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931 - Chapter 940

983 Chapters

제931화

내가 다시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허진호가 문을 붙잡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진정우 씨가 요즘 무슨 일을 했는지 솔직히 말할게요.”나는 곧장 카페로 가지 않았다. 오랜만의 외출이었기에 잠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그리고 요즘 계속 용은서가 마음에 걸렸다. 함소은은 주말에 용은서를 데려오겠다고 해놓고선 끝내 데려오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자 임신한 내가 힘들 것 같아서 안 데려온 거라고 둘러댔다.결국 나는 직접 용은서의 학교로 찾아갔다. 그런데 선생님은 은서가 이미 전학을 갔다고 했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곧장 함소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서가 전학을 왜 가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학교에 갔어요? 왜 미리 전화 안 했어요?”함소은은 막 잠에서 깬 듯 웃으며 대답했다.나는 다른 말 없이 곧바로 다시 캐물었다.“지금 용은서, 어디 있는지 말해주세요.”“학교에 있어요. 주소 보내줄게요. 오늘 학부모 참관 수업인데 점심도 준비돼 있거든요. 전 너무 피곤해서 그냥 안 가려고요.”함소은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나에게 떠넘겼고 더는 묻지 못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유치원 위치를 문자로 보냈다.정말 엄마 역할을 못 하는 사람 같았다. 갈수록 용은서가 걱정됐다.나는 운전해서 유치원으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용은서와 영상통화를 했다. 은서가 나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언니, 난 언니가 이제 은서 안 좋아하고 은서를 잊은 줄 알았어요.”은서는 나를 보자마자 서운함을 토로했다.“그렇지 않아. 언니가 요즘 너무 바빴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나는 먼저 사과하고 준비해 간 작은 선물을 건넸다.은서는 선물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함소은은 늘 선물로만 아이를 달래왔을 것이다.“오늘은 언니가 은서랑 같이 점심 먹을 거야.”내 말에 용은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한참 후, 은서가 조용히 말했다.“엄마는 또 안 오는 거죠?”그 말 속엔 익숙한 듯한 실망과 체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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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내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진정우는 내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그 물음엔 조심스러움과 진심이 섞여 있었다.“아니야.”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그럼 오해도 안 하고 화내지도 않겠단 뜻이지?”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를 살피고 있었다. 경계라기보다 확인이었다.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으니 그는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은서랑 함께 있어서 전화 못 받은 거야. 유치원에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놨거든.”나는 그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며 말했다.“잠깐 일 좀 보고 올게.”오늘 손님은 어제보다 훨씬 많았다. 이 정도라면 카페를 확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나는 곧 그 생각을 접었다.지금은 비록 이 카페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공간을 처음 만들 때의 목적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낮에는 손님을 맞이하고 저녁에는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인기란 건 언젠간 사라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인기가 없어지면 다시 평온이 찾아올 것이다.나는 진정우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고 진정우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잠깐 시선을 돌리기라도 하면 그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남자라고 해서 단순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내야 하기에 그런 감정들을 쉽게 들여다보지 않았다.저녁에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난 바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개업식을 하루 앞둔 밤이었다. 문득 깨어 마당으로 나가보니 진정우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는 평소에도 담배를 자주 피우는 편은 아니었고 내가 임신한 후로는 거의 끊다시피 했었다.내가 다가가자 그는 재빨리 담배를 끄고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려는 몸짓이었다. 그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나왔어?”“정우 씨 찾으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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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나는 진정우에게 한 걸음 다가가 나뭇잎으로 그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내 말이 맞지?”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다윤아, 나 좀 무서워.”“뭐가 무서워?”나는 웃으며 물었다.하지만 진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두려움은 언젠가 내가 강유형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내 말과 행동에 배인 불교적인 태도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그 길로 들어설까 봐 몹시 조심스러웠다.입동 전날, 드림 가든 카페가 드디어 정식으로 개업하게 되었다.진정우는 마당을 장식하겠다며 분주했고 나는 그에게 무리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의 계획을 이미 허진호를 통해 다 알고 있었다.나는 모른 척하며 그에게 장식을 맡겼고 그 뒤로 조용히 집에 남아 있었다. 안리영은 특별히 이틀 휴가를 내고 내 곁을 지켰다.“안 과장님, 요즘 덜 바쁜가 봐?”