봐. 당신처럼 복 받은 사람은 참 부럽다니까?”“막내 서방님 좀 본받아봐. 그 집에서 손님 초대하면 요리는 사람 항상 막내 서방님이 하잖아? 똑같은 형제인데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냐?”주덕순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휙 돌아서서 주방으로 들어갔다.소진호는 입을 꾹 다문 채 탄식하며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주덕순은 주방 정리를 끝낸 후, 식탁에 앉기 전에 조용히 손님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살폈다.소진우네는 차랑 술, 담배를 가져왔는데 대충 봐도 40만 원선은 될 듯했고,소진헌이 가져온 건 과일 몇 박스. 비싸야 10만 원 선.시선이 맞은편에 앉은 재석에게로 향하더니,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조 교수, 오늘 우리 집 처음이지? 귀한 손님 오셨네, 환영해!”“감사합니다, 작은어머님.”“아니 뭐. 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과일까지 사오고, 이렇게 정성스러우면 내가 더 민망하잖아!”재석의 웃음이 살짝 굳었다.‘과일... 내가 산 거 아닌데.’소진헌이 말을 받았다.“작은형수님, 그 과일은 제가 샀어요. 조 교수는 안 샀어요.”“그럼 조 교수가 산 건 뭐야?”그제서야 주덕순이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소진헌은 천천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조 교수 선물은 진작 드렸잖아요.”“네?”“전에 큰형 댁에서 드렸던 자연산 특대 전복이랑 과일들 있죠? 그거 다 조 교수가 준비한 거였어요.”“처음에 작은형수님이 필요 없다고 하셔서 저도 진짜로 안 드리려고 했는데, 결국엔 잘 챙겨가시더라고요. 하하, 잘됐죠 뭐.”주덕순 표정이 약간 어색하게 굳었다.“아, 그 자연산 전복이 조 교수가 산 거였구나...”잠시 뜸 들이다가, 다시 물었다.“그런 거 싸지 않던데, 조 교수 연봉 꽤 되는가 보네?”점점 더 민망하고 노골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소진헌이 슬쩍 재석을 바라봤다.재석이 조용히 대답했다.“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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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2화

설 연휴라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넓은 학교엔 사람 그림자도 드물어 한층 더 쓸쓸해 보였다.“소 선생님!”경비 아저씨가 초소에서 활짝 웃으며 걸어 나왔다. 눈길은 곧장 정은에게 향했다.“이 아가씨가... 정은이 맞지?!”“네, 맞아요.”소진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분은...?”아저씨가 이번엔 재석을 바라봤다. 눈빛이 번쩍였다.‘잘생겼네, 이 친구.’‘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쭉하고, 무엇보다 느낌이 있어.’‘딱 봐도 인텔리 티가 폴폴 나는구먼.’소진헌이 자연스럽게 소개했다.“조재석이에요. 정은이 남자친구입니다.”아저씨 눈이 실눈처럼 접히며 한껏 웃었다.“아이고야, 잘 어울리네! 청년도 잘생기고, 아가씨도 예쁘고, 딱이다 딱! 우리 학교에 온 거 환영해요!”재석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아저씨.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무슨 소리! 전혀 번거롭지 않아요! 얼른 들어가요, 오늘 사람들 많이 왔어요. 전부 소 선생님 제자들이라니까!”“그래요?”소진헌이 두 손을 비비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오랜만에 제자들 보겠네.’계단식 강의실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정말로, 경비 아저씨 말대로 예전 제자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소 선생님! 진짜 오랜만이에요!”“세상에, 선생님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쌤! 진짜 보고 싶었어요!!”“와아...”“...”소진헌은 순식간에 학생들 무리 한가운데 둘러싸였다. 왁자지껄, 마치 참새들이 방앗간에 모여 떠드는 듯했다.정은은 스태프의 안내로 영상 녹화실로 향했다.“재석 씨, 이제 제 차례라 잠깐 다녀올게요. 금방 끝나요.”“응.”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들어가는 걸 조용히 지켜봤다.그때, 어딘가 망설이는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조, 조 교수님...”재석이 고개를 돌리자 시율과 눈이 마주쳤다.잠시 뜸을 들인 재석이 물었다.“무슨 일 있나요?”“저기... 여쭐 말씀이 조금 있는데요. 혹시... 조용한 데로 잠깐 옮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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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3화

