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Bab 971 - Bab 980

1089 Bab

제971화

“걱정 마세요. 여기서는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그러니 따님 먼저 데리고 돌아가 주세요.”윤청하는 뭔가 더 말하려다 김서영을 한번 바라보더니 결국 아무 말 없이 하려던 말을 삼켰다.그리고 성유정의 팔을 잡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했다.“안 돼... 안 돼요! 가지 말라고.”그제야 성유리는 겨우 목소리를 되찾았고 몸을 버둥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쫓아가려 했다.하지만 윤청하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몸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이러다간 정말 죽어!”“쟤가 절 밀었어요. 절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렸다고요.”성유리는 손을 뿌리치고 이성을 잃은 듯 윤청하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왜 안 잡아? 왜 안 잡냐고. 성유정... 쟤가 내 아이를 죽였는데 왜 아무도 안 잡아!”“왜 다들 성유정 편만 드는 거야?”성유리는 알고 있었다.그들 마음속에서 자신은 언제나 성유정보다 못하다는걸.성유정은 말도 잘하고 사람 마음도 사로잡을 줄 알고 무엇보다 그녀보다 훨씬 더 깨끗해 보이니까.성씨 가문 사람들과 김서영, 그리고 박한빈조차도 그랬다.그러나 성유리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단 한 번도 성유정의 자리를 뺏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하지만 아이만은 달랐다.아이는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왜 애까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했을까?도대체 왜 세상에 태어날 기회조차 빼앗겨야 했을까?그때, 김서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네가 말한 CCTV, 내가 확인해 보라고 했어.”성유리가 윤청하의 옷깃을 꼭 쥔 채 흥분해 있을 때 김서영은 차분하게 말했다.“그렇지만 당시 네트워크 점검 중이라 영상이 찍히지 않았어.”“그러니까 유리야, 그건... 그냥 사고였어.”김서영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성유리의 얼굴에 떠오르던 모든 표정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옷깃을 움켜쥐고 있던 손도 힘없이 천천히 내려왔다.그리고 성유리는 마치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 툭 하고 침대에 쓰러졌다.‘사고?’그러니까 자신의 뱃속에서 함께 숨 쉬며 네 달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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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2화

박한빈은 경매가 끝난 뒤에서야 성유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았다.소식을 들은 즉시 박한빈는 항공편을 바꿔 급히 금성으로 돌아왔다.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병원 복도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지만 주변은 고요했다.오직 박한빈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함 속에서 뚜렷하게 울렸다.그러다 그는 성유리를 보았다.성유리는 병상에 앉아 있었다.곁에는 이미 깊이 잠든 간병인이 있었는데 정작 그녀는 침대에 앉은 채,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박한빈은 성유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달빛 아래 그는 아주 또렷이 볼 수 있었다.성유리의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그건 박한빈이 처음으로 보는 성유리의 눈물이었다.성유리는 그의 앞에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감정 기복이란 게 없는 줄로만 알았다.그러나 바로 지금, 제대로 깨달았다.성유리도 다른 여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그녀도 슬퍼할 줄 알고 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다만 지금껏 박한빈이 몰랐던 건 성유리가 그를 충분히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금 성유리는 울고 있으면서도 입으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그저 덜덜 떨리는 어깨만이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박한빈은 처음엔 당장 달려 들어가 성유리를 꽉 안아주고 싶었다.하지만 이내 생각했다.지금 이 순간, 성유리가 과연 자신을 보고 싶어 할까?자기 앞에서조차 감정을 드러내길 꺼렸던 사람이다.그런 성유리가 과연 박한빈이 자신의 눈물을 보는 걸 원할까?그래서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가 결국 돌아섰다.집으로도 가지 않았다.그저 기사에게 회사로 가자고 했다.박한빈의 휴대폰엔 비서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경매에서 낙찰된 목걸이가 검수를 마쳤다는 내용이었다.그리고 성유리의 배송 주소를 입력할지 묻는 질문도 함께였지만 박한빈은 아무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그저 휴대폰을 옆에 툭 던지고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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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3화

