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921 - Chapter 930

983 Chapters

제921화

“오늘 한잔할까?”안리영이 묻자 구안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한잔하자.”두 사람은 술 한 병과 가벼운 안주를 주문하고 조용히 창밖 강가를 바라보았다. 이따금 배가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영이야.”구안석이 그녀를 불렀다.안리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머리 위 조명이 따스한 노란빛을 드리워 그의 콧날, 눈썹, 입술을 은은하게 감쌌다. 금테 안경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웠으며 셔츠의 질감에서도 그의 단정함이 묻어났다.비록 이미 헤어진 사이지만 안리영은 그가 여전히 자기 취향에 딱 맞는 사람이란 걸 부정할 수 없었다.지금까지 많은 남자를 만나봤지만 잘생겼다고 느낀 사람은 오직 조시언과 구안석뿐이었다. 진정우와 강유형조차 그저 그런 정도에 불과했다.그렇다고 그녀의 기준이 특별히 높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잘생겨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고마워.”구안석의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그가 일 관련된 얘기를 한 거라고 생각한 안리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일 얘기는 하지 말자.”“일 얘기 아니야.”그는 안경 너머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깔끔하게 묶은 머리, 화려하지 않은 화장, 그럼에도 세련되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그녀의 얼굴이었다.“오늘 함께 저녁 먹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내 인생에 머물러 줘서 고마워.”그 말에 안리영은 순간 얼어붙었다. 하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함께 했던 기억이 거짓은 아니었으니까.사실 오늘 그의 식사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두 사람 사이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였다.“내 청춘을 함께 해줘서 나도 고마워.”안리영은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구안석을 짝사랑해 왔다. 비록 그 사랑은 이루어졌지만 결국 이렇게 끝을 맺고 말았다.구안석은 어두워진 안리영의 눈빛에서 그녀의 뜻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미래는 없었다.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말을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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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2화

‘기다렸다고? 나를 왜?’“삼촌, 혹시 저녁 안 먹었어?”그녀는 제일 먼저 그 생각이 들었다.조시언은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녀의 메시지를 받은 후로 마음이 불안해서 도무지 밥 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안 먹었지? 그럼 내가 뭐라도 해줄게."조시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안리영은 조용히 확신했다."됐어."조시언은 짧게 거절했다."그럼 왜 기다렸어? 무슨 일 있어?"안리영은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을 기다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조시언은 그녀의 약간 흐릿해진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술 마셨어?"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으로 잔의 크기를 가리키듯 작게 웃으며 말했다."조금 마셨어."조시언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큰 키는 가까이서 더 위압적으로 느껴졌고 조명 아래 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이상함을 느낀 안리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삼촌, 왜 그래?”그녀는 조시언의 어둡게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티끌 하나 없는 맑고도 낯선 눈빛이었다.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자 조시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초조함은 어느새 스르르 녹아내렸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전에 의사는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 신경이 마비돼서 수술에 지장 준다고.”안리영은 그 말에 가볍게 웃음을 지었고 입가에 옅은 보조개가 살짝 패였다.“가끔은 괜찮아. 게다가 과음한 것도 아니고, 의사도 사람인데 수술 때문에 술 한 방울도 못 마실 건 없잖아.”그녀는 나름 이성적으로 말했다.“누구랑 마셨어?”조시언이 묻자 안리영은 신발장에 가볍게 기대선 채 양손으로 가장자리를 잡으며 대답했다.“구안석이랑. 곧 떠난대.”조시언의 시선이 다시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작별 인사한 거야?”안리영의 예쁜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이별이라고 해야겠지.”그녀는 고개를 들어 천장 위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내 지나간 사랑과의 완전한 이별.”“그래서 슬퍼?”조시언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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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3화

“그 사람과의 사랑은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좋지 않았어. 마트에서 과자를 보고 괜찮아 보여서 샀는데 막상 먹어보니까 입맛에 안 맞아서 손이 안 가더라. 다시는 안 사게 되는 그런 느낌 있지.”안리영의 비유는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그럼 네가 생각하는 좋은 사랑은 뭔데?”조시언은 답을 꼭 들어야만 하겠다는 듯이 멈추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술이 들어간 안리영은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했다.“몰라. 확실한 건 선배는 그런 사랑을 내게 주지 못했다는 거야.”조시언은 그녀의 표정 속에서 이미 지난 감정을 정리해 버린 단호함을 읽을 수 있었다.“그래도 사랑을 믿어? 다시 시작할 수 있겠어?”“당연하지.”안리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난 한 번 넘어졌다고 평생 못 일어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날 다시 설레게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또다시 뜨겁게 사랑할 거야.”그 말을 하며 안리영은 신발장에 기대던 손을 떼고 밝은 미래를 마주하듯 팔을 뻗으려다 술기운에 그만 중심을 잃고 앞으로 휘청였다.조시언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다친 팔 때문에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다.결국 그녀는 그의 품에 쓰러지고 말았다.“삼촌, 나 너무 어지러워.”그녀는 조시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그녀의 따스한 숨결이 얇은 실내복을 타고 그의 몸에 닿았다. 조시언은 순간 온몸이 굳어졌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많이 취했네. 방에 데려다줄게.”“그런데 삼촌, 아까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잖아.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이야?”그녀는 불쑥 그의 말을 기억해 냈다.조시언이 대답하지 않자 안리영은 그의 품에서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누구냐고.”그는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작고 여린 그녀의 몸이 그의 품에 기대어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조시언은 잠시 숨을 삼키며 멈칫하고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멍청한 사람이야.”“뭐?”안리영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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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4화

