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241 - Chapter 1250

1276 Chapters

제1241화

이미숙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심정훈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잔은 미숙 작가에게 바치려네. 산속에 있을 때, 자네가 쓴 새 책을 다 읽었어. 정말... 울림이 컸어.”‘이 사람은 내가 젊은 시절부터 마음에 두었던 여자야.’‘잊은 적도 없고, 놓아본 적도 없어.’‘그래서일까, 여전히... 멋진 사람이네.’이미숙은 말없이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살짝 몸을 숙여 심정훈의 잔과 맞닿자, 고급 유리끼리 부딪치는 맑은소리가 울렸다.“고마워요.”이미숙은 담백하게 말했다.“내년에 나오는 새 책도... 기대할게.”말을 마친 심정훈은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어머머, 천천히 마셔요. 가족끼리 밥 먹는데 뭘 그렇게 벌컥벌컥.”봉수진이 놀라며 말렸지만,심정훈은 손을 살짝 흔들며 웃었다.“괜찮아요. 오늘은 그냥... 기분이 좋아서요.”그리고 다시 잔을 채우며 말했다.“이 잔은 장모님, 장인어른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항상 웃는 일만 가득해지시길 바랍니다.”“에이... 말도 참 곱게 하네.”봉수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술이 약한 그녀 대신 이춘재가 잔을 받아 대신 들었다.그리고 마지막 한 잔.심정훈은 잔을 들고 아들에게 시선을 맞췄다.“마지막은... 현빈이 너에게. 올해 정말 고생 많았다.”‘내가 회사를 내려놓고 산으로 들어간 그 시간 동안...’‘모든 걸 짊어진 건 너였지. 미안하고, 고맙다.’현빈은 묵묵히 잔을 들어, 아버지의 잔과 가볍게 부딪혔다.“뭐 한 마디 없냐?”심정훈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이요?”“새해 덕담 같은 거라도.”현빈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그럼... 평안하게, 오래오래 사세요.”“하하하하!”심정훈은 웃음을 터뜨렸다.“산에 있을 때 눈사태 많이 맞았거든. 실용적인 덕담 고맙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다시 들었다.“그럼 나도 한마디 하자. 현빈아, 너도... 마음먹은 대로 다 되길 바란다.”그 마지막 말을 하며, 심정훈의 시선이 아주 잠깐 정은을 스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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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2화

“우리 어머니야. 오늘 아침에 운전해서 나가셨다가, 트럭이랑 사고가 났대. 지금 병원에 계시고... 그래서... L시에 같이 못 갈 것 같아.”재석의 말에 정은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L시에는 언제든 갈 수 있어. 지금은 어머님 먼저 챙기는 게 우선이죠. 얼른 병원 가봐요.”“이거, 너 가져가. 내 마음 조금 담은 거야. 가족분들, 친척분들께 전해줘.”“응, 알겠어요.”정은은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재석은 그녀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새해 복 많이 받아, 정은아.”그리고 짧은 인사를 끝으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그 사이, 소진헌과 이미숙은 먼저 개찰구를 지나고 있었는데, 뒤따라오던 재석이 보이지 않자 돌아보며 물었다.“어라? 조 교수는? 곧 기차 출발하는데?”정은은 간단히 설명했다.“어머님이 교통사고가 나셔서요. 병원으로 가셨대요.”소진헌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에구... 명절날 이런 일이... 그래도 조 교수, 옆에 있어드리는 게 맞지. 그게 자식 도리야.”“네, 우리도 어서 가요.”정은은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돌아봤다.재석의 모습은 이미 인파 속에 사라진 뒤였다.‘그래도... 다행이다. 크게 다치시진 않았다고 했으니.’“가요.”정은은 소진헌의 팔짱을 끼며 걸음을 옮겼다.소진헌은 양손 가득 짐을 들며 중얼거렸다.“이건 뭐... 선물 가게 하나 차릴 기세네.”정은은 웃으며 손에 든 보자기를 살폈다.자연산 전복, 비싼 과일, 인삼 세트...‘진짜 이 사람, 마음씀씀이 하나는 알아줘야 해.’...점심쯤, 기차는 정시에 L시에 도착했다.세 사람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고, 짧게 짐을 정리하며 쉬었다.오후 5시.소진헌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정은과 이미숙을 태우고 큰형 소진우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소진헌 일가가 아직 소진우 집 문턱도 넘기 전에, 안에서부터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그중에서도 유독 큰 목소리... 주덕순의 쏘아붙이는 웃음이었다.“하하하. 내가 뭐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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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3화

