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실패로 끝난 청혼.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정은과 재석의 관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두 사람은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지냈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둘 중 아무도 그날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굳이 꺼낼 필요도 없어 보였다.심현빈은 호주에 도착한 뒤, 정은에게 전화를 걸어오거나, 가끔 메시지를 보내왔다.짧은 안부 인사 한 줄이 대부분이었다.가끔은 그곳 풍경 사진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사진도 함께 보내왔다.정은은 흥미가 생기면 몇 마디 더 묻기도 했고, 바쁠 때는 답을 미뤘다가 나중에 보면 ‘굳이 뭐 답장할 것도 없네’ 싶어, 그냥 넘기기도 했다.그런데도 현빈은 여전히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정은은 그에 맞춰, 여전히 가끔은 답하고, 가끔은 읽기만 했다.‘웃기네. 예전보다 오히려 연락이 잦아졌잖아.’물론, 현빈은 봉수진과 이춘재에게도 소홀하지 않았다.정은에게 보낸 사진은 대부분 두 사람에게도 전송되었고, 오히려 그쪽이 더 먼저 받는 경우가 많았다.봉수진은 문자 보내는 걸 귀찮아해서, 늘 영상 통화로 때웠다.현빈도 바쁘지 않으면 할머니의 전화를 놓치지 않았다.가끔은 호주에서 현빈으로부터 선물이 오기도 했다.그곳 특산물이라며, 소소하지만 정성스러운 것들.봉수진은 캥거루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받았고, 이춘재는 헌터 밸리산 포도주 한 병을 받았다.정은에게는 두 사람이 대신 전해주었다.호주 원주민의 전통 공예품.점묘화나 나무 조각 같은 것들.Hakuna Matata, 인생은 걱정 없이 흘러간다는 뜻처럼,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심지어...현빈은 재석에게도 선물을 보냈다.음... 뭐랄까...오메가3, 루테인, 간 건강 영양제 같은 대형 브랜드의 건강 보조제 세트.그걸 받은 재석은 딱 한 마디.“심 대표님께... 고맙다고 전해줘.”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말투는 딱딱했다.‘어떻게 들어도... 이를 꽉 문 소리네.’...현빈이 떠나고 나서, 심정훈은 집에 거의 붙어 있지 않았다.원래도 적막했던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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