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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열여덟, 스물 다섯: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공기 중에는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오랜 침묵 끝에 정민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이런 식으로 만나서 미안해.”내가 오기 전에 그들은 음식을 미리 주문했는데 정민규가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시선을 정교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으로 돌렸다.나는 속이 좀 안 좋았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부글부글 끓어올라 자꾸 속이 메스껍고 토하고 싶었다.나는 웃었지만 정민규의 미안함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칼로 상처 주면서 사과한다니.나는 그가 미안하다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앞에 놓인 젓가락을 들어 아무렇게나 음식을 집어 입에 물었다.“날 조사했어?”장민규는 침묵을 지키며 잔을 쥔 손을 무의식적으로 조였다.나는 입안의 음식을 삼키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장 대표가 고민욱이 소개해준 소개팅 상대인 건 알아?”정민규의 안색이 내가 하는 말에 따라 급격히 나빠지더니 나를 보고 입을 벌렸다.나는 고개를 돌려 앞에 놓인 요리를 계속 집어 먹었다.“고민욱은 할머니를 이용해서 나를 장 대표에게 시집가라고 협박하고 예물로 400억을 받아 조인그룹의 구멍을 메웠어.”방금 먹은 음식이 뭔지 모르지만 매콤한 맛에 나는 목이 너무 불편해서 옆에 있던 물인지 술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민규야, 네가 장 대표에게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 매우 궁금해.”정민규는 손의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잔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모르겠어. 미안해. 난...”“말해.”나는 정민규의 말을 끊었는데 그 순간 어떤 설명도 듣고 싶지 않았다.“넌 무슨 조건을 내걸고 진세라를 놓아달라고 했어?”정민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자책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나는 이 룸이 답답해서 더는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일어서서 가방을 집어 들었다.“조인 그룹에 프로젝트를 줘. 너무 많을 필요 없이 구멍만 채울 수 있으면 돼.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내가 변호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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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나는 매우 아팠고 온몸이 뜨겁고 쑤셨다.한밤중까지 참다 견딜 수 없어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약을 찾으려 했다.하지만 나는 나를 과대평가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눈앞의 모든 것이 빙빙 돌았고 곧 나는 땅에 쓰러졌다.이혜린인지 누군지 내 옆에 있다가 소리를 듣고 재빨리 불을 켜고 내가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더니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부축했다.“은성아, 너 왜 그래?”“권수아, 이리나, 어서 일어나 은성이 좀 부축해줘.”곧 온 침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일어났다.“뜨거워.”친구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자 이혜린은 손을 뻗어 나의 이마를 만졌다.“은성아, 너 열 나. 어떡해?”나는 거의 똑바로 앉아 있지 못하고 침대 옆에서 이혜린의 몸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해열제를 먹고 한잠 자면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내가 이렇게 말하자 친구들도 다른 말을 하기가 어려워 입을 다물었다.다행히 권수아의 집에서는 그녀가 학교에 오기 전에 체온계를 포함한 많은 비상약을 준비해 주었다.친구들은 내 체온을 재고 나서 뜨거운 물을 한 잔 주었고 내가 해열제를 먹고 자리에 누운 후에야 모두 쉬었다.해열제를 먹은 지 30분이 지나자 효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열이 내리자 나를 지켜주던 이혜린은 비로소 잠을 청했다.하지만 날이 밝을 즈음에 나는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엊저녁까지만 해도 38도 8도였던 체온이 지금 39도를 넘었다.나는 온몸아 불덩이처럼 뜨거워 숨을 내쉬는 것조차 열기를 띤 것 같았다.그들은 내가 바보가 될까 봐 서둘러 휴가를 내고 나를 병원에 데려갔다.병원에 가서 또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거의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그들은 오늘 전공 수업이 있어서 나는 링거를 꽂은 후 어서 돌아가라고 했다.수액이 거의 다 떨어졌을 때 나는 고민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통화에서 고민욱는 매우 기뻐했다.“은성아, 조인 그룹이 오늘 아침에 자발적으로 우리와 협력에 관해 얘기하자고 찾아왔어. 