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Bab 851 - Bab 860

1047 Bab

제851화

안리영에게 전화가 온 사람은 조시언이었다.조시언은 안리영이 보낸 문자를 본 모양이었다. 안리영은 기다렸단 듯이 얼른 전화를 받았다.“삼촌, 지금 이사하는 거 도와주려고 그래? 근데 지금은 안돼. 나 아직 일하는 중이거든. 아주 중요한 환자 진료 보는 중이라서...”조시언은 안리영이 아무렇게나 떠들어 대는 말의 뜻을 금세 간파하고 안리영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희 엄마가 병원에 찾아간 거야?”“삼촌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삼촌 누님께서 이곳에 있다는 걸 눈치챈 거야? 조 여사님 몸 상태가 말이 아니야. 여기저기 다 불편하시다고 해서 검사 처방 내리니까 이젠 나보고 여태 환자들 뒤통수를 이렇게 쳐왔냐고 욕이나 하고... 아, 핸드폰 뺏지 마...”안리영은 핸드폰을 뺏으려고 다가오는 조민영을 재빨리 피했다.하지만 안리영도 그저 시늉만 했을 뿐 결국 핸드폰은 조민영의 손에 넘어갔다. 조민영은 전화를 받아들며 말했다.“시언아.”“누나, 리영이 그러는데 몸이 안 좋다고요?”조시언의 목소리는 맑고 부드러웠다.조민영은 기침을 한 번 하며 안리영을 흘겨보았다.“난 괜찮아. 그냥 리영이 때문에 열 받아서 그래. 오늘 나랑 같이 집에 안 가겠다고 버티면 나도 안 갈 거야.”“누나, 리영이는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병원 근처에 제 집이 있어서 출퇴근도 편하고요.”조시언의 말에 조민영은 다시 안리영을 바라보았다.‘하여간 속 썩이는 데는 도가 텄다니까, 쓸데없는 거로 실랑이나 벌일 동안 제일 중요한 얘기는 입도 뻥긋 안 했다 이거지?’“리영이가 그러겠대?”조민영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네, 제가 오늘 퇴근하면 이삿짐 같이 옮기기로 했어요. 리영이가 이사 오면 누나랑 매형도 한번 모셔서 같이 식사나 하려던 참이었어요.”조시언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섞어 말을 이어갔다.“밥은 됐어. 리영이가 너희 집에서 지내면 나야 좋지. 네가 옆에서 챙겨줄 수 있고 출퇴근도 편하니까 우리도 시름을 놓을 수 있겠어.”조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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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저녁 무렵, 안리영은 퇴근하다가 간호사들이 한창 왁자지껄한 모습을 보고는 과장으로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무슨 일이예요?”“안 과장님, 밖에 엄청 잘생긴 남성 한 분이 계세요.”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보면 아드레날린이 솟고 여자들은 잘생긴 남자를 보면 도파민이 과다 분비된다는 말이 있다.“아무리 잘생겨도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한테 뺏기는 거 아시죠?”안리영은 농담조로 말했다.안리영은 일할 땐 칼 같은 과장이지만 퇴근하면 여느 또래들처럼 장난도 잘 치고 웃음도 많은 사람이다.무엇보다, 온종일 바쁘게 일했으니 퇴근길에 농담 한두 마디 주고받으면서 기분 전환하는 건 서로에게도 좋은 것이다.“그럼 우리도 한번 나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까?”몇몇 간호사들이 꺄르르 웃으며 병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런 간호사들을 따라 병원 밖으로 시선을 옮긴 안리영도 밖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석양 아래 조시언은 검은색 롱코트에 검은 정장을 입고 안에는 새하얀 셔츠를 받쳐 입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뚜렷한 그의 이목구비는 석양을 받아 더 빛나고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과 혼연일체가 되어 우아하고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안리영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강유형, 진정우 그리고 구안석까지. 모두 빠지는 거 하나 없는 훌륭한 남자들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조시언에게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감각 신경까지 반응하게 만드는 강렬함이 있었다.그제야 안리영도 간호사들이 말하던 그 잘생긴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바로 자신의 삼촌이었다.학창시절에 안리영의 주변 친구들은 너도나도 조시언을 좋아했었다. 친구들은 안리영의 외숙모가 되겠다며 앞다퉈 그녀에게 잘 보이려 했을 정도였다.이해가 안 가지도 않는 게, 조시언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일 만큼 매혹적인 인물이었다.“삼촌!”안리영은 장난스럽게 그를 부르며 다가갔다.“여기서 날 기다리는 건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자기 좀 봐달라는 거 아니야?”안리영이 그 말을 하며 뒤를 돌아보자 간호사들이 눈이 휘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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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내가 이사 안 가면 우리 엄마가 내일은 병원 앞에서 현수막이라도 들고 서 있을 거야.”안리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러니까 얼른 옮겨. 일단 너희 엄마부터 진정시켜야지.”조시언은 이런 일엔 언제나 안리영의 편이었다.