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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열여덟, 스물 다섯: Chapter 71 - Chapter 80

100 Chapters

제71화

말을 마친 나상민이 나를 바라봤다.“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닌데 또 막상 보면 막장 같기는 하네.”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장은 아닌데 듣다 보면 막장인 이야기.직접 겪기 전까지는 드라마나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그 소재가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그러니까 정민규를 힘들게 하려고 나한테 접근한 거야?”내 질문에 나상민은 침묵했다.사실은 그것보다 정민규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번 생에는 얼마나 나에게 잔인하게 굴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하지만 전생에 내가 겪은 일을 말하면 아마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이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나상민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내 질문에 답했다.“처음엔 그랬지만 이젠 아니야.”그는 미간을 꾹 눌렀다.“그동안 엄마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고 육체적인 질병에도 시달렸어. 마음속의 집념이 광기가 되어 엄마를 괴롭히고 있지. 지나친 사랑과 증오는 전부 극단적인 거야.”말하며 정민규의 미간에 드리워졌던 우울함이 갑자기 사라졌다.“나도 그 사람들의 사랑과 증오에 갇히고 싶지 않아. 나도 내 삶이 있어, 나는 그 사람들 증오가 만들어낸 괴물이 아니야.”수술실 불이 꺼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연지선이 수술실에서 실려나오자 나상민이 다가갔고 나는 일어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밖으로 나갔다.구름 사이로 아침 햇살이 내비쳤고 내게 보이지 않는 구석에 정민규가 한참을 서 있었다.병원에서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아침 9시 30분이었다.다들 수업하러 갔고 나는 24시간 가까이 깨어 있다 보니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결국 자체 휴강하고 기숙사에서 쉬었다.내내 잠을 자고 눈을 떴을 땐 벌써 오후 3시였고 휴대폰을 살펴봐도 할 일은 없었다.한참을 더 자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리며 전화를 받자 이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성아, 너 지금 어디야?”다소 불안한 목소리에 무슨 일이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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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아침 10시에 누군가 익명으로 단톡방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길거리에 서서 장 대표를 기다리는 내 모습과 다음 장엔 검은색 벤츠 한 대가 내 앞에 멈춰서는 장면이었는데 차의 검은색 창문이 내려가면서 장 대표의 얼굴이 반쯤 드러났다.반쪽 얼굴만 봐도 장 대표가 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사진은 전부 장 대표의 차를 타고 단성대를 빠져나가는 내 모습이었다.사진이 올라온 후 많은 사람이 나와 장 대표의 관계에 수군거렸고 장 대표의 정체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사진만 공개됐을 땐 그나마 다들 이성적으로 선 넘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들 열띤 토론을 이어가던 중 또 누군가 나와 장 대표가 팔짱을 끼고 호텔에 들어가는 사진을 보냈다.이 사진이 올라오자 단톡방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모두 내가 재벌의 스폰을 받는다고 확신했다.한창 단톡방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을 때 이혜린이 돌아왔고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나를 보더니 그녀가 다가와 휴대폰을 빼앗아 갔다.“은성아, 이런 거 보지 마. 아무것도 모르고 헛소리하는 거잖아. 난 처음부터 무시했어.”오랫동안 휴대폰을 움직이지 않고 들고 있다 보니 조금 뻣뻣해진 손을 움직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난...”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이효정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들어왔다.“어머, 우리 학교 인기 스타 오셨네. 그 늙은 남자가 한 달에 얼마나 줘?”“무슨 헛소리야?”뒤이어 들어온 권수아가 이효정의 말을 듣고 차가운 얼굴로 그녀 앞에 다가갔다.“입 함부로 놀리지 마. 그러다 뺨 맞으니까.”“때려봐.”이효정은 앞으로 나서서 권수아와 맞섰다.“난 너희들이 왜 매번 고은성만 싸고도는지 모르겠어. 걔가 몸 팔아서 번 돈을 나눠주기라도 했니?”짜악-내 손이 이효정의 뺨을 후려쳤다.“경고하는데 말에도 법적 책임이 따라.”이효정 앞에 서서 내게 맞은 한쪽 얼굴을 가리는 그녀의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집에서 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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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선생님 사무실.나와 이혜린, 권수아, 이효정이 책상 앞에 나란히 서 있었고 선생님은 화가 나신 듯 우리를 가리키며 한동안 욕을 하다가 약간의 벌을 주시고는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하셨다.우리가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선생님이 나보고 잠깐 기다리라며 둘만 교무실에 남았을 때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은성, 나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으면 인터넷 말은 믿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 일이 학교와 너에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테니 잘 해결했으면 좋겠다.”장 대표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 것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여자가 비싼 외제 차에 탄다는 건 단성대에서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닌데 어쩌다 내가 저격당하고 여론의 주인공이 됐는지 모르겠다.“그럴게요.” 아무리 차분함을 유지해도 매일 많은 사람에게 악의적인 추측을 당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선생님 사무실에서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 나를 쳐다보았지만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높이 들어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갔다.