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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331 - Chapter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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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1화

“시연아.”고상훈이 시연의 손을 잡았다.노인의 손끝에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시연아, 인생은 짧단다. 너무 스스로랑 싸우지 마라.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 널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쯤은 용기 내서 잡아보거라.”말끝마다 흐릿했지만, 그 뜻은 분명했다.시연은 그 말의 의미를 하나하나 다 알아들었다.‘나...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고상훈은 대답 대신 조용히 물었다.“네가 지금 내린 선택이, 정말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그 한마디에 시연은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 유건이 물컵을 들고 돌아왔다.고상훈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항상 무겁던 마음이 이제야 내려앉는 듯했다. ‘이제 다 됐구나...’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할아버지.”유건이 다가와 컵을 들어 올렸다.“물 좀 드세요.”“그래... 그래...”고상훈이 힘겹게 대답하며 입술을 컵 가장자리에 댔다.그 순간 고상훈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유건과 시연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시연은 본능적으로 조이를 품에 안았다.조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울지도, 소리 내지도 않았다.작은 팔로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할아버지...”유건이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머리를 떨궜다.시연도 조이를 안은 채 그 옆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방 안은 고요했다. 숨죽인 흐느낌과 억눌린 울음소리만이 번졌다.고상훈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시선이 유건과 시연, 그리고 조이에게로 천천히 옮겨갔다.그리고 숨결이 점점 옅어졌다....문 앞.“더는 못 기다려.”고장민이 결국 참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안 됩니다!”민환과 기환이 몸을 막아섰다.“비켜! 나는 지금 꼭 들어가야 해!”고장민이 목을 세웠다.“너희 눈에는 지금 상황이 안 보여? 이러다간 아버지 마지막도 볼 수 없을 거라고!” 그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기환이 비웃듯 코끝으로 숨을 뱉었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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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2화

고장민이 숨을 멈춘 듯 굳었다. 입을 열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유건이 그를 담담하게 바라봤다.“이제 가, 가족들이랑 같이. 그게 당신이 할아버지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야.”그 한마디에 고장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하지만 유건은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지한에게 말했다.“여기 정리 잘하고, 아무도 할아버지 방에 못 들어오게 해.”“네, 형님.”...시간이 흘러, 병원 안엔 고상훈의 장례 준비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시연은 도경미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이 좀 데려가 주세요. 아이는... 여기서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조이를 보낸 뒤, 그녀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유건은 잠시 멍하니 시연을 바라봤다.‘돌아왔어...? 왜...?’그 시각, 고장민 일가는 이미 떠났고, 리슬도 지한이 사람을 붙여 집으로 보낸 참이었다.시연이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남아 있어도 될까요?”이유는 두 가지였다. 유건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고상훈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유건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병실 안의 공기는 낯설 만큼 고요했다.어딘가 익숙한 장면이었다.몇 년 전, 시연이 지동성의 곁을 지켰던 그때와 똑같았다.다만 이번엔, 유건이 할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간호사가 물을 떠 왔다.“지 선생님, 이거... 제가 할까요, 아니면...”“제가 하...”시연이 말하기도 전에 유건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내가 할게.”간호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고 대표님 말씀대로 하시죠.”“네, 괜찮아요. 이건 제가 할게요.”시연이 대야를 받아 들었다.“다른 일 보세요.”“아, 네.”간호사는 조용히 물러났다.시연이 물이 담긴 대야를 유건 옆으로 가져다 놓았다.“고마워.”유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수건을 꼭 짜서 고상훈의 팔과 손을 조심스레 닦았다.말없이, 묵묵히.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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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3화

“그래.”유건은 자신이야 안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시연까지 굶길 순 없었다.왕성애는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 자극 없는 부드러운 음식들을 차려냈다.양도 많지 않았다.그런데도 유건은 젓가락을 든 채, 그저 그릇 안의 밥알만 세고 있었다.왕성애는 속이 타들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끝이 떨렸다.그때 시연이 젓가락을 들어 죽순채를 집었다.“이거 맛있어요.”그녀가 젓가락 끝을 유건 쪽으로 내밀었다.“새콤하고 조금 매워요. 한번 먹어봐요.”유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맛있죠?”시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그 위에 반찬을 얹어 다시 건넸다.“이렇게 먹으면 밥이 잘 넘어가요.”“이 국도 먹어봐요. 국물이 참 시원해요.”그렇게 시연은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거의 떠먹여 주듯 유건의 입에 음식을 넣었다.유건의 평소 식사량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지금 이 사람에게 억지로 먹이려 했다간, 더 아플 수도 있겠지.’시연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저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놨다.“이제 됐어.”유건이 고개를 저었다.“그럼... 인제 그만 먹어요.”시연이 다시 유건을 바라봤다.붉게 충혈된 눈가, 하루 만에 자란 수염, 그리고 어딘가 멍한 표정.단 하룻밤 만에 유건은 몇 살은 늙은 사람처럼 보였다.“이모님이 목욕물 받아 놓으셨어요. 좀 씻고 푹 쉬어요.”“응... 알겠어.”유건은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이끌리듯, 그저 시연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가요.”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팔을 살짝 붙잡은 후, 함께 계단을 올라가서 방까지 데려다주었다....“사모님.”왕성애가 더는 참지 못하고 시연의 손을 붙잡았다. 붉어진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사모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니었으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못 했을 거예요.”“무슨 말씀이세요.”시연이 부드럽게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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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4화

