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941 - Chapter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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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1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우가 떠난 뒤 안리영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다윤아, 남편 다루는 기술이 있네. 나중에 남자 찾게 되면 너한테 배워야겠다.”“커피랑 디저트 만드는 법만 해도 벅찬데 이제 남자 다루는 법까지? 학비는 준비해 왔어?”나는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었다.“너 진짜 치사하다.”안리영은 내 손을 툭 치며 웃었다.우리가 서로의 손을 치며 한창 웃고 있을 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당 위로 하얀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눈이야!”우리 둘은 동시에 기뻐서 외쳤다.나는 집 안에 있는 진정우를 향해 소리쳤다.“정우 씨, 빨리 나와. 눈이 오고 있어.”그는 조용히 걸어 나와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응, 너와 함께 보려고 나온 거야.”그제야 오늘 그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는 걸 알아챘다.안리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러면 난 이제 가볼게. 두 사람 애정행각 보는 건 사절이야.”안리영이 진짜로 돌아서려 하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왜 이래? 우리끼리.”“그리고 혼자 눈 보는 건 좀 쓸쓸하잖아. 큰길이라도 나가서 멋진 남자가 있나 구경이라도 해야겠다.”안리영은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마당의 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그대로 멈춰 섰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가운데 한 남자가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짙은 색 코트에 같은 톤의 터틀넥을 입고 있었는데 눈송이가 그의 머리와 어깨 위에 하얗게 쌓여 있어 마치 겨울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그녀가 멍하니 서 있자 조시언이 다가오며 말했다.“모르는 척할 거야?”그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에 안리영이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삼촌, 여긴 왜 왔어?”“널 데리러 왔지.”조시언의 말에 안리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나도 차 갖고 왔어.”안리영은 운전해 온 차를 가리켰다.내리는 눈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이상하게 더 깊어 보였다. 조시언은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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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2화

눈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극한의 로맨스일지도 모른다.늦게 찾아온 첫눈은 해동의 사람들을 거리로 이끌었고 길 위는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안리영은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그저 아름다웠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세상을 감싸듯 내려앉았고 그 속에선 모든 것이 조용하고 느리게 흘렀다.순백의 세상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맑고 투명해 보였다.“삼촌, 나 내려서 걷고 싶어.”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론 어딘가 부족한 듯 안리영이 입을 열었다.“그래. 앞에 세울게.”조시언은 언제나처럼 그녀의 말을 기꺼이 들어주었다.차가 멈추자마자 안리영은 기다릴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고는 길가에서 고개를 들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순간, 마치 철없는 아이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조시언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눈발은 점점 더 굵어졌고 금세 도로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눈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뽀득거리는 소리도 꽤 듣기 좋았지만 무엇보다 더 듣기 좋았던 건 안리영의 웃음소리였다.“삼촌!”안리영은 소리치며 눈덩이를 움켜쥐고 조시언을 향해 던졌다.조시언은 피하는 척하다 눈을 고스란히 맞고 말았다.그 모습에 안리영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은 은방울처럼 맑아서 눈송이들마저 그녀의 웃음에 이끌려 함께 웃는 것 같았다.조시언도 덩달아 웃었고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졌다.“조시언!”갑작스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SUV 한 대가 눈발을 뚫고 다가왔고 창문 사이로 서민호의 웃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요즘은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져서일까 남자든 여자든 하나같이 다 잘생긴 얼굴이었다.“어머, 여자 친구와 함께 첫눈 데이트 중이셨군.”서민호는 일부러 안리영을 못 알아본 척 장난스럽게 말했다.안리영은 늘 추위를 타서 외출할 땐 모자와 목도리를 단단히 하고 나왔다.작은 얼굴만 내놓고 있어서 처음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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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3화

