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771 - Chapter 1780

1816 Chapters

제1771화

강현우는 문세호의 말을 듣고 잠깐 멈칫했다.가슴 한쪽에서 어릴 적 연애하다가 여자 친구 집안 어른에게 들킨 것 같은 묘한 두려움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그런데도 강현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윤하경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조금 더 줬다.“놔요.”윤하경이 강현우를 밀어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난감함이 묻어 있었다.강현우는 끝내 놓지 않은 채, 문세호를 향해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문 어르신, 하경이랑 저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억지로 한 건 없습니다.”“그래?”문세호가 코웃음을 쳤다. 강현우를 바라보는 눈빛은 남의 집 귀한 딸을 건드린 못마땅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차갑기만 했다.“내가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처음에는 이 결혼이 연기라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연기를 진짜로 만들겠다는 거야?”강현우도 문세호가 지금 썩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문세호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그럴 만했다.강현우도 이제 아이가 있으니 문세호의 그런 마음이 더 또렷하게 이해됐다.강현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문세호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태도를 바로 세운 채, 진심을 담아 말했다.“문 어르신의 마음이 어떤지 압니다. 딸을 아끼는 마음도요. 그래도 저는 하경에게 진심입니다.”말은 정중했지만 문세호의 표정은 쉽게 풀릴 기색이 없었다.다만 강현우의 말 때문인지, 표정은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문세호는 짧게 한 번 흠, 하고 콧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병실 안으로 들어가 윤하민에게 다가갔다.침대 곁에서 문세호가 손을 들어 윤하민의 이마를 살짝 짚었다. 문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하경아, 의사가 뭐래?”윤하경이 곁으로 다가갔다.“큰일은 아니래요. 놀란 데다가 너무 추워서... 찬바람이랑 눈을 심하게 맞아서 그런 거래요.”“경성 날씨가 이런데 산에 데려가 놓고...”윤하경은 말을 잇지 못했다.아이를 낳고 나서야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알게 됐다. 윤하경은 차라리 윤하민이 겪은 걸 대신 겪고 싶었다.윤하민이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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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2화

“너, 너 방금 뭐라고 불렀니?”한참이 지나서야 문세호가 겨우 목소리를 되찾은 듯, 멍하니 윤하경을 바라봤다.윤하경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문세호를 아빠라고 부른 건 사실 말이 나오다 보니 그렇게 불러 버린 거였다. 강현우를 난처하게 두고 싶지 않았고 문세호가 더는 그렇게 화내지 않았으면 했다.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호칭은 윤하경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문세호와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윤하경은 문세호에게서, 윤성철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부성애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문세호는 정말로 윤하경을 위해 생각해 주고 있었다.윤하경은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돈이 있는 곳에 사랑도 있다.]엄마 덕에 기반을 다져 놓고도 모든 걸 윤하연에게만 남기려 했던 윤성철보다 문세호가 훨씬 아버지라는 자리에 가까웠다.윤하경은 가볍게 웃으며 문세호 앞으로 다가가 팔짱을 꼈다.“제가 진작 이렇게 불러야 했어요. 저를 생각해 주셔서 고마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자신도 하민이도, 제가 지킬 줄 알아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할게요.”예전에는 재벌 가문 사람들이 외출할 때마다 경호원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게 너무 과해 보였다.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 나니 세상일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앞으로는 하민의 곁에 붙어 다닐, 제대로 호신할 줄 아는 경호원을 붙여야 겠어. 가능하면 여자 경호원이면 좋겠지. 퇴원하자마자 바로 준비해야 겠어.’윤하경의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얼굴에 걸린 미소는 오히려 더 진심으로 깊어졌다.문세호는 아빠라는 한마디에 감정이 북받친 듯, 저도 모르게 가슴께를 짚었다.“콜록, 콜록...”뒤에 서 있던 이정한이 급히 다가가 문세호를 부축했다.“회장님, 괜찮으십니까?”문세호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괜찮아. 그냥... 너무 벅차서 그래.”문세호는 다시 윤하경을 바라봤다. 눈가가 붉게 젖어 있었다.“나는... 내가 죽기 전까지는 네가 나를 아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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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3화

