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수는 진태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네가 끝까지 밀어붙였어야지.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두 어르신이 말싸움을 시작했다. 진정우는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샤워실 쪽을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나왔다.진정우가 손을 뻗어 아이를 안았다.두 어르신이 가까이 다가가 보려고 한 순간, 진정우가 두 사람을 막았다.“늙은이 눈에는 독이 있대요. 그래서 아이를 지켜보면 안 된대요.”“...”“...”말을 마친 진정우는 아이를 안고 자리를 떴다. 두 어르신은 아이를 더 보고 싶었지만 진정우가 기회도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축하해요.”옆에 있던 조시언이 아이를 안고 있는 진정우를 보면서 축하해주었다.“딸이에요, 봐요.”진정우가 자랑하듯 얘기했다.조시언은 고개 숙여 진정우 품속의 아이를 쳐다보았다.두 볼을 핑크빛으로 물들었고 피부는 매끈하고 말랑했다. 그 와중에 눈은 쌍커풀이었다.잠에 든 아이의 눈꺼풀이 약간씩 떨리는데, 마치 인형 같았다.“조시언 씨도 얼른 낳아야죠. 딸이 얼마나 예쁜데요.”진정우가 아이를 안고 가면서 얘기했다.산모실로 돌아오자 안리영이 진정우를 보면서 물었다.“갑자기 아이는 왜 안고 온 거예요. 간호사가 있는데. 진정우 씨는 일단 아내를 챙겨야죠.”“둘 다 하면 되죠. 그 간호사는 영 안 미더워서.”나는 출산의 고통을 겪은 후 온몸에 힘이 빠졌다. 진정우는 아이를 안아 내 베개 옆에 내려놓고 얘기했다.“여보, 우리 딸 정말 여보를 쏙 빼닮아서 엄청 예뻐.”두 어르신이 말하던 것처럼, 아이는 진정우를 닮은 곳도 있었고 나를 닮은 곳도 있었다.“여보, 고마워.”진정우는 내 얼굴에 가볍게 키스했다.나는 천천히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다.“정우 씨, 우리 아이가 태어났어... 앞으로는 우리가 아빠, 엄마인 거야.”나는 아이를 감싼 보자기에 가볍게 뽀뽀하면서 얘기했다.“응, 난 아이가 두 명이 되는 거지. 큰 아기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우는지 잘 몰랐다. 마치 속에 가득 쌓아두었던 억울함이 터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예쁜 공주님이고, 3200그램이야. 엄마한테 뽀뽀부터 해.”안리영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내 얼굴에 가볍게 뽀뽀시켰다. 그 순간 나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왜 갑자기 우는 거야.”안리영이 장난스레 얘기하면서 아이를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샤워를 하러 갔고 안리영은 내 몸을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리영 씨, 지원이 좀 잘 봐주세요.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진정우는 이 순간 나를 떠나려고 했다.물론 진정우가 여기 있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떠난다니 조금 서운했다.“딸이 생겼다고 아내는 버리는 거예요?”안리영이 입술을 비죽이고 얘기하자 진정우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나한테 키스한 후 얘기했다.“곧 돌아올게.”“먹을 것 좀 갖고 와요.”안리영이 얘기했다.진정우는 산모실에서 나와 간호사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한 두 사람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아이를 둘러싸고 얘기했다.“우리 진씨 가문 핏줄 아니랄까 봐, 콧대가 정우를 쏙 빼닮았네.”“콧대만 빼면 눈썹, 눈, 입술까지 다 우리 우씨 가문 유전자야.”진정우는 자리에 서서 두 노인이 얘기하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간호사가 얘기했다.“어르신, 이제는 태아 샤워하러 들어가야 합니다. 나중에 와서 보세요.”“조금만 더... 이따가 진정우가 오면 못 보니까...”두 어르신은 간호사를 막아서면서 얘기했다.진정우가 마른 기침을 하자 두 사람이 홱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는 그 틈을 타 아이를 안고 샤워실로 향했다.“내 손녀랑 같이 있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윤지원의 할아버지가 진정우를 보면서 표정을 굳힌 채 얘기했다.윤지원은 그를 할아버지로 인정한 적이 없었지만 우경수는 이미 윤지원을 손녀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러게 말이다. 돌아가서 네 아내나 돌봐.”진태호가 옆에서 얘기했다.“그 사이에 우리 딸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요.”진정우는
