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희도와 원호가 인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희도는 완벽하게 차려입은 슈트에, 무릎까지 오는 갈색 코트를 입어 다리가 더욱 길고 곧아 보였다. 희도는 고개를 숙여 인아를 내려다보다가, 옆에 있는 서영에게 시선을 잠시 돌렸다. 인아는 그 시선에 머리를 숙였다. 이미 느슨해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얼굴 주변으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마치 맑은 옥에 흠집이 난 듯 엉망이었다. 서영은 아무 말 없이 눈살을 찌푸렸고, 굳이 희도에게 대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말다툼을 피했다. 그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준도 현장에 도착했다. 서준은 희도와 인아를 보자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서영 앞에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문서영, 이만 그만해. 나랑 같이 돌아가자.” 서영은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서준은 그녀를 이끌고 떠나려 했고, 서영은 인아를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두 사람이 떠나고 한참 후에야, 희도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밤새울 생각이야?” 인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희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인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희도는 말없이 뒤돌아섰고 코트가 바람에 휘날리면서 인아의 코끝에 낯선 향기가 스쳤다. 인아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원호가 차 문을 열자 희도가 단호하게 말했다. “먼저 가.” 원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문을 닫고 길을 비켜주었다. 인아는 차에 탔지만, 차 안은 추웠고 두 사람 모두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손가락을 꼬며 불안에 휩싸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 희도는 코트를 벗었다. 장옥순은 부엌에서 절뚝거리며 나왔고, 눈에는 기쁨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희도의 코트를 받으려고 다가갔다. “인아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할까 싶었어요.” 희도는 장옥순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그녀의 다리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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