문세호는 강현우의 태도에 꽤 만족한 듯, 얼굴에 남아 있던 마지막 불쾌함까지도 말끔히 사라졌다.복도로 나가자 문세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문세호는 강현우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너는 아직 젊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를 거야.”문세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같은 남자로서 진지하게 덧붙였다.“하지만 내가 너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은 이거야. 남자는 평생 무엇이든 버릴 수 있어도, 자기 아내와 아이만큼은 절대 버리면 안 돼. 그게 남자한테 가장 귀한 거야.”그 말을 하던 문세호의 눈빛이 순간 흐려졌다. 윤하경의 어머니를 떠올린 듯, 눈동자에 짙은 아쉬움이 스쳤다.“그때 내가...”문세호는 말끝을 끊고 더는 이어 가지 않았다. 후회라는 감정은 결국 본인만 아는 법이었다. 문세호는 수없이 많은 밤을, 단 한 번만이라도 윤하경의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다고 꿈꿔 왔다. 그런데 그런 바람 하나조차, 끝내는 사치가 되어 버렸다.강현우가 조용히 말했다.“지금 장인어른께서 하경이를 찾으셨으니 장모님도 하늘에서 보시면 기뻐하실 겁니다.”강현우는 사람을 달래는 말을 할 줄 알았다. 그 한마디에 문세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그랬으면 좋겠어.”문세호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듯 웃었다.“하경이를 찾았으니 내가 세상 떠난 뒤에는... 나도 이제 그 사람을 만나러 갈 면목이 생긴 거겠지.”그 말이 끝나자 엘리베이터가 딩동 소리를 내며 딱 도착했다. 문세호 앞에서 문이 천천히 열렸다.문세호가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이면서도 다시 한 번 문 앞에 서 있는 강현우를 돌아봤다.“하경이랑 하민이 잘 챙겨.”강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먼저 갈 게.”문세호를 보낸 뒤, 강현우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윤하경이 물었다.“가셨어요?”강현우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윤하경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 깊고 부드러워졌다.다음 순간, 강현우가 다가와 뒤에서 윤하경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 손이 윤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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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4화

“회장님, 아가씨 일행이 도착하셨습니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세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밖으로 들어온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윤하민이 작은 몸으로 잽싸게 내려오더니 곧장 문세호에게 달려가 다리에 와락 매달렸다.“외할아버지!”오는 길에 윤하경이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미리 알려 준 덕에 윤하민은 또렷하고 얌전하게 불렀다.앙증맞은 목소리로 내뱉은 그 한마디가 문세호의 마음을 단숨에 녹였다.문세호는 몸 생각도 앚은 채 허리를 숙여 윤하민을 번쩍 안아 올렸다.“우리 예쁜 하민이 왔구나.”말끝이 떨릴 만큼 문세호의 눈가가 붉어졌다.평생 외롭게 늙을 줄 알았는데 늦은 나이에 이렇게 손녀를 안고 웃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가장 큰 복이었다.윤하경은 답답한 마음에 한마디 했다.“이제 그만 내려주세요. 무리하지 마세요.”지난번 문세호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걸 떠올리면, 윤하민을 안아 올리는 모습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문세호는 오히려 아이처럼 뾰로통해졌다.“내가 하민이를 못 들 것 같아? 나는 앞으로도 하민을 십 년은 거뜬히 안을 수 있어.”희망이 생겨서인지 문세호는 정말로 전보다 훨씬 기운이 좋아 보였다.윤하경은 괜히 말 꺼냈나 싶을 만큼 머쓱해졌고, 문세호는 윤하경이 더 말하기도 전에 윤하민을 안은 채 그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식당에는 셰프와 가사도우미들이 줄 맞춰 서 있었고 이정한이 상차림 준비를 다 해 둔 상태였다.문세호가 이 한 끼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한눈에 보였다.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옆을 보니 강현우도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윤하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눈매는 깊고 선명한데 윤하경을 보는 눈빛만큼은 철없는 소년처럼 순수하고 다정했다.윤하경이 속으로 한 번 흘겨보는 순간, 강현우가 아무렇지 않게 윤하경의 손을 살짝 잡았다.뜨거운 손끝이 윤하경의 차가운 손끝을 건드렸다.강현우와는 오래 알고 지냈고 더없이 가까운 일도 수도 없이 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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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5화