시연이 본가에서 머무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하아...”뒤에서 한숨이 들렸다.왕성애였다.그녀는 수건을 들고 와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사모님, 수건 다 준비됐어요.”그러다 옷장을 본 순간, 왕성애의 발걸음이 멈췄다.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이 방은 하나도 안 변했네요.”손끝으로 옷걸이에 걸린 옷자락을 쓸며 작게 이어 말했다.“사모님 물건은 늘 이렇게 걸려 있었어요. 처음 몇 년 동안은, 도련님이 ‘사모님’이란 말도 듣기 싫어하셨죠.”“그 뒤로는 집을 나가시고, 저희도 감히 손 못 댔어요. 그냥... 그대로 두었어요.”왕성애는 옷장 안의 옷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말했다.“세월이 지나도 옷은 낡지 않았네요. 사모님 몸매도 그대로셔서, 다 맞을 거예요.”“정말...”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고집도 참... 여전하네요.”“그렇죠. 고집이죠. 근데 그게 또... 도련님이잖아요.”왕성애가 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도련님은요, 겉으론 뭐든 다 해내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너무 외로운 분이에요. 어릴 때부터 늘 혼자였고, 가장 바랐던 게 ‘가족’이었어요.”그리고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안 되지만...”왕성애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도련님은 이제... 친척도 아무도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지켜봤지만, 정말 착한 분이에요. 사모님, 혹시... 도련님이랑 다시 잘 지낼 수는 없을까요?”“이모님...”시연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조용히 말했다.“지금은... 그냥, 유건 씨 곁에 있을게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왕성애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요... 그것만으로도 고맙죠. 없는 것보단 훨씬 낫죠.”...시연은 손님방으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수건으로 머리를 닦던 중,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은범이었다.[시연, 이제 쉬는 거야?]은범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 하루 종일 연락 한 번 못 했다.며칠째 정신없이 바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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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5화

유건의 그 말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그는 이미 시연이 방금 누구와 통화했는지 알고 있었다.시연은 두 손으로 잔을 감싸 쥐고, 작게 숨을 내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나...”유건이 잔을 들고 시연을 바라봤다.“여기 있어도 돼? 너한테... 불편함이나, 문제 생기지 않을까?”그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지금 시연이 꼭 곁에 있어 줬으면 하는 마음과,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아니에요.”시연이 고개를 저었다. 손끝으로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은범한테 말했어요. 당분간은... 여기 있을 거라고요.”“노은범이... 뭐라고 안 해?”유건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네.”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은범은 겉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그래도...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지금 해야 할 건, 슬픔을 다독이는 일이지.’시연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그 얘긴... 인제 그만해요.”그녀가 조용히 말을 돌렸다.시연은 자리에서 몸을 조금 기울여, 유건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붉게 충혈된 눈, 그리고 눈 밑에 드리운 짙은 그늘.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이제 그만 자요. 차 다 마셨으면, 푹 자야 해요.”“응.”유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물었다.“그럼... 내가 눈 떴을 때, 네가... 여전히 있을까?”남자의 목소리엔 불안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엔 작은 기대도 함께 묻어 있었다.시연의 가슴이 순간 조여왔다.‘이 사람... 아직도 이렇게 아이 같네.’“그건 유건 씨가 얼마나 자느냐에 달렸죠.”시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일 아침엔 병원에 좀 들러야 해요. 그래서... 아마 일어났을 때는 내가 없을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다면, 다녀와서 봐야 할 거예요.” 그 말엔 분명한 위로가 있었다.‘떠나도, 다시 돌아올게요.’유건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잠시 떠 있던 마음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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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6화