그 정도면 외모와 몸매는 기본 이상은 보장하고.게다가 재석은 손이 크고 여유 있어 보였다.대학 교수라는 직업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는 수준.‘이 사람, 분명 집안이 아주 괜찮을 거야.’재석처럼 품위 있고 배경 있는 사람은 대부분 학맥이 좋은 집안 출신일 것이다.이런 집안은 몇 대를 이어온 학자 가문일 확률이 높고, 주변 친척들이야 뭐, 당연히 다 잘나가겠지.친척의 친구, 친구의 친척... 무조건 누군가는 걸린다.시율은 맨날 핸드폰 붙잡고 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나이 들수록 엄마는 잔소리를 더해 가며 ‘왜 아직도 남자 친구가 없냐’고 한숨을 쉬었지만, 그때마다 시율은 속으로 대답했다.‘아니, 질이 좀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줘야 만나든가 하지!’진짜 문제의 핵심은, 소개 들어오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다 형편없었다는 것.‘이런 사람들을 사귀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지...’‘그러던 차에 이렇게 기회가 찾아왔는데, 가만히 앉아서 놓칠 순 없잖아.’L시처럼 작고 좁은 동네에 박혀 살다 보면, 상류층이랑 마주칠 기회 자체가 드물다.지금 이 순간, 시율은 그 드문 기회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사실, 이런 말을 먼저 꺼내는 게 여자 입장에서 조금 부끄러운 건 맞지만, 세상은 눈치보다 용기 있는 쪽이 이긴다.‘해보는 거야. 안 되면 말고.’재석은 몇 초간 말이 없었다. 한참 생각한 후에야 시율의 의도를 파악했다.‘아, 결국 사람 하나 소개해달라는 거구나.’이런 부탁은 난생 처음이었다.어이없기도 하고, 조금 웃기기도 하고.“그건 본인 생각이에요? 아니면 부모님이 시켜서?”“당연히 제 생각이죠. 물론 우리 부모님도 조건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길 바라시긴 해요. 그런 면에선 저희 의견이 딱 일치해요.”시율의 솔직한 대답에 재석은 잠시 당황했다.그런데 시율이 갑자기 눈빛을 번쩍이며 물었다.“설마... 형부, 혹시 제가 형부한테 관심 있는 줄 아신 거 아니에요?”재석이 헛기침을 하며 말문이 막혔다.“그 정도까지는 아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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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4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저녁식사 시간이었다.소진호네 집에 도착해 식사를 마치자, 소진헌이 가족들과 함께 먼저 일어났다.그 뒤를 이어 소진우도 서둘러 자리를 떴다.손님들을 다 보내고 나자, 주덕순은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 허리를 짚었다.“하루 종일, 진짜 진 다 빠지네...”시율이 말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한마디 했다.“엄마, 주방 아직 안 치웠어.”주덕순은 이미 소파에 몸을 파묻어버린 상태였다.움직일 생각은 1도 없어 보였다.“네 아빠 시켜.”소진호는 본능적으로 긴장했지만,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을 장착한 채 다가갔다.“여보, 오늘 고생 많았지. 하루 종일 들락날락하면서 진짜 힘들었을 텐데... 내가 좀 주물러줄까?”말과 동시에 소파 뒤로 돌아가 두 손으로 주덕순의 어깨를 조물조물 눌렀다.몇 분쯤 지났을까... 주덕순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가자, 소진호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슬쩍 손을 떼며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여보, 난 이제 설거지 좀 할게. 당신은 여기서 계속 쉬어.”말 끝나기가 무섭게 주방으로 향하려고 했다.“잠깐만요!”소진호는 돌아서는 순간 짧게 웃었다.‘걸렸다.’하지만 다시 얼굴을 돌릴 땐, 그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순한 양 모드.“왜?”“당신이 깨끗하게 설거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낮에 한 것도 내가 다시 다 씻었단 말이에요.”“에이. 내 실력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당신만 괜찮으면 난 얼마든지 할 의향 있어.”“됐어요, 됐어요.”주덕순은 일어나면서 말했다.“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 편하죠...”“안 돼! 너무 고생하잖아...”소진호는 여전히 따라붙었다.“에휴, 뭐 어쩌겠어요. 내가 원래 이런 팔자죠... 뭐...”주덕순은 입으로는 투덜대면서도, 발걸음은 가볍게 주방으로 향했다.소진호는 그 뒤를 따라가며 히죽 웃었다.“그럼 이따 방에 들어가면 또 시원하게 주물러드릴게! 헤헤...”주덕순은 째려보는 척하다가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그 모습을 보던 시율은 조용히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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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5화