“이거, 꽤 비쌀 텐데? 설날에 가족끼리 모여 밥이나 먹는 건데 이렇게까지 챙길 필요는 없잖아.”박나영은 웃으며 말했다.그 웃음엔 한층 더 진심이 실렸다.박나영은 주덕순처럼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형제가 잘 되는 건 좋은 일이다.친하게 지내면 언젠가 내 식구에게도 좋은 일이 돌아오기 마련이니까.박나영은 인훈에게 다 들었다.요즘 인훈이 다니는 회사가 점점 커지고, 주문도 눈에 띄게 늘어난 건 전적으로 정은 덕분이라는 걸.그때 정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회사 문 닫고 쫄딱 망했을 거라고.솔직히 처음엔 마음이 좀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었다.소씨 집안 삼형제 중에 누가 봐도 자기 남편이 제일 똑똑하고 잘 나갔다.그걸로 박나영은 한평생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그런데... 조용히 있던 소진헌이 갑자기 치고 올라와버렸다.누구라도 마음 한켠에 복잡한 감정이 안 생길 수 있겠는가?하지만 아들 말 듣고 나니, 박나영의 생각은 금세 정리됐다.질투해서 뭐 하나?속상해 봤자, 돌아오는 게 뭐가 있나?오히려 사이만 멀어질 뿐이다.사람이란 결국, 내게 떨어지는 실속이 중요하다.아들이 그 실속을 직접 챙기고 있으니, 박나영도 당연히 소진헌의 가족을 두 팔 벌려 반길 수밖에.그게 똑똑한 사람의 방식이다.똑똑한 사람은 똑똑하게 움직인다.안타깝게도, 세상엔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너무 많다.자기 잘난 맛에 사느라, 괜히 남을 깎아내리고 비아냥대는 데에만 정신 팔린 상태였으니 말이다.“어머, 동서. 이렇게 많이 챙겨오면 어떡해요! 자연산 전복에 고급 과일까지...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선물은 다 묻히겠어요.”주덕순이 팔짱을 끼고 다가왔다. 말투는 싱글벙글, 눈은 번뜩였다.장난인 듯, 진담인 듯.칭찬인 듯, 빈정거림인 듯.‘봐라, 또 시작이네.’박나영은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참 안쓰러울 정도로 못 배워서 문제야.’...소수정은 줄곧 거실 소파에 앉아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소진헌 가족이 들어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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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4화

이미숙은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마음이 중요한 거죠. 가족끼리 이런 걸 따지면 뭐 해요.”그 말에 소수정의 표정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말은 진짜 잘해. 괜히 작가 하겠어?’“막내 새언니, 말 진짜 예쁘게 하시네요.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는 달라요.”주덕순은 묘하게 입꼬리를 내리며 말꼬리를 물었다.“자연산 특대 전복 같은 귀한 건... 나는 그냥 안 먹는 게 날 것 같아요. 나같이 거친 입엔 어울리지도 않고, 차라리 부모님 드려요!”‘흥, 이미숙 그 여자가 가져온 거라고?’‘내가 그런 거에 감탄할 줄 아나?’‘별것도 아닌 전복 가지고...’‘이따가 바로 라이브 방송 들어가서 훨씬 좋은 전복 세트 주문해야지.’‘그건 뜯으면 바로 먹는 거고, 이미숙이 가져온 건 손질도 해야 하잖아.’‘비교도 안 되지.’소수정은 주덕순의 말에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아니, 저 사람 진짜 안 받을 거야?’“둘째 새언니, 이 전복... 진짜 안 드실 거예요?”“안 먹어요.”주덕순은 확신에 찬 말투로 잘라 말했다.“왜요? 아가씨는 내 것을 가져가고 싶어요?”뜻밖에도 소수정은 바로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미세하게 망설인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가져가고 싶긴 해요. 근데 이런 좋은 건... 그래도 부모님 먼저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주덕순은 한순간 어리둥절했다.‘얘가... 이런 말을 해? 맨날 콧대만 높더니... 갑자기 왜 이래?’그 순간, 박나영이 눈치를 살짝 살핀 뒤 싱긋 웃으며 말했다.“난 이런 고급 전복 한 번도 안 먹어봤거든. 이번엔 진짜 아껴서 꼭 한 번 맛봐야겠어.”그 말에 주덕순은 속이 뒤틀렸다.‘흥, 누가 믿어. 남편이 그렇게 잘나가는데, 자연산 전복 한 번 못 먹어봤다고?’‘아니 누가 봐도 그건 그냥 이미숙 편을 들고, 또 분위기 잡으려는 거잖아.’‘어휴, 형님도 참... 연기력 하나는 인정해야지.’그렇게 거실 안엔 겉으론 웃음이 가득했지만, 속으론 미세한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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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5화