기숙사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이혜린과 권수아가 내게 다가왔다.“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은성아, 다른 사람들은 무시해. 우린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이혜린과 권수아를 보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세상에는 무차별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도 많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지켜주는 사람도 있었다.전생에는 느껴보지 못한 거라 그들을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다가가 둘을 안자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평소처럼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밤에는 잠을 설치거나 악몽을 꿨다.꿈속에서 난 고민욱의 손에 끌려 장 대표의 집으로 가 강제로 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안일까지 하고 있었다.기다리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라 돈을 주고 게시물을 올린 사람의 IP를 추적해 누가 사진을 올린 건지 찾아내고 싶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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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그렇게 말하며 그들 중 한 명이 손을 뻗었고 나는 그 손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금방이라도 내가 달려들려고 할 때 마디가 분명한 손이 내게 다가온 손을 덥석 잡더니 날카로운 타격과 함께 함부로 입을 놀리던 남자는 어깨 너머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쿵’ 소리가 울리며 주위 사람들이 조용해졌고 고개를 드니 정민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또 누가 헛소리를 해?”정민규는 단성대에 입학하고부터 인지도가 높았다. 잘생기고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진세라와 열애가 알려지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집안 배경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많은 사람이 더 이상 구경하지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뜨기 급급했다.시간을 너무 지체했는지 택배기사는 꽃다발을 두고 사라졌다.정민규는 내 손목을 잡아끌며 학교 밖으로 나갔고 그가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 충분히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나는 더 이상의 소란스러움을 겪고 싶지 않아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정민규, 뭐 하는 거야? 이거 놔!”정민규는 안 들린다는 듯 한 발짝도 멈추지 않고 차를 주차한 곳으로 가 마세라티 문을 열더니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그가 나를 밀어 넣는 순간 서둘러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정민규가 말했다.“쓸데없는 짓 하지 마. 문 잠갔어.”말을 마친 그가 마세라티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정민규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나중엔 차가 붕 뜨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그가 차를 몰고 큰 도로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빠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물었다.“어디로 가는 건데?”스포츠카는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고 안전벨트를 꽉 붙잡은 나는 이런 무중력 상태가 무서웠다.“정민규, 천천히 운전해!”엔진의 굉음이 귓가를 맴돌았고 인간은 극한의 속도에서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다.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죽고 싶지 않았다. 지난 생에도 원하는 것 한번 이뤄보지 못하고 예쁜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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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정민규는 내가 차멀미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구토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당황하더니 차에서 생수 한 병을 들고 달려와 내게 건네주었다.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구역질해도 토할 게 없었다.“물부터 마셔.”정민규가 건네는 물을 뿌리치고 일어서서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이제 만족해?”“몰랐어...”정민규는 순간 어쩔 줄 몰라 했다.“전에 같이 레이싱할 땐 좋아하길래 난 네가...”정민규는 날 보며 멍하니 입을 열었다.“미안해, 네가 차멀미하는 줄 몰랐어.”그를 바라보며 양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 죽기 살기로 그를 쫓아다녔을 땐 그와 함께 레이싱, 스쿠버 다이빙, 암벽 등반까지 했고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는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큰 흥미를 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고 이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며 더 이상 그에게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었다.“나 피곤해.”정민규의 뼈에 사무칠 정도로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이만 돌아가면 안 될까?”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교외의 마을 어귀에 있는 것 같았고 저 멀리 집들이 보이지만 걸어가기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가끔 소형 스쿠터가 지나다니는 걸 보며 누군가 역까지 데려다 줄 수 없을까 잠시 고민했다.“고은성, 왜 갑자기 날 미워하는 거야?”정민규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입을 벙긋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하늘에 먹구름이 두껍게 깔려 있었고 온도가 낮아 부는 바람에 얼굴이 따끔했다.정민규는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대체 왜?”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엔 약간의 억울함의 담겨 있었다.며칠 전 꿨던 꿈처럼 그는 내게 왜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지 집요하게 물었다.