“그렇지? 어제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아이가 없어졌다는 소식 듣자마자 바로 다 흩어지더니 오늘은 누구도 찾아오지 않네.”“모두 다 자식 덕분에 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하잖아. 농담인 줄 알았어? 아이만 있으면 최소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아이도 없으니 정말... 아무런 희망도 없지. 이렇게 살 이유가 있을까?”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다 등 뒤에서 문득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급하게 뒤를 돌아본 그들이 본 사람은 박한빈이었다.여자들은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박한빈을 보고는 더 이상 말도 못 했다.“꺼져.”박한빈은 이를 꽉 깨문 채 꺼지라는 두 글자만 내뱉었는데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겁먹은 채 서둘러 도망갔다.잠시 후, 박한빈은 문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발을 내디뎠다.성유리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본래 야위었던 얼굴이 하루 만에 풍선이 바람 빠진 것처럼 변해 있었다.눈가와 볼이 움푹 패였고 얼굴은 마치 물에 불린 듯 창백했다.성유리의 뺨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고 두 손은 침대 시트를 꽉 잡고 있었다.마치 꿈속에서조차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박한빈은 잠시 성유리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에 닿자 성유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그들의 시선이 마주치자 박한빈은 이 순간이 어색하고 어눌하게 느껴졌다.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나 성유리가 곧 박한빈에게 선택을 내려줬다.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침대 시트를 움켜잡고 뒤로 물러났다!경계심 가득한 눈빛은 마치 박한빈이 성유리의 적처럼 보이게 했다.박한빈은 입술을 단단히 다물었다.그때 성유리는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돌아오셨어요?”박한빈은 잠시 성유리를 바라보다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응.”“아이가... 없어졌어요.”성유리는 다시 말했다.목소리는 쉰 듯했지만 차분하게 들렸다.그녀가 이 말을 할 때 입가에 옅은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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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4화

며칠째, 지화 그룹엔 어둡고 무거운 기운이 가득했다. 특히 대표 사무실은 더더욱 얼어붙은 분위기였다.누구든 그 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사소한 실수조차 곧바로 확대되어 큰 질책으로 돌아왔다.서훈은 박한빈의 비서실장이었기에 제일 먼저 그 타깃이 되었다.경매장에서 물건이 낙찰되어 돌아왔을 때, 그는 이번엔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사무실 문 앞에 잠시 멈춰 선 서훈은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시죠.”박한빈의 목소리는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차가운 톤이었다.하지만 서훈은 그런 그가 가장 무서울 때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쯤 되면 더는 물러날 곳도 없었다.서훈은 머뭇거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대표님, 지난번 경매에서 구입하신 목걸이입니다. 어떻게 처리하실지... 확인 부탁드립니다.”그는 조심스럽게 목걸이 상자를 박한빈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지만 박한빈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서훈은 눈치챘다.이건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선물이란 걸.결혼 1주년을 앞두고 마련한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모든 건 물거품이 돼버렸다.서훈은 다시 입을 열려다 멈췄다.그때, 사무실 밖에서 누군가가 말했다.“대표님, 성씨 성을 가진 아가씨가 오셨습니다.”그 말에 박한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는 즉시 손을 뻗어 보석 상자를 움켜쥐었다.그러나 숨기기도 전에 성유정이 모습을 드러냈다.‘아, 성유리가 아니라 성유정이었구나.’성유정을 본 박한빈의 얼굴에서 곧바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그러나 성유정은 그의 눈 속에 스친 실망감을 눈치채지 못한 채 빠르게 다가왔다.“형부.”박한빈은 대답하지 않고 서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다.서훈은 곧장 상황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사무실을 나섰다.문을 닫으며 서훈은 성유정을 힐끗 바라보았다.순간, 성유리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녀가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서훈은 성유리를 본 적이 있었다.그때 성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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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5화

하지만 돌아서기도 전에 성유정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몸을 돌려 박한빈을 바라보았다.“한빈 오빠, 혹시... 언니한테 사고가 생긴 게 저랑 관련 있다고 생각하세요?”그녀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고 단호했다.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성유정을 바라보았다.한참을 말없이 응시하던 그가 조용히 물었다.“그래서? 정말 관계가 있어?”그날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절묘한 ‘우연’이었다.그날따라 CCTV가 고장이 났는데 그 시간대 위층에는 성유정과 성유리밖에 없었다.무엇보다도 그때 박한빈은 집에 없었고 김서영 역시 부재중이었다.만약 무언가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김난희거나 윤청하일 것이다.하지만 박한빈은 알고 있었다.설령 그들이 뭔가를 알고 있더라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걸.성유리와 성유정 사이에서 그들은 분명 후자를 택할 테니까.그리고 박한빈이 가장 불쾌했던 건, 성유리가 그 일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유산 이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점부터 퇴원하기까지.성유리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녀가 자신을 믿지 않아서였을까?아니면 이 모든 게 단지 박한빈의 의심과 추측일 뿐인 걸까?정말로 성유정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한빈 오빠, 왜 저를 그렇게 봐요?”성유정은 떨리는 목소리 물었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어떻게 그런 의심을 할 수 있어요? 성유리는 제 언니예요. 혈연은 아니지만 제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에요. 제가 어떻게 언니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게다가 오빠가 저 잘 아시잖아요. 저는 조그만 동물도 해치지 못해요. 그런 제가... 언니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아요.”성유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뜨렸다.그녀의 흐느낌은 박한빈의 얼굴을 더 잔뜩 찌푸리게 만들었다.그러자 박한빈는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지고 짜증이 밀려들었다.결국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냥 물어본 거야. 아니면 그걸로 된 거지.”성유정은 박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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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6화