나는 그녀의 태도에서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끼고 물었다.“드디어 내 생각이 났나 보네.”안리영은 익숙한 톤으로 받아쳤다.한 번에 두 가지 생각을 잘 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과 시간을 카페에 쏟고 있었고 그 때문에 진정우는 물론 이제 안리영까지 나한테 서운함을 드러냈다.나는 안리영의 팔을 붙잡았다.“응. 이제 말해봐.”“강 선생 기억나? 소희연 이모 말이야. 이제 과장 됐대.”안리영의 말에 나는 상황을 단번에 이해했다.“네 자리를 차지한 거야?”안리영은 내 어깨에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니야. 이 안 과장 자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 여자가 욕심을 내길래 나도 기회를 줬지.”강 선생은 중년의 여성이지만 여전히 그런 추진력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이제 마음을 내려놓은 거야?”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그런 셈이지.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애 낳는 사람이 너무 줄었거든. 출산율 계속 떨어진다는 기사, 너도 봤지? 10년, 20년 후엔 나 실직할지도 몰라. 그땐 네가 나 먹여 살려야 해.”안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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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나는 밤새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나 같은 신부는 아마 세상에 처음일지도 모르겠다.침실을 나서자 화장대 앞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이미 와 있었고 안리영은 먼저 일어나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안녕, 신... 오늘도 신나는 하루.”‘신부’라는 단어를 말하려다 급히 말을 바꾼 게 분명했다.“너도 신나는 하루 보내.”나는 하품을 하며 일부러 모르는 척 어색한 인사를 이어갔다.“이 두 분은 누구셔?”“메이크업 아티스트야. 오늘은 신... 아니, 새로 출발하는 날이잖아. 가장 주목받는 날이니까 예쁘게 꾸며야지.”안리영의 말은 자꾸만 꼬였다.아직도 숨기려 하다니, 안리영도 참 힘들 것 같았다.나는 괜히 지적하지 않고 나중에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하기로 했다.“그럼 나 세수 좀 하고 올게.”나는 가볍게 말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며 이미 살짝 불러온 배를 손으로 감쌌다.“아가야, 오늘 아빠랑 엄마가 결혼하는 날이야. 이제 우린 진짜 가족이 되는 거야.”강씨 가문을 떠난 후, 내 안엔 항상 공허함이 남아 있었다. 진정우가 곁에 있어도 그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그것이 가족이 없기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지붕이 있다고 해서 다 집은 아니다.집이란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는 곳이자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항상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다.십여 년 전, 부모를 잃고 내 집도 잃었다. 이후 강씨 가문이 나의 안식처가 되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드디어 나만의 집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밖에서 안리영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렸다.“네, 알겠어요. 재촉도 안 했고 부르지도 않았어요. 그냥 편하게 자도록 내버려 뒀어요. 지금 세수 중이에요. 물 따를 거니까 걱정 마요, 정우 씨. 예비 아내는 무사히, 아주 예쁘게 정우 씨 앞에 도착할 거니까.”나는 그 말을 들으며 웃음이 났다.이게 바로 진정우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배려와 염려, 그게 몸에 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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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아마 그날 함소은이 나를 찾아온 이후부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원래는 그렇게 계획했어. 결혼식이 너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도 했지만 동시에 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미혼모'라는 조롱을 듣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네 남편이 비밀리에 결혼식을 준비한 거야. 우리 모두 네 앞에서는 연기를 했던 거지.”안리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져서인지 표정에는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다.“예비 신부가 다 알아버렸으니 이제 드레스 갈아입으러 가자.”안리영은 웃으며 나를 이끌었다.“이 웨딩드레스 말이지, 네 남편 정우 씨가 직접 디자인한 거야. 수작업으로 만들었고 가격도 어마어마할 테지.”그녀는 손가락을 펴 보이며 여러 자리를 가리켰다.“이 정도면 가보로 물려줄 수도 있어.”“좋네. 그럼 내 며느리와 손녀에게까지 물려줘야지. 대대로 이어지는 드레스가 되는 거야.”나도 장난스레 받아쳤다.안리영은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다윤아, 너 지금 정말 예쁘고 행복해 보여. 나도 지금 당장 결혼하고 싶다.”“그럼 네 삼촌한테 전화해서 동의받자.”나는 웃으며 장난쳤다.“왜 그 사람한테 물어봐?”안리영은 내 팔을 가볍게 치며 눈을 흘겼다.“네 보호자니까. 결혼하려면 삼촌 허락받아야지.”내 말을 들은 안리영은 손가락을 내려놓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그나저나 나 정말 결혼하고 싶어졌어. 나도 이제 어리지 않잖아. 요즘 병원 간호사들이 뒤에서 나를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너보고 칼같은 여자라고 하는 건 알아.”나는 솔직하게 말했다.그녀는 워낙 엄격하고 까다로운 상사로 유명했기에 그런 별명이 붙는 것도 이해는 됐다.“맞아. 내가 결혼만 하면 다들 그 말을 못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정우 씨처럼 잘생기고 착한 남자 있으면 나한테도 소개 좀 해줘.”안리영은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그런 남자 있긴 한데 오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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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강유형과 혼인신고를 하러 가던 날 고준석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그날 고준석은 나를 데리고 강유형이 마련해둔 신혼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결국 그 일 때문에 나와 강유형은 돌이킬 수 없이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고 고준석은 그 일로 인해 끝없이 자책하며 나에게 거듭 사과했었다.