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Bab 861 - Bab 870

870 Bab

제861화

진정우의 검은 실크 셔츠는 바닷바람 때문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난간에 반쯤 기대선 그는 자유롭고 느긋한 분위기를 풍겼다.“다가갈 준비는 됐어요?”“그 준비는 오래전에 끝냈죠.”조시언은 진정우와는 달랐다. 그는 온몸에서 침착함이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진정우는 안리영이 지금 조시언 집에 있다는 생각에 시험 삼아 물었다.“집사람들한테는 어떻게 말하려고요?”“서두를 필요 없죠.”조시언은 느긋하게 말했다.“리영이 마음이 움직여야 얘기가 되니까요.”“보아하니 오래전부터 판을 짜놓으셨나 보네요.”진정우와 조시언은 예전에 해외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이런 방식으로 다시 얽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아는 사이인 걸 넘어서 절친이라니... 게다가 그들은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였다.“혹시 후회한 적 있어요? 이렇게 늦게 다가가기 시작한 거 말이에요.”진정우는 안리영이 구안석과 사귀었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조시언은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뇨.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그는 알고 있었다. 구안석은 안리영의 첫사랑이었기에 그에 대한 안리영의 환상이 부서져야만 비로소 그녀의 마음도 돌아설 거란 걸 말이다. 그는 그녀를 기다려왔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때였다.“두분이서 무슨 얘기 하세요?”허진호가 과일 접시와 술을 들고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진호 씨한테 여자분을 소개해 주자는 얘기 하고 있었어요.”진정우는 술을 따라 조시언에게 건넸다.“진 대표님 회사는 월급만 주는 게 아니라 애인도 소개해 주나 봐요?”허진호가 농담조로 말했다.“그럼요. 직원들을 잘 캐어해야죠.”진정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시언과 잔을 부딪쳤다.허진호는 멀리서 놀고 있는 나와 안리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진 대표님, 그렇게 말해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필요 없을 것 같아요.”“왜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건가요?”진정우가 웃으며 물었다.그러자 허진호는 조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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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화

“그러면 안 되나요? 아니면 저로는 부족할까요?”허진호는 바로 인정해 버렸지만 나랑 안리영은 그의 말을 그냥 농담으로 넘겼다. 저렇게 너무 당당하면 오히려 진심이 아닐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외로워서 심심했던 건지 허진호는 끝까지 나와 안리영을 따라다니며 원하지도 않은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자 못마땅해진 진정우가 말했다.“여자한테 작업을 걸든 말든 저랑은 상관없지만 제 아내한테는 손대지 마시죠.”“진 대표님, 저한테 밥 사달라, 월급 올려달라, 제발 아내 좀 챙겨달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러기예요?”허진호는 그 말에 아무 망설임도 없이 맞받아쳤다.그러자 진정호가 입을 열었다.“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앞으로도 제 아내랑은 좀 거리 두시고요. 제 역할을 당신이 해버리면 어쩌라는 거예요?”허진호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처음부터 아내한테 잘 보이고 싶다고 말했으면 됐잖아요. 왜 저한테 괜히 시비세요?”“허진호 씨, 이러니까 30년 동안 연애도 못 하죠. 솔로인 건 이유가 있어요.”진정우가 한 마디 던졌지만 허진호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곧 솔로 탈출할 거니까요.”그리고는 안리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맞죠? 안리영 씨?”안리영은 그 말을 장난처럼 받아들이면서 아주 잘 맞춰줬다.“저야 영광이죠.”“진짜예요? 진심이에요?”그 말에 허진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안리영은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진심이에요.”“저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허진호는 아주 과장되게 반응했고 나도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그때 조시언이 다가와 안리영을 자기 뒤로 세우더니 말했다.“전 반대에요.”그러자 허진호는 허리에 손을 얹고 따졌다.“왜 반대인데요?”나도 조시언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여자의 직감은 예리했다.적어도 나는 조시언이 안리영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문제는 안리영이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였다.아마 마음 한켠에서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나이 차이는 별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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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3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어쨌든 제가 없는 동안 저희 아내를 챙겨주느라 고생했으니까요.”말을 마친 그는 내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가자. 허 대표님은 홀로 이별의 아픔이나 느끼라고 그래...”나는 온 힘을 다해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에서 허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애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별이라뇨?”그의 반박에 진정우는 손짓 하나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나를 이끌고 유람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유람선 안에 앉아 있는 안리영과 조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낚시 가는 거 아니었어?”“너 언제 그렇게 눈치가 없어졌어?”진정우는 나를 데리고 유람선 주방으로 향하더니 휴식용 의자에 앉히면서 말했다.“네가 한 번도 안 먹어본 요리 해줄게. 앉아서 잠깐 쉬고 있어.”그는 물을 따라다 주고 몇 모금 먹여주더니 내 이마에 입을 맞춘 후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시작했다.나는 흔들의자에 누워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치 꿈꾸는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아마도 지난 몇 달 동안 진정우가 너무 오랫동안 내 곁에 없어서 그런 듯했다. 마치 내 인생에 그라는 사람이 존재한 적 없었던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진정우가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나는 그가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구안석을 묵묵히 좋아해 온 안리영에 비하면 내가 정말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안리영 생각이 나서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남자의 재킷 하나가 더 걸쳐져 있었다. 그건 조시언이 덮어준 것이었다. 그 옷에는 그의 체온과 조시언 특유의 향이 배어 있었다.사실 안리영은 별로 춥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시언이 얼마나 강단 있는 성격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직접 겪어봤기 때문이다.몇 년간의 해외 생활 속에서 그의 강단 있는 성격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졌다.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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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4화