학창 시절에 안리영이 숙제를 빼먹거나 대충해서 남아서 보충수업을 할 때마다 조시언은 늘 안리영의 방패막이가 되어줬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이런 관계가 변함이 없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영아.”바로 그때, 구안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구안석은 둘에게 다가와서 조시언에게 간단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안리영에게 말했다.“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안 돼. 오늘은 삼촌이랑 선약이 있어서.”안리영은 최고의 방패를 발견한 듯 바로 조시언을 앞세웠다. 이것 또한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예쁜 안리영의 주위엔 항상 구애자들이 많았다. 누가 고백을 하거나 사랑편지를 전해오면 안리영은 어김없이 조시언을 데리고 나가 방패로 세웠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구안석은 조시언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시언 씨만 괜찮다면 저도 함께해도 될까요?”“안 괜찮은데요.”조시언은 안리영보다 훨씬 단호하게 단칼에 잘랐다. 구안석도 지금은 조급하게 굴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리영이 하고는 다음에 다시 약속을 잡죠.”“선배.”안리영이 구안석을 조용히 불렀다.“업무상 필요한 건 근무 시간에 얘기하고 퇴근 후엔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안리영의 담담하고 차가운 말에 구안석의 안색이 서서히 창백해졌다.“영아, 아무리 우리가... 헤어졌어도 친구로는 남을 수 있잖아?”“남을 수는 있지! 하지만 되도록 친구로도 남지 않는 게 좋겠지.”안리영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헤어진 남녀가 친구라 남는다고 해도 그건 진짜 친구가 아니지. 그리고... 그렇게 애매한 관계로 남아 있으면 나도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기 힘들잖아.”어떤 남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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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안리영은 조시언의 집에 처음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시언이 해외로 떠나기 전에 이미 이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샀었고 그때 결정도 안리영이 해준 것이었다.안리영은 이런 집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좋아했다.그 말에 조시언은 바로 이 집을 계약했고 인테리어도 안리영이 고르게 했다.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다시 서서 본 집은 어딘가 낯설게만 느껴졌다.“방 기억나?”조시언의 낮고 깊은 목소리에 안리영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안리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왼쪽 끝 통유리창 옆의 가장 큰 침실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다름 아닌 집주인의 방이었다. 하지만 예전의 안리영은 그런 걸 따지지도 않았고 경계 의식 같은 건 더욱 없었다.안리영은 당시에 냅다 자기가 저 방을 쓸 거라고 말했고 조시언도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안리영은 그때 자신의 오만함과 무심함을 후회하고 있었다. 때로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수록 선명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서 있는 지금, 안리영은 괜히 민망했다.“기억 안 나면, 나 따라와.”조시언이 안리영의 짐을 들고 그 침실 쪽으로 가려는데 안리영이 그를 불러 세웠다.“삼촌.”조시언은 잔잔한 호수 같은 눈으로 안리영을 바라보았다. 안리영은 침을 한번 삼키며 말했다.“삼촌, 난 손님방에서 지내면 돼.”“우리 집엔 손님방 없어.”조시언의 말에 안리영은 멈칫했다.조시언은 절대 안리영을 달래려는 게 아닌 사실 그대로였다. 조시언은 안리영을 제외한 그 누구도 집에 초대하거나 잠깐 머무르게 할 계획 같은 건 없었다.그래서 수백 평이나 되는 이 공간엔 단 두 개의 방만 있었다. 하나는 안리영의 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시언의 방이었다.안리영은 몰래 숨을 들이켰다.“삼촌, 내가 그 방을 쓰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으니까 다른 방을 쓸게.”“다른 방은 내가 계속 쓰던 방인데 진짜 그 방을 쓰겠다고?”조시언은 그렇게 말하며 안리영의 짐을 내려놨다.“못 믿겠으면 나 따라와.”사실 성인 남자가 쓰는 방을 본다고 해서 달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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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안리영은 정말 한동안 조시언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안리영은 방으로 돌아와 자신이 가져온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했다. 그리고는 샤워실부터 옷장, 개인용품까지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 어떤 것도 빠짐없이 모두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어릴 적 조시언과 함께 외출할 때면 안리영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었다. 