그것은 아마 그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일 것이다. 게다가 강유형도 이제 세상에 없으니.그는 그렇게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강유형이 고준석에게 어떤 부탁을 했는지는 자세히 잘 모르겠지만 고준석이 이렇게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나는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어디 가는 거야? 오늘 네 결혼식이야, 괜한 일 벌이지 마.”긴장한 표정의 안리영을 향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래? 그러면 정우 씨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너 혹시 정우 씨한테 돈 받았어?”안리영은 나를 톡 때리며 말했다.“장난치지 마. 나 진심이야. 난 네가 안 갔으면 좋겠어. 강유형 씨도 그래, 그저 묵묵히 네 결혼식 지켜보면 얼마나 좋아? 굳이 이럴 것까진 없잖아.”안리영이 강유형을 진심으로 원망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안리영은 그저 결혼식에 예상치 못한 변수라도 생길까 봐 걱정된 것이다. 나와 진정우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나는 웃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겁을 주었다.“강유형이 하늘에서 다 지켜보고 있어. 홧김에 너한테 분풀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안리영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지금 나가는 건 반대야. 가더라도 결혼식 끝나고 가.”“걱정하지 마.”진정우와의 인연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였다.그런데 강유형이 굳이 오늘 고준석을 통해 전하려 한 것이라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다윤아, 그래도 너무 걱정돼.”안리영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그 사람의 죽음이 거짓이라면? 그래서 널 결혼 못 하게 납치라도 하는 거라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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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고준석은 우리를 한 건물 앞으로 안내했고 나는 안리영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실 나는 이미 강유형이 나에게 무엇을 선물하려 했는지 알고 있었다.그때 그는 우리의 신혼집을 조나연에게 넘겨주며 나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켰다. 이일은 아마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새로운 주택 단지를 지어 나에게 그중 한 채를 선물함으로써 보상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그는 이미 떠났고 우리 사이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렸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문 앞에서 고준석이 비밀번호 잠금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비밀번호는 윤지원 씨 생일입니다.”그의 말은 내가 직접 이 문을 열어보라는 뜻이었다. 안리영은 줄곧 내 팔을 끼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마치 문이 열리는 순간 내가 그 너머로 사라져 버릴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나는 손을 뻗어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내 가슴을 시리게 했다. 이곳의 인테리어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이전 집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창가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니 예전 집을 그릴 때 썼던 문구가 떠올랐다.‘바다와 마주하여 봄을 품고 꽃을 피워내다.'그때 더 써야 할 문구가 있었다. 바로 ‘하루의 온기와 계절의 변화를 언제나 너와 함께하길' 이었다.나는 그를 사랑했고 진정한 집을 원했다. 그와 함께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에게는 집이었다.하지만 우리는 헤어졌고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없었다. 그러니 이곳은 이제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강 대표님은 항상 미안해하고 아쉬워하셨어요. 이것이 그분의 마지막 바람이었습니다.”고준석은 이 말과 함께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그 안에는 단순한 집 계약서뿐만 아니라 여러 계약서가 들어 있었는데 안리영이 나 대신 받아 펼쳐보며 탄성을 질렀다.“와!”나는 계약서를 보지 않아도 안리영이 그렇게 놀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준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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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절대 늦을 리가 없었다.나는 미리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우가 정한 시작 시각은 9시 19분이었다. 영원을 의미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진정우가 이렇게 애쓰고 있는 만큼 나도 그를 실망시킬 리 없었다.나는 안리영과 함께 내려갔고 건물 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진한 색 정장이 완벽하게 어울리고 검은 머리는 깔끔하게 뒤로 넘겨져 있었다. 180cm가 넘는 키에서 우아한 품격이 느껴졌고 겨울 햇살이 그의 몸을 감싸며 부드러운 빛을 만들어냈다.나는 이렇게 멋진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이토록 근사한 진정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나는 그와 처음 만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짧은 머리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였다. 온몸에서 거친 남성미가 풍겨났고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때 나는 그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남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여기 왜 왔어?”나는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오지 않으면 혹시라도 내 신부를 놓칠까 봐.”