모두가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월요일이었다.안리영은 산부인과 과장이자 주임으로서 모든 의사들을 이끌고 정기 회진을 해야 했다.하지만 전과 다른 건 오늘은 구안석이 함께라는 것이었다. 그가 연구를 위해 이 병원으로 오게됐으니 말이다. 프로젝트를 잘 이어가려면 임산부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해야 했다.하지만 구안석이 같이 회진을 돈다고 해도 안리영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평소에는 장난스럽고 가끔은 어린아이 같은 구석도 있지만 의사 가운만 입으면 그녀는 180도 달라졌다. 성숙하고 우아해 보일 뿐만 아니라 의술 또한 뛰어났다.“안 선생님, 어제 태아의 심장에 팔로 사징 후유증이 있는 임신부를 받았는데요. 임신 24주이고 산모는 임신성 고혈압이 있습니다.”당직 의사가 상황을 보고하자 안리영이 손을 내밀었고 그 의미를 바로 눈치챈 듯 당직 의사가 임산부의 차트를 건네주었다.안리영은 자료를 넘기며 물었다.“이분 가족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반응은 어땠나요?”“가족들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고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임산부님은 계속 울고 있습니다. 혈압도 계속 높은 상태고요. 가족들은 태어난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까 걱정하지만 이 아이는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아이라 포기하기도 힘들어해요.”이 상황은 단순한 자연 임신과는 달랐다. 시험관 시술은 일반적으로 부부 중 한 명이 생식 기관 관련 문제로 인해 자연 임신이 불가능한 경우에 시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성공률도 낮아서 아이를 갖는다는 건 아주 귀하고 어려운 일이었다.안리영은 차트를 다 보고 나서 구안석에게 넘겨주었다.“심장 초음파 데이터 좀 봐주세요.”구안석은 차트를 살펴보고 말했다.“수치상으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 AI 기반 수술을 통해 태아의 심장을 교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이 임산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라요.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안리영이 단호하게 말했다.“알고 있어요.”구안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충분히 자신 있어요. 지금 중요한 건 가족들과 임산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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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5화