주덕순의 말은, 이름 그대로 레몬처럼 단맛은 없고 시큼하기만 했다.‘이쯤 되면 입에 레몬 한 박스 물고 사는 수준이네.’방 안의 웃음소리는 그 순간 마치 리모컨으로 ‘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멎었다.사람들의 얼굴엔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소진헌은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고는, 아내 대신 말을 받았다.“저희야 뭐... 다 가족분들 덕분이죠. 작은형수님도 늘 저희 편을 들어주시고요.”그러자 주덕순은 손을 내저으며 비꼬듯 말했다.“아이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난 원래 복도 없고 운도 없는 사람인데, 그런 과한 칭찬 들으면 먹던 명절 음식도 체할 것 같네요.”‘이건 그냥 대놓고 비꼬는 거지.’소진헌의 얼굴에서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순간, 박나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이 사람 또 왜 이 타이밍에 시비야... 명절 분위기 다 망치게 생겼네.’박나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막내 서방님은 또 너무 겸손하네요. 그런 건 남이 질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둘이 함께 열심히 살아서 얻은 결과잖아요?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는 거죠.”소진헌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큰형수님, 감사합니다.”“가족끼리야, 다 같이 잘 되면 좋죠. 나는 정말 서방님네가 이렇게 된 게 기특하고 대견해서 그래요.”박나영은 말을 예쁘게 돌리면서도,그 말끝마다 은근슬쩍 주덕순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이건 뭐... 돌려까기 고수네.’그 순간, 주덕순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졌다.‘아니, 내가 분위기 던졌는데, 왜 형님이 수습하면서 주인공처럼 굴지?’소남진 부부는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시고 있었다.‘듣고 계신 건가... 아니면 그냥 포기하신 건가...’연륜이 쌓이면서 웬만한 집안싸움엔 관여하지 않는 모양새였다.조카들과 자녀들도 눈치껏 말없이 조용히 젓가락질만 했다.‘이런 땐 누구든 나서는 게 손해라는 걸 다 아는 거지.’그런 분위기에 기름 붓듯 주덕순이 결국 못 참았다. 그리고 웃고 있는 박나영을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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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6화

얼마 전, 주덕순은 다른 친척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인훈이 하는 회사가 요즘 엄청나게 잘 되고, 일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될 정도라고.그 얘기를 들었을 땐, ‘그래봤자 얼마나 잘 되겠어?’ 하고 살짝 질투심이 들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다 보니 금방 잊고 넘겼다.‘대충 바쁘단 말이지, 뭐. 자기들이야 늘 부풀려 말하니까.’하지만 지금, 박나영의 그 미묘하게 감추는 태도, 인훈의 그 담담한 말투.‘뭔가... 있다. 절대 단순한 ‘한 건 던져줬다’는 정도가 아니야.’결국, 인훈이 설명을 덧붙였다.“정은이가 진행한 스마트 실험실 프로젝트요. 완전 자동화, 전 구역 AI 제어, 전국 어디를 가도 이런 수준은 없을 거예요.”주덕순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물었다.“뭐야,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근데... 그거 돈 엄청 들지 않아?”“그렇죠. 값어치가 있는 만큼 투자도 커야죠.”“그래서, 얼마 들었는데?”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덤덤히 말했다.“땅값이랑 장비 빼고, 건축 비용만 따져도 대충... 몇십이 넘죠.”“하하하, 몇십? 몇십만 원?”주덕순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서 뭘 어쩌라고. 회사 하나 짓는 데 고작 몇십만 원?’‘거 참,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억이요. 몇십억이에요.”인훈은 마지막 말을 또렷하게 붙였다.마치 목을 세게 누른 오리처럼 주덕순의 웃음이 그대로 끊겼다.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정지.‘억? 지금 억이라 그랬어? 몇천만 원도 아니고?’박나영은 처음엔 그 대목이 나오기 전까진 속으로 ‘재 좀 가려 말하지’ 하며 인훈을 말리고 싶었다.‘돈 자랑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괜히 눈치 챙기는 거야.’하지만 지금, 정신이 멍해진 주덕순의 얼굴을 보니, 결국, 재산 노출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속이 다 후련했다.‘뭐, 잘했다. 이쯤은 말해줘야 아예 입을 못 털지.’‘오늘 진짜 명절 음식보다 이 장면이 제일 속 시원하네.’“그, 그럼...”주덕순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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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7화