“난 너 안 싫어해.”고개를 돌려 바람에 파문을 일구는 수면을 바라보았다.“날 싫어하지 않는데 왜 나를 피하는 거야?”고여있는 물이 꼭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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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난 모르겠어.”정민규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말을 이어갔다.“온통 이해가 안 되는 것 천지야. 그러니까 고은성, 넌 내게 이 모든 걸 이해시켜야 할 책임이 있어.”그는 오늘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의도로 고집을 부리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그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한 번의 설명으로 앞으로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거다.입을 벙긋하며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고 워낙 가까이 있어 그의 휴대폰 화면 속 글자가 너무 쉽게 보였다.[진세라]나는 뒤돌아 마세라티를 향해 걸어갔다.“전화 받아. 여자 친구가 급한 모양이네.”정민규가 통화를 할 때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목적지를 말하니 거절당했다.정민규와 진세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이동 수단이 없었던 나는 마세라티에 기대어 얌전히 정민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5분이 지났는지 10분이 지났는지 정민규는 통화를 마친 뒤 다가왔다.“시간도 늦었고 여기 추워. 돌아가자, 정민규.”정민규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열었고 나는 문을 열고 차에 탔다.돌아가는 길에 정민규는 평온하게 차를 몰았고 나는 의자 높이를 조절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편안한 자세를 찾았다.가는 내내 아무 말도 없다가 학교에 도착한 내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정민규가 입을 열었다.“사람들에게 말해. 그날 밤에 나랑 같이 있었다고.”그렇다. 그날 밤 나는 장 대표의 차에 탄 것 말고도 파티에서 정민규와 만났고 그가 한 말이 해결책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글을 올린 사람의 속내를 알지 못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고마워.” 나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하지만 필요 없어.”“고은성.”이제 막 두 발짝 걸어가는데 정민규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고개를 돌려도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 않았다.“나 미워하지 마.”잠시 당황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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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이효정, 또 무슨 짓이야?” 이혜린이 이효정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찡그렸다.며칠 전 선생님에게 교육받은 후 이효정은 한동안 잠잠했고 강약약강인 그녀의 성격을 잘 알기에 나는 일부러 자극했다.“네가 날 안 쳐다보면 내가 널 쳐다보는지 어떻게 알아?”“너!” 이효정이 화를 내며 나를 노려보자 나는 그녀가 방금 휴대폰을 넣은 가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나 뭐?”“내일도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이효정은 화를 억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돌아서더니 짐을 챙겨 기숙사를 나섰다.“망할 년!”작게 말했지만 내 귀에 분명히 들렸고 열렸다 닫히는 기숙사 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내 추측대로 글을 올린 사람이 이효정이길.시선을 내리고 휴대폰을 꺼내 프로그래머에게 이효정의 SNS 계정을 보내며 찾아보도록 했다.“미친년.”이혜린은 힘차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짧게 욕설을 뱉고는 의자를 내 옆으로 끌고 왔다.“이효정 때문에 정말 머리가 아파. 은성아, 방금 일부러 열받게 한 거야?”일부러 자극한 거냐고? 당연하지.내가 틀린 게 아니라면 이효정은 나에 대해 소문을 낼만큼 머리가 좋지 않으니 배후에 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다.살짝 웃으며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발코니의 위치를 바라보았다.“내가 오기 전에 계속 발코니에 있었지?”아무 상관 없는 질문에 이혜린은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의자를 끌고 가 펜을 들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맞아, 발코니에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어.”내가 짧게 대꾸하자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왜 그래?”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과제나 해. 난 먼저 씻을게.”...다음날.첫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휴대폰을 열어보니 게시판에 날 내연녀라고 올린 글 밑에 새로운 내용이 생겼다.익명의 게시자는 어젯밤 정민규의 차에서 내린 내 사진을 몇 장 더 올렸고 사진 속 정민규의 얼굴은 어둠에 잘 가려져 있었지만 내 모습은 적나라하게 찍혔다.그러면서 작성자는 마세라티 차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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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게다가 정민규가 나를 도와주고 데려갔다는 것은 모두가 본 명백한 사실이라 한동안 진세라는 동정의 대상이 되었고 나는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나쁜 년이 되었지만 정민규의 지위 때문에 감히 누구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학식을 먹으러 갔더니 친절하던 식당 아주머니가 내게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고 어느 테이블에 가도 곧바로 나 혼자만 남았다.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든 뻔뻔하다는 욕을 덧붙였고 이혜린과 권수아마저 내게 정민규와의 관계를 묻기 시작했다.그들에게 정민규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딱히 말해서 좋을 것도 없으니 그저 날 믿어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하지만 한 가지 일이 반복되다 보면 무작정 믿기도 어려운 것이었다.이혜린은 그나마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권수아는 아니었다.“어떻게 믿어. 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욕만 먹는데.”