조시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서 준비해줬기 때문이다.지금 보니 어쩌면 앞으로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안리영이 정리를 마치고 방에서 나오니 식탁 위에는 이미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죽이고 반찬이고를 막론하고 식탁 위를 가득 채웠다.“삼촌, 이거 혹시 밀키트 같은 건 아니지?”안리영은 믿기 어려웠다. 이 짧은 사이에 이 많은 것들을 뚝딱 만들어냈다는 게 말이 안 됐다.“네가 우리 집에서 먹는 첫 끼인데 대충 만들 리 있겠어. 어서 와서 먹어봐.”조시언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사실 조시언이 이렇게 빨리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안리영을 데리러 가기 전, 미리 죽을 끓여 놓았고 재료도 다 손질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돌아와서는 그저 마무리 조리만 했을 뿐이다.탕수육, 홍고추 죽순 볶음, 풍미 가지요리, 그리고 다양한 냉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안리영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너희 엄마가 그러더라, 요즘 집에서 밥도 잘 안 먹는다고. 내가 만든 건 너희 엄마 음식 맛이랑 비슷한지 한번 먹어봐.”조시언의 말에 안리영은 잠시 멈칫했다.“이거 우리 엄마가 만든 거 아냐?”안리영의 한마디에 조시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나하나 맞장구쳐주니까 점점 양심이 없어지기라도 하는 건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식사를 마친 후 안리영은 뒷정리를 도우려 했지만 조시언이 막아섰다.“이런 건 안 해도 돼. 대신 부족한 물건들 있으면 리스트나 만들어. 이따 가서 사자.”“삼촌이 전부 다 준비해줘서 부족한 게 하나도 없던데.”안리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머뭇거렸다.“정말 고마워, 삼촌.”안리영이 방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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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언니, 여긴 어떻게 온 거야?”이소희는 나를 보자 놀라면서도 약간은 격양된 듯했다.그녀는 짧은 머리에 수감복을 입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텅 빈 눈빛이 아니라 생기가 있었다.나는 이소희가 결국 복수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그 대가로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너 보러 왔지. 뭐, 오면 안 돼?”나는 일부러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안 되지. 여긴 아기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나는 이소희가 내가 임신한 걸 알고 있다는 데 놀랐다.“괜찮아. 우리 아기는 엄마한테 이렇게 용감한 친구가 있다는 걸 기뻐할 거야.”나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나 변호사 선임했어. 최대한 형량 줄일 수 있도록 해볼게.”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여기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다 똑같은 출발선이잖아. 여기서는 누가 잘났고 못났고 구분 안 해. 밖에선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꼭 등급을 매기더라.”이소희가 이렇게까지 담담하게 말할 줄은 몰랐지만 그 말에 나는 오히려 안심되었다.예전의 이소희를 봤을 땐 정말 자포자기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컸었다.“그래도 노력해서 하루빨리 나와야지. 우리 같이 큰일 해야 하잖아. 너는 내게 있어 언제나 최고의 이소희야.”이소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너무 잘 안다.이소희가 밖으로 나오기 싫어하는 건, 자신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희는 내겐 절대 무시당해 마땅한 사람이 아니다.이소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언니가 없었으면 지금의 이소희도 없었을 거야.”“그러니까 꼭 잘 살아야 해. 그리고 하나만 기억해. 나는 언제나 네 언니야.”나는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약속했다.나는 사주 같은 걸 믿지 않지만 혹시 내가 정말 외로운 별이라도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거나 사고를 당했다.하지만 그게 내 운명이라고 해도 나는 운명 따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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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지원 씨는 안 올 줄 알았는데.”조나연이 먼저 그렇게 말을 꺼냈다.“말해봐,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나는 조나연을 천천히 훑어보며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예전의 일들이 대부분 희미하게 떠오르긴 했지만 한 가지만은 아주 또렷했다. 바로 그녀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람이라는 사실 말이다.조나연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는 이미 강유형과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는 진작에 출산했을 것이고 아기는 막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것이다.