진정우가 찻집에 막 도착하자 허진호는 손목시계를 툭툭 두드리며 낮게 속삭였다.“그분, 벌써 30분째 기다리고 계세요.”“그래서 지쳤다던가요?”진정우는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하고도 평범한 옷차림이었다.그가 풍기는 비범한 분위기와 화려한 이목구비만 아니었다면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모습이었다.“아니요. 조용히 기다리고 계세요.”허진호는 괜히 오해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급히 대답했다.진정우는 허진호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뭐 하러 그런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래도 이렇게 늦게 오는 건 예의가 아니죠.”허진호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학생 때 반장이나 모범생 타입이었을 게 틀림없었다.“일부러 늦은 거예요.”진정우의 짧은 한마디에 허진호는 입을 다물었다.진정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는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진정우는 앞으로 다가가며 무심하게 말했다.“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30분쯤이야, 괜찮아.”그 말 한마디뿐이었지만 남자의 범상치 않은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진정우입니다.”진정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남자는 손을 내밀지 않고 짧게 대답만 했다.“내가 누군진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연성 우씨 가문의 회장 우경수였다. 올해 여든을 넘긴 나이였지만 육십 대로 보일 만큼 정정한 인물이었다.진정우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나이로 따지면 이 노인은 자신의 할아버지뻘이었다. 무례하게도 30분이나 기다리게 했으니 그가 악수를 거절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응수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경수의 이런 행동은 자신을 향한 시험에 불과했다.“앉지.”우경수는 역시 노련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인의 기세를 보였다.진정우는 자리에 앉아 주전자에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회장님은 제가 왜 만나자고 했는지 이미 아실 겁니다.”우경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진정우는 조용히 찻잔을 헹군 뒤 차를 따르며 말했다.“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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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5화

우경수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진정우는 그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우 회장님 말씀만 들으면 참 정이 많으신 분 같네요.”마침 차가 끓어오르며 거품이 일었고 찻잎 향이 공기 속에 더 짙게 퍼졌다.진정우는 사전에 이미 우경수에 대해 조사해 둔 상태였다. 세 명의 아내가 있었고 바깥에 내연녀까지 두고 있었다. 젊은 시절 방탕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인기는 많았지만 유독 자식 운만은 없었다. 세 아내 모두 아이를 낳지 못했고 내연녀가 아들을 낳기는 했으나 그 여자는 이를 빌미로 우경수에게 명분을 요구했다. 우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정식 지위를 원했던 것이다.하지만 고집 센 우경수는 그 요구를 거절하고는 오히려 사람을 보내 아이를 빼앗으려 했다. 여자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먼저 행동에 나섰다. 우경수가 손을 쓰기 전에 아이를 다른 곳에 맡겨버린 것이다.아이가 없어졌다는 말에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웠고 여자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며 우겼다. 분노한 우경수가 그녀를 폭행하자 여자는 화가 치밀어 그의 앞에서 스스로 가슴에 칼을 꽂았다. 겁만 주려던 행동이었으나 칼이 치명적으로 깊숙이 박혀 그녀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그날 이후 아이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었고 우경수는 몇 년 동안 아이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두 번째 부인이 아들을 낳고 나서야 그 집착을 포기할 수 있었다.하지만 자식 운은 여전히 따라주지 않았다. 그 아들 역시 겨우 아이 하나를 남기고 결혼도 하기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정이 많다는 진정우의 말에 우경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남의 아픔도 모르면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게. 자네가 들은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으니.”진정우는 찻잔에 차를 따라 건네며 말했다.“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회장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죠.”우경수는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한테는 말해줄 수 없어. 들어도 그 여자가 들어야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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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6화