“하지만 너무 아파하잖아요.”진정우는 내 고통을 같이 느끼는 사람처럼 얘기했다.“진정우 씨 아이를 낳아주느라고 아픈 거잖아요.”안리영은 또 진정우를 탓하듯 얘기했다. 그러다가 조시언이 한 얘기를 떠올렸다. ‘그럼 넌 낳지 마.’안리영은 그제야 조시언이 안리영을 생각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안리영은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지금 이건 진통이야. 안 아플 때는 내려와서 좀 쉬어도 돼. 저녁은 좀 먹었어? 많이 먹었어?”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정우가 대신 얘기했다.“만두 몇 개랑 케이크 조금 먹었어요.”“그럼 안 되죠. 출산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체력 많이 비축해 둬야죠. 달걀이나 우유 같은 걸 준비해 줘요. 출산에 도움 될 테니까.”안리영이 진정우에게 얘기했다.얼마 지나자 안리영의 말대로 아프지 않았다.나는 진정우를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가서 준비해 줘. 여기는 리영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조금만 기다려. 연락해서 곧 가져오게 할 테니까.”진정우는 이곳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말투로 얘기했다.“늦은 시간에 다른 사람 괴롭히지 마. 게다가 음력설이잖아. 그냥 정우 씨가 다녀와. 난 리영이랑 있을게.”나는 진정우가 오늘만큼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기를 바랐다.진정우는 내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산모실을 나선 그는 바로 조시언을 발견했다.아까는 나한테 집중하느라 조시언을 보지 못했었다.“다행이네요. 혹시 삶은 달걀과 우유 좀 준비해 줄 수 있어요? 아내가 출산하는데 먹어야 체력을 비축해 둘 수 있어서...”조시언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출산하는데 그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 겁니까?”진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안리영 씨가 얘기한 거예요.”안리영이 한 말이라는 것을 들은 조시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준비해 줘요.”진정우는 멀어지는 조시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얘기했다.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진정우를 보면서, 안리영은 그가 조시언에게 부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
그건 조시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안리영의 미래 남자 친구도 결정할 수 없는 것을, 조시언이 결정하다니.안리영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조시언의 말을 무시한 채 산모실로 들어갔다.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진정우의 손을 꼭 잡았다.나는 정말 아팠다.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반반으로 섞여 있었다.“여보, 나 여기 있어.”진정우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만지면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보호자는 이제 나가주세요.”간호사가 진정우를 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나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서, 또는 의지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진정우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진정우의 손에 붉은 자국이 날 정도로 말이다.“간호사님, 제가 같이 있어도 될까요?”진정우는 나를 혼자 보내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아직 안리영이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그건 미리 신청하셔야 하는데... 교수님 사인도 필요해요.”간호사가 딱딱하게 대답했다.신입 간호사라서 나와 안리영의 사이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만약 알았다면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규정대로 일하는 간호사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누구나 다 편하게 가려고 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동의해요.”이때 안리영이 등장했다.안리영은 더 말하지 않고 내 곁으로 와서 얘기했다.“일단 들어가자. 내가 검사해 줄게.”안리영의 말에 간호사가 나를 밀고 들어갔다. 안리영이 얘기했다.“나 옷 좀 갈아입고.”휴게실로 갔다가 나온 안리영은 밖에 조시언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멍해서 물었다.“삼촌, 왜 아직도 안 간 거야?”“이거 얼마나 걸려?”조시언이 물었다.“글쎄. 잘 풀리면 몇 분이면 되는데, 잘 안 풀리면 이튿날 해 뜰 때까지 지켜봐야 할 수도 있어.”안리영은 한편으로 단추를 잠그면서 산모실로 갔다.“가서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같이 있어. 두 분 섭섭하시겠다.”말을 마친 안리영은 안으로 들어갔고 조시언은 그곳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안리영은 들어온 후 나를 보면서 물었다.“전보