문세호는 강현우를 한 번 바라보더니 아까 남아 있던 못마땅함도 결국 다 누그러진 듯했다.“알겠어. 앞으로는 하경이랑 하민이한테 잘해.”강현우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윤하민에게 장난스럽게 윙크까지 해 보였다.한 끼 식사는 꽤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특히 문세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얼굴빛도 한결 붉어졌고 강현우랑 술도 두 잔이나 나눴다.문세호는 젊을 때 상권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강현우와 사업 감각이 맞는 부분도 많아서 둘은 금세 벽이 허물어졌다. 말이 잘 통하니 자연스럽게 정원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올리고, 차를 달이며 한참 이야기를 이어 갔다.윤하경과 윤하민은 옆에서 듣다가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윤하경은 윤하민이 눈을 비비는 걸 보자 강현우에게 말했다.“저는 하민이 데리고 옆 별채로 가서 먼저 재울게요. 아빠랑 계속 이야기 나누세요.”강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앉았다. 괜히 따라가려다 눈치만 보일 것 같았다.윤하경과 윤하민이 떠난 뒤에야 문세호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아까보다 훨씬 엄격한 얼굴로 강현우를 바라봤다.“너랑 하경이 일은, 언제쯤 공식적으로 정리할 생각이야?”말투에는 어른의 묵직한 압력이 실려 있었다.강현우는 고개를 조금 숙이더니 입을 열었다.“당연히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다만...”강현우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결국 속내를 꺼냈다.“결혼식은 올렸지만... 하경이랑 아직 혼인신고를 안 했습니다.”법적으로는 아직 정식 부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강현우는 지난번 일을 겪고 나서, 윤하경이 이 부분에 더 예민해졌을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하지만 중간에 문세호가 한마디만 거들어 주면 윤하경도 거부감이 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강현우가 기다린 건 사실상 이 순간이었다.‘서류에 도장 찍어야 진짜 내 아내가 되는 거잖아.’강현우의 입가에 아주 옅은 웃음이 스쳤다.문세호는 잠깐 침묵하다가 강현우의 그 미세한 표정을 보고는 단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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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6화

강현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들썩였다.강현우는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더니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 헤쳤다. 그리고 천천히 욕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때 윤하경은 고개를 젖힌 채 물안개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며 하루 종일 쌓인 피로를 씻겨 내려갔다.그런데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른 두 손이 윤하경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며 뒤에서 끌어안았다.윤하경은 잠깐 굳었다가 익숙한 가슴이 등을 밀착하자 이내 힘이 풀렸다. 대신 얼굴에 옅은 홍조가 아주 희미하게 번졌다.“현우 씨... 왜 왔어요?”물소리에 묻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윤하경의 목소리는 낮고 가벼웠다.강현우는 턱을 윤하경의 정수리에 살짝 얹고 낮게 속삭였다.“아버님이랑 술 마셨어. 그래서 왔지.”강현우가 아버님이라는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꺼내서 윤하경은 괜히 민망해졌다. 윤하경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슬쩍 몸을 돌리려 했다.“그럼 씻어요. 저는 다 씻었으니까...”윤하경이 욕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강현우가 손목을 잡아 다시 안쪽으로 끌어당겼다.“잠깐.”강현우는 윤하경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같이 있어 줘.”강현우의 시선이 윤하경을 깊게 눌렀다. 가까이에서 보니 세월이 정말 윤하경을 비켜 간 것 같았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윤하경의 몸에는 흔적이 거의 없었다. 선은 여전히 매끈했고 피부는 물기 속에서 더 희게 빛났다.강현우가 윤하경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이마에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하경아.”그 한마디가 묘하게 달라서 윤하경은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그게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하면 되잖아요.”윤하경이 끝까지 말을 맺기도 전에, 몸이 순간 뜨는 느낌이 들었다. 강현우가 윤하경을 번쩍 들어 올려 옆의 세면대 위에 앉혀 버렸다.“현우 씨, 뭐 하는 거예요? 말 좀 하고...”윤하경이 성가시다는 듯 강현우의 어깨를 툭 쳤지만 강현우는 오히려 윤하경의 얼굴에 번진 부끄러움을 똑똑히 확인하고는 흥미로운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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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7화