즉, 강석이랑 정빈이 보기엔, 시연은 단순히 ‘의리’ 때문에 그런 거였다.여자의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하다. 강석과 정빈은 시연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오후 두 시가 조금 넘자, 시연은 병원을 나섰다.이틀째 수술만 맡고 있었던 시연은 그 외의 일은 레지던트나 같은 팀 동료들에게 부탁해 두었다.모두가 고상훈의 죽음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서로가 시연을 도왔다.오늘 시연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 택시를 타야 했다.길가에 서서 기다리던 그때, 한 대의 차가 다가와 시연 앞에 멈췄다.“시연.”운전석 창문이 내려가고, 레오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엔 다정함과 함께 조심스러운 눈치가 섞여 있었다.“어디 가? 내가 데려다줄게.”시연은 잠시 망설였다.‘거절해야 하는데... 그래도,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결국, 시연은 조용히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고씨 가문 본가로 가요.”“알지.”레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랑 관련된 건 다 알고 있어.”자기 딸이 고씨 가문 본가에서 그렇게 오래 지냈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그 말을 듣자, 시연은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 안에는 묘하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그... 있잖아요.”잠시 후, 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GP그룹 일, 감사해요.”그게 오늘 시연이 이 차에 탄 이유였다.시연은 알고 있었다. 레오가 유건을 도운 건, 자신의 체면을 봐서라는 걸.고상훈이 임종 직전에도 시연에게 많은 말을 남겼었다.“아, 아냐. 별거 아니야.”레오는 어쩐지 감정이 북받쳤다.딸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이렇게 평온하게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그 뒤로는, 다시 조용해졌다.서로 할 말이 없었다.그저 차창 밖 풍경만이,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시연...”레오는 백미러로 딸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조만간, 나랑... 우리, CA국으로 돌아가야 해.”‘돌아간다고?’시연이 잠깐 멍해졌다. 그래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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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7화

시연이 고씨 가문 본가에 가까워졌을 때, 저 멀리 대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한 광경이 보였다.차가 속도를 늦추자, 레오가 눈치를 살피듯 말했다.“뭐지?”시연은 차창 너머로 초점을 좁혀 사람들을 살폈다. 낯익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고장민 일가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레오는 차를 길가에 붙이고 멈췄다. 시연이 내리자, 인파 속에서 기환이 뛰어나왔다.“기환 씨.”“형수님!”기환이 허리를 굽혀 재빨리 다가왔고, 마치 보호하듯 시연의 팔을 잡아 안으로 이끌었다.시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장민 일가 쪽을 응시했다.“저 사람들은...?”기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 망설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 사람들, 형님의 가족이긴 한데... 가족이라고 보긴 어려워요.”‘무슨 소리지?’말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말투에 담긴 기운은 좋지 않았다.사람들이 다시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형수님, 빨리 들어가세요!”“알았어요.”문득 고장민이 소리쳤다. 목소리엔 분노가 묻어 있었다.“너희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어? 당장 유건이 불러! 우리 아버지의 마지막을 볼 수 있는지 꼭 물어야겠으니까!” 그 한마디에 시연의 심장이 단단히 움츠러들었다.‘지금 저 사람이 말하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시연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고장민은 보이지 않았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승하였다.마치 우연인 듯 승하도 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 승하는 눈가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웃음인지, 인사인지는 알 수 없었다.‘나를 본 적이 있는 걸까?’심장이 갑자기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해서, 시연은 급히 시선을 떼어 버렸다.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숨은 잠깐 가빠졌다.레오는 딸의 뒤로 물러서는 시연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시연이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레오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든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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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8화

“뭐?”유건이 눈썹을 찌푸렸다.“무슨 일 있었어?”“그건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민환이 고개를 저었다.“저희가 갔을 땐 이미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로 지한 형님이랑 이 집사님께 확인해 봤는데요, 고장민 일가는 G시를 떠나서 CA국으로 돌아간 게 맞습니다.”‘지금 시점에 CA국으로? 말도 안 돼.’고장민 일가가 이렇게 중요한 때에 발을 빼다니, 아무래도 CA국 쪽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오히려 잘됐네.”유건이 짧게 말했다.‘적어도 장례식에 나타나서 소란 피우는 일은 없겠지.’“둘 다 들어가서 쉬어.”“네, 형님.”민환과 기환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차마 말은 안 했지만...‘형님, 형님도 좀 쉬셔야 합니다. 지금 꼴이 너무...’그 말은 꾹 삼켰다.유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그런데 문 앞에서 시연이 기다리고 있었다.두 손으로 무언가 든 상자를 안고 있었다.“조이는 자?”유건이 물었다.“네.”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유건을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내일 할아버지 보내드리러 가야 하잖아요. 좀 정리해야죠.”그녀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가 지금 유건 씨 모습 보면, 아마 못 알아보실 거예요.”유건은 멍하니 서 있다가,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그렇게 심해?”‘네, 심해요.’시연은 속으로 대답했다.면도도 안 한 얼굴엔 수염이 덮여 있었고, 볼은 파였으며, 원래 크던 눈은 더 깊이 들어가 있었다.피로가 아니라, 고통이 그대로 얼굴에 새겨진 사람 같았다.“머리도 좀 감고, 수염도 밀고요. 머리도 살짝 다듬으세요. 그래야 좀 사람 같죠.”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응.”머리 감고 면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한밤중에 머리를 자르는 건 좀 난감한 일이었다. 그때 시연이 품에 든 상자를 살짝 들어 보였다.“내가 해줄게요.”“뭐?”유건이 놀란 눈으로 상자를 바라봤다.“그 안에 그게 들어 있었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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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9화