진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았다.나도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정우 씨가 이렇게 대해 주는데 내가 어떻게 정우 씨를 실망시키겠어.”진정우는 내 손을 잡고 맞은편 바다를 바라보았다.“너를 실망시키면 유형 씨가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어. 너보다 난 유형 씨가 더 무서워.”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에게 상처를 주긴 했지만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었다.“사실 나는 그 사람한테 정말 고마워. 내가 없을 때 너를 지켜 주었고 또 그 사람 실수 덕분에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었잖아.”진정우의 말이 감동적이면서도 동시에 좀 어이없었다.남의 실수를 고마워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정우 씨, 우린 운명 같은 사랑이야. 그러니 앞으로 누가 나타나더라도 언제나 정우 씨의 손을 잡고 함께할 거야.”나는 진정우와 손을 꼭 잡고 바다를 내려다보았다.출렁이는 파도와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마치 우리를 위한 축가처럼 느껴졌다.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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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첫날부터 늙어버렸네.”진정우가 나를 놀리며 말했다.나는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그럼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그럼 뭐라고 부를 건데?”진정우가 갑자기 몸을 기울였다.그는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별빛처럼 반짝이며 유독 맑고 투명했다. 그 눈에 비친 내 모습마저 빛나 보였다.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댔다.진정우는 잠시 놀란 듯했다. 내가 이렇게 먼저 다가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손을 테이블에 짚고 몸을 낮춰 내가 편하게 키스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정우 씨, 고마워.”키스 후 나는 낮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했다.“내 인생에 와줘서 고맙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서 고맙고 이렇게 사랑해 줘서 고마워. 힘든 일들을 겪고도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함께해줄 거라서 고마워.”우리의 이야기는 가장 좋은 시작은 아니었고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놓지 않았다. 나는 진정우가 얼마나 애써왔는지 알고 있었다.그가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나도 고마워.”진정우는 차분하게 말을 마치고 몸을 세워 돌아섰다.나는 웃으며 말했다.“그게 다야?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 고작 고맙다니?”진정우가 나를 바라보았다.“그럼 어떤 대답을 원했던 거야?”그래도 나한테 몇 마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그의 직설적인 성격을 생각하며 나는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괜찮아. 그럴 마음이 없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돼.”진정우는 정말로 자리를 떠났다. 오늘 사용했던 커피 컵들을 정리하고 작은 마당 구석구석까지 깔끔하게 치웠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그가 감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게다가 삶은 현실적이다. 어떤 부부나 연인이라도 항상 달콤한 말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그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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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안리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찾아와서 커피와 디저트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내가 만든 거 어때? 네가 만든 것보다 더 잘했지?”안리영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내보였다.나는 좋은 선생님답게 깎아내리기보다는 격려하는 방식으로 말했다.“청출어람이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었어.”“그렇지? 나중에 실직되면 이걸로 생계를 유지해야겠다.”안리영은 만들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나는 웃으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내 밥그릇까지 빼앗을 생각이야?”“성장 가능성이 있는 산업은 여러 곳에서 함께 발전해야지. 혼자 독주하면 어떡해.”안리영은 나름의 철학을 펼쳤다.하지만 안리영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한 산업을 독점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니까.“정말 제자가 스승을 굶기려 하네.”나는 감탄하며 말했다.“괜찮아. 네가 파산하면 내가 널 꼭 고용시켜 줄게.”안리영이 정말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우리 둘 중에서 네가 더 사장 같아. 정말 냉정하다.”“하하, 맞아. 나는 수술용 메스를 다루는 사람이라 단호해야 하거든.”우리는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안리영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웠다.진정우는 자기 일을 하면서도 매일 가게에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저녁에는 거의 모든 일을 정리해 주며 든든한 무료 일꾼이 되어주었다.“다윤아, 남편이 있으니까 정말 좋다. 나도 결혼하고 싶어.”안리영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외롭고 쓸쓸하니까 여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기라도 한 거야?”“그런 것도 있어.”그녀는 나와의 대화에서 거침없이 이야기했다.“어려울 거 있어? 누군가를 만나면 되잖아.”나는 단순한 제안을 했다.안리영은 작은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런 곳들은 깨끗하지 않잖아.”“구 교수님 생각이라도 난 거야? 한번 물어나 봐.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구안석은 떠난 뒤로 아무 소식이 없었다.“다시 돌아가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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