병실 회진을 마친 후, 안리영과 구안석은 함께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임산부와 보호자를 불러서 수술의 위험성과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돌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뒤, 최종 결정을 그들에게 맡겼다.보호자는 바로 동의서에 사인하며 말했다.“저희는 안 선생님과 구 교수님을 믿습니다. 두 분께서 최선을 다해주신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겠습니다.”그의 믿음과 평온한 태도에 안리영은 예전에 비슷한 수술을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은 상황이었지만 보호자의 인식과 반응은 전혀 달랐으니 말이다.하지만 이런 믿음이 깊을수록 의료진의 책임감과 압박은 더 커진다는 걸 다들 모르고 있었다.사소한 사고라도 생기면 그 믿음을 저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구 교수님, 무조건 성공하는 수술은 없다는 거 저도 알아요. 그래도 이번 수술은 잘 부탁드리고 싶어요.”안리영은 형식적이면서도 절실한 목소리로 구안석에게 말했다.“저도 당연히 백 퍼센트 최선을 다할 거고 수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질 겁니다. 대신에 안 선생님의 협조가 필요할 것 같아요.”구안석은 조건을 걸었다.“좋아요. 저도 전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안리영은 의료인의 책임감을 분명히 드러냈다.그날 이후, 안리영은 본래의 업무 외에도 구안석과 함께 밤늦게까지 야근하며 수술 계획을 준비하게 되었다.조시언이 집에 들어온 건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거실 불은 켜져 있었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누워 잠든 안리영이 보였다.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조시언은 그녀의 일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알고 있었다.끝도 없는 수술뿐 아니라 진료과의 잡다한 일들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었으니 말이다.그녀가 이 일을 좋아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진작에 병원장에게 부탁해 더 편한 자리로 옮겨줬을 것이다.조시언은 안리영을 깨우지 않고 그저 맞은편 소파에 조용히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까만 머리칼, 또렷하고 정갈한 이목구비... 그녀가 아름다운 건 사실이었지만 지나치게 요염하지는 않았다. 안리영에게서 새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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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안리영은 일찍 자려고 했지만 자려고 할수록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날이 밝아올 무렵에야 겨우 잠들었고 당연히 늦잠을 잤다.허겁지겁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보니 조시언이 아침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삼촌, 좋은 아침!”그녀는 인사를 툭 던지고는 바로 밖으로 향했다.“네 차 타이어 터졌어.”조시언의 한마디에 안리영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조시언은 고개도 들지 않고 스테이크를 한 조각 한 조각 자르며 말했다.“정비 기사에게 연락은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지금은 못 온다더라.”그 말은 곧 오늘 아침엔 운전을 못 한다는 의미였다.하지만 안리영에게는 오늘 아침 구안석과 함께 구체적인 수술 계획과 수술에 참여할 의료진들을 정해야 하는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지각이라도 하면 곤란했기에 그녀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그럼 택시 불러서 갈게.”안리영은 어려움 앞에서도 곧잘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시언이 또 한마디 덧붙였다.“지금 출근 시간이라 택시 잡기 힘들 거야.”조시언은 고기를 잘라 접시를 맞은편에 놓으며 말했다.“와서 아침 먹어. 내가 데려다줄게.”안리영은 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미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기에 아침까지 먹고 갈 여유는 없었다.하지만 자기가 굶는다고 조시언까지 굶길 순 없다는 생각에 안리영이 말했다.“삼촌, 진짜 급해서 그러는데... 삼촌 차라도 빌려주면 안 돼? 삼촌은 나중에 기사 불부르면 되잖아.”그녀는 조심스레 제안했다.“같이 가자. 마침 나도 너희 병원 쪽으로 갈 일이 있어서 그래.”조시언의 말에 안리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용히 돌아와 식탁에 앉았다.이왕 늦을 거면 차라리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식사하기 전, 안리영은 구안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30분 정도 늦을 거야.]스테이크, 삶은 계란, 따뜻한 우유, 그리고 과일까지... 기름기 적고 당도도 낮은 건강식이었다.이 집으로 이사 온 이후로, 안리영은 마치 영양사가 식단을 짜준 듯한 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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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7화