유건에게 만약 이 말을 직접 하라면, 그는 아마 끝내 입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그래서 다행이었다. 시연이 먼저, 아무 말 없이 곁에 남아 주어서.시연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말이 없었다.‘이러면 안 되는데... 또 마음이 약해지잖아.’조심스레 손을 들어, 방금 깎은 유건의 짧은 머리 위로 살짝 올렸다.따뜻한 손끝이 닿자, 유건의 숨결이 미세하게 떨렸다.“고맙다는 말, 안 해도 돼요. 정말로요.”“응...”유건은 눈을 감았다.그 짧은 순간의 고요가, 마치 세상 전부인 듯 달콤했다.‘나도 알아. 이건 오래갈 수 없는 꿈 같은 거라는 걸.’...몇 시간 후.하늘이 아직 희끄무레한 새벽, 유건과 시연은 출발 준비를 했다.조이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유건은 아이를 살짝 안아 옷을 입히고, 품에 꼭 안은 채 차로 옮겼다.그 와중에도 조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차 안에 태운 뒤, 유건은 조이의 몸 위로 담요를 덮었다.그 손길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시연은 잠시 숨을 멈췄다.‘피란... 참 이상한 거네요. 정말 신기할 만큼 닮았어요.’...장례식장.오늘 하루는 유건과 시연이 교대로 상을 지켜야 했다.조용한 장례식장 안,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가족석 맨 앞엔 유건이, 그리고 시연과 조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비록 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지만, 고상훈은 생전에 사람들 앞에서 직접 말했었다.“시연이는 내 친손녀다.”그 한마디로, 시연은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떳떳했다.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었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얼굴이 나타났다.레오였다.부명주와 케빈까지 함께였다.세 사람은 조용히 절을 하고, 향을 올렸다.그리고 유건과 시연 쪽으로 다가왔다.“조이.”케빈이 곧장 다가와, 조이의 손을 살짝 잡았다.“우리 잠깐 밖에서 놀까?”“엄마...”조이는 시연을 바라보았다.“응, 다녀와.”시연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자, 조이는 조심스레 일어나 케빈의 손을 잡고 나갔다....밖으로 나와 공원 한쪽 벤치에 앉자, 케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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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0화

“시연아.”부명주의 눈가는 끝내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녀는 가방 속을 더듬더니, 봉투 하나를 꺼내 시연에게 내밀었다.“여기... 우리 CA국 D시에 있는 주소야. 연락처도 들어 있어.”목소리가 떨렸다.“혹시라도... 혹시 네가 필요할 때가 있으면, 아니면... D시에 오게 되면... 꼭 찾아와 줘.”말을 이어가려던 부명주의 목이 끝내 메였다. 숨을 몰아쉬며 겨우 덧붙였다.“우린... 네가 우리를 미워해도 괜찮아. 고맙다거나, 용서해 달라는 말도 바라지 않아. 그냥... 그냥...”부명주의 어깨가 흔들렸다.그 모습을 보고 있던 레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냥 부모로서, 우리 애한테 뭘 좀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결국은 우리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거지.”레오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그러니까 너는, 우릴 용서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네 아버지한테 미안해할 필요도 없어.”그 ‘아버지’는 지동성을 뜻했다.부명주는 눈물을 훔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 말이 내가 하고 싶던 말이야...”‘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시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시울이 뜨겁게 차올라 고개를 돌렸고, 흐르는 눈물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시연아...”부명주는 딸의 얼굴을 한순간도 떼지 못하고 바라봤다.눈으로, 마음으로 기억하려는 듯이.“이제... 우린 가볼게.”그녀는 참으려던 감정을 결국 억누르지 못하고, 시연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기억해. 넌 혼자가 아니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뒤엔 앤더슨 가문이 있어. 지금은 레오가, 앞으로는 케빈이... 언제나 너랑 우주의 편이 되어줄 거야.”‘그 말, 하지 말아요... 제발...’시연은 목이 메었다.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천천히 손을 빼냈다.“전... 아마 배웅은 못 해 드릴 것 같아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부디... 평안히 가세요.”부명주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레오가 부명주의 어깨를 감싸며 낮게 말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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