민규도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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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병원에서 나오니 오후 3시였다.변호사 쪽에서 이미 사건을 취하했고 정민규가 진세라를 데려간 후 그는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나는 핸드폰을 클릭해서 한 번 보고는 화면을 잠갔다.정민규랑 진세라 그들이 뭘 하든 난 상관없었다. 이제 그들이 뭘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할머니가 건강하고 평안하게 노후를 보내도록 잘 모시는 것이었다.나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몸에 외투를 두른 채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다.내가 손을 뻗자마자 날개 달린 벤틀리 한 대가 내 앞에 멈추었더니 검은 차창을 내리며 나상민이 빙그레 웃으며 인사했다.“하이, 은성, 네가 왜 여기 있어? 일부러 나를 찾아온 거야?”나는 그를 바라보며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덤덤하게 말했다.“할 일 없어? 비켜, 택시 탈 거야.”내 목소리는 열이 났기도 했고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모래를 한 움큼 먹은 것처럼 힘겹게 들렸다.나상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 문을 열고 내려왔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러면서 손을 뻗어 내 이마를 만져보려 했다.그의 손이 내 이마에 닿으려고 할 때 나는 머리를 옆으로 비켰다.그가 버티고 있어 나는 그를 에돌아 가려 했는데 막 두 걸음 걷자마자 그가 손목을 잡았다.나상민의 목소리가 한껏 진지해졌다.“너 열이나.”나는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서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이거 좀 놓으면 안 돼?”“나랑 병원에 가자.”나상민은 표정을 차갑게 하고는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갔다.그 순간 나는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몰라 그를 뿌리치고 손을 들어 뺨을 한 대 때렸다.손이 그의 얼굴에 떨어졌을 때 나는 후회했다. 나상민의 얼굴에 손톱에 긁힌 흔적을 났는데 그걸 보니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었다.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츠리며 나는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미안해, 난...”“넌 뭐?”나상민은 영문도 모른 채 나한테 뺨을 한 대 얻어맞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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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나상민은 배가 고팠는지 음식을 한 상 가득 주문했다.곧 음식이 나오자 나는 고개를 숙여 죽을 먹고 나상민은 식사에 몰두했다.몇 입만 먹었는데 더는 먹을 수 없었던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나상민을 보며 물었다.“어머니는 좀 괜찮아?”나상민은 고개를 들어 휴지를 한 장 뽑아 입을 닦았다.“건강엔 무리가 없어. 스스로 조용히 있으면 백세도 문제없을 거야.”“...”그가 농담도 할 수 있는 것을 본 나는 많이 회복된 것 같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밥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 어쨌거나 내가 뺨을 때렸으니 이 식사는 내가 계산하며 사과를 대체하려고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화장실 좀 다녀올게. 너 먹고 있어.”나상민은 치킨을 먹으며 고개를 들었다.“너 지난번처럼 나 혼자 두고 도망가는 건 아니지?”“...”여자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더니 남자의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10분이면 돼.”“그럼 됐어.”나상민이 휴대폰을 두 번 누르자 핸드폰 액정이 밝아졌다.“지금은 3시 51분, 4시 01분까지 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면 너의 기숙사 아래로 너를 찾으러 갈 거야.”“...”나상민은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가 봐.”나는 심호흡을 하며 그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휴대폰을 들고 나갔다.우리가 식사하는 곳은 2층에 있는데 한 바퀴 둘러 보아보았지만 어디서 계산해야 하는 지몰라 웨이터에게 물어보니 아래층에 있다고 했다.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막 카운터에 도착하자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순간 나는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내가 돌아서서 가려고 하자 진세라가 나를 불렀다.“은성아.”나는 못 들은 척했지만 진세라는 끈질기게 쫓아왔다.“은성아, 너도 여기 와서 밥 먹는구나.”진세라는 진짜 바보인지 바보인 척하는 건지, 그리고 진짜 나쁜 년인지 나쁜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감옥에 집어넣고 싶은 사람에게 연기까지 할 수 있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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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나는 화가 난 진세라를 남겨두고 돌아서서 떠났다.