주덕순은 강서원의 시선을 받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당신... 왜 이렇게 이상하게 쳐다봐? 말도 안 하고... 벙어리야? 생긴 걸로 봐선 그런 것 같진 않은데?”불쾌한 듯 강서원을 몇 번 째려보다가, 작게 쏘아붙이며 현관으로 들어갔다.“저 여자가 진짜 돌았나...”강서원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얼굴 반쯤이 그림자에 묻혀 표정을 가늠할 수 없었다.그때, 건너편에서 조기봉이 작은 캐리어를 끌고 다가왔다.“여보! 여기는 고층 아파트 단지야. 우리 집은 건너편 별장 단지잖아.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어. 얼른 와.”강서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조기봉이 이상하다는 듯 되돌아왔다.“왜 그래? 가자니까.”“정은이네 집안 친척들, 당신은 잘 알아요?”“응... 뭐라고?”조기봉이 순간 당황한 듯 되물었다.“소씨 집안, 조사한 적 있냐고요?”강서원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물었다.조기봉은 아내가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한 발 다가섰다.“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당신 성격에, 며느리감 가족이 누군지 대충이라도 확인 안 했다는 게 말이 돼요?”강서원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조기봉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번엔 안 했어.”“왜요?”강서원이 재차 물었다.“왜 정은이는 안 알아봤는데? 왜 소진헌 씨 가족은 그냥 넘긴 거야?”“그냥... 우리 재석이가 직접 고른 여자니까, 괜찮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괜히 간섭하면 오히려 사이만 어색해질까 봐.”“그럼, 우리 아들이 사랑에 눈이 멀어서 판단력을 잃었을 가능성은 생각 안 해봤어요?”강서원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당신이 손 놓고 있는 사이에, 재석이가 이용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그렇게까지 심각할 건 없잖아?”조기봉은 머리를 긁적이며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잠깐 길 물으러 갔다 왔을 뿐인데, 당신 왜 이렇게 예민해졌어?”강서원이 싸늘하게 웃었다.“당신이 안 알아보면, 내가 직접 확인할 거예요.”“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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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6화

“아버님, 어머님?!”현관 앞, 작은 캐리어를 든 채 서 있는 조기봉과 강서원을 본 순간, 정은은 그대로 굳어섰고, 두 눈엔 놀람이 가득했다.“정은아...”재석이 돌아보며 정은과 눈이 마주쳤다.그 표정엔 미안함이 역력했다.“우리 부모님이 오셨어.”정은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급히 앞으로 나섰다.“어서 들어오세요.”강서원이 실내로 눈을 한 번 훑으며 입을 열었다.“정은아, 네 부모님은...?”“방에 계세요. 일단 들어오세요. 제가 바로 모시고 나올게요.”“그래. 수고 많네.”강서원이 짧게 대답했다.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녜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한 뒤, 새 슬리퍼 두 켤레를 꺼내놓았다.조기봉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우리 알아서 신을게.”강서원은 말없이 슬리퍼를 신은 뒤, 거실로 쭉 들어갔다.그리고 캐리어는 자연스럽게 재석에게 넘겼다.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조기봉 부부의 방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황스러웠다.그로부터 20분쯤 지난 후, 옷을 단정히 챙겨 입은 소진헌과 이미숙이 거실로 내려왔다.두 집 식구는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겉으론 평온했지만, 누가 봐도 소진헌 부부도 꽤 놀란 눈치였다.조기봉은 옆에 서 있던 강서원을 팔꿈치로 슬쩍 찔렀지만, 강서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결국 조기봉이 먼저 멋쩍게 입을 열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뵈어 정말 송구합니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거라... 재석이나 정은이한테도 미리 말도 못 했고, 그냥 불쑥 찾아오게 됐습니다, 참...”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밤늦게, 그것도 짐까지 들고 들이닥친 건 예의에 어긋났다.하지만 강서원은 그 순간에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시선도, 그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뭐야 이 분위기...’정은은 속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조기봉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그 분위기를 감지한 소진헌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아휴, 별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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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7화