“좋아요. 그럼 매일 퇴근하고 나서 하면 어때요? 다들 조금만 힘내서 야근해요.”구안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을 전했다.“혹시라도 일정에 문제가 있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제가 따로 조정할게요.”안리영은 이번 수술의 총책임자로서 수술뿐만 아니라 팀 분위기와 구성원들의 컨디션까지 챙겨야 했다. 하지만 다들 고개를 저으며 문제없다는 의사를 밝혔다.“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퇴근하세요. 저랑 안 선생은 조금만 더 이야기하고 마무리할게요.”그렇게 두 사람만 자리에 남았고 그들은 수술 관련 사항에 대한 조율을 끝냈다. 끝냈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오늘 아침에 조시언 씨가 데려다줬던데 차 고장 났어?”오늘 아침 안리영이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지나가던 구안석이 본 것이다.“타이어가 터졌어.”안리영은 오늘 하루 종일 바빠서 차 수리는 묻지도 못한 상태였다.“그럼 내가 데려다줄게.”구안석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그때, 안리영은 문득 어젯밤 조시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 조시언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바빠서 잊었을 수도 있고 어젯밤 한 말도 그냥 흘린 말이었을지 모른다.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는 구안석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괜찮아. 택시 타고 갈게.”“영아.”구안석은 다정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집에 데려다주는 것조차 못 할 정도로 우리 사이가 별로인 거야?”안리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그냥 평범한 동료라면 데려다주는 거야 괜찮지. 하지만 우린 예전에 연인이었잖아. 이제는 너무 가까워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뭘 그렇게까지 조심하는 거야?”구안석은 직설적으로 물었다.“옛 감정이 되살아날까 봐 두려운 게 아니라 네가 우리 사이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착각할까 봐 무서운 거야.”안리영은 담담하고 또 단호하게 말했다.구안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녀의 말 뜻은 분명했다. 다시 시작할 가능성은 절대 없다는 의미였다.“그렇게까지 매정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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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8화

“구안석 씨랑 다시 잘 된 거야?”고요한 차 안에서 조시언은 백미러로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구안석을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아니야.”안리영은 단호하게 부정했다.“이번에 돌아온 것도 너 때문이지?”마침 차가 커브를 돌았고 조시언은 부드럽게 핸들을 돌렸다. 그의 손목엔 회색빛이 도는 손목시계가 반짝이고 있었다.시계 테두리는 차창 밖 가로등 불빛을 받아 잠깐 눈이 부시게 빛났다. 안리영은 그 시계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만약 안리영의 기억이 맞다면, 저 시계는 그녀가 성인이 된 선물로 그에게 사줬던 시계인 듯했다.그때 그녀는 가진 모든 용돈을 탈탈 털어서 시계를 샀었다.하지만 그것도 벌써 십여 년 전 일이었다.‘지금 그의 손목에 있는 건 당연히 새 시계겠지... 그렇게 오래됐는데 이미 고장 났을 거야. 단지 비슷한 디자인일 뿐이거나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워낙 오래전 일이니까.’“응?”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시언은 시선을 돌려 물었다.그제야 안리영은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안석이는 그냥 연구 사업 때문에 온 거야.”조시언은 그녀를 보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안리영은 창밖의 흐릿한 불빛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그 사람이 왜 돌아왔는지는 신경 안 써.”조시언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그가 말을 돌렸다.“졸려?”“아니, 하나도 안 졸려.”안리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아까 대화가 자극이 되었는지 왠지 모르게 오히려 정신이 맑은 것 같았다.“그럼 나랑 어디 좀 들르자. 재밌을 거야.”조시언은 시간을 흘긋 보며 말했다.“자정 전에 집에 데려다줄게, 괜찮지?”“재밌을 거라고?”안리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봤다.“삼촌이 놀 줄도 알아?”“꼬맹아, 날 뭘로 보고...”꼬맹이라고 부르는 조시언의 귀여운 애칭에는 그녀를 아끼는 감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차를 타고 20분쯤 달렸을까, 조시언이 차를 멈췄다.그는 안전벨트를 푸르며 물었다.“마지막으로 캠핑한 게 언제야?”“글쎄... 너무 오래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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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9화