윤하경의 잠이 단숨에 달아났다.“혼인신고요?”윤하경은 그동안 이 일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강현우가 갑자기 꺼내지 않았다면, 윤하경은 아예 잊고 있었을 정도였다.그런데 막상 강현우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윤하경의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거부감이 고개를 들었다.윤하경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잠깐 뜸을 들인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게... 혼인신고 같은 건 조금 천천히 해도 되지 않을까요? 급할 것 없잖아요.”윤하경은 솔직히 겁이 났다.인생은 길고, 예상 못 할 일은 너무 많았다. 강현우와 겪어 온 일이 많아서 더 그랬다. 앞으로 또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삶에 법으로 스스로를 묶어 두는 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강현우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 어금니를 가볍게 깨물며 윤하경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더 줬다.“윤하경, 날 못 믿는 거야?”윤하경은 숨이 턱 막혀서 낮게 신음을 흘렸다.“잠깐만... 너무 세요. 아파요...”강현우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가 곧 느릿하게 내려앉았다. 강현우는 윤하경의 귀 뒤로 숨을 낮게 불어 넣듯 속삭였다.“아까 내가... 덜 열심히 했나 보네.”강현우가 다시 입술을 가져오려 하자 윤하경이 바로 두 손을 들었다.“아니요. 됐어요. 진짜 됐어요.”윤하경은 지친 목소리로 덧붙였다.“너무 피곤해요...”윤하경은 익숙하게 힘없는 척하며 몸을 옆으로 빼려 했다. 강현우의 숨결이 더 짙어지는 게 느껴지자 윤하경은 더 빠르게 이불 끝으로 파고들었다.강현우는 한 번 멈칫했지만 끝내 억지로 밀어붙이지는 않았다.어둠 속에서 강현우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우의 큰 손이 윤하경의 허리께를 천천히 쓸어내리듯 어루만졌다. 강현우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읽히지 않았다.강현우도 윤하경이 혼인신고를 망설이는 이유, 그리고 그 망설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알고 있는 듯했다.오랜 침묵 끝에 강현우가 윤하경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맞춤을 떨어뜨렸다.“그럼 조금 더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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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8화

강현우가 요리를 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그런데 오늘의 강현우는 왠지 전과 달랐다.윤하경은 잠깐 생각하다가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보던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살림남 느낌이 확 나네.’아까 강현우를 보는 순간 윤하경의 머릿속에 딱 그 말이 떠올랐다.윤하경의 시선을 느낀 강현우가 옆얼굴을 돌렸다.“뭘 그렇게 봐?”윤하경은 얼른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아무것도...”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입가에 옅은 웃음을 걸고 윤하경과 윤하민의 그릇에 반찬을 놓아 줬다.그 손놀림 하나하나가 살뜰했다. 꼭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 같았다.윤하경은 그런 강현우가 낯설었다.밖에서 사람들이 지금 모습을 보면 아마 입이 떡 벌어질 거였다. 강현우는 원래 차갑고 매섭기로 유명했다.강현우가 다시 윤하경의 접시에 송이버섯 흑후추 와규 한 점을 얹어 주며 물었다.“너... 나한테 할 말 없어?”“네?”윤하경은 영문을 몰라 강현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없는데요. 무슨 말이요?”윤하경이 너무 무심한 얼굴을 하자 강현우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너도 느끼지 않아? 나 이런 거 꽤 잘하잖아. 남편으로 말이야.”강현우는 허리를 곧게 펴며 덧붙였다.“밖에서도 일 잘하고, 집에서도 일 잘하고. 완전 만점 남편이지.”윤하경은 말문이 막혔다.결국 또 그 이야기였다.혼인신고, 결국 그 얘길 꺼내려는 거였다.윤하경은 괜히 목이 타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컵을 내려놓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저... 생각 좀 해 볼게요.”강현우도 급하게 밀어붙일 수 없는 걸 알았다. 그래도 또 거절당하니 속이 상한 듯, 눈빛이 살짝 처졌다.“그래 알겠어.”강현우가 작게 말했다.그때, 바깥에서 소란이 났다. 곧 도우미가 들어와 보고했다.“대표님, 사모님, 어머님께서 오셨습니다. 지금 밖에 계십니다.”윤하경은 잠깐 멈칫하며 현관 쪽을 바라봤다.‘한선아 씨가 왜 갑자기?’윤하경이 강현우를 보자, 강현우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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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9화