나상민과 10분을 약속했는데 나는 이미 5분을 초과해 2층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나를 찾고 있었다.내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찌푸리고 있던 미간 풀었다.“네가 또 도망간 줄 알았어.”나는 다시 우리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안 간다고 했잖아. 난 약속은 잘 지켜.”나상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나도 약속을 잘 지켜. 그러니 내가 전에 한 말을 잘 생각해 봐. 그냥 우리 둘이 함께하자.”예전에 나상민이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반드시 그를 욕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 갑자기 욕하고 싶지 않아졌다.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숟가락을 들고 그릇에 담긴 죽을 휘저었다.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욕하지도 않자 나상민은 옷을 정리하며 눈썹을 치켜들었다.“어때? 내 여자친구가 되는 것에 동의하는 거야?”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젓가락을 내려놓고 눈살을 찌푸렸다.“재수가 없네.”나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가 왜 그러는지 몰라 궁금한 마음에 그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니 정민규와 진세라의 무리가 오고 있었다.정민규도 우리를 보고 2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춰서서 내게 눈길을 돌렸다.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아무리 피해도 마주친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눈을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며 물었다.“배불러? 다 먹었으면 가자.”나상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정민규는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서 있었는데 그가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지나갈 수 없었다.나상민이 곧 그와 싸울 것 같자 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그냥 가자.”내가 나상민의 팔을 잡는 순간 정민규의 표정이 더 싸늘하게 변했다.내가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나상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옆으로 내려갔다.정민규 옆을 지날 때 나는 그가 꼭 잡은 손과 진세라가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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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나는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채용 조건상 내가 앨런에게 업무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외에 가끔 생활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알았다고 답장을 하자마자 앨런 쪽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앨런은 나에게 그의 카톡을 추가하고 일이 있으면 연락하기 쉽도록 그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라고 했다.나는 앨런의 말대로 곧 그의 카톡을 추가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나서 일어나서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한 봉지 먹고 택시를 타고 클럽으로 향했다.대략 30분 후에 나는 앨런이 말한 주소에 도착했다.웨이터에게 룸으로 데려가라고 했는데 문이 열리자 술에 만취한 정민규가 보였다.내가 고개를 돌려 가려는데 앨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통화버튼을 누르니 앨런이 황급히 물었다.“안나, 사람 찾았어요? 미안해요. 제 사촌 동생인데 방금 디자인 그림을 그릴 때 클럽에서 전화해 데려가라고 했는데 제가 떠날 수가 없었어요. "나는 단성사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안나만 생각났어요. 그 자식이 안나를 너무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월말에 보너스를 챙겨줄게요.”앨런은 말투가 듣기가 어색하고 어순도 흐트러졌다.나는 고개를 돌려 소파에 엎드려 있는 정민규를 돌아보며 입가까지 나온 말을 도로 삼켰다.“무사히 집에 데려다줄게요.”앨런은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종업원이 언제 물러갔는지 몰랐는데 나는 룸 안의 불을 전부 켜 놓았다.불빛이 너무 눈 부셨던지 정민규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불을 끄라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조용해졌다.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가 술에 취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에 그는 술에 취해 돌아올 때마다 두통을 호소했는데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늘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그를 더 아프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탁자 위에 에어컨 리모컨이 놓여 있었는데 내 옷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서 그를 감기에 걸리게 할 생각을 단념했다.