“작은어머니.”정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섰다.“그 프로젝트를 오빠 회사에 맡긴 건요, 첫째, 예산이 한정돼 있어서예요. 다른 스마트 인테리어 업체들 견적이 너무 높았거든요. 둘째는, 우리 오빠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이고요.”말투는 정중했지만, 내용은 단호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작은어머니 댁도 생각은 했어요. 근데... 작은어머니 댁은 저한테 어떤 도움을 주실 수 있죠?”“인테리어? 설계? 시공? 도면 그려주실 수 있으세요? 아님... 청소? 식사 준비? 설마 제 돈을 그냥 작은어머니 통장에 꽂아드리길 바라신 건 아니죠?”거실에 정적이 감돌았다.‘와... 이걸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박나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근데 시원하긴 하네.’주덕순의 입술은 굳어졌고,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는 어딘가 어색했다.‘이 계집애가 언제 이렇게 말이 세졌지...?’주덕순은 전기공사 관련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정규직이었다.남편 소진호는 외주업체에서 기술직으로 일했고, 아들 시율도 친정의 ‘빽’으로 전력공사 정규직에 들어간 케이스였다.이 집안이야말로 안정적인 집안이며 L시에서 이 정도면 상위 클래스라고 할 수 있었다.한때 소진우가 가장 잘나갔고, 그다음은 소진호네 집이었다.소진헌은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늘 제일 말석이었다.그는 교사에,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는 여자랑 결혼해서, 그 집은 진짜 망해가는 줄 알았는데...지금 보니 세상이 뒤집혔다.인훈은 정은 덕에 성공했고, 이미숙은 글 써서 돈 벌고, 온 가족이 부촌에 별장까지 갖고 살기 시작했다.‘이게 뭐야... 진짜... 우리만 바보 된 기분이네.’주덕순은 항상 속으로 불만이 많았다.정은은 주덕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작은어머니, 저 진짜 뭐 바라는 거 없어요. 근데... 제가 한 번 손 내밀었던 건 기억하시죠? 그 자연산 특대 전복 드리려 했는데, 본인이 거절하신 거예요.”“전복?”“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아세요? 보통 사람은 사 먹기도 힘든 고급 제품이에요. 드셔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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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8화

“아휴. 부모님 댁에도 전복 몇 상자 더 있잖아요. 내가 좀 생각해봤는데... 이건 우리 동서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니까 괜히 거절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아, 맞다. 시율아, 우리 이따 외갓집도 들러야 하잖아? 그러면 우리 먼저 갈게요.”순간, 거실은 또 한 번 정적.주덕순은 자연산 특대 전복 상자를 꼭 안고, 소진호와 시율에게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냈다.소진호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희 먼저 일어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족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속에서 세 사람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밖에서 몰아치는 바람에 주덕순은 목을 움찔거리며 떨었다.“찾아봤어? 이거... 얼마나 하는 거야?”시율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기다려봐... 인터넷이 잘 안 터져서... 아, 떴다. 최저가... 천만 원?”“뭐?! 천만 원?!”시율조차 눈이 동그래졌다.“그럼 최고가는?”주덕순은 숨을 들이켰다.“1600만 원.”“허어... 세상에! 그 집안은 뭐야, 돈을 어디서 찍어내나?! 그런 걸 그냥 ‘먹기 싫다’고 뻔뻔하게 뱉었단 말이야?”“큰일 날 뻔했네, 진짜... 야, 시율아! 얼른 올려. 이럴 때가 아니야. 지금 설 직전이라 거래도 잘 될 거야. 1500만 원만 받아도 대박이지!”‘1500이면 내가 반년 넘게 일해서 버는 돈인데... 전복 하나가 그 값을 한다고?’눈이 반짝이던 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오케이, 올릴게. 근데 엄마, 진짜 팔리면 나 500만 원만 줘. 나 이번에 루이비통 신상 하나 사고 싶어.”“뭐? 500? 그건 뭐 금으로 만든 가방이야?”시율은 눈을 돌리며 말했다.“루이비통이 뭔지는 알지? 국제 명품 브랜드잖아. 됐어, 엄마한테 설명해도 몰라. 어차피 이 전복 공짜로 받은 거니까 내가 좀 떼 가도 손해 아냐. 게다가 팔 때도 내 명의로 거래하잖아? 엄마는 수고비라도 나한테 줘야죠.”“이년이, 지금 엄마 상대로 장사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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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9화