식당으로 들어온 한선아의 시선이 제일 먼저 강현우의 앞치마에 꽂혔다.한선아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늘 근엄하고 차갑기만 하던 아들이 이런 차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한선아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이 음식은... 현우가 한 거니?”윤하경은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한선아가 이런 걸 못마땅해할 것 같아 설명하려던 찰나, 한선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버렸다.“현우가 만든 밥은 한 번도 못 먹어 봤는데 오늘은 내가 복이 많네.”윤하경은 그 말이 의외라 한선아를 힐끗 바라봤다. 정말로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억지로 참고 있는 건지 가늠하려는 눈빛이었다.그런데 한선아의 얼굴에는 진짜로 분노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도우미가 식기를 올려놓자 한선아는 정말로 젓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했다.강현우도 한선아를 무심하게 한 번 훑어봤을 뿐,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만 누가 봐도 모자 사이는 어딘가 껄끄러웠다.윤하경도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한선아가 끼어든 뒤로 식탁 분위기가 묘하게 뒤틀린 채 흘러갔다.그렇게 한 끼를 마치고 나서야 한선아가 윤하민을 보며 손짓했다.“하민아, 이리 와. 할머니한테로 오렴.”윤하민은 윤하경과 강현우를 번갈아 바라봤다.강현우는 별말이 없었다. 윤하경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윤하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윤하민이 한선아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윤하민은 동그란 얼굴을 올려다보며 아주 작고 또렷한 목소리로 불렀다.“할머니, 안녕하세요.”원래도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이렇게 부르면 더 사람의 마음을 녹였다. 큰 눈으로 또렷하게 올려다보고만 있어도 괜히 마음이 풀릴 정도였다.한선아는 그 한마디에 눈가가 붉어졌다.“그래. 우리 하민아... 할머니가 너 보러 못 갔는데... 섭섭하진 않지?”한선아도 병문안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강현우가 막았다.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도 강현우에게 미리 말도 없이 한선아가 혼자 결정한 일이었다.나이가 들수록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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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0화

윤하경은 한선아가 오늘 할 얘기가 있다고 하자마자 윤하민에게 손짓했다.“하민아, 엄마랑 장난감방 가서 놀자.”그런데 윤하경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현우가 윤하경의 손목을 붙잡았다.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강현우는 윤하경을 자기 옆자리에 앉혀 놓고 한선아를 똑바로 바라봤다.“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요. 하경이랑 하민이 앞에서요. 못 들을 말도 아니잖아요.”한선아가 옅게 웃었다.“그래, 맞아. 못 들을 말은 아니지.”한선아는 잠깐 시선을 내리깔았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경아, 예전 일로 네가 크게 상처받았다는 거 알아. 그리고 이번에 하민이 일도...내가 그 집사 일로 선처를 부탁한 게 하민이한테는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는 것도 알아. 난 하민의 할머니인데 오히려...”한선아는 말끝을 흐리며 숨을 한 번 삼켰다.“그 일은 너랑 현우, 그리고 하민이까지... 다 상처를 줬어.”윤하경은 영문을 몰라 한선아를 바라봤다.‘오늘... 사과하러 온 건가?’한선아는 윤하경의 시선을 받아내며 조용히 웃어 보였다.“그래서 퇴원하고도 본가로 안 돌아오려는 것도 나도 이해해.”강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한선아는 강현우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나도 알아. 내가 엄마로서 자격이 없었다는 거. 네가 나를 미워하는 것도... 당연해.”그러더니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그래서 내가 본가에서 나갈게. 강씨 가문 저택을 떠나서, 따로 살 생각이야.”윤하경은 뜻밖이라 눈이 조금 커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선아가 겨우 다시 들어온 듯했는데 오히려 스스로 나가겠다고 했다.강현우도 잠깐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표정을 다잡았다. 한참 침묵하던 강현우가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살든 저한테는 별 차이 없어요.”그 말은 사실상 허락이었다.한선아는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돌아올 줄 알았지, 이렇게 선을 긋듯 문을 열어 주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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