그들이 그토록 찾던 성유리는 근처 공원에서 발견됐다.박한빈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미끄럼틀 앞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박한빈은 갑자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누가 목을 막아 놓은 듯 숨이 답답했고 가슴은 먹먹했다.내려둔 손은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손바닥에 통증이 느껴진 뒤에야 성유리에게 다가갔다.“여기서 뭐 해?”박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미 가을의 끝자락이었다.해도 져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 차가웠다. 그런데도 성유리는 외투 한 장 걸치지 않은 채였다.모자도 없이 늘어뜨린 긴 머리는 아무렇게나 흩날리고 있었다.박한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 없이 아이들만 바라봤다.눈도 깜빡이지 않고 마치 자신이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박한빈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 성유리의 어깨에 덮어주었다.그리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는데 성유리는 가고 싶지 않은 듯 손을 뿌리쳤다.그렇지만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곧 체념한 듯 박한빈의 손에 이끌려 걷기 시작했다.공원은 집에서 멀지 않았지만 박한빈의 걸음이 워낙 빨라 성유리는 계속 휘청거렸다.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손목이 붉게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그런데도 아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그래서 내내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사모님, 이제야 오셨네요. 아까 대표님께서...”도우미는 안도한 듯 말을 꺼내려다, 박한빈의 눈빛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떠났다.성유리는 도우미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뒀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박한빈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어깨에 걸쳐진 외투를 벗어 조용히 내려두고 고개를 숙인 채 계단을 올라가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박한빈이 성유리를 불렀다.성유리는 발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박한빈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그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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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7화

그럼에도 박한빈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고 그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선물 상자를 꺼내며 조용히 말했다.“이거 너 줄게.”성유리는 그 말에 발걸음을 멈췄는데 시선은 상자 위에 오래 머물렀다.그녀는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박한빈에게 물었다.“이것도 성유정이랑 뭐 사러 갔다가 받은 사은품인가요?”박한빈의 눈에 자신은 그런 ‘사은품’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그렇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성유정에게 뭘 주고 싶으면 그냥 주면 되는 걸 텐데 말이다.어차피 지금까지 성유리가 가진 것보다 성유정이 더 많은 걸 가졌었다.성유리는 한 번도 그걸 두고 경쟁하려 한 적도 없었으니 굳이 그런 ‘공평한 척’ 연극은 안 해도 된다.하지만 입 끝까지 올라온 날 선 말들은 결국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럴 가치조차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예전에도 그랬다.사람들 앞에서 목이 터져라 성유정이 범인이라고 소리쳤을 때 돌아온 건 성유정에게 사과하라는 말뿐이었다.그건 단지 ‘사고’였을 뿐이라고.김난희도, 윤청하도 그랬다.그리고 박한빈도 당연히 다르지 않았다.그래서 지금 성유리는 테이블 위의 상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저 조용히 말했다.“필요 없어요.”가볍게 던진 다섯 글자였지만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그러나 성유리는 그가 뭐라 말하든 기다리지 않았고 뒤돌아서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갔다.홀로 남겨진 박한빈은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하지만 곧 허탈함을 느껴 미친 듯 웃음이 흘러나왔다.‘그래...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애초에 이건 사업적인 결혼이었다.시작부터가 그저 어른들의 농담 같은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거였다.감정이 전혀 없어도 결혼은 가능한 거니까.그러니 선물이나 사랑 같은 감정은 결국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도대체 뭘 바라고 먼 길을 돌아 경매까지 가서 저런 목걸이를 사 왔던 걸까?결국 성유리는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박한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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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8화

박한빈의 표정은 점점 더 험악해졌다.그는 힘을 잔뜩 실은 채 성유리의 어깨를 움켜쥐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아픔에 찡그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그러자 박한빈은 성유리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마치 대답을 강요하듯, 눈빛도 매섭게 바뀌었다.그 행동에 성유리는 결국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박한빈 씨, 저희 그냥...”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이 갑자기 몸을 숙여 성유리의 입술을 덮쳤다.박한빈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빠르고 단호했기에 성유리는 놀람과 함께 하려던 말을 그대로 삼켜야 했다.살짝 열린 입술 틈 사이로 그는 거칠게 혀를 밀어 넣었다.강압적이고 무자비한 키스였다.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에 성유리는 박한빈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밀쳐내려 했지만 그는 곧 그녀의 두 손목을 붙잡아 제압했다.결국 박한빈의 손아귀 안에서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다른 손은 그녀의 허리선을 따라 아래로 미끄러졌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웠던 성유리의 피부가 어느새 뜨겁게 달아올랐다.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지만 이런 본능적인 반응이 더욱 불쾌했다.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는 이런 걸 감당할 여유도 없었고 마음도 없었다.그래서 성유리는 더 거세게 버둥거렸지만 박한빈은 그저 무시로 일관했다.결국 그녀는 침대에 내동댕이쳐졌다.수건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고 곧이어 조명을 끄는 소리까지 들렸다.박한빈의 생각은 단순했다.‘애가 필요하다면 그냥 다시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처음엔 저항하던 성유리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걸 느끼자 힘을 풀었다.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다.눈물은 금세 차올랐지만 끝내 흐르지는 않았다.그 모습을 박한빈은 금세 알아챘다.마치 짐승같이 ‘먹잇감’을 노리던 그는 잠시 멈칫했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성유리의 뺨에 입을 맞췄다.작고 부드러운 키스 한 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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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9화