서민호는 백미러로 한 번 더 힐끗 그녀를 보며 말했다.“알겠어, 난 돌아갈게.”“갓길로 비켜.”조시언이 눈짓하자 서민호는 휘파람을 불며 차를 옆으로 뺐다.“좋은 성과 있길 바란다.”그가 창문을 내리며 말을 건넸다.“리영아, 나 기억나?”안리영은 속으로 아니꼽게 생각했다. 분명 그녀를 알아봤을 텐데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놀리는 게 분명했다.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조시언과는 형제처럼 가까웠지만 안리영은 그를 삼촌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는 삼촌이라는 말이 나이 들어 보인다며 오히려 그녀를 동생이라 불렀다.“민호 오빠.”그녀는 그의 농담을 무시하듯 담담히 말했다.“재밌게 놀아. 삼촌 마음 괜히 헛되이 하지 말고.”서민호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말해버린 상태였다.안리영은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서민호의 차가 떠난 뒤, 조시언이 다가와 그녀의 모자와 목도리에 쌓인 눈을 조심스레 털어주었다.“춥지 않아?”“안 추워. 땀이 날 정도야.”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몸이 달아올랐던 것이다.“너무 뛰지 마. 감기 걸려.”조시언은 그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뛰어다닌 탓에 얼굴이 발그레했다.그의 손이 저절로 그녀의 뺨에 닿았다. 차가운 손끝에 깜짝 놀란 안리영은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섰다.순간,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조시언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본 안리영은 자신이 과하게 반응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급히 말했다.“너무 차가워서...”조시언은 그제야 손을 거두어 주머니에 넣었다.“그림 그려줄까?”안리영은 순간 그가 그림을 잘 그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예전엔 학교 숙제로 제출해야 할 그림을 거의 다 그가 그려줬다. 그녀는 이름만 적으면 됐다.“여기서?”그녀는 눈밭 위에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그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응. 전에도 그려준 적 있잖아. 기억 안 나?”조시언이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안리영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긴 해외 생활 탓인지 많은 기억이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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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4화

안리영의 마음이 살짝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눈을 바라보며 장난을 계속했다.애써 감추려 했지만 조시언은 그녀가 도망치고 있다는 걸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수술을 마친 안리영은 어머니 조수민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엄마? 무슨 일이야?”“너 요즘 삼촌 집에 있지?”조수민의 말에 안리영은 등줄기를 타고 싸늘한 기운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응, 그런데 왜?”“그럼 네 삼촌이 요즘 무슨 일 하는지 알겠네?”뜻밖의 질문에 안리영은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주 여사님, 그냥 솔직히 말해줘. 이렇게 돌려 말하면 혈압만 오르고 더 불안하잖아.”안리영은 수술실을 나와 자신의 휴게실 안으로 들어섰다.“너 삼촌, 바람났어.”조수민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안리영은 순간 멈칫했다. 표현은 강했지만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애초에 연인 사이도 아닌데 바람이라니.하지만 어머니가 말한 ‘바람’의 뜻은 짐작이 갔다. 삼촌이 친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아챈 것이다.계속 불안했는데 결국 이렇게 터져버린 셈이었다.“어떻게 알았어?”안리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너도 알고 있었지? 왜 말 안 했어, 리영아!”놀란 안리영은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떼었고 곧 어머니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너희 다 컸다고 이제 다 나를 떠나는구나...”“엄마, 그래서 말 안 한 거야. 엄마가 이렇게 반응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삼촌도 그냥 친엄마를 한번 찾아보려는 거지, 우리를 떠나려는 건 아니잖아.”안리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네가 뭘 안다고 그래? 찾아보면 돌아가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야. 진짜 돌아갈 생각 없었으면 애초에 찾지도 않았겠지.”조수민은 단호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절대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사실 안리영도 예전에 이 질문을 조시언에게 던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알게 될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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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5화

안리영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퇴근 시간까지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조시언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간절했지만 막상 퇴근 후 곧장 찾아갔을 때 늘 제시간에 돌아오던 조시언은 보이지 않았다.안리영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삼촌, 지금 어디야?”“본가에 내려왔어.”그 말에 안리영은 더 긴장했다.“주 여사님도 계셔?”“응. 시간 되면 너도 와.”그 한마디에 예전에 조시언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늘 응급처치 준비를 하라고 했던 말이었다.안리영은 조부모님의 연세를 떠올리며 혹시 모를 충격을 생각했다. 직접 가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조씨 가문의 본가로 달려갔다.집 안에는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있었다.부모님이 조부모님 곁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걸로 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미리 모인 듯한 분위기였다.조시언은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심문을 받는 죄수 같았다.하지만 그 죄수는 어쩐지 품위 있어 보였다. 고급 정장을 갖춰 입은 그는 오히려 노년 세대를 압박하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집 안 공기는 무겁고 침울했다. 조수민은 눈이 벌게졌고 외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으며 외할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안리영은 마음을 다잡고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은 갔지만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자 일부러 밝게 말했다.“왜 다들 말이 없어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수민이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안리영은 괜히 분위기에 휘말린 기분이 들어 억울했다.거실에는 소파 두 개가 있었고 하나는 어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안리영은 조시언 옆에 앉고 싶지 않았다. 괜히 조수민에게 또 오해를 살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외할아버지가 앉던 안락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조수민이 날카롭게 외쳤다.“거기 네가 앉을 자리야?”안리영은 바늘에 찔린 듯 벌떡 일어났다.그때 조시언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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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6화