나는 다가가 다리를 들어 정민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일어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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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아픈지 정민규가 진짜 손을 놓았는데 손을 뗀 나는 그를 다시 보기 귀찮았다.30분 후, 차는 정민규의 집 문밖에 세워졌다.차에서 내렸는데 그의 무게가 다 내 몸에 걸렸다.난 병이 갓 나았는지라 정말 이렇게 큰 그의 체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겨우 부축해서 두 걸음 걸었는데 문 앞까지 가지도 못하고 발밑이 휘청거리더니 두 사람이 함께 땅으로 넘어졌다.예상했던 통증이 오지 않자 어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해졌다. 정민규와 나는 넘어지는 과정에서 위치가 바뀌며 정민규가 밑에 깔렸다.나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아래를 바라보니 그는 아파서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뜨고 있었다.나는 재빨리 그에게서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괜찮아?”정민규는 손을 뻗어 뒤통수를 만지며 말했다.“아파.”방금 ‘쿵’ 하는 소리가 머리를 부딪치는 소리였단 말인가?나는 서둘러 일어나 그를 부축해 앉게 했다.“왜 아파? 피 나는 거야?”나는 말하면서 그의 뒤통수를 살펴보았는데 피는 나지 않았지만심하게 부어 있었다.내가 손을 뻗어 만져보자 정민규는 아파서 숨을 몰아쉬었다.“스읍.”나는 깜짝 놀라 연신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일어나. 병원에 가보자.”정민규는 내 손목을 잡더니 나를 쳐다보며 위로라도 건네듯 웃어 보였다.“난 괜찮아. 병원에 갈 필요 없어. 얼음찜질만 하면 돼.”나는 그를 보며 내가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타협했다.정민규는 문을 열라고 하며 비밀번호를 말해줬다.“비밀번호는 767676이야.”76은 내 생일 날짜였다.‘정민규는 왜 내 생일로 비밀번호를 만든 거지?’나는 자신에게 헛된 생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후 비밀번호를 눌렀다.문이 열렸다.“집까지 데려다줬으니 내 임무는 끝났어. 네 여자친구가 돌봐줄 테니 난 먼저 갈게.”말을 마치고 나는 돌아서려 할 때 정민규가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넘어졌다.나는 재빨리 그를 부축했고 그는 몸을 반쯤 내 몸에 기댔다.“여긴 내 집이야, 진세라는 없어.”정민규가 설명하듯이 말하며 고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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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그리고 네 할머니도, 고민욱은 더는 널 위협하지 않을 거야.”“은성아.”정민규는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날 미워하지 말아 줄래?”“정민규.”나는 손을 뒤로 젖히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너 나 좋아하는 거야?”정민규는 늘 교만하고 말을 기분 좋게 할 줄 몰랐는데 마음속의 말과 완전히 다른 말을 할 때가 많았다.그의 집안 배경은 그에게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는 특권을 주어서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나는 그가 억지를 부리고 고집부리는 모습에 익숙해졌다.그래서 그가 지금 일부러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그가 나를 다르게 대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었다.하지만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언제부터 그는 나에게 달라지기 시작했던 걸까?정민규를 바라보는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나는 정민규가 아니라고 대답해 주기를 바랐지만 내가 문제를 내뱉고 나서 그의 표정이 갑자기 편안해졌다.정민규는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그래, 좋아해.”두 눈이 마주쳤다. 잠시 후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는데 생각할수록 더 웃겼다.나는 정민규의 눈빛이 내 웃음과 함께 서서히 차가워지는 것을 보고 마침내 웃음을 거두었다.“그럼 그 호감을 거둬들여.”나는 갑자기 머리가 아팠지만 꾹 참으며 말했다.운명은 때때로 정말 사람을 희롱한다. 전생에 나는 죽도록 정민규를 좋아했는데 정민규는 나를 미워할 뿐이었다.내가 시집가서 그의 아내가 되고 우리 둘이 매일 한 지붕 아래였어도 그는 나를 무시했다.이번 생에 나는 온갖 방법으로 그를 멀리하고 그와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오히려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나는 심호흡을 하며 그의 차가운 안색을 무시했다.“넌 잘 알 거로 생각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날 좋아해 주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내가 지금 그런 느낌이야.”나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환하고 봄처럼 따뜻한 방안에 서서 내가 안간힘을 써 다가가려 했던 남자를 보며 웃었다.