성유리는 정말 그런 극단적인 일을 할 수는 없었다.그리고 그녀가 박한빈의 몸에 남긴 자국은 곧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다음 날은 마침 박씨 가문의 가족 식사 자리였다. 그녀가 유산 이후 처음으로 참석하는 식사 자리이기도 했다.김난희는 원래 성유리에게 어느 정도 연민을 가지고 있었지만 박한빈의 턱과 입술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흔적을 보자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이런 것들이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김난희 또한 다 겪어본 사람이었으니까.박한빈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지만 김난희는 상상할 수 있었다.그 얼굴로 오늘 회사를 간다면 주위 사람들이 어떤 시선과 말들을 쏟아낼지.그래서 김난희는 밥맛이 뚝 떨어졌다.박한빈이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운 틈에 그녀는 젓가락을 탁 놓으며 말했다.“성유리, 너 잠깐 따라와!”그 얼굴엔 분노가 가득 서려 있었다.김서영은 무슨 일인지 대강 짐작이 되어 말리려 했지만 김난희는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내가 아직 이렇게 살아 있는데 이 집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네가 나한테 가르쳐줘야겠니?”“전... 그런 뜻이 아니에요,”김서영이 조심스레 대답했다.그러나 김난희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어르신인 김난희가 벌떡 일어서자 성유리도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방문이 닫히는 순간, 김난희는 꾹 참았던 화를 쏟아냈다.“너 양심도 없니? 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오늘 투자자들 앞에서 회의도 있었단 말이야! 그 얼굴로 회의에 나가게 만들어? 사람들 눈엔 그게 어떻게 비칠 줄 알아?”성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그때 결혼 반대한 거 기억나? 시골에서 자란 애 하나 데려와서 결국 이 모양 이 꼴이잖아! 속은 참으로 천박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너한테 참았는지 알아? 다른 집 며느리들은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남편을 도우려고 애쓰는데 넌 집에만 처박혀서 뭐 하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 앞에 나서도 웃는 꼴을 본 적이 없어! 정말 우리 박씨 가문의 며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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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0화

성유리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방 안에는 따뜻한 난방이 켜져 있었는데 옆에 누워있는 사람은 아직 깊이 잠든 상태였다.그의 손이 살짝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었고 얼굴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성유리는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치우고 침대에서 일어났다.성유리의 동작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박한빈은 며칠간 연속 야근 중이었기에 처음엔 그녀가 자리를 비운 걸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습관적으로 몸을 돌려 성유리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사실을 인지한 박한빈은 순식간에 잠에서 깨버렸다.이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저택 안은 고요했고 바깥세상은 조금씩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하지만 박한빈은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곧장 침대에서 뛰쳐나왔다.처음엔 성유리가 화장실에 간 줄 알았다.그러나 방을 한 바퀴 돌고, 화장실에도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박한빈은 하늘이의 방까지 가보았다.그렇지만 그 방엔 조용히 잠들어 있는 하늘이밖에 없었다.그 순간,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불안감이 박한빈을 덮쳤다.박한빈은 신발조차 신지 않고 그대로 아래층으로 내달렸다.그리고 이내 거실에 서 있는 성유리를 보았다.거기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었고 정면으론 저택의 정원이 보였다.성유리는 그곳에 조용히 서 있었다.무엇을 보고 있는지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왜 깨어났어?”박한빈은 성유리를 나무라지도 않고 한달음에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러고는 그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성유리는 지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박한빈은 온몸이 굳었고 표정도 즉시 굳어졌다.“무슨 일이야? 왜 울어?”“누가 괴롭혔어?”“어디 아파?”박한빈은 끊임없이 물으며 성유리의 어깨를 붙잡았고 그녀의 몸을 두리번거리며 급하게 확인하고 있었다.성유리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꿈을 좀 꿔서요.”“뭐라고?”“잠 깨고 나니까 다시 잠들기 어려워서 그냥 좀 내려와 봤어요.”성유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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