안리영은 조시언에게 이끌려 마당으로 나왔다. 오래된 감나무엔 곧 떨어질 것 같은 잎사귀가 앙상한 가지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비바람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은 그 잎은 참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차가운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가 흔들렸고, 하늘은 더없이 쓸쓸해 보였다.하지만 안리영의 심장은 요동쳤고 등줄기에는 땀이 맺혔다.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불안이 그녀를 덮쳤다.조시언의 손은 유난히 따뜻했다. 그녀는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말했다.“삼촌, 내가 말했잖아. 이러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마음만 아프게 한다고.”조시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짙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안리영은 그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그의 코트 단추만 응시했다.“이유를 듣고 싶다 했잖아.”조시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안리영은 순간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심장은 더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삼촌, 무슨 이유가 됐든...”“그 이유가 바로 너야.”그는 안리영의 말을 끊고 단호히 말했다.포개 쥔 그녀의 두 손이 떨렸다. 항상 아래로 향하던 시선이 불쑥 들리더니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깊은 바다의 소용돌이처럼 그녀를 끌어당겼다.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삼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엄마도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는데 그런 말 들으면 엄마 진짜 나 죽이려 할 거야.”“내가 조씨 성을 쓰지 않고 조씨 가문과 혈연관계가 없어야만 너와 함께할 수 있어.”이어진 조시언의 말에 안리영은 숨이 멎는 듯했다.온몸이 굳었고 머릿속은 윙윙 울렸다. 누군가 머리를 세게 내리친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사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조시언 역시 그것을 암시해 왔다.하지만 추측과 상상은 언제든 밀쳐낼 수 있었다. 그가 직접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칠칠아, 네가 놀랄 줄 알았어. 그래서 차마 말하지 못한 거야. 하지만 너도 느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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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7화

안리영은 자신이 대체 어디서 실수했기에 조시언에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 끊임없이 되짚었다.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불 보듯 뻔했다.절대 그렇게 되어선 안 됐다. 조시언이 주가와의 혈연을 부정한다고 한들 세상의 시선에서 그들은 여전히 삼촌과 조카였다. 그런 둘이 연애한다는 건 상식과 도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그런 말을 입에 올린 조시언이 정말 미쳐버린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그녀는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조시언의 마음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뿐이었다.문제는 누구를 만나냐는 것이다.구안석?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너무 비정한 짓이었다. 필요할 때 찾고 필요 없으면 떠나는 식의 만남은 그녀답지 않았다.답을 찾지 못한 채 안리영은 차를 도로 갓길에 세우고 모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대로 밀려들었다. 그 찬 공기로라도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안리영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나뭇잎 위에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조각하고 있었다. 최근 인터넷에서 나뭇잎에 정교한 그림을 새기는 사람을 본 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안리영은 내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고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잠깐만 기다려. 이거만 마저 끝낼게.”그런데 그녀가 불쑥 말했다.“나 남자 소개해 줘.”손이 멈칫하며 나뭇잎이 찢어졌다. 오늘만 몇 번째 실패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망가져도 아깝지도 않았다. 나는 칼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일 있어? 아니면 진짜로 아무나 필요한 거야?”안리영은 침묵하다가 말했다.“그냥 그런 걸로 하자.”그녀의 말은 이상하게 어딘가 억지스러웠다.“무슨 일이야? 솔직하게 말해봐.”안리영은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집에서 자꾸 결혼하라고 재촉해서 나도 연애 좀 해보고 싶어. 혼자 있는 거, 이젠 좀 지겨워.”그녀는 내 시선을 피했고 나는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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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8화