학교 측에서도 일이 계속 화두가 되자 날 찾아와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퇴학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기숙사 내 분위기가 싸늘해지며 이효정을 제외한 모두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내가 욕 먹기 시작한 날부터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쇼핑하러 다녔고 오늘은 치마, 내일은 외투 이런 식으로 매일 새로운 물건을 샀다.사흘째 되던 날 그녀가 새로 나온 휴대폰을 사 왔을 때 경찰이 찾아왔다.경찰이 이효정이 누구냐고 묻자 이효정은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이효정인데요, 무슨 일이죠?”“허위 사실 유포로 신고 접수되었습니다.”“누가요?”이효정은 입술을 다물었다.“경찰 아저씨, 전 안 그랬어요. 그런 말 믿지 마세요.”“그래?”자리에서 일어나 이효정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들고 흔들었다.“네가 익명으로 글을 올리고 날 도촬했다는 증거가 내 손에 있는데.”그 말을 하자 이효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렸다....경찰서.이효정의 신상 정보와 함께 나를 몰래 촬영한 카메라와 메모리 카드를 경찰에 제출했고 이를 확인한 경찰이 이효정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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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진세라가 시켰어.”이효정은 내가 믿지 않을까 봐 두려운 듯 흐느끼며 내 손을 꼭 움켜쥐더니 눈물을 훔쳐내며 말을 이어갔다.“보름 전 네가 기숙사에 돌아오지 않던 날 나를 찾아와서 매일 네가 뭘 하고 어디를 가는지 말해달라고 했어. 그 사진도 전부 걔가 나보고 찍으라고 한 거고 게시물도 마찬가지야.”이효정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았고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찔리는 게 있어 두려운 건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내가 유용한 것만 건지면 돈을 주겠다고 했어.”이효정의 말에도 놀랍지 않았고 심지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일부러 내버려둔 거나 다름없었다.나는 진세라를 잘 안다.정민규를 쫓아다닐 때 정민규가 날 거들떠보지 않았어도 하루가 멀다 하게 날 저격했던 사람이 이젠 내가 정민규를 외면하니 정민규가 날 남다르게 대하는데 어떻게 아무 짓도 하지 않겠나.게다가 숲에서 내가 뺨까지 때렸는데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이효정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물었다.“너한테 얼마 주기로 했어?”라고 물었다.“2천만원.”2천만원, 날 모욕하고 상처 주는 거에 진세라는 2천만원이나 썼다.그녀에겐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이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나는 웃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변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경찰에게 법적으로 진세라의 잘못을 추궁하겠다고 말해두었다....그날 오후 3시.기숙사에서 내려오니 정민규가 아래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보자마자 내게 말했다.“진세라 일로 할 얘기가 있어.”정민규와 진세라 사이에 끼어든 걸로 욕먹은 이후 처음 만나는 거다.전에 게시물을 봤을 때 정민규가 나서서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든 게 아니며 모두 악의적인 루머라고 말해주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다.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상상일 뿐, 그날 나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그는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어디로 갔는지, 무슨 일을 했기에 요란한 소용돌이도 무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그런 걸까, 아니면 어쩌다 날 끌어들이게 된 걸까.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가 날 데려갔기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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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고은성.”정민규는 내 말에 짜증이 난 듯 손을 들어 콧등을 잡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진세라가 감옥에 간다고 해도 너한테 전혀 도움이 안 돼. 너희 집도 사업을 하니까 어떤 게 이익인지 너도 알 거야. 소송 취하하면 내가 돈이나 프로젝트를 넘겨줄게.”“도련님 참 통이 크시네.”웃다가 문득 정민규와 대화를 하는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그는 진세라를 보호하려 했고 나는 그와 반대되는 입장이었다.뒤돌아 컴퓨터 전원을 켜며 화면이 켜지기를 기다리는데 정민규가 허리를 굽혀 책상과 자신 사이에 날 가둔 채 복잡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다.“은성아, 말 들어.”은성아...정민규가 무슨 생각으로 진세라를 위해 내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는지 모르겠다.은성아...누구나 나를 그렇게 부를 수 있지만 정민규는 안 된다.특히 진세라 때문에 부탁하면서 이런 식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건 역겹기만 할 뿐이라 나는 싸늘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마. 그렇게 다정하게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 아니잖아.”정민규와 불쾌하게 헤어진 뒤 그가 가고 나는 변호사에게 카톡을 보냈다.진세라가 아직 구치소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진세라는 정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감옥에 보낼 자신은 없었고 변호사에게 최대한 빨리 이 문제를 처리하라고 지시한 뒤 차분하게 일을 시작했다.오후 5시 30분쯤까지 일하고 나니 드디어 일이 거의 마무리되었다.완제품으로 만들어야 할 몇 가지 디자인을 가지고 작업실에서 나오던 중 장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파티 이후 연락한 적도, 만난 적도 없었고 고민욱도 할머니로 날 협박하지 않았다.그들이 잊어버렸거나 고민욱이 다른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장 대표는 내게 주소 하나를 보내며 오라고 했고 나는 망설였다.사실 망설일 게 없었다.할머니가 고민욱의 손에 있는 한, 죽으라고 해도 가야만 했다.택시를 잡고 장 대표가 말해준 장소로 가니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나를 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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