내가 진정우에게 전하라고 한 말은 단 하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가 묘지 앞에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들려드릴 거라는 것. 그 외의 말은 필요 없었다.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유일하게 따뜻함과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은 강씨 가문이었다. 다른 친척들과는 딱히 친하지도 않았고 억지로 인연을 이어갈 이유도 없었다.여러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됐다. 피보다 진한 건 결국 함께한 시간이라는 걸.진정우가 돌아왔을 때, 나는 가게에서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쩐지 유난히 손님이 많아 직원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오늘 손님 엄청 많네.”진정우가 놀란 듯 말했다.“그러게.”가계 안과 밖을 가득 채운 손님들을 보며 마음이 벅찼다.강유형이나 허진호와 함께 일하면서 높은 직책과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카페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우리 아내 또 돈방석에 앉게 생겼네.”진정우가 웃으며 앞치마를 둘렀다.“내가 도와줄게. 너무 무리하지 마.”“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그건 정말이었다.진정우는 나를 조심스레 끌어안고 내 얼굴에 입을 맞췄다.“내가 마음이 아파서 그래.”나는 머리카락으로 그의 얼굴을 스치며 물었다.“미팅은 어땠어?”진정우는 우경수를 만나기 전에 모든 걸 조사해 두었고 나에게도 다 말해주었다. 내가 직접 만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괜찮았어. 그 할아버지, 꽤 침착하더라. 그냥 너랑 한번 식사하고 싶다고 했어. 그렇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고.”진정우는 우경수와의 대화 내용을 말해주었다.“내 생각도 전했어?”나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휴게 공간에 앉았다.진정우는 내게 물 한 잔을 따라주며 이어서 말했다.“전했지. 그 할아버지 말이, 아무리 그래도 친손녀인데 얼굴은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사실 우경수의 말이 지나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버림받은 데 그의 잘못이 있긴 했지만 고의는 아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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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7화

선의와 함께 내어지는 디저트를 거절할 수 있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여기 앉아도 될까요?”이곳이 나의 가게임에도 나는 정중하게 손님에게 허락을 구했다.“물론이죠. 이 가게 사장님이시죠?”그 여성은 나를 알아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앞치마를 내려다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에 쓰여 있었나요?”“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뻐요.”그 여성은 주저 없이 말을 이었다.“네?”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어떤 영상을 재생했다.“이걸 보고 여기까지 왔어요. 정말 좋네요.”영상 속에는 우리 가게를 소개하는 블로그 리뷰가 담겨있었다. 어떤 블로거가 이곳을 다녀간 뒤 사진과 영상, 그리고 글을 함께 올렸다.[이곳의 상쾌한 공기는 한 번 들이마시면 지친 마음마저 풀어지는 듯합니다. 나뭇잎은 생명력으로 가득하고 온갖 색깔로 물든 풍경이 아름다운 카페입니다. 커피는 쓴맛과 달콤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마치 우리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곳 사장님은 손님들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마음씨 좋은 분입니다. 사장님은 손님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대신 ‘보살님이 지켜주시길'이라며 인사해 줍니다.]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만든 이곳이 누군가에게도 삶을 바꾸는 경험이 될 줄은 몰랐다.사실 내가 손님들에게 ‘보살님이 지켜주시길'이라고 말한 건, 강유형과 수정 스님을 추억하기 위한 조용한 습관이었다.그런데 그것이 어떤 이들에겐 깊은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진심은 애쓰지 않아도 전달된다는 걸 이곳에서 나는 천천히 배우고 있었다.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왜 모두 휴대폰을 내려놓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여성은 블로거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 사람은 한때 직장을 잃고 연인과도 이별하면서 삶의 의미를 잃었대요. 모든 걸 내려놓으려는 마음으로 이곳까지 왔다고 하더라고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커피 한 잔만 마셔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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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8화

개업식도 없이 가게 문을 여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그는 그 이유 외에도 길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개업식을 성대하게 치를수록 가게는 더 잘된다고, 내가 불교를 믿는 걸 아니까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있다고도 했다.솔직히 그가 이렇게 말솜씨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개업식은 꼭 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고 나도 더는 우기지 않았다. 대신 너무 요란하지 않게 가까운 친구들만 조용히 부르자고 했다.아직 정식 개업도 하지 않았는데 내 작은 카페는 한 블로거의 소개 덕분에 어느새 입소문이 나 있었다.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주말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안리영을 찾아갈 틈도 없었다. 리영이가 날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무언가 고민이 있어 보였다.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정성을 다해 예쁜 구름 라테를 만들었다.“자, 네 전용이야.”“와, 요즘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네.”안리영은 라테를 바라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보기만 예쁜 게 아니라 맛도 있어.”요즘은 커피를 만드는 일이 더 좋아졌다.안리영은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다윤아, 지금 너 눈빛이 정말 반짝이고 온몸에서 활기가 넘쳐 보여.”나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온몸 깊숙이에서 활력이 차오르고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를 맞는 게 기다려졌다.“그런 네 빛은 어디 갔어?”내가 되물었다.“빛이라니, 우리 가족 안 무너지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감사한걸.”그녀는 조시언이 친부모를 찾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왜 갑자기 친부모를 찾겠다는 거야?”“생명을 준 사람들이니까. 한 번은 만나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더라.”안리영의 눈빛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이 일, 너희 엄마와 외할머니는 아셔?”나는 조씨 가문이 조시언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안리영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나한테만 털어놨어.”나는 또 다른 디저트를 가져와 리영이 앞에 놓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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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9화