“지원 씨 최근에 임씨 가문에 갔었지? 그 아이는 봤어?”조나연의 말에 나는 꽤 놀랐다.그 아이는 처음엔 조나연이 이용하던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했다. 후에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출산 후에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도 전혀 찾지 않았다. 그런 조나연이 갑자기 그 아이를 언급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봤어. 아이는 아주 잘 지내.”나는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봤지? 엄마 없이도 애는 잘만 살아.”“책임 안 진 걸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하지 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래? 설마 이제 와서 그 아이한테 엄마라고 나서려는 건 아니지?”나는 비꼬지 않을 수 없었다.조나연은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그렇게 뻔뻔하겠어? 게다가 애도 날 보면 울기만 하겠지.”“오래간만에 맞는 말 하네. 그 애는 나연 씨 없이도 괜찮았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나는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저지른 죄악을 생각하면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된다.“임씨 가문 사정을 고려해봤을 때 아이가 앞으로 잘 자라긴 어려울지도 몰라.”조나연은 고개를 숙인 채 앞에 놓인 책상만 바라보며 말했다.조나연의 말은 사실이었다. 임석진의 부모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임석진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지금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보모를 고용하고 있을 정도로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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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교도소에서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진정우 역시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켰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그는 이미 눈치챈 것 같았다.차를 세운 진정우는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고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힘들면 속으로 삭이지 말고 말해. 그러다 네가 앓아.”“사람 목숨을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짓밟을 수가 있어? 조나연 저 여자는 진짜 죽어 마땅해!”나는 진정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이를 악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조나연은 부와 권력을 얻고 싶다는 욕심에 자기 남편을 죽인 것도 모자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의지하고 믿었던 자매 같은 사람까지 팔아넘겼다.이소희가 말한 그 아이는 조나연이 시킨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능욕당하고 스스로 손목을 그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사실을 이소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그 사람은 반드시 벌 받을 거야. 악한 사람은 결국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돼.”진정우는 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하지만 그렇다 한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마치 나의 부모님처럼 말이다. 비록 나의 부모님을 해친 사람들은 다 처벌받았지만 부모님은 이미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에서 영원히 잠들어버렸다.진정우는 교도소에서 나를 데리고 나와 집으로 가지 않고 요트로 나를 데려갔다.“여긴 왜 온 거야?”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낚시하러.”진정우는 짧게 대답했다.나는 원래라면 지금 낚시할 기분이 아니라고 말했을 테지만 진정우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마주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진정우에게 전가하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나를 위해 이렇게 준비한 마음이 더 소중해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이 요트는 어디서 난 거야?”나는 결국 거절 대신 진정우에게 물었다.“빌렸어.”나는 코웃음을 쳤다.“정우 씨 이제 진씨 가문 도련님 아니지 않나? 이런 요트 하루 빌리려면 적어도 석 달은 일해야 겨우 될까 말까야.”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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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아무런 방해 없이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우리 둘이서만 이 큰 요트 타는 건 좀 낭비 아닌가?”