이미숙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여사님, 너무 과하신 것 같아요.”강서원은 이미숙에 대한 인상이 꽤 괜찮았다. 단지 그 원피스 때문만은 아니었다.이미숙 본인의 배경도 한몫했다.이씨 가문 출신.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재벌가.다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 수십 년을 바깥에서 살아야 했던 비운의 인물.그런 이미숙에 대한 강서원의 시선은 나름 존중이 섞여 있었다.“저희 나이도 비슷할 텐데, 그냥 이름 불러요. ‘여사님’ 소리 들으면 괜히 어색하고 거리감 들어요.”“그럼... 그렇게 할게요.”이미숙이 선선히 받아들였다.“사실 그렇게까지 정중히 안 하셔도 되는데...”“아니에요. 당연히 해야죠. 우리 재석이가 명절에 L시까지 와 있는 것도 민폐인데, 이럴 때 양가가 밥 한 끼는 함께하는 게 예의 아닐까요.”“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이미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조기봉과 강서원은 그렇게 불쑥 왔듯, 빠르게 일어섰다.식사 약속을 정중히 전달하고, 소진헌과 이미숙의 수락을 확인한 뒤 다시 캐리어를 끌고 나갔다.그 모습을 보며 정은이 작게 재석에게 말했다.“이 시간엔 그래도 호텔까지 모셔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응. 같이 가자.”그런데 현관 앞까지 나가자, 조기봉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괜찮아. 큰 길만 하나 건너면 바로 호텔이야. 걸어가면 금방이니까 따라오지 마. 너도 쉬어야지.”재석은 잠시 망설이다가,“그럼 도착하면 연락 주세요.”“응, 알았어.”조기봉은 짧게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은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보다가, 천천히 안으로 돌아섰다....호텔로 향하는 길.강서원은 말없이 앞장섰고, 걸음은 지나치게 빨랐다.조기봉은 그녀를 따라잡느라 한겨울임에도 땀이 날 지경이었다.“좀 천천히 가. 왜 이렇게 빨리 가.”그 순간, 강서원이 걸음을 멈추더니 홱 돌아섰다.“도대체 재석이는 왜 그렇게 정은이 말만 들어요? 정은이가 ‘모셔다드리다’ 한마디 하니까 바로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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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8화

이미숙이 소진헌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당신은 맨날 물리 시험지나 수업 자료만 들여다보니까, 사람들 말투나 분위기 같은 건 잘 모르고 그냥 스쳐 지나가잖아요.”소진헌은 민망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헤헤... 그럼 내일은 어쩌지? 우리 가긴 가야 해?”“당연히 가야죠. 먼 길 와서 정중히 초대한 자리인데, 안 가는 게 더 실례예요.”“그럼 아버지랑 어머니, 큰형이랑 작은형도 같이 부를까?”“불러요. 조 교수 어머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요.”“오케이!”다음 날 점심 무렵, 수락원.강서원은 식당에서 가장 큰 프라이빗 룸을 통째로 예약해 두었다.20인용 대형 원탁에, 냉채부터 온반까지 한가득 차려진 식탁.딱 봐도 보통 수준의 대접 이상이었다.소진호 일가가 안내를 받아 들어서자, 주덕순은 홀 안을 훑으며 속으로 몇 번이고 감탄했다.‘와, 이런 데도 있었네... 내 참...’‘이 정도로 넓고 고급스러운 룸이면 대체 얼마야...’그녀는 L시에 산 지도 수십 년이고, 수락원에 몇 번 와본 적은 있지만, 이런 VIP룸은 처음이었다.방금 입장할 때, 주덕순은 슬쩍 직원에게 물어봤다.이 방 하나 빌리는 데만 서비스 요금이 무려 100만 원이란다.‘아이고, 누가 이런 데 와서 밥을 먹어... 돈이 썩어나나...’소진호 부부가 입장하자, 소진헌이 먼저 나서서 양측을 소개했다.“이쪽은 조 교수의 부모님이시고요.”그다음 소진호와 주덕순 쪽을 보며 말했다.“그리고 여기는 제 작은형님, 작은형수님 되세요.”소진호는 빠르게 앞으로 나가 조기봉과 악수했다.“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주덕순은 인사를 하면서도 슬쩍 강서원을 관찰했다. 첫눈에 알 수 있었다.‘아... 이 사람, 우리가 아는 그런 급은 아니네.’‘입고 있는 옷, 앉아 있는 자세, 말투, 심지어 숨 쉬는 리듬까지도...’‘딱 봐도 ‘우리 같은 사람’은 아니야.’‘역시... 조 교수 집안, 만만한 데가 아니었네.’주덕순은 속으로 또 한 번 감탄했다.‘정은이 팔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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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9화