“아무 텐트나 막 들어가진 마. 괜히 사람들 쉬는 거 방해하게 되면 곤란하잖아. 직원 중에 가족이나 연인 데려온 사람도 있을 수 있고...”조시언이 말했다.“삼촌, 직원들한테 관대한데? 가족들을 데려와도 되는 거야?”안리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녀는 설치된 텐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어떤 게 조시언의 텐트인지 알 수 없었다.그래도 조시언이 직접 찾아보라고 했으니 그냥 감으로 찾아보기로 했다.한 텐트 옆에 다가서자 안에서 남녀의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작게 속삭였다.“살살 해. 들키면 어쩌려고...”명색이 산부인과 의사인 안리영이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조시언은 안리영을 따라가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달빛 아래에서 그녀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와도 같았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을 10년 전으로 되돌린 것처럼 느껴졌다.조시언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안리영은 열심히 텐트를 찾고 있었지만 조시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조시언은 사진 찍는 걸 들킨 상황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사진을 찍었다.그러다 안리영은 계란같이 동그란 텐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계란처럼 생긴 집을 갖고 싶어. 그러면 그 안에 들어가 살 수 있잖아. 엄마 잔소리도, 아빠 간섭도 안 받고.”어릴 적, 부모님과 싸운 뒤 가출했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그때 그녀를 찾아낸 건 조시언이었고 그녀는 화가 난 채로 이렇게 말했다.‘그때 삼촌이 뭐라고 했었더라...’“그럼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야. 그러면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을 거거든.”이 말은 그저 당시의 감정에 휩쓸려서 뱉은 말이었고 이후로는 잊고 지냈었다. 하지만 오늘 이 계란 텐트를 보자 문득 이 기억이 떠올랐다. 이 텐트가 바로 조시언의 텐 트라는 걸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아마 날 위해서 준비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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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두 사람의 손이 닿자마자 안리영은 급히 손을 뗐다. 하지만 동작이 너무 세서 뒤로 물러서던 중, 그녀는 텐트 지지대에 걸렸다.크게 넘어져서 다칠 거라 생각했을 때, 조시언이 긴 팔로 안리영의 허리를 감싸안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그녀의 볼이 그의 가슴에 부딪혔다. 쿵쿵 뛰는 조시언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고 그녀의 요동치는 심장 소리도 같이 들려오는 듯했다.안리영은 왠지 모르게 이 분위기에 취할 것만 같았다. 그가 목욕하고 있을 때 마주쳤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민망해진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벗어나지 않았다.“어른이 됐는데도 이렇게 덜렁대다니...”조시언이 꾸짖듯 말하며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러니까 네 엄마가 널 믿지 못하고 꼭 집에 들어가 살라고 한 거네.”안리영을 숨 막히게 했던 민망함은 그의 이 한마디로 사라져 버렸다.그녀는 재빨리 반박했다.“그게 아니고... 삼촌이 만든 텐트가 너무 작아서 그런 거잖아.”민망함을 덜고자 일부러 그를 놀렸다.“그럼 다음엔 칠칠이한테 더 큰 텐트를 준비해줘야겠다...”조시언은 이렇게 말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빨리 자. 난 옆 텐트에 있을게.”‘나랑 같은 텐트에서 잔다는 게 아니었구나!’조시언은 텐트 밖으로 나갔고 안리영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자신을 몇 대 쳐주고 싶을 정도로 민망했다.하지만 누워서 투명한 천장으로 별을 바라보자니 그 정도 민망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아무런 문구도 없었지만 그 사진만으로도 다른 친구들의 망상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리영이 멀이야. 이 사진 어디서 찍은 걸까?”나는 그녀가 찍은 별 사진을 보며 진정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진정우는 말없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내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아들자 그의 휴대폰에도 똑같은 별 사진이 있었다.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도 리영이 SNS 본 거야?”“아니.”진정우가 본 사진은 조시언이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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