그 말인즉슨 아내를 데리고 오라는 뜻이었다.조시언은 그 말에 바로 반박했다.“방금 여자를 데리고 같이 세배했잖아.”조시언은 일부러 안리영을 언급하면서 얘기했다.안리영은 약간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조수민이 원하는 건 아무 여자가 아니라 조시언의 아내인데 말이다.“수민이 말은, 내년 설에는 지은이랑 결혼하고 오라는 뜻이야.”할머니는 눈가의 눈물을 닦으면서 똑똑하게 얘기했다.안리영은 한지은이 조시언의 별장에서 곧 같이 동거할 거라는 것을 떠올렸다.어쩌면 두 사람의 결혼은 멀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네. 내년에 꼭 결혼할게요.”조시언이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안리영은 그 대답을 듣고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조시언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용돈, 받아야지?”안리영은 선 자리에서 손을 내밀었다.“줘.”“세배해야지. 세배도 하지 않고 용돈을 달라는 거야?”조수민이 옆에서 장난스레 얘기했다.안리영은 조시언을 보고 또 바닥의 그릇을 쳐다보다가 용돈을 포기하려고 했다.어릴 때는 장난스레 조시언 앞에서 세배를 하면서 용돈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나이를 먹고 나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그럼 됐어. 안 받아.”안리영이 손을 거두었다.조시언이 돈봉투를 꺼내면서 건네주었다.“새해 복 많이 받아.”안리영이 거절하려고 할 때 조시언이 얘기했다.“아주 두꺼운 봉투니까.”“얼마나 넣었길래 그래. 너무 많이 주지 마. 애한테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조수민이 얘기했다.“두 사람의 일에 끼지 마.”옆에서 할머니가 조수민을 말렸다.안리영은 그래도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조시언이 안리영의 손을 잡고 봉투를 손에 쥐여주었다.조시언의 손바닥은 아주 부드럽고 따뜻했다. 안리영은 심장을 잡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조시언은 힘을 주고 풀어주지 않았다. 안리영은 본인의 감정을 들킬까 봐 아무 말이나 했다.“생각보다 가벼운데, 5만 원밖에 안 넣은 건 아니겠죠?”“세배도 안 한 주제에 5만 원이면 감지덕지인 줄 알아.
설에 가장 즐거운 것은 세배 시간이다.조수민이 가장 먼저 안리영과 안리영 아버지를 끌고 나와 두 어르신 앞에서 세배를 했다.두 어르신은 바로 세뱃돈을 건네주었다.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조씨 가문에서는 세배만 하면 세뱃돈은 받을 수 있었다.돈이 모자란 나이는 아니지만, 조수민 부부는 세뱃돈을 받고 아이처럼 기뻐했다.그다음은 바로 조시언이었다. 안리영은 조시언이 어디서 무릎을 꿇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명절을 보냈으니까 말이다.조시언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세배를 올렸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동작이었지만 조시언의 분위기 때문인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마치 왕자가 즉위 의식을 앞두고 한쪽 무릎을 꿇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안리영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삼촌 세배는 불합격이야.”안리영의 말에 모든 사람이 안리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수민이 가장 먼저 안리영을 쏘아보면서 장난 그만하라는 시선을 보냈다.“이마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야지. 근데 우리 집 바닥은 너무 단단하니까, 내가 도와줄게.”그렇게 웃으면서 말을 마친 안리영은 주방으로 가서 그릇 하나를 가져왔다.안리영이 그릇을 바닥에 놓으려는데 조수민이 안리영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때릴듯한 기세로 얘기했다.“너 이젠 어른이야. 이런 거로 장난칠 나이 아니라고! 얼른 되돌려놔.”“아직 아이지. 시언이랑 같아. 어릴 때 두 사람은 이렇게 세배를 했잖아. 그럼 리영이가 하라는 대로 해.”할머니는 안리영의 생각이 마음에 든 듯 얘기했다.“그래, 너희 어릴 때 추억도 생각나고, 좋네. 두 사람이 같이 세배를 올리면 되겠어.”평소에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안리영의 아버지도 나서서 얘기했다.그러면서 안리영 아버지는 주방으로 가 그릇 하나를 가져와 안리영 옆에 놓고 안리영의 어깨를 꾹 눌렀다.“세배 잘하면 삼촌보다 세뱃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거야.”이런 분위기가 되자 안리영은 어쩔 수 없이 세배를 해야했다. 안리영은 입술을 비죽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