“너 진짜 무슨 신의 가호라도 받는 체질이야? 뭘 해도 다 잘되잖아. 혹시 전설 속 재물의 여신이 너로 환생한 거 아니야?”안리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맞받아쳤다.“맞아. 보살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니까. 난 뭘 하든 다 잘될 거고 나랑 같이 있는 사람도 같이 잘 될걸?”“그래? 그럼 나도 덕 좀 보겠네. 그런데 개업식은 언제 해? 나도 기 좀 받아 가게.”안리영도 개업식 이야기를 꺼냈다.“사실 나는 개업식 안 하고 싶었어. 그런데 정우 씨가 꼭 하자고 해서.”나는 안리영에게 다가가며 툴툴거렸다.“요즘 보면 점점 속물스러워져.”“그건 속물이 아니라 의식 같은 거지. 나는 정우 씨 편이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아. 다들 좋다면 하지 뭐.”“그 억지스러움은 뭐야? 정우 씨가 널 너무 과하게 아끼고 있는 게 분명해.”안리영이 장난스럽게 타박했다.잠시 가게에 앉아 있던 안리영은 곧 자리를 떠났다. 떠나기 전에 나한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산부인과 검진도 제때 받으라고 잊지 않고 당부했다.안리영이 떠난 뒤, 나는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자주 외출하고 늦게 들어오길래 물어봤더니 허진호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다.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침 나도 최근 거의 가게에만 있었기에 오랜만에 외출하기로 했다. 직원에게 부탁하고 직접 운전해 허진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윤 부장님.”“오랜만입니다, 윤 부장님.”회사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했다.“진 기사님과 부대표님은요?”“부대표님은 위층에 계시고 진 기사님은 보름째 안 오셨어요.”안내데스크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혹시 시찰 오신 건가요?”매일 외출한다면서 회사에는 보름 동안 오지 않았다면 그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나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나는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네, 뭐 그런 셈이죠.”위층으로 올라가 허진호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가 들어오라고 하자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나를 보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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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0화

여자 목소리를 들은 허진호는 다리가 풀릴 뻔했다. 그는 급하게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으며 다급하게 말했다.“죄송합니다. 번호를 잘못 눌렀네요. 이 번호 진정우 씨 번호가 아닌 것 같아요.”“아니요, 틀림없어요.”그가 휴대폰을 집기 전, 나는 단호히 그의 말을 부정했다.허진호의 입가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수화기 너머로 물었다.“누구시죠? 어떻게 이 핸드폰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혹시 주우신 건가요?”그는 놀랄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상대방을 위해 핑계까지 만들어주고 있었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훔친 것도 주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 손에 있을 뿐이죠. 왜요? 안 되나요?”“당연히 안 되죠. 남의 핸드폰을 멋대로 갖고 계시만 어떡해요. 경고하는데요, 그 사람 유부남이에요. 아내가 알면 큰일 날 거예요.”허진호는 내 얼굴을 몇 번이나 훑었다.“그래요? 아내가 꽤 속이 좁은가 봐요. 진정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요?”상대방은 대놓고 나를 깎아내렸다.허진호의 이마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용설아 씨야말로 잘 어울리는 사람이죠. 부모님이 주선한 훌륭한 배우자이신걸요?”상대가 바로 용설아였다는 걸 첫마디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알아챘다.최근 소식이 없길래 멀어진 줄 알았는데 진정우 곁에 있었던 것이다.“지원 씨도 함께 계셨군요.”용설아는 내 목소리를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네. 지금 정우 씨는 샤워 중인가요? 아니면 막 옷을 갈아입는 중인가요?”나도 장난스럽게 받아쳤다.허진호는 급히 중재에 나섰다.“그만하세요. 정말 그냥 평범한 친구일 뿐이에요.”그의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용설아가 짧게 대답했다.“옷 입고 있어요.”허진호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휴대폰을 낚아챘다.“제발 그만 좀 하세요. 사람 하나 잡을 일 있어요?”“사실이에요. 못 믿으시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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