“좋아해 줘서 고맙지만 난 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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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그 잘생긴 남자가 진세라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진세라는 그의 품에 안겨 계속 웃었다.‘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 저렇게 껴안고 있다니. 정민규 몰래 바람난 건가?’내가 멍하니 넋 놓고 있자 웨이터가 내 귓가에 대고 물었다.“아가씨, 어떤 맛으로 주문할 건가요?”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거두었다.“미안해요.”나는 웃으며 메뉴판을 보았다.“반반으로 주세요.”그러고 나서 나는 음식을 조금 더 주문하고 우리는 한 끼 맛있게 먹었다.매콤한 애피타이저 때문인지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먹었다.중간에 화장실을 갔는데 나올 때 마침 진세라가 세면대에 서서 화장을 고치는 걸 마주쳤다.그녀는 나를 보는 순간 눈에서 한 가닥 당황스러움이 스쳤지만 곧 진정되었다.내가 가서 수도꼭지를 틀고 손을 씻고 닦을 때 진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은성, 너 지금 속으로 기쁘지?”‘내가 속으로 기뻐한다고? 내가 뭘 기뻐한다는 거지?’나는 진세라를 곁눈질하며 그녀에게 내가 왜 기뻐해야 하냐고 물으려는데 그녀는 화풀이라도 하듯 손 닦은 종이를 옆에 있는 휴지통에 집어 던지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떠났다.“미친 거 아니야?”나도 한마디 욕하고 나서 떠났다.시간이 빨리 지나 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설을 쇠기 전에 고민욱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돌아갈 수 있냐고 물었는데 전에 나는 설날 때 할머니를 뵈러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그의 질문에 나는 2, 3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31일 저녁 비행기 표로 갈 거예요.”고민욱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31일 저녁에 운전기사에게 데리러 나가라고 할게.”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고민욱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나에게 언제 집에 돌아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먼저 물어본 적이 없다.전화를 끊은 나는 마음이 좀 불안했다.단성시의 2023년 마지막 3일 동안 전국에 눈이 내렸다.학기 말에 수업도 거의 다 끝났고 앨런의 봄 시즌 발표회 작품 완제품도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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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참 아쉽네. 잘 어울렸는데.”진세라는 것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원인과 결과에 대해 말했었다.이혜린은 권수아와 눈을 마주쳤다. 권수아가 또 무엇을 물려고 할 때 이혜린이 입을 막고 끌고 갔다.“됐어, 됐어, 가십거리도 끝났으니 우리 오늘 저녁 뭐 먹을지 연구해 보자.”“맞아.”이혜린은 권수아를 의자에 앉히고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너 내일 집에 가? 몇 시 비행기야?”“오후 3시.”...조운시.나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정면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아마 단성시의 겨울에 적응한 것 같았는데 조운시 날씨에 한참이나 반응해서야 입고 있던 패딩 점퍼를 벗었다.“아가씨.”제가 패딩을 벗자마자 우리 집 기사가 도착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든 짐을 기사에게 건네준 뒤 허리를 굽혀 차 안으로 들어갔다.기숙사에서 이혜린과 권수아가 나에게 도착했냐고 물었다.나는 그들의 문자를 보고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이 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아저씨,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대표님께서 바다로 보내라고 했어요.”“바다요?”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가씨.”고민욱이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에 할머니를 뵈러 왔다.아직 할머니 얼굴도 못 봤는데 바다로 나가라니.나는 어두운 얼굴로 운전석 의자를 툭툭 쳤다.“돌아가요. 바다에 안 가요.”아저씨는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아가씨,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제가 아가씨를 부두에 데려다주지 않으면 대표님께서 저를 해고할 거예요. 아가씨, 제가 먹여 살려야 처자식도 있고 모셔야 할 부모님도 계신 걸 봐서라도 저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 줄래요?”아저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민욱의 전화가 걸려왔다.전화를 받은 내가 따져 묻기도 전에 그는 먼저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은성아, 네 할머니가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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