입맞춤이 끝나고 나서 내가 감탄하듯 말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안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올라간다? 위에 뭐 애들 보면 안 되는 거 없지?”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진정우를 노려봤다.“정우 씨...”“이런 멋진 풍경은 당연히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랑 봐야지.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리영 씨밖에 없잖아.”진정우는 정말 내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안리영이 올라왔을 때 진정우는 이미 나를 난간에서 내려준 상태였고 나는 안리영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이리 와, 좀 안아보자.”“어머, 웬일로 이렇게 열정적이래? 정우 씨가 질투하면 어쩌려고?”안리영은 장난을 치면서도 내게 와서 포옹을 해줬다.나는 안리영의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힐끔 보며 안리영의 귀에 속삭였다.“너희 삼촌 요즘 너랑 자주 붙어 다닌다?”“아냐, 그 사람은 정우 씨가 부른 거야. 우리는 그냥 같이 오는 길에 만났을 뿐이야.”안리영은 내 허리를 슬쩍 꼬집었다.“생각 좀 건전하게 해.”나는 전신 중에 허리가 가장 예민한지라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안리영은 그걸 알고 일부러 더 간지럽혔고 결국 우리는 갑판 위에서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천천히 뛰어, 아기 놀랄라.”산부인과 과장답게 안리영은 그래도 끝까지 내 몸 걱정을 잊지 않았다.두 남자는 우리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옆에서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푸른 하늘과 기분 좋은 바닷바람에 내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불쾌감도 어느새 사라졌다.진정우는 정말 나를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아주 웃음꽃 만발이네요, 윤 부장님? 그렇게 신나게 웃으셔도 되는 거예요?”허진호가 마치 억울한 며느리처럼 말하며 등장했다.사실 나는 아직 일을 그만둔 게 아니었다.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직을 안 한 게 아니라 허진호가 승인을 안 줘서 나는 그저 이름만 걸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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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안리영이 내 팔을 아프게 꼬집었다. 조심하라는 경고였다.사실 나도 좀 민망했다. 이런 건 말로 꺼낼 게 아니라 눈치껏 웃고 넘기는 게 맞다. 둘이서 사석에서 장난으로 떠드는 건 괜찮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해버리면 다 같이 난처해진다.설령 안리영과 조시언이 피 한 방울 안 섞였다 해도 그들이 가족 관계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허진호가 뒤늦게 반응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진정우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말했다.“진호 씨더러 얼른 가서 고기 구우래요. 지금 배고프다네요.”“제가 들은 건 그게 아니었는데요? 방금...”허진호는 하필이면 이럴 때 눈치를 밥 말아 먹었다.예전엔 똑똑하더니 지금은 일부러 바보 연기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앞으로 우리 리영이한테 너무 들이대지 말아 주세요.”드디어 당사자인 조시언이 입을 열었다.똑 부러지는 이목구비에 표정 하나 안 흐트러진 얼굴에서는 그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물며 말투까지도 담백했다. 조시언의 그 모습은 마치 자식 지키는 아빠 같았다.그런 그를 보니 괜히 내가 그런 상상을 한 게 죄스러워질 정도였다.하지만 나는 조시언의 마음이 단순한 가족애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다만 조시언은 그렇지 않은 척할 뿐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 솔직하고 당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조시언은 대놓고 안리영을 싸고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게 너무 선명할지언정 조시언은 굳이 해명하지도, 주눅이 들지도 않는다.새삼 조시언의 독점욕이 얼마나 강한지, 이 관계를 반드시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분명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나는 괜히 안리영을 흘끗 봤다. 안리영은 못마땅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다가 내 팔을 끌어당겨 갑판 한쪽에 앉혔다.“또 헛소리하면 너랑 절교야.”바닷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흩날렸다. 나는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리영아, 시언 씨는 널 좋아해. 게다가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는 진심이야.”“또 시작이네.”안리영은 언제나처럼 현실적인 척, 회피하는 말투였다. 안리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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