“어떻게 진짜 허진호 씨 전화번호를 줄 수 있어? 안리영은 진짜 전화할 사람이라고!”나는 진정우에게 툴툴거렸다.진정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다리를 주물러주었다.“안리영 씨랑 조시언 씨는 완전 딴판이야. 한 사람은 타조 같고 한 사람은 느릿한 당나귀 같달까. 이미 마음을 전하려 다가가긴 했지만 괜히 리영 씨를 놀라게 할까 봐 조심스러운 거지. 구안석 일만 아니었으면 평생 짝사랑으로 끝났을 사람일 거야. 이제 막 고백했으니까 뭔가 자극이 필요해.”그는 두 사람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안리영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걱정됐다.“그런데 안리영은? 리영이가 거절한 이유도 이해돼. 사람들 눈에는 조시언이 아직도 삼촌인데 둘이 사귀기라도 하면 욕 엄청나게 먹을걸. 천벌 받는다고 난리 나겠지.”늘 두 사람 사이를 장난처럼 떠들긴 했지만 두 사람이 넘어야 할 위기가 얼마나 많은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감당해야 할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시언 씨는 이미 각오했어. 리영 씨를 잘 지켜줄 거야. 리영 씨는 아직 자기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걸로 보여. 이번 일을 통해 진짜 자기 마음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알게 되겠지.”진정우는 마치 관찰자처럼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말했다.“진 선생님. 연애 상담소 차려도 되겠어.”나의 농담에 진정우는 웃으며 받아쳤다.“연애 상담소라, 그쪽으로 전직하라는 건가?”“그런데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나 처음 만났을 땐 완전 연애 초짜였잖아. 그때도 연기한 거였어?”나는 그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그렇지 않고서야 널 어떻게 잡았겠어?”그는 나를 번쩍 들어 무릎에 앉혔다.임신으로 체중이 5킬로나 늘고 배도 제법 나온 내 몸을 이렇게 쉽게 안아 올리는 걸 보니 역시 든든한 남편을 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요즘 진정우는 집에서도 운동하고 헬스장까지 다니며 부지런히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사람 같았다.임신 기간이 남편의 인내심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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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9화

임신 10개월 동안 힘들었던 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 진정우도 마찬가지였다.그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사이 나는 안리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너무 섣불리 행동하지 마. 그리고 허진호 씨 좋은 사람이야. 괜히 상처 주지 말고.”“다윤아, 너 지금 누구 편이야?”안리영이 불만스럽게 말했다.“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그 사람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내가 그 사람에게 빠져버릴까 봐 걱정은 안 되고?”나는 잠시 진정우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네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넌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어. 넌 허진호 씨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넌 내가 얼마나 못된 여자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난 싫으면 싫은 거야.”안리영은 자신을 낮춰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리영아...”“설득해도 소용없어. 이미 그러기로 마음먹었으니까. 허진호 씨가 거절하지만 않는다면 계속 연락할 거야.”안리영은 단호하게 말했다.“만약 허진호 씨가 거절한다면?”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세상에 남자가 한둘이야? 거절하면 소개팅하든지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는 거지 뭐.”“됐다. 나 짐 챙겨야 해서 이만 끊을게.”안리영은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다.안리영이 조시언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허진호에게 접근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허진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다.허진호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정말요?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요?”그는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신이 나 있었다.“알겠어요. 저도 마침 여자 친구가 없던 참에 한번 진지하게 만나볼게요. 제대로 연애해 보자고요.”“부대표님, 저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장난 아닙니다.”나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했다.“저도 진심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분 카톡 아이디 좀 주세요. 지금 바로 연락해 볼 테니까.”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정말이지 딱 맞는 만남이었다.한편, 안리영은 서둘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조시언이 돌아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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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0화

머릿속이 하얘진 안리영은 조수민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왜 그렇게 쭈그리고 있어? 고개 좀 들어서 날 봐.”조수민은 친어머니였다. 안리영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안리영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모르겠어. 나한테 묻지 마.”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짐을 챙기려 했지만 조수민은 그런 안리영의 손을 붙잡았다.“날 속이려 하지 마.”“엄마,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 삼촌이랑 나는 다른 사람이야. 삼촌 속을 내가 어떻게 다 알아? 나한테 전부 털어놓을 리도 없고.”안리영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그 말에 조수민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그렇긴 하지.”안리영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이대로 두면 조수민은 기어코 조시언을 찾아가 무슨 일이든 캐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무심코라도 뭔가를 흘리게 되면 자신까지 곤란해질 게 뻔했다.그래서 안리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엄마, 삼촌이 엄마 동생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에 간섭할 순 없어. 아들도 자기 사생활이 있는 거잖아. 삼촌이 누구를 좋아하든 언젠가 직접 데려왔을 때 알게 되겠지.”“시언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갑자기 왜 조씨 가문과 인연을 끊으려 드는 건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거야. 그 여자가 조씨 가문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거야?”조수민의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고 마침내 분노가 드러났다.“원한 같은 건 없어.”안리영은 거의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없는데 삼촌이 저럴 이유가 있어? 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해하는지 알아?”조수민의 말끝에는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그건 삼촌이 선택한 일이야. 엄마도 상황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 짓지 마.”안리영은 억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조시언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그를 삼촌으로 묶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이 일의 책임까지 떠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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