“사모님, 첫번째 잔은요, 우리 L시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기에 계시는 동안 구경도 좀 하시고요. 풍경도 괜찮고, 사람들도 정 많아요.”“둘째는 이렇게 좋은 자리 마련해주시고, 맛있는 음식에 좋은 술까지 대접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인사예요.”“그리고 마지막,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요. 우리 정은이가 조씨 가문 같은 명문가로 시집가게 된 건 정말 팔자도 복도 지지리 좋은 거죠. 우리 가족 모두의 복이기도 하고요.”“정은아.”주덕순이 잔을 든 채 정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작은어머니가 오늘 술을 좀 했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겠다. 어른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이건 조언이라기보단. 인생 선배의 한마디랄까?”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말투는 한결같이 차분했다.“작은어머님, 술이 좀 과하신 것 같아요. 제가 직원 불러서 숙취차라도 드릴까요?”“아유, 무슨 숙취차야. 내가 술은 마셨지만, 취한 건 아니거든? 오늘은 꼭 이 말은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아서 그래.”소진호가 옆에서 주덕순의 소매를 미친 듯이 당겼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거의 이를 악무는 수준이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 제수씨도 아직 한마디 안 했는데, 당신이 뭔데 그런 말까지 해?!”주덕순은 손을 뿌리치며 툭 내뱉었다.“당신 같은 남자들은 몰라요! 분위기도 못 읽고, 이래라저래라... 참견은...”그 말과 동시에 주덕순은 다시 환한 미소로 정은을 바라봤다.“정은아, 첫 번째는 말이지. 결혼했으면 이제 가정이 우선이야. 마음도 좀 내려놓고, 아내로서 책임감을 가져야지. 남편 잘 챙기고, 시부모님께도 예의 있게 잘하고. 그게 여자의 도리야.”“두 번째는, 이제부터는 너무 자기 멋대로 하면 안 돼. 이렇게 좋은 시댁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이런 인연, 꼭 잘 지켜야 해.”“그리고 마지막으로, 조 교수는 바깥에서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그런 사람 곁에선 내조가 정말 중요해. 가정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해줘야지, 괜히 어르신들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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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0화

“작은어머님 말씀이 참 옳으세요. 새겨듣겠습니다.”재석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들고, 이미숙과 소진헌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제가 정은이를 만난 것은 정말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정은이를 제일 소중하게 여기고, 지금보다 더 책임감 있게 곁을 지키겠습니다.”“혹시나 저희가 언젠가 한 가족이 된다면, 정은이를 더 잘 챙기고, 아버님 어머님께도 진심으로 효도하겠습니다. 두 분이 저희 문제로 걱정하실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정은이 커리어도 전폭적으로 응원할 겁니다. 뭐든 마음껏 도전할 수 있게, 옆에서 든든히 뒷받침하겠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순간 공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흘렀다.다들 말없이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그 고요를 가장 먼저 깬 건 조기봉이었다.“좋다! 내 아들 맞네. 기백 있는 말이었어!”강서원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지만, 속은 벌써 천불이 나고 있었다.‘남자친구 역할을 책임지겠다는 말이 그렇게 대단한가?’‘그래, 요즘 세상 그렇다 쳐.’‘근데 저걸 듣고 ‘기백 있다’고 칭찬하는 남편은 또 뭐야...’‘진짜, 이 집안 어쩌자는 거지.’주덕순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속으로 비웃었다.‘이래서 재벌이라더니... 참 실망이야.’‘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별 거 없구만...’‘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서겠다니, 이게 대체 뭐야?’하지만 그런 속내는 겉으로 표시하지 않았다.소진헌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야... 조 교수, 말 참 멋지게 하네. 이 정도 각오면, 우리 정은이 맡겨도 되겠어.”이미숙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직접적으로 재석을 칭찬하진 않고, 시선을 돌려 강서원을 보며 말했다.“여사님이 자식을 참 잘 키우셨어요. 말하는 태도며 마음씀씀이며, 하나하나 참 인상 깊네요.”강서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입에 걸린 것처럼 기분이 확 막혔다.‘으윽... 뭐야, 이 미묘하게 비꼬는 듯한 느낌은...’‘진짜 개똥이라도 씹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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