“그렇게까지... 대단해?”주덕순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시율을 바라봤다.“그럼!”시율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솔직히, 정은 언니 보면 가끔 감탄 나와. 젊었을 땐 돈 보고 재벌 2세 사귀더니, 지금은 명예까지 노리잖아. 이젠 교수야, 교수. 이름도 있고, 지위도 있고. 정말 뭐든 갖는 사람은 다 가지는구나 싶다니까?”“야, 미쳤니?”주덕순이 그대로 시율의 팔뚝을 툭 쳤다.“그걸 지금 칭찬이라고 해? 창피한 줄 알아야지! 정은이 같은 애는 진짜... 부끄러움도 모르고 살지! 막내 서방님이랑 이미숙은 고상한 척은 다 하더니, 딸내미는 나이 든 교수랑 엮여서 뭐 한다고!”‘그 잘난 막내 집안, 이제 흠 하나 잡았네.’주덕순의 눈빛에 음침한 기색이 스쳤다.바로 그때, 소진호가 차를 몰고 도착했다.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춥다, 어서 타.”주덕순은 시율의 팔을 툭 잡아끌며 조수석에 올라탔다.차 문을 닫으며 작게 중얼거렸다.“두고 봐. 이 판, 금방 뒤집힌다.”...한편, 조씨 가문의 본가.밤하늘은 먹먹하게 어두워,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조지훈은 베란다에 서서 그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다,깊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였다.멀리서 가사도우미가 두 아이를 따라다니며 외쳤다.“현우 도련님, 현민 아가씨! 천천히 가세요! 넘어지면 안 돼요!”조지언은 거실에서 조기봉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잔을 입에 대긴 했지만, 눈길은 자꾸만 뛰노는 두 아이 쪽으로 향했다.그러다 현우가 비틀대는 걸 보고, 지언의 이마가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몸이 앞으로 반쯤 튀어나온 순간, 가사도우미가 잽싸게 현우를 붙잡았다.그제야 지언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몸을 다시 소파 깊숙이 밀어 넣었다.그리고 잔을 들고 있던 손끝도 서서히 풀렸다.‘괜찮다... 넘어지진 않았어.’이번 설, 지언은 직접 나서서 설득했다. 리아에게 두 아이를 구 저택으로 데려오게 해달라고.그리고 결국 리아는 조건부로 허락했다.하지만 본인은 오지 않았다.“내가 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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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0화

“작은삼촌, 부끄부끄!”현우가 혀를 쏙 내밀며 지훈을 향해 말했다.“어른이 애랑 비교하면 안 돼!”지훈은 말없이 현우를 노려봤다.‘좋다, 이젠 애한테까지 놀림당하는 팔자구나.’바로 그때, 강서원이 문득 물었다.“재석이는?”“아, 아까 전화 오더니 어떤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급히 찾는다고 해서 급하게 나갔어요.”“교수님? 누군데? 명절에 뭘 그렇게 급하게 불러내?”강서원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 근데 들으니까, 내년쯤에 재석이 특임 교수인가 뭐 그런 거 준비하는 중이라던데요? 지금이 딱 그런 인맥 돌볼 시기 아닌가요?”“아, 그렇지. 우리나라야 뭐, 그런 자리 하나에도 눈치랑 관계가 얽히니까...”강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이야 뭐 상도, 타이틀도 이미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 바닥 돌아가는 걸 무시하긴 어렵죠.”지훈이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재석이 예전 같았으면 절대 그런 데 나서지 않았을걸요? 근데 지금은 좀 다르잖아요.”“어떻게 달라?”지훈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두어 번 끄덕이더니,“예전엔 혼자였잖아요. 혼자일 때는 좀 불편해도 감수하면 그만인데, 지금은 여자친구 있지, 앞으로 결혼도 생각해야죠, 가정 생기면 책임이라는 게 따라붙잖아요. 그럼 사람이 안 달라지겠어요?”“오... 말 되네.”“그렇지? 남자는 가족이 생기면 생각부터 달라진다니까요. 그리고 어머니도 눈치챘죠? 오늘 형이 애들한테 얼마나 시선 박고 있는지. 현우랑 현민이 조금만 빨리 뛰어도 눈썹이 씰룩씰룩...”지훈은 조용히 웃으며 형 쪽을 힐끔 봤다.‘우리 형, 예전엔 애들 울어도 고개만 돌렸었는데... 지금은 거의 풀 모드 보호자.’“저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역시 사람은... 마음 줄 대상이 생기면 달라져요.”강서원은 아들들의 대화에 미소를 지으며, 멀리서 뛰어노는 손주들을 바라봤다.‘그러게... 정말, 세월이 사람을 키우는 건가 보다.’하지만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재석이야, 아직 멀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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